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23화 (23/150)
  • 023화 얼마면 돼요?

    방랑 마법사 덴다르트.

    5성 빙결 마법사였던 그는 어느새 6성에 올라 있었다.

    마탑의 꼰대들을 들이받고 나와 방랑 마법사 단에 들어서 방랑하는 그는 재능이 있는 이들을 찾아가 마법을 전수해주고는 했다. 그 저의가 마탑을 물 먹이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카이는 그의 은혜를 입었다.

    카이가 6성 마법사에 오르고 나서 알았다. 그는 워 메이지로 야만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서 치열하게 굴렀지만, 마탑의 마법사들은 아예 나서지도 않았었다.

    그 인간들이 엉덩이가 무거운 것도 있지만, 이들은 규칙에 얽매여서인지 뭔가를 가르쳐주기가 인색하기 짝이 없는 이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왕궁에서 장신구형 아티펙트를 만들고 엘더에서 축소 마법진 설계를 가지게 되자 마법사들이 그걸 배워보겠다고 몰려왔는데 그들을 만나고 보니 알겠더라.

    덴다르트가 아낌없이 베푼 것이었다는 것을.

    덴다르트는 카이가 자신을 뛰어넘자 훌쩍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나서 얼마 안있어 야만인의 침공이 있었는데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방랑 마법사는 각자 추구하는 바가 있다고 했다. 그 정점에 있는 방랑 마법사단의 단장은 뭔가 계획이 있다고 했지만, 방랑 마법사단에 들기 전에는 그 계획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실 마법사단에 들어도 굳이 따를 필요가 없다는 말도 했었다.

    실제로 덴다르트도 그 계획을 따르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는 인간이었으니까.

    아니타와 사이가 어긋난 것도 그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카이가 맞은편 자리에 앉자 덴다르트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인상을 굳혔다.

    “넌 대체 어떻게 돼 먹은 놈이냐? 너 대마법사라도 된 거냐?”

    카이는 미소를 지을 뿐 답하지 않았다. 그런 카이의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웠는지 고개를 휘휘 내저은 덴다르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여동생이 있다고 했었지?”

    “예.”

    “그 여동생이 나를 아는 이든이라는 놈에 관해서 묻더라고. 전격계 마법사라는데 뭐 내 기억에는 없던 놈이란 말이지. 그래도 빙계 마법의 비전을 만들던 중에 벽에 막혀 갑갑했는데 네가 떠오르지 뭐냐? 그래서 알아보니 왕궁에는 없다고 하고, 쉬쉬하기에 여기로 바로 왔다.”

    “잘 하셨네요.”

    덴다르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카이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내 제자 중에 너만큼 잘 된 녀석이 없거든? 성취도 성취지만, 부마가 된 녀석이 너밖에 없었으니까.”

    “그거야 귀족들은 재능이 있어도 안 가르치시잖아요.”

    카이의 대꾸에 덴다르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녀석들은 돈도 많은데 내가 왜 가르치냐? 놈들은 마탑에 가서 꼰대들한테 굴러 봐야 해.”

    돈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상대를 엿 먹이는 것에 인생을 거는 덴다르트를 보면 반골 기질이 강한 것이 분명했다.

    덴다르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카이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멀쩡한 네가 왕궁도 아니고 이곳에 와 있는 것을 보면 뭐 바람이라도 피다 걸렸냐?”

    카이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테오.”

    “부르셨습니까?”

    “술 좀 가져다줄래?”

    “준비하겠습니다.”

    테오가 물러가자 덴다르트가 깊어진 눈으로 카이를 바라보았다. 잠시 기다리니 테오가 붉은색의 술병과 크리스탈 잔을 가지고 왔다. 그걸 보고 덴다르트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붉은 숨결! 그것도 블랙 에디션?”

    “언제고 뵐 날이 있을 줄 알고 준비했던 겁니다.”

    “크하하하. 역시 제자 중에 너만 한 녀석이 없다니까?”

    카이는 술병의 마개를 열어 크리스탈 잔에 따라서 건넸다. 붉은 액체가 찰랑 이는 것을 보고 덴다르트가 잔을 잡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진한 향에 미소를 지은 덴다르트가 쭈욱 술잔을 비웠다.

    “크하! 이거지!”

