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25화 (25/150)
  • 025화 재회

    두 기의 전투 인형이 완성됐다.

    나이트와 룩.

    나이트와 룩 모두 전투 인형으로 전위에 새우기 위해서였기에 기사로서의 가르침을 받았다.

    마법사에게 기사의 가르침을 받는 다는 것이 우스웠지만, 그들이 배우는 것은 기사도가 아니라 오직 전투 기법 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법사가 기사를 상대하는 법을 통해 방어법을 주로 배웠는데 그들을 위한 아티펙트를 만드는 일이 카이가 요즘 하는 일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최상급 영혼석을 통해서 만든 인공 영혼은 다른 성격이라는 점이었다. 말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이트는 시답잖은 농담을 시작했지만, 룩은 과묵했다.

    이름따라 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성격이 전투 방식에도 나온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레이스’의 두 번째 작품 영광도 작업에 들어갔지만, 그건 보석 세공이 끝나야 자신이 손을 쓸 수 있었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릴리에게 연락해 본 결과 엘폰토의 영지 상단이 아프록시아 잎을 구하기 시작했다는 보고도 들었다. 그리고 가격이 올랐음에도 매출은 상승 중이라고 했다.

    말린 아프록시아 잎을 통째로 쓰는 것은 중독자나 쓰는 것이지만 아프록시아잎을 섞은 연초 또한 중독성이 있는 기호품이다. 그 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고, 네 배로, 여덟 배로 뛰었다고 귀족들이 신경이나 쓸까?

    클란드라의 말처럼 그들은 다른 이들은 쉽게 못 구하는 물건을 구했다는 것에 더 만족해하며 사려고 들 터였다.

    그보다는 슬슬 중독 증상을 보이기 시작할 테니 엘폰토 공작의 공작령을 망하게 할 때가 오고 있었다.

    엘폰토 공작령에서 나는 것은 루비 광산. 그 안에서 다량의 루비를 캘 수 있었기에 그들은 언제나 부유했다. 그렇게 캔 루비를 이용해서 다른 영지에서 밀을 사와서 영지를 유지했다.

    왕족이기도 한 엘폰토 공작이었고, 왕궁 제일 검이라 불리는 이였기에 그의사업은 승승장구했다. 그의 영지 상단과 거래하던 이들이 그의 체면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루비 광산이 무너져 내리면 어떻게 될까?

    엘폰토 공작이 팔다리를 잃은 불구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소문이 날 대로 났다. 안타르시아에 갈 수 있는 이들이 적다고 하나 엘도 왕국에도 그곳에 오갈 수 있는 이들은 몇 있었으니 그들을 통해서 알음알음 소문이 났다.

    왕국 제일검이 팔다리를 잃고 칩거에 들어갔다고 알려졌는데 그런 그의 영지에 있는 루비 광산이 무너졌을 때 그는 재기할 수 있을까?

    광산 하나 무너트리는 것은 7성에 이른 지금의 카이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프록시아 잎에 중독되면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엘폰토 공작의 루비 광산을 무너트리러 가야 할 것 같았다.

    룩이 쓸 방패 아티펙트를 만들던 카이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힘껏 기지개를 켰다. 몸을 풀던 카이는 옆에 와 있는 테오를 보고는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저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안 됩니까?”

    “무슨 부탁?”

    “인공 영혼으로 제 뒤를 이을 집사 인형 하나만 만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왜? 그만두려고?”

    테오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아닙니다만 사실 집사 교육은 십 년이 넘게 걸리는 일입니다. 다음 집사를 위해서 저도 집사가 될 아이들을 들여야 하는데 그보다는 집사 인형이 나을 것 같아서 말이죠.”

    집사란 무엇보다 입이 무거워야 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집사 인형이 어떤 집사보다 믿음직 스러울 수 있었다.

    게다가 인공 영혼을 넣은 이들의 움직임은 전에 쓰던 인형들보다 훨씬 정교했다. 충분히 집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카이는 테오의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영광’이 완성되거든 안타르시아에서 재료를 사다 만들어 주마.”

    “감사합니다.”

    “다른 일은 없고?”

    “왕궁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왕궁에서?”

    테오가 주저하다 답했다.

    “엘디아 공주가 엘티온 왕자님과 함께 찾아오시는 중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예.”

    카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여자가 여기는 왜 오는 걸까?

    아직 더 보여줄 바닥이 남았나?

    보여준다면 똑바로 봐줄 생각이었다. 다만 엘티온이 온다고 하니 속도 없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식이라 생각하고 정을 줘서 그런가?

