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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20화 (20/150)
  • 020화 대화

    크롬이 술잔을 기울이며 야영지를 돌아보았다. 고작 상자 하나였지만, 이 안에 들어있는 것은 상당히 고가의 물건들이었다.

    마석과 진금, 진은을 비롯해 말린 아프록시아 잎까지. 이 마차 한 대분의 물건이 벨록 상단의 일 년 수입의 10%가 넘는다.

    그래서 벨록 상단은 뛰어난 용병단을 고용했다. 엘도 왕국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용병단으로 단장이 직접 나올 정도로 신경 쓰는 일이었다.

    상단주의 차남인 크롬이 직접 이 일을 맡은 것은 돈도 돈이지만, 최고 고객인 엘디아 공주가 관심을 가지는 일이었다. 딱 봐도 카이 백작의 영지를 삼키려는 작업 같았는데 그 일을 잘 마무리해야 벨록 상단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크롬이 직접 나선 일.

    일도 어렵지 않았다. 그냥 물건을 건네고 채권을 받으면 되는 일이니까.

    앞으로 몇 달. 그 안에 영지를 팔아도 갚을 수 없을 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크롬이 야영지의 방비를 마친 발드 용병단의 단장 발드를 불렀다.

    “단장. 같이 한잔하지.”

    “그러죠.”

    발드가 다가와 자신의 잔을 꺼내는 모습에 크롬은 미소를 짓고는 직접 술을 따라줬다. 자신의 잔까지 준비하는 철저한 모습이 그를 더 믿음직하게 만들었다.

    가볍게 잔을 부딪친 다음 크롬이 웃으며 말했다.

    “내일이면 카이 백작의 영지에 들어가니 조금만 고생해 주게.”

    “괜찮습니다. 저희 애들 믿을만합니다.”

    “하하하. 그래. 이번 일만 잘되면 내가 차기 단주가 될 테니 그때는 전속 계약을 맺는 것이 어떻겠나?”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카이 백작의 영지 안에 들어가면 이 짐을 잃어도 백작가에서 책임을 지게 된다. 영지의 치안에 관련된 문제이니까.

    크롬이 잔을 비우다가 인상을 굳혔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발드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무슨 일인가?”

    발드가 인상을 굳힌 채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상했다.

    4성 육체 강화 능력자인 그는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전장을 누볐던 이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본능적인 감이었다.

    뭔가가 일어났다.

    그가 검을 쥐었을 때 불쑥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감이 좋군.”

    반사적으로 몸에 마력을 두르고 몸을 뒤로 돌리는 순간 덜컥 몸이 굳었다.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뱀 앞의 개구리처럼.

    그렇게 굳어 있던 발드의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 뒤돌아보면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발드는 순간 자신의 마력이 굳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상대의 마력에 그대로 제압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대로 의식이 끊겨서 바닥에 쓰러졌다.

    크롬은 발드의 뒤편에 불쑥 나타난 사내와 여인을 보았다. 로브를 걸치고 후드를 눌러쓴 자들이었는데 턱만 드러나 있어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얼굴을 확인하게 되면 안 될 것 같아 크롬은 알아서 눈을 깔았다.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군.”

    “왜 이러시는 겁니까?”

    “뭐 좀 물어보려고 왔지.”

    크롬이 마른 침을 삼킬 때 사내가 손을 내밀자 마차의 지붕이 박살 났다. 그렇게 마차의 짐이 있는 곳으로 사내가 손을 뻗자 짐들이 날아왔다.

    크롬은 그걸 보고 바짝 긴장했다. 발드가 손도 못 쓰고 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 최소한 5성급 마법사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주문도 없이 마차의 지붕을 박살 내는 것을 보니 보통 마법사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법사는 그 자체가 상종 못 할 놈들이라는 것을 안다.

    바짝 긴장한 크롬의 앞에서 사내가 손에 쥔 것은 말린 아프록시아 잎이었다.

    사내는 가볍게 그걸 불태워 버렸다.

    저게 돈이 얼마짜린데 저리 태워버린단 말인가?

    그러나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바짝 정신을 차려야 했다. 저까짓 것 잃어버려도 되지만, 괜히 잘못 나대다가는 타 죽을 수도 있다.

    긴장한 크롬에게 사내가 물었다.

    “내 동생이 아프록시아 잎에 중독되어 죽었거든. 그래서 문그록을 찾고 있다.”

    크롬은 사내의 말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문그록은 대륙 서부를 장악한 자들. 그들의 일 처리가 얼마나 잔혹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거래는 깔끔하지만 일이 삐끗하면 어지간한 상단 정도는 다 죽이고 불태워 버렸었다. 그 뒤로는 그들에 관한 건 침묵하는 것이 상계에서는 불문율이 되었다.

    “그, 그게···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것이 밝혀지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불타버린 상단이 세 개나 됩니다.”

    “그래서? 지금 태워 죽여달라는 건가?”

    손에서 불을 일으킨 사내가 다가오자 크롬이 납작 엎드렸다.