    돈이 필요하면 용병 일을 잠깐 뛰어서 돈을 마련하는 덴다르트에게 있어서 붉은 숨결 중에서도 블랙 에디션은 쉽게 사서 마실 수 없는 고급술이었다.

    한 병에 1만 프랑이나 하는 술이었으니까.

    카이는 다시 그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는 자신도 술을 따라서 한 모금을 마셨다. 속에서 올라오는 술기운에 캬하고 숨결을 토해낸 카이가 입을 열었다.

    “바람폈습니다.”

    “오! 공주를 두고 바람을 피다니! 역시 내 제자!”

    “···저 말고 공주요.”

    덴다르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이 씨빨 것! 감히 내 제자를 데려다가 그렇게 돈을 처 벌었으면서 바람을 펴? 네 아들도 그거 알아?”

    카이는 고개를 기울여 덴다르트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자신에 대해서 이것 저것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아들이 아니라더군요.”

    휘오오오.

    순간 주위의 공기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덴다르트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한 것을 보고 카이는 그가 진정한 워 메이지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진흙탕을 구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워 메이지.

    그런 덴다르트의 눈이 진심 가득한 빛으로 입을 열었다.

    “씨발. 제자야. 그 년 내가 죽여줄까?”

    카이는 덴다르트가 진심인 것을 알았기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것을 보고 덴다르트가 스산하게 말했다.

    “농담 아냐.”

    카이는 웃음을 뚝 그치고 덴다르트를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말하는 그 덕분에 위로가 되었다.

    복수를 결심한 것은 결심한 것이고, 누군가에게 이만큼이나 위로를 받은 적이 있던가? 테오가 옆에서 함께하고 있으면서 위로가 되어주었던 것과는 또 달랐다.

    카이는 그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저 카이입니다. 스승님 제자.”

    “······.”

    덴다르트가 아무런 말도 없이 바라보자 카이가 자신의 잔에 남은 술을 몽땅 비우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제 복수입니다. 그냥 죽이는 것은 성에 안 차서요.”

    덴다르트는 카이의 눈에 담긴 진심을 읽고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네가 내 제자들 중 제일 난 놈이다.”

    “그리고 스승님을 가장 닮았죠.”

    “크크크. 그렇지.”

    덴다르트는 술을 쭉 비웠다. 그리고 다시 잔을 내밀어 카이가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

    생각해 보면 이런 제자도 없다. 마법사 중에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마탑에서도 가르침을 제한하거나 그 재능이 눈부셔자신을 뛰어넘으려고 할 것 같은데는 제거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직접 죽이지 않아도 죄를 뒤집어 씌우거나 사지로 몰아넣기 바쁘니까.

    그런 그들의 생리를 생각해 봤을 때 스승보다 뛰어나는 제자가 나오기는 극히 힘들었다. 그러나 천에 하나 그런 인물이 나온다고 한다면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역전된다.

    마탑은 특히나 성급에 민감한 이들이라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게 되면 오히려 그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청해야 하게 된다. 스승을 뛰어넘은 제자가 그 스승을 곱게 봐주는 경우가 거의 없기도 하고.

    그래서 덴다르트는 카이가 자신을 뛰어넘었을 때 그를 떠났다.

    자신이 아무리 마탑의 꼰대들처럼 가르침에 인색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가르침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워 메이지는 단순히 마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전투 방식을 배우는 것이라서 험난했으니까.

    그런데도 다시 돌아온 자신을 이렇게 스승으로 대한다.

    사실 6성을 이루고 가장 먼저 찾아오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전 마법을 연구하던 중이었는데 그걸 개발하기 전에 여동생의 연락을 받았다.

    이든이라는 놈은 모르겠고, 갑갑한 마음에 찾아왔는데 이 녀석은 어떻게 된 게 답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7성에 오른 것 같았다.

    워 메이지로서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리 스승으로 대해주니 그게 고마웠다.

    술잔을 비운 덴다르트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술 더 있냐?”

    “테오. 준비해 둔 술 가져와.”

    테오가 그 말에 술병을 가져와 하나둘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인 술병이 모두 열두 개.

    “저게 다냐?”

    “백 병 모아 놨습니다. 적어도 술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겁니다.”

    덴다르트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내 제자다. 술을 마시는 중에 끊기면 그만큼 찝찝한 것도 없지.”

