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21화 (21/150)

021화 문그록

여점원, 릴리는 앞에 선 사내의 무심한 시선에 몸이 바짝 굳었다. 5성 육체 능력 강화자인 울프가 손도 쓰지 못하고 죽을 정도로 고절한 뇌 속성의 마법을 다루는 자.

최소 6성급 마법사. 그리고 6성급 이상이라면 마탑의 탑주는 못 되어도 최중요 전력이 될 이들이다. 그만한 이가 문그록을 찾아온 이유가 뭘까?

뇌 속성 마탑이라면 아케인 마탑인데 그곳의 비밀 병기 쯤 되는 인물일까?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것을 보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5성 육체 강화 능력자가 가까이 다가오도록 꼼짝도 하지 않았다가 마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서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주문 영창도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무엇 하나 만만해 보이는 이가 아니었다.

“와서 앉아.”

카이는 자리에 앉으며 죽은 울프의 시신을 툭 밀어 차고 의자를 비웠다. 릴리는 울프와 같은 5성급 육체 강화 능력자였다. 울프와 다르게 신속을 익힌 살수였지만, 도망치는 것을 성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내의 시선은 무심했는데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은 눈빛.

릴리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울프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문그록을 만나야겠다.”

“그분이 아무나 만나주고 그러시지는 않아요.”

사내는 탁자를 톡톡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빤히 릴리를 바라보았다. 릴리는 그 시선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문그록.”

말이 조금 짧아졌다. 릴리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문그록을 만나자고 하면 못 만날 것은 없다. 여점원으로 분장했지만, 그녀는 울프와 함께 엘도 왕국 문그록 지부를 담당하는 이였으니까.

대외적으로 무력이 필요한 일에 울프가 나섰고, 사업 전반을 움직이는 것이 릴리였다.

그러나 문그록을 만나게 해주면 그의 손에 찢겨 죽을 터였다.

지금 여기서 죽던가 아니면 문그록 손에 죽던가.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선택해야 할 것이 두 개로 좁혀진다면 마음이 가는 대로 택하면 된다.

“안내하죠.”

“허튼수작 부리면 재미없을 거다.”

사내의 서늘한 눈을 본 릴리는 고개를 내젓고는 답했다.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아요.”

사내는 만족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가자. 서둘러.”

자신을 릴리라 소개한 여인은 말이 많았다. 어떻게든 카이와 프릴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려고 했지만, 카이는 이미 프릴에게 말을 해두었던 상황.

프릴은 그의 말대로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이동하는 그들이 향한 곳은 신성 교국이었다. 신성 교국의 국경을 넘어 그 안으로 진입한 카이가 릴리에게 물었다.

“대륙 서부의 암흑가를 휘어잡은 암흑가의 대부가 신성 교국에 있다는 건가?”

“맞아요. 이곳에 계시죠.”

카이는 문그록이라는 자에 대한 호기심이 동했다. 적어도 네 개의 왕국을 휘어잡았다면 그의 실력은 최소 6성 이상의 능력자다. 어쩌면 7성의 육체 강화능력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단 만나봐야겠다.

카이는 릴리를 따라 이동하면서 신성 교국의 삼대 도시 중 하나인 암펠로스에 도착했다. 이곳은 와본 적이 없는 도시였다.

결혼 후에는 왕궁에 머물면서 연구만 해왔으니까.

가본 곳이라고는 안타르시아와 비공정을 타기 위해 들르는 신성 교국의 도시펠헴 정도였다. 그 뒤로는 거의 왕궁에 머물면서 하고 싶은 연구만 잔뜩 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타고 신성 교국의 성지 중 하나인 암펠로스에 올 일은 없었다.

성자 암펠로스의 이름을 따서 지은 암펠로스라는 도시는 제 3 신성 기사단이 주둔하고 있을 만큼 신성 교국 내에서도 입지가 남다른 곳.

이런 곳에 대륙 서부를 장악하고 있는 암흑가의 두목이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 하리라.

카이는 릴리의 안내를 따라간 곳에서 잠깐 멈춰 서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여기 있다고?”

“예.”

카이는 릴리가 안내해 준 곳이 고아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하늘 교단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었다.

카이는 잠시 고아원을 바라보다가 마력 감지를 펼쳤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두개의 기운.