    “아닙니다. 제가 아는 것은 거래 책일 뿐입니다.”

    “놈을 만날 방법을 얘기해.”

    크롬이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말렌의 여관 ‘저녁노을’에 가서 주방장 울프를 만나면 됩니다. 그자가 엘도 왕국에 아프록시아 잎을 공급하는 자입니다.”

    사내는 말없이 크롬을 바라보다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불길이 치솟았다. 그 불길은 어떻게 반응할 틈도 주지 않았다.

    “끄아악!”

    새끼손가락 하나가 불에 타서 사라졌다. 삽시간에 벌어진 것이라 이건 마치 꿈만 같았다.

    크롬이 자신의 사라진 손가락을 바라보며 비명을 지를 때 그 손등을 사내가 꾹 밟았다.

    “아아악! 왜, 왜 이러십니까?”

    “이 와중에 머리를 굴려?”

    크롬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알았지?

    문그록의 손에 상단이 불탈 수도 있다 싶어서 말을 돌렸는데 귀신같이 알아챘다. 어떻게든 이 자리만 모면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걸 알아챘다.

    “너무 좋게 얘기했나?”

    좋게 얘기한 게 손가락을 태운 거냐?

    크롬은 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답했다.

    “말렌의 여관 ‘저녁노을’에서 주방장이 아니라 여 점원에게 이걸 보여주시면 됩니다.”

    얼른 품에서 꺼내 내민 것은 철로 만든 패였다. 사내는 그걸 받아들고는 물었다.

    “이번에는 진짜겠지?”

    “무, 물론입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섰다.

    “만약 거짓이면 다시 나를 만나게 될 거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믿어보도록 하지. 괜히 눈이 마주치지 않게 엎드려 있어라.”

    “아, 알겠습니다.”

    납작 엎드린 크롬은 머리 위로 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사내의 발걸음이 멀어지기만을 바라던 크롬은 순간 세상이 하얗게 물드는 것을 보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에 크롬은 잿더미가 되어서 생을 마감했다.

    카이와 함께 적들의 야영지로 다가가는 동안 프릴은 숨을 죽였다. 카이는 태연하게 야영지로 다가가면서 광역 마법을 펼쳤는데 주문을 영창하지도 않고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그 마력의 움직임은 볼 수 있었다. 은밀하게 뻗어 나가 단숨에 상대의 몸을 파고들어 잠재우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그건 지금까지 알아왔던 마법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렇게 적들을 제압한 후에 심문할 때만 해도 다시 봤다.

    자신에게 직접 일어나 적을 죽이라고 했던 그 모습과는 조금 상반된 모습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적을 심문하면서 그가 거짓말하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손가락을 태우고는 돌아서서 그곳을 떠날 때는 낙뢰까지 떨어트렸다.

    그가 무결의 마법사라는 이명을 지닌 것은 알았지만 정말로 모든 속성의 마법을 다룰 줄은 몰랐다. 그것도 각 마법의 비전이라고 할 만한 것도 태연히 다룰 줄은.

    영창도 없이 모든 속성을 다루는 것을 보니 새삼 놀라웠다.

    게다가 그 위력도.

    단 일격에 잿더미가 되어 버리는 것을 보니 새삼 그 위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프릴은 마차 안에 있던 물건들을 챙겼다. 마차 안에 있던 물건은 생각보다 양은 많지 않았다. 인형 제작에 들어가는 진금과 그 내부 회선을 만드는데 필요한 진은괴들이었는데 다해봐야 상자 하나밖에 되지 않았다.

    다만 그 가치를 따진다면 적어도 3만 프랑은 될 정도.

    예전이라면 손이 벌벌 떨릴 금액이지만, 이번에 워낙 큰 돈을 보고 와서 그런지 덤덤했다. 장비를 착용했기에 그걸 드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고 카이의 플라이 마법으로 떠오른 채 멀어지면서 프릴 이 물었다.

    “스승님.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뭐지?”

    “저 상인을 굳이 죽여야 할 필요가 있었나요?”

    카이는 그 물음에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보니 순수한 호기심이라는 것을 읽고는 답해 주었다.

    “우리가 아프록시아 잎을 추적한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지. 저자가 살아서 돌아가면 문그록에서 우리의 행적을 아는 것은 물론이고 엘디아 공주도 우리의 행적을 알게 될 거다. 그리고 의심하겠지.”

    “그랬군요. 그래서 화염 마법의 흔적을 지우려고 낙뢰를 떨어트리신 거군요.”

    “그래. ‘그레이스’와도 연관이 없다는 것을 알려야 하니까.”

    프릴이 주저하며 물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하죠?”

    “이번 기회에 배워 둬.”

    카이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뇌 속성의 마법에 대해서 알려주기 시작했다.

    프릴은 카이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새삼 스승의 대단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카이는 오히려 프릴을 보고 놀라는 중이었다. 마법사들은 평생을 갈고닦아봐야 한 가지 속성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프릴은 자신의 가르침을 잘 따라오고 있었다.

