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화 유혹
잠시간의 정적.
그것은 그들의 이해 범주를 뛰어난 물건의 등장 때문이었다.
6성급 보호막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보통 플레이트 아머 정도의 크기면 된다.
그것도 1회용.
그것만 해도 이곳에 있는 귀빈들조차 쉽게 구하지 못하는 물건들이었다.
그런데 장신구다.
6성급 보호 마법이 걸린 장신구가 1회용도 아니고 충전이 가능한 아티펙트라는 말에는 모두가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말한 이가 메르샤가 아니었다면 개소리였다고 치부할 소리였다.
그러나 메르샤가 이런 일로 허튼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적어도 ‘플레이트’에 나오는 물건은 모두 그녀가 직접 살펴본 물건이다.
만약 메르샤를 속였다면 그 자체로 더 대단한 물건이었다. 7성급 대마법사인 그녀를 속였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으니까.
메르샤가 상급 바람의 정령 프란퀴스를 소환하며 물었다.
“프란퀴스를 이용한 정령 마법은 6성급 마법이라는 것은 모두 아실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 목걸이의 능력을 검증하는 일을 도와주실 분이 계실까요?
안전은 제가 보장하죠.”
메르샤의 말에 귀빈들은 침묵했다. 그들은 모험을 즐기는 이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때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빈 중의 귀빈 클란드라가 부채로 입을 가린 채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다들 설마, 설마 하다가 그녀가 무대 위로 오르자 숨을 죽였다.
충전식 6성급 보호 마법이 걸려 있다고 하지만 메르샤의 말만 믿고 무대 위에 오르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의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건 메르샤를 믿는다고 해도 어지간히 담대하지 못한 이상은 나설 수 없는 일이었다.
클란드라가 무대 위에 올라서자 메르샤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자 하급 바람의 정령이 날아와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걸었다.
파격적인 디자인의 목걸이가 보라색 드레스를 걸친 클란드라의 새하얀 목에 걸리자 귀빈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침을 삼키는 이들까지 나왔다.
그만큼이나 클란드라에게 잘 어울렸다.
클란드라는 잠시 목걸이를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들어 메르샤를 보았다. 준비되었다는 눈빛을 보고 메르샤가 손으로 그녀를 향했다.
프란퀴스가 날개를 접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들었다. 보고 있던 이들마저 숨을 죽일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프란퀴스가 날아가는 것만으로 주위의 공기가 날카롭게 벼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날아간 프란퀴스가 클란드라를 덮쳤을 때 그녀의 앞에 보호막이 나타났다.
콰앙!
폭발과 함께 프란퀴스가 바람이 되어 흩어졌고, 그 여파로 귀빈들의 머리카락이 거칠게 흩날렸다. 그러나 모두 그런 것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신령의 대마법사가 펼친 프란퀴스를 날려 보내는 마법의 위력은 6성급에서도 거의 끝자락에 달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귀빈 중에는 마탑의 관계자도 있었던만큼 그 위력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메르샤는 조금의 사정도 두지 않고 공격했다. 그런데 그 공격을 제국의 황녀가 받았다.
만약 저 아티펙트에 문제가 있어서 그녀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클로젠 제국이 움직일 일이다. 그렇기에 모두 숨을 죽이고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먼지가 흩어졌을 때 그 중심에 우뚝 서서 손을 들어 목걸이를 만지는 클란드라가 서 있었다. 그녀는 단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걸 보고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충격까지 모두 상쇄하는 보호 마법이었다는 얘기였으니까.
그뿐이 아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귀족 중의 귀족. 대부분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저 목걸이가 빠르게 회복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주위의 마력으로 충전되는 목걸이.
그 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이들은 적었지만, 그 가치가 무궁하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클란드라가 손을 뒤로해서 목걸이를 끌러서 앞으로 내밀자 메르샤가 다가와 그걸 받아서 보석함에 올려놓았다.
클란드라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무대에서 내려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6성 마법을 정면으로 받아내고도 흔들림 없는 그녀의 모습에 귀빈들은 모두 감탄했다.