역시나 예상대로다.

7성급 육체 강화 능력자 하나와 5성급 마법사가 느껴졌다.

카이의 마력 감지를 읽은 건지 고아원 안쪽에서 한 사내와 여인이 밖으로 나왔다.

선한 인상의 실눈 사내와 주황 머리의 여인.

실눈 사내가 7성급 육체 강화 능력자. 주황 머리 여인은 5성급 마법사였다.

7성급 육체 강화 능력자라면 카이도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대다. 그러나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바헬의 봉인을 풀면서 카이가 오른 경지는 단순한 7성급이 아니었다. 8성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보았던 데다가 신령의 대마법사를 만나 그녀의 성취를 보며 확신이 들었다.

본신의 모든 것을 끌어내서 싸운다면 아무리 상대가 신령의 대마법사라고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다만 그러자면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아무리 다른 비전을 스스로 개척했다고 해도 빙계 마법 만큼은 아니었으니까.

문그록을 만나보니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실력을 숨기고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상대는 아니었다. 게다가 5성급 마법사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전위와 후위를 편성하면 까다로운 상대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오랜만에 피가 끓었다. 연구가 좋아서 연구만 하고 살아왔지만, 카이의 시작은 워 메이지였으니까.

전장에서 굴렀던 그의 피가 끓어 올랐다.

그때 실눈 사내가 미소 지은 채 말했다.

“릴리 자매님과 함께 오신 것을 보면 손님이신 듯한데 여기서 소란을 피워봐야 신성 기사단이 출동할 뿐이니 안으로 드시죠.”

카이는 그 말에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었다. 문그록으로 보이는 사내는 카이의 시선에서 고아원의 아이들을 가렸다.

카이는 다시 고개를 바로 해서 사내와 눈을 마주쳤다. 저만한 강자에게 간격을 내준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좋아. 대신 허튼수작을 부리는 순간 이 고아원은 사라질 거야.”

카이가 그리 말하며 손을 들어올리자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낙뢰를 떨어트리기 쉽게 구름을 불러온 카이를 보고 실눈 사내는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안으로 드시죠.”

카이는 사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뛰어놀다가도 사내와 마법사와 눈이 마주치면 멈춰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안내를 받아간 곳은 고아원의 응접실이었다.

실눈 사내가 앉아있는 동안 마법사가 차를 내왔다. 카이는 그녀에게 무심코시선을 돌리다가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보았다.

눈에 익은 목걸이.

그러고 보니 저 주황색 머리도 눈에 익었다.

“방랑 마법사인가?”

카이의 물음에 여인은 살짝 놀라워하며 실눈 사내의 옆에 앉았다.

실눈 사내는 여인을 돌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쪽은 방랑 마법사단의 아니타. 빙결 마법사죠.”

“덴다르트를 알고 있나?”

“···오빠예요. 오빠를 아나요?”

카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차고 있는 목걸이는 덴다르트가 차고 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알아볼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는 잘 지내나?”

“6성에 오른 뒤로는 비전 연구를 위해 수련에 들어갔어요.”

덴다르트는 동생 얘기를 할 때 그렇게 기뻐했는데 어째서인지 아니타는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아마 알면 엄청 상처받을지도 몰랐다.

실눈 사내가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덴다르트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 친우이기도 하죠.”

스승의 친구라는 말에 카이는 맥이 탁 풀렸다. 그나마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가르침을 아끼지 않았던 스승의 친구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덴다르트에게는 빚이 있다.”

실눈 사내가 손뼉을 쫙 치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겠군요.”

실눈 사내도 긴장을 푸는 것이 느껴졌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마력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는데 그 흐름이 느슨하게 바뀐다.

저만한 경지의 육체 강화 능력자라면 삽시간에 마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테지만, 지금 당장은 그 긴장을 풀었다.

분위기가 풀리자 카이는 담담히 물었다.

“당신이 문그록인가?”

“맞습니다. 제가 문그록이죠. 지금은 고아원 원장인 데미안으로 활동하고 있지만요.”

카이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무결의 마법사로 튀어나오기 전까지 그는 어떤 활동도 하지 않았었으니까.

