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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22화 (22/150)
  • 022화 반가운 얼굴

    “대체 안타르시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엘토르 국왕의 물음에 엘디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새로운 아티펙트 브랜드가 나타났어요. ‘그레이스’라고 하는 브랜드인데 목걸이에 충전식 6성급 보호 마법을 쓸 수 있는 아티펙트를 만들어서 ‘플레이 트’의 최고가 낙찰을 받았어요.”

    엘토르 국왕도 아티펙트에 대해서라면 잘 알고 있었다. 부마였던 카이가 만든 엘더가 대륙을 뒤흔들 때 이것저것 지원해주면서 아티펙트의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됐다.

    그래서 과감하게 왕가의 자산을 투자해서 엘더의 지분을 확보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오랜 마법의 역사에도 장신구에 마법을 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급이 높은 마법진일수록 그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지금까지는 축소 마법진 설계로 5성급 1회용 보호 마법을 겨우 담아냈다.

    그것이 획기적이라는 이유로 마탑 연합에서도 지적 재산권을 인정해 주지 않았던가?

    앞으로 23년은 독점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 한계점도 명확히 알고 있었는데 충전식 6성 보호 마법을 담은 목걸이라니?

    말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 장신구 시장을 장악한 엘더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대단하군. 그래서 만나보았더냐?”

    ‘플레이트’에 나왔다는 건 축소 마법진 설계를 쓰지 않았다는 얘기. 그렇다면 모든 마법사가 관심을 보이는 축소 마법진 설계를 이용해서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마법사라는 이들은 새로운 지식에 목을 맨다는 것은 이미 확인한 바 있었다.

    엘토르의 물음에 엘디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수치스러움에 얼굴을 붉게 물들인 엘디아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자 엘토르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지금 예약을 걸어놓았던 귀족 중 취소하는 귀족들이 있던데 그 소문이 퍼진다면 많은 이들이 떠날 거다.”

    “솔직히 그러지는 않을 거예요. 그럴 돈이 없을 테니까.”

    “최고 낙찰가가 상당했나 보구나.”

    엘더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엘디아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그 물건을 받아와야 했는데 그랬다면 이렇게 물건을 꺼내지 않았을 이유가 없었다.

    “200억 프랑이었어요.”

    엘토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분명 놀라울 정도의 성능을 가진 물건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또 다른 얘기였다. 그만한 돈이라면 6성 마법사하나를 대동하고 다니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힐 정도니까.

    “제국이었니?”

    “예. 클란드라 황녀였어요.”

    그만한 돈을 움직일 수 있는 곳이라면 역시나 제국뿐이리라.

    “그럼 ‘그레이스’는 제국 쪽으로 넘어간 건가?”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메르샤 시장이 말하기를 ‘그레이스’는 경매로만 물건을 팔기로 했다고 했으니까요.”

    안타르시아의 매장을 닫고 그레이스의 간판을 걸던 메르샤가 말해 줬다. 엘디아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서 해준 말이 아님을 알았다.

    경매장에서 돈을 쓸 인물이었기에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 ‘그레이스’에 대한 것은 제가 알아볼게요.”

    “그래. 알겠다. 그런데 엘폰토 공작은 어찌 된 거냐? 팔과 다리를 잃었다는 말은 들었다만.”

    “대결을 벌였고, 패했어요. 그뿐이에요.”

    엘토르는 엘디아의 표정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재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으냐?”

    “완전 소실이라 성녀를 불러와도 그의 팔과 다리를 회복시킬 수는 없어요.”

    “저런···.”

    엘토르가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고 엘디아가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그레이스’ 일로 리퍼의 전권이 필요해요.”

    엘토르는 그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더가 막대한 돈을 벌어주면서리퍼의 전력도 예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 전권이 필요할 정도의 일이라면 어쩔 수 없다.

    엘더는 이미 포기할 수 없는 상황.

    “그리하라.”

    엘디아는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가다가 달려오는 아들을 볼 수 있었다. 엘티온이 환한 얼굴로 다가와 엘디아를 끌어 안았다.

    “어머니!”

    엘디아는 엘티온을 꼬옥 안으면서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안타르시아에서 좋은 물건을 하나 구할 수 있었단다. 따라오렴.”

    “예.”

    엘디아는 엘티온의 손을 잡고 자신의 궁으로 돌아가서는 가지고 온 짐에서 고급스러운 목함을 꺼냈다. 목함을 여니 그곳에는 비단이 깔려 있었고, 그 위로 검이 한 자루 놓여 있었다.

