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19화 (19/150)

019화 관심

클로젠 제국의 황궁 남쪽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다.

호수 가운데 있는 섬. 허락받지 않은 이들은 감히 들어올 수도 없는 곳으로 배 한 척이 고고히 흐른다. 유일하게 섬으로 가는 데 허가가 필요하지 않은 배였다.

황족만이 탈 수 있는 배.

황가에서도 아무나 탈 수 없는 배가 섬에 도착하자 클란드라가 배에서 내렸다. 그녀는 걸음을 옮겨 섬의 중앙에 있는 작은 집으로 걸어갔다.

가볍게 문을 두드리니 문이 저절로 열렸다.

클란드라가 안으로 들어가니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황궁에 비견될 정도로 커다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만으로도 수몰의 대마법사가 얼마나 대단한 이인지 알 수 있다. 이만한 공간에 간섭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능력은 증명한 것이니.

그러나 클란드라는 무심히 그 공간을 걸었다.

그리고 그 공간이 끝나는 곳에 있는 문을 열었다. 사실 저 외부의 공간은 함부로 뭔가를 만지게 되면 함정이 발동하는 공간이다.

황궁 안에 아무렇지 않게 함정을 파놓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대우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한 사내가 해먹 위에서 책을 얼굴에 덮고 자고 있었다.

“태사. 내가 왔는데 얼굴도 안 보일 건가요?”

황제의 스승이라 불리는 이.

수몰의 대마법사 테오르가 얼굴을 덮고 있던 책을 들어 올렸다. 8성의 대마법사.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그의 외모는 서른 내외로 보였다. 물론 그 눈빛의 깊이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묘한 느낌의 사내였다.

푸른 머리에 푸른 눈을 한 그는 해먹에서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듣자 하니 안타르시아에 가서 진금화를 썼다는 말을 들었다. 그거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공이 드는데 그걸 그렇게 막 쓰고 온 거냐?”

“그럴 만했으니까 썼죠. 이걸 봐요.”

걸치고 온 망토를 벗어서 자신의 목을 드러낸 클란드라가 목걸이를 내보였다.

‘부활’을 본 테오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해먹에서 사라지더니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공간 이동을 태연히 한 테오르가 ‘부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충전식인데 6성 보호 마법진을 그려놨네? 흐음.”

테오르가 콧소리를 내더니 턱을 괴고 눈을 빛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클란드라를 바라보았다.

“무결의 마법사도 생각하는 것이 비범하더니 이 자는 더하군. 혹시 이름이 뭔지 아는가?”

“아벨이라는 마법사에요. 6성급 워 메이지.”

“풉.”

테오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킬킬댔다.

“농담이 심하군. 이 자는 최소 7성에는 오른 자야. 그것도 8성의 경지를 엿본 수준이군.”

“그 정도라고요?”

“그렇다고 해도 재미난 짓을 했군. 한 번 만나봐야겠어.”

“제국으로 데리고 오면 좋겠어요.”

“그건 그놈 마음이지.”

마법사를 강제하지 않는 것. 그것이 마법의 발전을 가지고 온다는 것을 굳게 믿는 테오르의 말에 클란드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가능하면요.”

테오르는 싱글싱글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책상 위에 있던 책이 날아와 손에 잡히자 테오르는 책장을 펼치며 콧노래를 불렀다.

“어딨나?”

테오르가 만든 진금화는 모두 마킹이 되어 있다. 그러니 진금화를 받아갔다면 그곳이 어디든 찾아갈 자신이 있었다.

“어?”

그런데 진금화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았다. 자신이 진금화에 한 각인은 자신만이 찾을 수 있다. 그 마킹을 알아차릴 수 있는 자는 없을 거라 믿었다.

지금까지는.

“요놈 봐라?”

누군지 몰라도 그자는 자신의 진금화의 마킹을 가렸다. 마킹을 가리는 것 자체는 그리 수준 높은 마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간단한 마법도 아니었다.

“재미있는 녀석인데?”

프란퀴스를 이용한 전용 비공정은 확실히 다른 비공정들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를 자랑했다. 덕분에 돌아가는 길이 수월했다.

단숨에 신성 교국까지 돌아온 카이는 일행과 함께 짐을 가지고 본성으로 귀환했다. 돌아오는 길에 뒤를 쫓는 이들은 없었다.