그런데 육체 강화 능력자라면 혹독한 수련이 반드시 따라야 했다. 카이처럼 불쑥 튀어나오기 힘든 이였다. 제대로 된 마력 수련법을 오랜 시간 익혀야 했으니까. 게다가 제대로 실전을 치르지 않으면 오르기 불가능한 경지였다.

그런데도 문그록이라는 이름이 낯선 것을 보면 가명이거나 뭔가 사연이 있다는 얘기일 터.

원래 계획대로라면 문그록을 죽일 생각이었는데 스승의 친구이고, 스승의 여동생과 함께 하는 이를 죽일 마음이 사라졌으니 건설적으로 얘기를 나눠야 하게 생겼다.

“엘도 왕국의 아프록시아에 대한 전권을 받아야겠어.”

카이는 시작부터 직설적으로 자신의 용건을 얘기했다. 문그록은 그런 카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엘도 왕국에서 일 년에 사용하는 아프록시아 잎이 2천만 프랑입니다. 그만한 매출을 포기하라는 건가요?”

“그래. 고작 그 정도 가격으로 날 적으로 두지 않을 수 있으니까.”

상대가 스승의 친구고 싸우기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해도 받아낼 건 받아내야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대륙 서부의 모든 전권을 빼앗아 올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면 크게 양보한 것이었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없군요.”

문그록이 하는 말에 카이는 피식 웃고 말았다. 대륙 서부의 암흑가를 휘어잡은 자가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웃겼으니까.

“그래서 대답은?”

문그록은 차를 마시며 앞에 앉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엘도 왕국의 지부를 관리하는 것은 릴리와 울프. 그중 하나만 왔다는 건 이미 하나는 죽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것을 보면 압도적으로 당했다는 얘기였다.

최소 6성 마법사. 그러나 그의 마력 감지가 고아원을 훑었을 때 자신은 마력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여유 있게 자신을 상대하는 것을 보면 7성의 대마법사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7성의 대마법사라면 싸워봐야 좋을 게 없었다. 오히려 아프록시아의 전권을 내주고 친분을 쌓는 것이 더 좋을 상황이었다.

상대의 말처럼 괜히 적대해 봐야 엘도 왕국에서 제대로 된 사업은 못 할 테니까.

문그록의 사업은 아프록시아 사업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문그록은 품에서 진금패를 하나 꺼냈다. 벨록 상단의 크롬이 가지고 있던 철패와 같은 문양이었지만, 진금으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었다.

문그록은 탁자에 진금패를 놓고 앞으로 밀며 물었다.

“그럼 우리는 일종의 파트너인가요?”

“그런 셈이지.”

“그럼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이든이라고 불러.”

당장은 세 가지 신분으로 활동해야 했다. 카이의 대답을 들은 문그록은 그것이 가명이라는 것을 빤히 알았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다른 사업은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그건 약조해 주시죠.”

문그록이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그의 마력이 전투 준비를 마치는 것을 느끼며 카이는 담담히 답했다.

“물론이지. 나도 그 정도로 몰상식하지는 않다고.”

문그록이 그 말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진심으로 웃으며 마력의 긴장감을 푼 문그록이 릴리를 흘끔 보았다. 릴리가 바짝 굳는 것을 보고 그가 입을 열었다.

“릴리를 살려두셨으니 그녀를 통해서 아프록시아에 대한 전권을 휘두르면 될 겁니다. 문그록의 엘도 왕국 지부의 사업은 그녀가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카이는 그 말에 릴리를 돌아보았다. 카이의 시선을 받은 그녀가 딸꾹질하자 그가 픽 웃으며 답했다.

“살려두기를 잘했군.”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일행들을 데리고 떠나자 고아원 상공에 모여있던 구름이 흩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니타가 다가와 물었다.

“그냥 보내실 건가요?”

문그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여기서 싸운다면 나는 몰라도 나머지는 반드시 죽었어.”

아니타는 그 말에 멀어지는 사내의 일행을 바라보았다. 문그록의 실력은 그녀도 잘 알고 있다. 오빠의 친구이기도 하지만 그는 방랑 마법사단의 단장과도 깊은 친분을 지닌 고절한 실력자.

그런 그가 쉬이 볼 수 없는 상대라니.

아니타는 오빠에게 연락해 이든이라는 자에 관해 물어봐야겠다 생각했다.

돌싱 후 대마법사-반가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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