    아직 그 정을 다 못 뗐나 보다.

    “오면 만나면 될 일이지. 얼마나 걸리지?”

    “보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알겠어. 오면 제대로 식사 한 끼 정도는 해야겠지. 알아서 준비해 줘. 그보다 벨록 상단은 어때?”

    “이번 달 물건도 잘 받아갔습니다.”

    “지금까지 넘긴 채권이 얼마나 돼?”

    “20만 프랑 정도 됩니다.”

    예전이라면 신경 썼을 액수지만, 지금은 굳이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액수였다.

    “그런데 아프록시아 잎 가격이 올랐다고 하던데 어떻게 할까요?”

    “괜찮아. 아프록시아 잎을 받아들이는 양을 늘려.”

    “예.”

    채권의 액수가 커지면 엘디아 공주는 어떤 생각을 할까? 곱게 자신이 죽기를 기다리기보다 죽기 전에 얼굴 앞에서 채권을 흔들며 자신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자 하지 않을까?

    그녀가 눈앞에서 채권을 흔들러 오기 위해서라도 돈을 팍팍 써야 할 것 같았다.

    “100만 프랑까지는 맞춰 둬.”

    “예. 다음에 받을 물건 양을 늘리겠습니다.”

    “좋아.”

    테오가 물러나자 카이는 잠시 의자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숨을 돌렸다.

    어째서인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고개를 휘휘 내저은 카이는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성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연무장이었는데 그 위에 환영마법을 걸어 놓아서 안으로 들어와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게 해 놓았다.

    안에서 무슨 소란이 나도 밖에서는 알 수 없게 방음 마법까지 설치한 곳에서는 나이트와 룩이 2대 1로 덴다르트와 싸우고 있었는데 한쪽에서는 프릴이 그걸 구경하고 있었다.

    워 메이지가 어떻게 싸우는지 보기 위해서라면 덴다르트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이 좋을 거라고 알려줬더니 틈만 나면 이곳에 와서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덴다르트도 프릴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마법을 가르치기보다는 그녀에게 워 메이지의 전투 방식을 가르쳐주는 중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프릴은 카이의 제자였기에 마법은 가르치지 않았다.

    나이트와 룩이 일시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거나 공격 마법도 쓸 수 있지만, 그 둘의 연계는 아직 부자연스러웠다.

    워낙 능구렁이같이 변칙적인 마법을 사용하는 덴다르트였기에 나이트와 룩 모두 아직 그를 상대하는 것에 애를 먹고 있지만, 처음 인공 영혼으로 만들었을 때와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성능이 향상되었다.

    말과 전투 방식만 배워서 그런지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 가고 있었다.

    쩌저저적!

    덴다르트의 마법에 나이트와 룩이 얼음덩어리 안에 갇히고 나서야 훈련이 끝났다. 덴다르트는 손을 탁탁 털며 다가오며 물었다.

    “어쩐 일이냐? 요즘 애들 장비 만든다고 바쁘다고 하더니.”

    뭔가 심통이라도 난 듯 보이기에 물었다.

    “뭐 언짢은 일 있습니까?”

    “고용된 처지에 언짢은 일이 뭐 있겠냐?”

    분위기를 보니 딱 언짢아하는 것이 보이기에 카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비전 마법 때문이신가 보네요.”

    “그래. 남아서 같이 비전 마법 연구해 보자고 하더니 코빼기를 볼 수가 있어야지.”

    전위로서 나이트와 룩의 무장을 준비하느라 바빴던 것은 사실이지만, 덴다르트와 함께 마법 연구를 등한시한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바헬을 만날 날이 가까워지다 보니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나보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이렇게 나와봤습니다.”

    “일이 왜?”

    “엘디아 공주가 이곳으로 온다는군요.”

    카이의 대답에 덴다르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저도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죽여줄까?”

    카이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곳은 리퍼가 살피고 있습니다. 저야 비상 통로를 통해서 이동하지만 스승님은 그냥 오셨을 테니 그것에 대해 보고를 받았겠죠.”

    “나 때문에 오는 거라고?”

    “그냥 죽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관심이 생겼나 보죠.”

    덴다르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그래서 만나볼 거냐? 안 만나겠다고 하면 내가 그냥 돌려보내마.”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심란했던 마음이 담담해졌다. 전적으로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덴다르트 때문인지도 몰랐다.

    “제가 피할 이유는 없죠. 무슨 말을 하나 궁금해서라도 만나봐야겠습니다.”

    창밖을 구경하던 엘티온이 물었다.

    “뭔가 활기가 느껴지지 않네요.”

    “그러니?”