    엘디아가 미소를 지은 채 블레이튼 마탑에서 내온 검을 건네줬다.

    엘티온이 검을 받아들고는 눈을 반짝였다.

    “이거 진검인가요?”

    “그래. 블레이튼 마탑에서 이번에 만든 마법검이란다. 마력만 충분하다면 마법 불꽃을 일으켜 적을 벨 수 있다고 하더구나.”

    엘티온이 검을 뽑아보니 검면에 그려진 마법진이 시선을 잡아 끌었다. 엘티온은 검을 한 번 휘둘러보더니 감탄했다.

    아직 마력은 충분하지 않았지만, 검을 다루는 것은 이제 익숙해져 있어 이 검이 얼마나 뛰어난 검인지 알 수 있었다.

    “좋은 검이네요.”

    검을 검갑에 돌린 엘티온이 엘디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엘디아는 그런 엘티온을 꼭 끌어안았다. 엘폰토가 그리되고 이제 남은 것은 엘티온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쓰였다.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 거라. 내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니.”

    “예. 어머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곧 좋은 선생님을 구해주마.”

    “엘폰토 공작께 배우면 되는 데요?”

    “이번에 크게 다쳐서 당분간 너를 가르칠 수 없게되었다. 그러니 새로운 선생님을 구해줄 테니 기다려라.”

    “···예. 어머니.”

    엘티온을 돌려보낸 엘디아는 뒤에 나타난 여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하께서 리퍼의 전권을 위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전에는 사사로이 리퍼를 다뤘지만, 이제는 실질적으로 리퍼를 다루게 된 엘디아였기에 여인이 더욱 공손하게 그녀를 대했다.

    “하멜 가의 것들을 뒤쫓던 것은 어떻게 됐지?”

    왜 하멜 가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인지 짐작 못 했지만, 여인은 순순히 답했다.

    “그들의 행적을 뒤쫓는데 그 흔적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엘디아는 자신에게 모욕을 주었던 그 남자를 떠올렸다. 그만한 자가 하멜 가의 늙은이를 데려갔으니 그 흔적을 쫓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쪽에 집중해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에 대한 흔적을 찾아야 한다.”

    “예.”

    엘디아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안벨루스 후작가의 금고가 털렸다고 했었지?”

    “예.”

    생각해 보니 부활에 쓰인 듀얼 잼은 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종류가 천차만별이라고 하나 하멜 가의 디자인을 이용한 물건에 쓰인 듀얼 잼이 안벨루스 후작가의 목걸이에 들어간 것과 같은 종류의 듀얼 잼이라는 것이 우연일 리는 없었다.

    “안벨루스 후작을 죽였던 마법사를 찾는 것은 어찌 되고 있지?”

    “그쪽도 제대로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리퍼의 총력을 그 두 가지 사건을 추적하는 데 써라. 그 일을 추적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면 선조치 후보고를 해도 좋다. 반드시 그 두 가지 사건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총력을 쓰라는 얘기는 다른 임무에 있는 이들까지 모두 데리고 오라는 얘기.

    그만큼 이번 일이 중요한 일이라는 얘기였다.

    “명을 받듭니다.”

    “서두르는 것이 좋을 거야.”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물었다.

    “카이 백작령을 감시하는 이들은 어떻게 할까요?”

    엘디아는 잠시 고민해 보다가 답했다.

    “그쪽은 남겨둬.”

    ‘그레이스’를 찾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지만, 카이를 살피는 것은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다.

    “벨록 상단의 차남 크롬이 백작령으로 향하던 중에 습격을 당해 마차의 짐을 잃고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채권을 못 구했다는 거야?”

    “예.”

    엘디아는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무능한 것들. 다시 거래하라고 해. 아직 백작령을 손에 넣기에는 채권이 부족하니까.”

    “그리 전하겠습니다.”

    여인이 사라지자 엘디아는 인상을 굳힌 채 자리에 앉았다.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말렌의 저녁노을로 돌아온 카이는 릴리에게 손바닥만한 인형 하나를 건넸다.

    토끼 모양의 인형이었는데 그걸 건넨 카이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걸로 명령을 내릴 테니 그것을 충실히 따르면 된다.”

    “이게 말도 한다고요?”

    “목소리만 전하는 것이지만 이걸 통해서 대화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 항시 품에 넣고 다녀라.”

    “알겠습니다.”

    확답을 받은 카이는 처음으로 명령을 내렸다.