클란드라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메르샤가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녀가 먼저 손뼉을 치자 다른 이들도 그녀를 향해 손뼉을 쳤다.
박수갈채에 클란드라는 살짝 눈을 감았다 뜨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제품의 성능 확인을 도와주신 클란드라 황녀님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메르샤는 그렇게 감사를 표하고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럼 그레이스의 ‘부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경매 시작가는 3억 프랑입니다.”
메르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귀빈들의 입찰이 시작됐다.
“3억5천만!”
“4억!”
“4억3천만!”
“4억5천만!”
삽시간에 올라가는 입찰 금액에 엘디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축소 마법진의 한계를 넘어선 아티펙트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가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아티펙트라는 것은 알았다. 그 디자인이 파격적이라는 것도 알겠지만, 엘더의 기록이 깨지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엘더가 가졌던 명예 중 하나.
‘플레이트’의 최고 낙찰가라는 명예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대륙의 최고위의 귀빈들이 인정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 기록은 엘더의 그 뒤에 나오는 물건들도 깨지 못했던 기록이었다.
원래 처음이 가장 충격적인 법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 기록이 단숨에 깨졌다.
“7억!”
가열차게 오르는 가격에 귀빈 중에서도 손을 떼는 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아티펙트라고 하나 장신구이고, 그 화려함은 남자가 차기에는 부담스러운 디자인이었다.
그래서 몇몇이 손을 안 들고 지켜보는 가운데 처음으로 클란드라가 입을 열었다.
“10억.”
카이도 그 정도까지 가격이 나올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최고가를 갱신해오던 여인이 입찰을 이어 갔다. 그녀는 안타르시아에서도 귀빈이라고 부를 만한 여인이었다. 카이도 익숙한 얼굴.
대륙 삼대 상단이라 불리는 상단 중 하나 펜타로 상단의 상단주의 외동딸이라고 들었었다.
엘더의 첫 번째 작품을 클란드라에게 빼앗긴 이후로 이를 악물고 엘더의 제품을 사들이던 여인이었다. 이름이 모네라고 했던가?
“11억!”
“15억.”
클란드라는 무심한 얼굴로 가격을 높였다. 최고가를 갱신하던 모네가 주먹을 꼭 쥐고 부르르 몸을 떨다가 손을 들었다.
“16억!”
“20억.”
클란드라의 시선이 모네를 향했다. 더 해볼 테면 해보라는 그 눈빛에 모네는 고개를 숙였다.
분을 참을 수 없었다.
엘더의 첫 번째 아티펙트가 5억에 팔렸지만, 지금은 프리미엄이 붙어서 10억에도 팔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레이스’의 첫 번째 작품인 ‘부활’을 사야 한다고 상인의 감이 알려줬다.
이건 조금만 가지고 있어도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터였다. 안타르시아의 ‘플레이트’가 귀빈 중의 귀빈들만 모이는 경매였지만,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이 더 많다.
각자의 사정으로.
그러니 이건 사야만 했다. 하지만 모네는 아직 상단주가 아니다. 상단주라면 20억 이상도 쏟아부을 수 있지만, 그녀는 상단주가 아니었다. 그녀가 동원할 수 있는 돈은 이 정도가 한계였다.
그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엘디아가 끼어들었다.
“30억이요.”
클란드라의 시선이 엘디아를 향했다. 엘디아는 당당히 그 시선을 받아들였다.
엘더를 뛰어넘는 아티펙트. 이건 자신이 사들여야 했다.
그리고 저 사내를 만나야 했다.
엘폰토 때문에 틀어진 사이를 바로 잡아 어떻게든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그런 부분에서는 자신이 있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유혹에 실패한 적은 없었으니까.
“30억 프랑. 더 없으십니까?”
클란드라의 입가에 드물게 미소가 그려졌다.
“50억.”