    아티펙트를 만드는 마법진을 그리기 위해 구한 마법사였는데 생각보다 재능이 뛰어났다. 그 성장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 따라오니 가르치는 보람이 있었다.

    엘도 왕국의 말렌은 신성 교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교역 도시 중 하나였다. 이런 곳에 문그록의 엘도 왕국 지부가 있을 줄은 몰랐다.

    신성 교국은 대륙에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

    신도의 수만 따진다면 대륙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신녀가 7성급 신성 마법을 다룰 수 있었고, 신성 기사단의 단장은 7성급기사였다.

    신성력을 사용하기에 마력을 사용하는 기사들은 그를 반쪽짜리 취급했지만, 그만한 수준의 기사는 대륙을 뒤져봐야 스물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뛰어난 기사.

    그렇기에 클로젠 제국이 대륙의 동쪽에만 치중하고 서쪽을 넘보지 않고 있었다. 단순히 교국의 영역을 넘어 하늘 신을 모시는 이들의 수가 많기에 제국이 쉬이 넘보지 못하는 곳.

    그런 신성 교국과 교역을 하는 도시였기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는데 그곳에서 카이는 프릴과 함께 변장한 채 걸음을 옮겼다. 카이와 프릴 모두 금발로 변장했고, 남매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둘 다 뇌 속성 마법을 쓰기로 했는데 이곳에 오는 동안 간단한 마법은 익혀뒀다.

    비전 마법을 다루지는 못하지만, 뇌 속성의 라이트닝 볼트까지는 익힌 상황이었다.

    카이는 말렌을 돌아다니며 저녁노을 여관을 찾았다. 중심가에서 한 블록 벗어난 식당 거리에 있었는데 그곳으로 걸어간 카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는 여관을 돌아본 카이는 자리에 앉았다. 여점원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카이는 크롬에게서 빼앗은 철패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여점원은 그걸 보고 태연히 물컵을 내려놓으며 철패를 챙기더니 물었다.

    “뭐로 주문하시겠어요?”

    “맥주 두 잔과 양 갈비구이 2인분 부탁해.”

    “그러죠.”

    여점원은 태연하게 맥주 두 잔과 양 갈비구이 2인분을 준비해 줬다. 카이는 태연하게 맥주를 마시고 배를 채웠다. 프릴은 뭔가 일어날 줄 알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말없이 식사를 마쳤다.

    카이가 잠시 기다리니 식당에 있던 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식당의 문이 닫히고 주방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탄탄한 몸에 떡 벌어진 어깨. 게다가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마력.

    5성급 육체 능력 강화자였다. 6성급 기사였던 엘폰토가 왕국 제일검이라고 칭할 만큼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만큼 이런 식당 주방에서 튀어나올 수준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식칼을 든 채 걸어 나온 사내가 다가와 의자를 끌어다 옆에 놓고 탁자 위에 식칼을 꽂았다. 식칼이 꽂힌 곳에는 여점원이 가지고 있던 철패가 함께 꽂혀 있었다. 그는 카이를 돌아보았다.

    카이는 그를 보면서 마력 감지로 주위를 살폈다. 사람들이 나가고 2층에서 숨을 죽인 채 대기하고 있는 자들까지 더한다면 열 명 이상이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내는 카이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인상적이었다.

    “철패에는 주인이 있고, 주인이 다른 이를 데리고 와서 소개해주는 것은 가능해도 양도는 불가능해.”

    사내의 몸에서 마력이 꿈틀거렸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철패만 가지고 온 걸 보면 원주인에게서 빼앗았나 본데.

    원주인이 이렇게 보낸 걸 보면 널 엿 먹일 생각이었나 보다.”

    카이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크롬은 그 상황에서도 자신을 엿 먹이려고 했다는 걸 생각하니 죽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가 식칼을 쥐며 말했다.

    “그럼 이야기를 들어볼···끼엑!”

    의자 밑에서 솟구친 전격의 줄기가 그를 칭칭 휘감았다.

    라이트닝 바인드.

    상대의 마력을 태울 수 있는 것처럼 전격으로도 상대의 마력을 타고 전해진다. 그래서 지금 사내는 자신의 마력이 전격으로 변해서 내부를 지지는 중이었다.

    처참한 비명을 지른 사내가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때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장이 박살 나면서 떨어지는 열 명을 향해 카이는 이미 손을 겨누고 있었다.

    “체인 라이트닝.”

    파자자자자작!

    열 명의 상대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통구이가 되어 떨어졌다. 그렇게 쓰러진 자들 사이에서 카이가 입을 열었다.

    “나와.”

    카이의 말에 여점원이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카이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화를 나누실 거라면 울프는 놔주시겠어요? 귀한 인재거든요.”

    카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울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파지직!

    강렬한 전격이 가게 안을 온통 푸르게 물들였고, 울프가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죽었다.

    카이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조건을 걸 상황으로 보였나 봐?”

    카이가 씨익 웃으며 바라보자 여점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 대화를 나눠볼까?"

    돌싱 후 대마법사-문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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