    “당분간 아프록시아의 가격을 두 배로 올려라.”

    “예? 그럼 연초의 가격도 자연히 오를 텐데요?”

    “상관없다. 가격은 확실히 이곳에서 통제할 수 있지?”

    릴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그록에서 대륙 서부의 모든 아프록시아 잎을 통제해요. 엘도 왕국의 전권을 위임받았으니 그건 문제없어요.”

    “좋아. 그럼 다음 달에는 네 배로, 그 다음 달에는 여덟 배로 올려라.”

    “예?”

    가격을 그리 올린다면 중증의 중독자가 아닌 다음에는 쓰지 않게 된다. 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 부담이 될 정도의 가격이 될 테니까.

    릴리는 뭔가 말을 꺼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면 이 인간은 저 잔혹한 문그록 앞에서도 할 말 다한 인간이다. 문그록도 그를 인정했는지 순순히 아프록시아 잎의 전권을 내준 것만 봐도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럼 연락하마.”

    카이가 프릴과 함께 멀어지는 것을 보고 릴리는 토끼 인형을 품에 꼭 안았다.

    이게 정말로 말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잃으면 다시 저 사내를 만날 것 같았다. 이든이라는 사내를.

    절대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내를.

    카이가 프릴과 함께 돌아왔을 때 에르케는 새로운 디자인을 보여줬다.

    “이번에 디자인한 거예요. ‘영광’ 어때요?”

    카이는 에르케가 보여준 디자인을 보았다. 이번에는 반지였다.

    반지에 마법진을 때려 박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게 성공한다면 분명 학계가 떠들썩해지겠지.

    ‘그레이스’의 제품은 파격이 주제다.

    다음 장신구는 공격 마법을 넣으려고 했는데 반지라면 효과는 더 좋다. 지금 카이가 차고 있는 반지들은 마법을 보조하기 위한 아티펙트들이었지 공격 마법을 넣은 것은 아니었다.

    화염 마법으로 사람들에게 소개했으니 화염 마법 중 6써클의 마법을 담아 넣으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공방 일체형 마법을 쓰게 된다면?

    “듀얼 잼의 크기를 생각하면 이건 남성용인가?”

    “예. 여성용만 만들 수는 없다고 여겨서요.”

    에르케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사실 듀얼 잼의 크기 때문에 여성용으로 만들려면 목걸이와 귀걸이가 어울리지 반지는 무리거든요.”

    “그래?”

    카이는 잠시 고민했다. 반지 안쪽에 마법진을 때려 넣어도 6성 비전 화염 마법을 집어넣으려면 공간이 약간 부족하다.

    “혹시 이 듀얼 잼 고정 부위를 마법진 형태로 세공할 수 있을까?”

    다른 이들이라면 모르지만, 선형의 디자인을 세공할 수 있는 에르케와 다비드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어떤 식으로요?”

    “이건 조립 마법진 중 충전 마법식을 넣으면 되겠어. 이런 식으로 가능할까?”

    카이가 슥슥 그림을 그리자 그걸 본 에르케가 눈을 반짝였다.

    “가능해요.”

    “디자인은 어때?”

    디자인 자체는 온전히 맡기려고 했는데 자신이 손을 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에르케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좋아요.”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어. ‘그레이스’의 다음 작품을 서둘러 낼 필요는 없으니까. 더 신경 써서 만들도록 하자고.”

    “예.”

    카이는 에르케에게 힘내라고 하고는 화염 마법 중에서 비전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연구하기로 했다. 불꽃 고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위력적이고, 주위를 쓸어버려서 오히려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마법이 필요했다.

    카이가 그것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 자신의 마법 연구소를 향해 걸어갈 때 테오가 다가왔다.

    “카이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자신이 영지에 있다는 걸 아는 이 자체가 얼마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를 찾아온 이가 있다고?

    “누군데?”

    카이가 묻자 테오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덴다르트님이십니다.”

    신성 교국에 가서 아니타를 만났기에 이미 오래 전에 헤어졌던 덴다르트를 떠올리기는 했는데 그가 직접 자신을 찾아온 것은 더는 가르칠 것이 없다고 떠난 이후 처음이었다.

    카이는 어쩌면 아니타의 연락을 받고 그가 왔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카이가 빠른 걸음으로 응접실로 갔을 때 그곳에는 로브를 걸친 채 차를 마시고 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앉아있었다.

    그는 카이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잘 있었냐? 제자 놈아!”

    돌싱 후 대마법사-얼마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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