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16화 (16/150)

016화 공개

엘디아는 엘폰토를 두고 경매에 참여했다. 그리고 경매 순서를 보고는 확실히 깨달았다. 적어도 메르샤는 엘더보다 그레이스의 작품을 택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 그레이스라는 브랜드는 그 사내의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입술을 질근 씹은 엘디아는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눈이 마주치자 태연하게 고개를 돌렸다.

엘폰토를 불구로 만들어 놓고 경매에 참석한 모습은 짜증이 일었다. 안타르시아 내에서야 손을 쓰지 못하지만 나가면 얘기가 다르다.

6성 마법사라서 쉽게 제압하기는 힘들겠지만,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그리고 엘더는 천문학적인 돈을 가진 곳이었다.

그런데도 태연하게 경매에 참석했다니 얼마나 우습게 보였는지 알겠다.

엘디아는 사내에게서 시선을 돌려 경매를 바라보았다. ‘플레이트’의 경매에 나오는 물건은 예전에는 감히 살 엄두도 나지 못하는 물건들이었지만, 지금은 원한다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물건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엘디아는 처음에 나온 블레이튼 마탑의 검에 입찰을 시작했다.

마력을 주입하면 화염을 일으킬 수 있는 검으로 마력만 충분하다면 5성 마법불꽃을 두른 채로 싸울 수 있는 검이었다. 일시적으로 폭발적인 마법을 쓰는 것이라면 6성 마법을 쓸 수도 있지만, 지속 마법을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엘더가 대륙을 강타하고 난 뒤로 마탑들도 아티펙트 시장에 조금 더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속 마법을 두른 검도 경매장에 나올 수 있었다.

몇몇 상대가 입찰을 해왔지만, 8천만 프랑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엘티온이 다루지 못하겠지만, 검으로서의 성능도 뛰어나니 기뻐하리라.

엘폰토가 저리된 소문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카이의 죽음도 알려지리라. 그때가 된다면 상처받을 테니 미리 다른 것에 신경 쓸 수 있도록 준비해둘 생각이었다.

엘폰토보다 더 뛰어난 검술 스승을 구해주면 되겠지.

엘디아는 다시 나오는 물건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카이는 엘디아가 검을 사는 것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마도 엘티온을 위한 검이겠지.

사실 카이가 지금 만들면 저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검을 만들 수 있다. 고작 5성 마법 불꽃을 지속하는 수준의 마법검이라니.

저만한 크기의 아티펙트에 들어간 마법진이 조금 더 효율을 높였다지만 축소마법진을 넣지 못하는 그들의 한계는 뻔했다.

엘더에 귀속된 축소 마법진 설계의 지적 재산권도 찾아올 생각이다. 그렇게만 되면 축소 조립 마법진 설계가 가능해지니까.

그러자면 엘더는 고꾸라트려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순서가 지나가면서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벌써 1억 프랑이 넘는 물건이 나올 정도였다.

최첨단 아티펙트 시장을 보고 싶다면 ‘플레이트’에 참가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카이는 아티펙트들을 하나씩 살피면서 프릴과 에르케에게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마법진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해도 그들이 어떤 구조로 더 발전시켰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음에도 어느새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이미 그가 6성급 마법사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작품이 ‘그레이스’의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가 뛰어난 워 메이지면서 아티펙트 장인이라는 것도 알았기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였는데 그의 통찰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카이가 괜찮다고 한 물건은 그의 주위에서 열정적으로 입찰했고, 그렇지 않은 물건들은 조금 더 낮은 금액에 낙찰되었다.

그러다 엘더의 순서가 됐다.

사회자가 앞으로 나와서 화려한 보석함을 보여주며 말했다.

모든 조명이 보석함에 내리꽂혔다. 보석함의 화려한 디자인을 보여주며 사회자가 미소를 지었다.

“여기 보석함을 보시죠. 엘더입니다.”

다른 설명은 필요 없었다. 사회자가 보석함을 열고 그 안에 들어있는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화려하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번쩍이는 보석들이다. 커다란 루비를 시작으로 그 주위를 햇살처럼 감싸고 있는 루비들.

그것은 마치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다. 진금으로 이뤄진 목걸이에 우수수 박힌 작은 다이아몬드가 조명을 반사하며 아름답게 빛났다.

카이는 그걸 보면서 깨달았다. 엘디아의 디자인에 그녀의 생각이 묻어나 있다는 것을.

화려하게 빛나고 싶어 하던 그녀에게는 자신이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카이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에 사회자의 말이 이어졌다.