‘그레이스’의 뒤를 캐려는 이들은 많겠지만, 적어도 카이의 감각을 피할 수는 없었는데 걸리는 이들은 없었다.

메르샤가 신경을 써준 것도 있을 테지만, 카이가 조심한 것도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테오는 카이가 잔뜩 사가지고 온 짐을 나르는 인형들을 보다가 물었다.

“대체 뭘 이리 많이 사 오신 겁니까?”

“다 필요한 거야.”

테오가 고개를 휘휘 내젓는 동안 카이는 그에게 자루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무심코 열어보았던 테오는 인상을 딱딱하게 굳혔다. 자루 안에서 나온 것은 100만 프랑짜리 금화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이, 이게 뭡니까?”

“엘폰토 공작의 팔다리 태워버리고 얻은 돈에 물품 대금 치르고 남은 돈에 앞으로 쓸 돈 좀 환전한 거야. 일단은 5억 프랑이다.”

“얼마요?”

“5억 프랑. 뭘 그리 놀라.”

왕가에서 카이에게 매년 지원했던 돈이 1천만 프랑이다. 그것만 해도 막대한 돈이었는데 5억 프랑이라니?

“그렇게 비싸게 팔린 겁니까?”

5억 프랑이면 엘더의 첫 작품이 경매에서 낙찰받은 금액이었다. 이번 작품에 더 공을 들이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잘 됐을 줄은 몰랐다.

“200억 프랑에 팔렸다.”

테오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카이는 테오가 못 믿어 하는 모습에 변명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과 함께 자신의 연구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1억짜리 진금화를 꺼내 보여줬다.

처음 진금화를 받고 방으로 돌아와서 확인해 보았을 때 알아볼 수 있었다. 단순한 각인이 아니라 진금화에는 마킹까지 되어 있다는 것을.

카이가 이미 8성 대마법사 바헬을 겪어 보았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단순히 위조 방지용이 아니라는 것을.

1억짜리 진금화를 훔친다면 테오르가 찾아올 수 있도록 준비해 둔 마킹이라는 것도 알아보고 마킹을 쫓아올 수 없도록 손을 썼다.

카이가 연구소에서 진금화를 꺼낸 것은 이곳 또한 다른 마법사가 추적할 수 없도록 방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카이는 그곳에서 진금화를 꺼내 보여줬다.

수북하게 쌓인 진금화를 보고 테오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거 설마 1억짜리 진금화입니까?”

“맞아. 그런데 함부로 쓰지는 못해. 보니까 마킹이 되어 있더라고. 수몰의 대마법사가 손을 쓴 것 같아.”

테오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이거 있는 데도 못 쓴다는 겁니까?”

“아니. ‘그레이스’의 이름으로는 쓸 수 있어. 다만 함부로 쓰면 안 되고 안타르시아에 가서 쓸 생각이야. 대신 마킹을 지우지는 못하고 마킹을 감지할 수 없는 아티펙트를 만들어서 그 안에 넣고 가서 쓰면 돼.”

테오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생각해 보면 후작가에서 털어온 돈만으로도 충분히 영지를 운영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5억 프랑이 더 있었다.

카이의 계획을 진행하기에도 넉넉한 돈이기도 했다.

카이는 옆에 있던 상자를 열고 그 안에서 두 자루 단검을 꺼내서 테오에게 건넸다. 테오가 그걸 보고는 눈을 번뜩였다.

“그거 설마 제겁니까?”

“맞아. 프레아 대장간에서 만든 EX등급 제품이다. 진은으로 만든 단검으로 항마력이 뛰어나다고 하던데.”

“프레아 대장간! EX등급! 이거 하나에 100만 프랑짜리 아닙니까?”

“맞아. 아티펙트도 아닌 주제에 더럽게 비싸더군.”

“그거야 프레아 대장간이 대륙 최고의 대장간이고 그곳의 대장장이들은 거장프레아의 유산을 이은 이들이니까요!”

테오가 단검을 뽑아 들고 희희낙락하는 것을 보고 카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명품은 신경도 쓰지 않는 주제에 단검 두 자루에 저리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진즉에 사줄 걸 그랬나 싶었다.

카이는 상자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서 다비드에게 건넸다.

“이건 에르케가 골랐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군요.”