    야만인의 침략 이후 이곳을 카이에게 영지로 내렸지만, 왕국의 영지 관리인은 그저 영지가 굴러갈 정도로만 운영해 왔다. 야만인의 침략을 그대로 당했던만큼 세금을 낮춰줬지만, 그동안에 영지가 회복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대수림을 옆에 두고 있어 언제 야만인이 다시 침략할지 모르는 곳이었으니까.

    그래도 영지의 크기만 따진다면 백작령에 부끄럽지 않은 곳. 카이가 죽으면 되찾아 와야 할 곳이기도 했다.

    엘티온은 창문 너머로 카이 백작령의 영지를 돌아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의 영지이기에 활기 넘치고 발달했을 줄 알았는데 다른 영지들보다 오히려 더욱 열악해 보이는 환경이었다.

    “아버지는 돈이 많으신데 왜 영지민에게 베풀지 않으셨을까요?”

    “버는 것도 많지만, 쓰는 것도 많은 것이 마법사들이니까.”

    “그런 걸까요?”

    엘디아는 흔들리는 마차의 움직임을 느끼며 엘티온을 바라보았다. 영지민들을 걱정하는 모습에 한마디 할까 하다가 참았다.

    될 수 있는 한 카이와 마주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그 잠깐잠깐 보는 사이에 귀족이 아닌 평민의 사상을 집어넣기라도 한 건가?

    귀족은, 왕족은 왕족다워야 한다.

    엘폰토가 친 아버지라는 것은 밝히지 않은 것은 조금 더 크고 세상에 대해 알게 된 후에 알려주려고 했는데 엘폰토가 저리되었으니 그냥 묻어둬도 될 것 같았다.

    다만 제대로 된 가치관은 심어줘야 하니 돌아가거든 엘티온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갈아치우던가 해야겠다.

    마차의 곁으로 다가온 기사가 말을 건넸다.

    “곧 백작성에 도착합니다.”

    “알겠어요. 프레드 경.”

    책임자인 신임 군위기사단장 프레드가 속도를 높여서 마차를 앞지르는 것을 지켜보던 엘디아가 엘티온에게 시선을 주었다.

    “엘티온.”

    “예. 어머니.”

    엘디아는 손을 뻗어 엘티온의 손을 꼭 쥐여줬다. 어리기만 하던 엘티온의 손에는 벌써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수련하기에 이 어린아이의 손에 이렇게 굳은살이 박였을까?

    “카이가 아픈 것은 알고 있지?”

    “···예.”

    엘티온이 기를 쓰고 검을 수련하는 이유였다. 미치광이 바헬이 왕국에 들어와 약속대로 자신을 잡아가려고 할 때 카이가 나서줬던 것을 기억했다.

    8성급 대마법사가 재해에 가까운 존재라는 것을 말로만 들었지 그렇게 압도적일 줄은 몰랐다. 전 근위기사단장의 머리가 손가락 한 번 튕기자 터져나가고 아무도 나서지 못하던 때에 카이가 나서줬다.

    제대로 싸우는 것을 본 적은 없었지만, 카이는 무결의 마법사라고 불리던 이였다. 그가 만든 수많은 아티펙트와 인형등 신기한 것 투성이였으니까.

    그런 카이는 근위기사단장도 손가락 한 번 튕기는 것에 터져나갔는데 첫 번째 공격을 받아냈다. 이어서 두 번째 공격도 받아내고 쓰러진 카이의 마력을 봉인한 바헬이 떠났다.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하던 순간 나서줬던 카이의 부정을 알았기에 엘티온이 검을 수련하고 있었다. 마력을 봉인 당해 더는 마법을 쓰지 못하는 카이를 지켜주기 위해서.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

    “그를 다정하게 대해주렴.”

    “당연하죠. 아버지인데요.”

    엘티온의 맑은 눈을 보고 엘디아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카이가 다른 누구보다 엘티온을 아꼈기에 이런 엘티온을 본다면 이야기가 잘진행되리라.

    하긴 엘더가 망하는 것은 그도 바라지 않을 테니 이번 일은 순순히 진행될 것 같았다.

    곧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엘디아는 프레드 경의 팔에 살짝 손을 얹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곳에는 덴다르트의 부축을 받고 서 있는 퀭한 모습의 카이가 서 있었다. 정말이지 이제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곧 엘티온이 내리자 카이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아버지!”

    덥석 안기는 엘티온의 등을 두드려주며 카이가 엘디아를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엘티온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지독한 여자였다. 대체 어디까지 보여줄 생각인지 진지하게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결심(내용 수정)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