“이 목걸이에는 ···4성급 보호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아직 충전용 4성 마법은 연구 중인가 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없던 디자인. 아직도 엘더를 성능을 보고 사시는 분은 없겠죠. 5천만 프랑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카이 주변에서는 그가 어떻게 설명하려는지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있었지만, 카이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굳이 설명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래서인지 주변에 있는 귀족들은 입찰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7년 연속 최고가로 낙찰받았던 엘더였지만, 그들은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귀족이나 왕족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엘더의 제품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엘더에서도 특별히 관심을 끄는 물건이 있다면 그건 카이가 직접 제작한 물건일 따름이다.

무결의 마법사가 만든 것은 그 성능이 남다르고 엘더에서도 한 달에 하나씩만 나온다. 당연히 일 년에 한 번씩 나오는 ‘플레이트’ 출품작은 무결의 마법사가 신경을 썼던 물건이었다.

그래서 ‘플레이트’에 나오는 엘더의 아티펙트가 언제나 최고가를 갱신했던 것.

그러나 지금 나온 아티펙트는 4성급 아티펙트였다. 그 디자인이 지금까지 없었을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카이의 손이 닿지 않은 물건이라는 것은 새겨진 마법 수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카이가 뭔가 평이라도 했다면 관심을 보였을 텐데 그런 것도 없으니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5천만 프랑입니다. 없으십니까?”

사회자도 조금 당황했는지 다시 물었다. VIP들이 모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에 엘디아는 입술을 질근 씹었다.

카이가 없는 만큼 엘디아는 이번 디자인에 큰 공을 들였다. 그런데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몰랐다.

‘플레이트’에서 아무도 입찰하지 않을 줄은 정말 몰랐다.

부르르 몸을 떠는 그녀의 옆에서 누군가 입찰했다. 자연히 고개를 돌린 엘디아는 부채로 입을 가리고 있는 클란드라를 볼 수 있었다.

왕족이면서도 우러러보게 되는 고귀한 여인.

그녀는 무심하게 엘더의 목걸이를 입찰했고, 낙찰받았다. 아무도 추가 입찰하는 이가 없어서 간단히 낙찰받을 수 있었다.

엘디아는 더욱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클란드라와 이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등급까지 올라왔다고 여겼는데 그녀는 마치 적선해주듯 입찰했고, 낙찰까지 받았다.

그리고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시작됐다.

‘플레이트’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물건은 안타르시아의 시장이자 7성 대마법사인 신령의 대마법사 메르샤가 주관한다.

메르샤가 조명 아래에서 당당히 걸어 나왔다.

“올해도 ‘플레이트’를 찾아주신 귀빈 여러분이 실망하지 않을만한 물건을 소개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 말에 다들 경매장의 안내 책자를 읽었다. 마지막을 차지했다는 것은 메르샤가 올해 출품된 모든 물건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물건이라는 얘기였다.

엘더가 마지막을 내놓아야 했을 만큼의 작품. 엘더가 어째서인지 무결의 마법사 손을 타지 않은 물건을 내놓았음에도 마지막의 바로 앞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엘더가 지금까지 차지하고 있던 위상 때문이었다.

아티펙트로서의 성능만 따진다면 그보다 뛰어난 물건들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모두가 관심있게 바라볼 때 메르샤가 미소를 지은 채 소개를 이어갔다.

“우선 이 작품부터 보도록 하죠.”

메르샤가 양손을 펼치자 바닥이 열리고 그 위로 보석함이 올라왔다. 그 보석함을 본 순간 엘디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 클래식한 디자인. 선형의 아름다움을 이용해서 귀족적인 디자인은 눈에 익은 것이었다. 그제야 리퍼의 보고가 떠올랐다.

그 외팔이 보석 세공사. 하멜 가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있는 디자인이었다.

엘디아가 사나운 눈빛으로 ‘그레이스’의 주인인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심하게 무대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과거의 자신이 문득 떠오른다. 카이와 함께 이 자리에 와서 그때는 지금처럼 귀빈석도 아니었지만, 자신들의 작품이 무대에서 조명을 받던 모습을.

마지막을 장식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순간을.

엘디아는 곧 고개를 내젓고는 시선을 돌렸다. 하멜 가의 외팔이 보석 세공사를 데리고 가서 그의 조언과 도움을 얻었다고 해도 ‘플레이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는 것은 뭔가가 더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메르샤가 손가락을 튕기자 종달새 크기의 바람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이 보석함을 열었다. 열린 보석함 안에 있던 목걸이가 조명을 받았고, 하급 바람의 정령이 그 목걸이를 들어 올렸다.