다비드는 상자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상자의 위에 그려진 것은 붉은 망치였다.

레드 해머.

그건 보석 세공사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 하는 장비를 만들어 파는 곳이었다.

수많은 보석 세공사가 엘도 왕국으로 갔지만, 레드 해머는 모레이 왕국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의 부를 쌓았고, 보석 세공사라면 알아서 그들의 물건을 사고 싶어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멜 가에서도 레드 해머의 망치와 정, 렌즈까지 세트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손때가 묻었던 그 물건들도 팔아 치워야 했다.

상자를 연 다비드는 그 안에 들어있는 망치와 정, 렌즈 세트를 보았다. 레드해머에서 만든 최고급 장비 세트였다.

다비드가 오른손으로 망치를 집어 드는 모습을 보고 에르케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할아버지! 오른손으로 쥐어도 괜찮아?”

다비드는 그 말에 씨익 웃어 보이고는 망치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괜찮아. 그간 열심히 훈련했단다. 이미 보석 세공을 다시 시작했으니까.”

“정말?”

“그럼. 감각을 되찾아가는 중이니 다음 작품은 함께 만들어 보자꾸나.”

“아싸!”

에르케가 기뻐하며 달려들자 다비드는 그녀를 두 손으로 꼭 안아줬다. 의수를 사용하는 것이 능숙해진 모습을 보고 카이는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는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테오에게 시선을 돌렸다.

“벨록 상단에 아프록시아 잎을 공급해주는 곳이 어디지?”

“아프록시아 잎을 공급하는 곳이라면 아마도 문그록일 걸요?”

“문그록?”

테오는 턱을 쓰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대륙 서부의 암흑가를 꽉 쥐고 있는 놈들이죠. 소탕 작전을 몇 번이나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대륙 서부?”

“본국에만 있는 놈들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들의 흔적이 발견된 왕국만 네 곳이 넘어요. 아마도 각 왕국의 암흑가 조직을 문그록이라는 놈이 다 집어삼켜서 지부로 만든 것 같더군요.”

“그런데 토벌에 실패했다는 거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죠. 말린 아프록시아 잎은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물건이라 소지만 해도 불법이지만, 쓰는 이들은 죄를 묻지 않거든요. 워낙 비싸서 귀족이 아닌 다음에는 쓰지도 못하니까요. 죄를 물어야 벌금 정도니까 문제 될 것도 없죠. 게다가 중독성을 낮추려고 몇 가지를 섞어서 쓰는 연초는 유명하거든요. 함량이 5% 미만이기는 하지만.”

카이가 고민하는 것을 보고 테오가 물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아프록시아 잎 공급처를 틀어쥐어야겠거든.”

“공급처를요?”

“그래. 아프록시아 잎은 보관하고 있는 것이 들키기만 해도 잡혀들어가니까 상단들도 필요할 때만 구해서 넘기잖아.”

“그렇죠.”

“그러니 공급처만 틀어쥐면 아프록시아 잎의 유통을 막을 수 있거든.”

테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아프록시아 잎은 안 하시는 것 아닙니까?”

카이는 테오의 물음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아니라 앞으로 아프록시아 잎을 쓸 놈이 있거든. 놈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려면 아프록시아 잎을 손에 쥐어야 해.”

팔과 다리를 영영 잃어버린 엘폰토라면 고통을 잊기 위해 아프록시아 잎을 찾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엘폰토의 영지 소속 상단이 그걸 구할 텐데 약에 취하게 한 뒤로 약의 공급만 조절해도 놈들을 망하게 할 수 있다.

“그 문그록 엘도 왕국 지부가 어딘지 알아?”

“저는 모르죠.”

“그럼 누가 알까?”

테오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벨록 상단은 알고 있겠죠.”

카이는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벨록 상단과 거래 일이 얼마나 남았지?”

“한 오 일 남았습니다. 그들이 오는 길이 남부대로인데 아직 영지에 진입하지 못했을 겁니다.”

“좋아. 그럼 다녀오마.”

“혼자 가실 겁니까? 제가 모시겠습니다.”

“됐어. 넌 여기를 지키고 있어야지."

카이의 시선이 프릴을 향했다.

"준비해라."

프릴이 환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테오가 아닌 자신에게 함께 가자고 하는 것 자체가 기뻤다.

돌싱 후 대마법사-대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