단번에 뛰는 입찰가의 단위가 달라졌다. 엘디아는 클란드라의 말에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하지만 이건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엘더의 생존에 관련된 문제였다.
엘더의 수석 마법사인 카이가 사라진 이상 그를 대신할 이가 필요했다. 조립마법진의 지적 재산권도 가지고 온다면 엘더는 아티펙트 시장을 휘어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60억이요.”
“100억.”
클란드라가 지르는 가격에 엘디아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100억 프랑이라면 엘더의 1년 총 매출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물러날 수 없다. 카이가 없어도 엘더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여겼다. 아티펙트로서의 성능이 아니라 자신의 디자인을 보고 사람들이 산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오늘 현실을 마주했다. 많은 귀족이 지금도 열렬히 찾고 있는 물건이지만, 최상위의 인물들에게는 이미 귀한 물건이 아니라는 인식이었다.
성능이 떨어지는 디자인만 아름다운 물건은 저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110억이요.”
그래서 엘디아가 용기를 냈다.
“150억.”
그리고 무참히 짓밟힌다. 입술을 질근 씹은 엘디아가 잠시 셈을 해보고는 외쳤다.
“160억!”
“200억.”
클란드라가 얼마든지 더해보라는 눈빛으로 엘디아를 바라보았다. 엘디아는 도저히 더는 따라붙을 수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메르샤가 소리쳤다.
“200억 프랑. 더 있으신가요?”
메르샤도 놀랄 정도의 가격이다. 경매장 수수료인 10%만 챙겨도 안타르시아의 1년 예산에 필적할 정도였다.
“더 없으시다면 ‘그레이스’의 첫 번째 작품 ‘부활’은 클란드라 황녀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메르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외치는 말에 귀빈들도 모두 손뼉을 쳤다. 귀빈중의 귀빈이라는 그들에게도 이번 경매는 기억에 남을 정도였다.
결투장도 그렇고 이번 경매장의 일도 그렇고 그들에게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들은 손뼉을 치면서 카이에게도 시선을 주었다.
아티펙트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지금까지 엘더가 휘어잡았던 장신구형 아티펙트 시장을 뒤집어엎을 새로운 바람이.
모두의 시선이 카이를 향했을 때 그는 입맛을 다셨다.
엘디아가 낙찰을 받았다면 엘더를 더 빠르게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200억 프랑은 그의 예상조차 뛰어넘었다.
카이가 예상하기를 잘하면 50억 프랑까지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그것도 경매가 과열되어야 그 정도 가격이 될 거라 여겼다.
그런데 200억 프랑이다.
카이는 엘더의 성장 과정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마법의 세계는 무궁무진했고, 그 진리를 파헤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그러던 중에 엘티온이 태어났고, 그가 크는 과정을 지켜보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그래서 마법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을 해주기 위해 골렘 마법까지 연구했던 것이었으니까.
돈이라면 엘더가 벌어오는 돈이 있어 돈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그래도 돈이 불어나면서 엘도 왕국의 왕가가 부유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력까지 강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200억 프랑이 얼마나 큰 돈인지 알수 있었다.
엘더 덕분에 부유해진 엘도 왕국의 1년 예산이 50억 프랑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주변 왕국들이 긴장할 정도로 높은 예산이었다.
수수료를 제한다고 해도 180억 프랑.
이 정도라면 계획을 크게 앞당길 수 있다.
카이는 옆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에르케를 보고는 손을 뻗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줬다.
“감사합니다. 제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내가 준 게 아니다. 네가 쟁취한 거지.”
카이의 조립 마법진만으로도 분명 대륙의 정점에 선 이들의 뇌리에 각인 되었을 테지만, 에르케의 파격적인 디자인이 크게 한몫했다.
에르케가 울먹이자 옆에 앉아있던 프릴이 그녀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둘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카이는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여인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엘디아가 서 있었다.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은 채.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카이는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빤히 속내가 드러나는 모습에 카이는 역겨움을 느꼈다.
이 여자. 이렇게 바닥이었나?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그냥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아줌마에게는 관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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