    술도 덴다르트가 가르쳐 주었기에 덴다르트의 주량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언제고 찾아올 때를 대비해 준비해두었다.

    카이와 덴다르트는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짓고는 함께 술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빈 술병이 스무 개를 넘어가서 술이 사람을 먹기 시작했을 때 덴다르트가 소파에 반쯤 누운 채로 술잔을 들어 그 안에 찰랑이는 술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냐?”

    “아니요.”

    덴다르트가 황당하다는 듯 돌아보았지만 카이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안 돼요.”

    “와 씨! 이러기냐?”

    카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물어볼 거면서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너에게 먼저 바람을 피웠다고 말할 정도로 멍청한 여자는 아니란 말이야. 그렇게 멍청했다면 엘더를 이만큼이나 키울 수도 없었을 테니까.”

    카이가 빤히 바라보자 덴다르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너 혹시 죽을 병 걸렸냐?”

    카이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확히는 걸렸었죠.”

    “지금은 나았다는 거야?”

    카이는 덴다르트에게 솔직히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해 줬다. 왕국에서야 숨기고 싶어 하겠지만, 자신이 숨길 필요는 없었으니까.

    카이의 말을 다 들은 덴다르트가 헛웃음을 흘렸다.

    “미치광이 바헬을 만나고 살아남았다는 거지?”

    “그렇죠.”

    덴다르트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제자야. 그 미치광이 영감 죽여줄까?”

    카이는 덴다르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과 함께 답했다.

    “그런 말을 떨면서 하면 설득력이 없거든요?”

    “크크크. 거짓말이 서투른 건 이해해라.”

    웃음을 터트린 덴다르트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세를 똑바로 하고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취기가 없어 보이는 걸 보면 대단하다 싶었다.

    “바헬은 널 다시 만나러 올 거다.”

    “알고 있어요.”

    6성 마법사일 때는 가진 모든 것을 털어도 바헬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고작 그의 두 번의 손짓에 가진 모든 것을 털렸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변칙적이었지만, 바헬의 봉인을 풀면서 얻은 것이 많았으니까.

    제대로 준비한다면 저번처럼 허무하게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마법은 바헬에 미치지 못할지 몰라도 아티펙트나 마법진을 준비하면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쉽게 당하지는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마법사란 준비하는 자. 워 메이지는 변칙적이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원래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다. 준비를 철저하게 해놓는다면 아무리 바헬이라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테니까.

    “필요하면 그때까지 여기 있어 줄까?”

    덴다르트의 진심임을 알았기에 카이는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웃는 것 같았다.

    덴다르트가 눈썹을 꿈틀거릴 때 카이는 웃음을 그치고는 술잔의 술을 바라보았다.

    “할 일 없으세요?”

    “할 일이 왜 없어? 비전 마법 구상하느라 바빠.”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 구상 저랑 같이하시고 저 좀 도와주실래요?”

    카이가 7성에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구미가 당겼다. 이 녀석은 재능도 재능이지만, 창의력이 남다른 녀석이었다. 무결의 마법사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마법을 펼칠 수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게다가 빙결 마법사로 이미 비전 마법을 완성한 녀석과 같이 궁리하다 보면 더 좋은 것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 비싼 몸이야.”

    카이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되물었다.

    “얼마면 돼요?”

    “뭐가?”

    “얼마면 도와주실 거냐고요.”

    덴다르트가 팔짱을 끼고는 카이를 바라보았다. 카이의 눈이 진지한 것을 보니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이 괘씸한 제자 놈이 감히 스승인 자신을 돈으로 사겠다는 건가?

    “엘더로 돈 좀 벌었다 이거지? 10억 프랑!”

    “그거면 되겠어요?”

    덴다르트는 카이의 대꾸에 조금 더 용기를 냈다.

    “그건 계약금이고 1년에 3억 프랑!”

    카이가 그 말에 씨익 웃더니 말했다.

    “그래도 제 스승님인데 1년에 3억 프랑은 너무 싼 것 아닙니까? 5억 프랑 가시죠. 15억 프랑.”

    덴다르트는 그 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치욕스러웠지만, 1년이면 평생 놀고 먹을 돈이었다. 하고 싶은 연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돈.

    “···뭘 도와주면 되냐?”

    작가의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돌싱 후 대마법사-인공 영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