메르샤는 하급 바람의 정령이 옆에 띄운 목걸이에 조명을 집중했다.

“오!”

사람들이 감탄하는 것이 들렸다.

그들은 지금까지 화려함의 극치를 보며 살아왔다. 듀얼 잼으로 된 장신구가 흔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그런 것들은 하나씩 가지고도 남을만한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도 지금 눈에 띄는 목걸이는 파격적이었다.

듀얼 잼의 외부를 감싼 다이아가 깨져 있는 것 자체가 누군가 본다면 망가진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 주위를 감싼 진금이 그려내는 선형의 디자인은 그 안에서 무언가 분출하는 것만 같았다.

“‘그레이스’의 첫 번째 아티펙트 ‘부활’입니다.”

듀얼 잼의 가치는 보석을 감싼 보석이라는 것이었는데 그걸 깨트리면서 의미를 부여한 파격적인 디자인에 감탄하던 이들이 그제야 이것이 아티펙트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때 엘디아가 손을 들었다. 메르샤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장신구형 아티펙트는 오직 축소 마법진 설계로만 가능했죠. 그리고 그건 우리 엘더가 지적 재산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도용되어 버젓이 유통된다면 그 책임은 안타르시아도 그냥 넘어가지 못할 거예요.”

엘디아의 도발적인 말에 모든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지금까지 장신구형 아티펙트는 오직 엘더만 만들 수 있었다. 축소 마법진 설계 자체가 어지간한 수준에서는 흉내도 낼 수 없었지만, 하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적 재산권을 마탑 연합에서 보장한 물건이었다. 마탑 연합에서 인정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30년간 보장해 준다. 그렇기에 마탑 연합에서 지적 재산권을 얻은 이들은 그걸 이용해서 돈을 긁어모아 다른 연구에 매진할 수 있다.

마탑 연합이 보장해 주는 지적 재산권 덕분에 수많은 마법사는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데 주력한다. 그것이 마법의 역사를 발전시켜 왔다.

지적 재산권이라는 개념이 잡힌 것은 이백 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마법의 발전 속도는 눈부실 정도였다. 그동안 마탑 연합에서 인정한 지적 재산권은 24개.

30년간 보장해 준 후에 풀려난 마법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마법을 성장시켜왔다.

마탑 연합의 가장 큰 공로라고 할 정도의 일이 지적 재산권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걸 지켜온 것이었다. 물론 이 지적 재산권을 파는 것도 가능했다.

보통은 마법사 본인이 그 지적 재산권을 가지고 있지만, 축소 마법진 설계는 엘더라는 브랜드가 가지고 있었다. 엘더의 주인이 카이였기에 누구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일.

엘디아가 지금 꺼내는 이야기에 모두가 관심을 보였다. 메르샤가 보여주는 아티펙트가 축소 마법진 설계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엘디아의 말처럼 메르샤도 책임을 면치 못한다.

그 말에 메르샤가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엘디아 공주의 말대로 이 아티펙트가 만약 축소 마법진 설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아무리 내가 대마법사라고 해도 감히 이 자리에 소개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메르샤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축소 마법진 설계를 처음 보았던 것이 저였고, 마탑 연합에 그 가치를 설명한 것도 저입니다. 그러니 잘못 봤을 리는 없겠죠.”

메르샤가 목걸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 아티펙트는 조립 마법진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설계된 아티펙트입니다.”

장신구 형 크기에 담을 수 있는 마법진이 또 존재한다는 말에 귀빈들이 모두 관심을 보일 때 메르샤가 확신을 담은 채 말을 이었다.

“마법진에 관한 것은 자세히 설명해 봐야 복잡하기만 하니 간단히 말하자면 이것은 축소 마법진 설계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엘디아가 인상을 와락 구긴 채 주먹을 꼭 쥐었다. 그럴 리가 없다.

비록 불결한 평민 출신이지만, 무결의 마법사라는 이명에 어울릴 정도로 카이는 천재였다. 적어도 아티펙트 제작 쪽에 있어서는 대륙에서도 손에 꼽힌다.

그런 축소 마법진 설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뭐? 저게 6성급 보호막이라도 펼칠 수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인정해 줄 생각이다. 카이가 말하기를 축소 마법진이 아무리 마법진을 작게 그린다고 해도 그 한계는 5성급 마법이 한계라고 했었으니까.

메르샤가 그런 엘디아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정식으로 소개합니다. 충전식 6성급 보호 마법이 새겨진 아티펙트 ‘부활’입니다.”

‘플레이트’ 경매장 설립 이후 처음으로 적막에 휩싸였다.

돌싱 후 대마법사-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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