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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5화 (15/150)

015화 주목

결투장의 대기실로 돌아온 카이는 대기하고 있던 프릴과 에르케가 긴장한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워 메이지로서 야만인과 처절하게 싸웠던 카이는 저들의 반응을 보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엘도 왕국의 국민들은 카이가 대전사를 죽였다는 것만 알지 그 전투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모른다.

지금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때는 처절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으니까.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에르케가 먼저 건네는 말에 카이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어째서인지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조금 잔인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카이가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프릴이 있었다.

그녀의 눈을 보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스승님. 저도 배울 수 있겠죠? 그 불꽃의 고리요.”

카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형태를 조각하고 성질을 변환하는 수준에만 올라도 불꽃의 고리는 쓸 수 있다. 다만 상대의 마력마저 태울 수 있으려면 최소 6성에는 도달해야 한다.

프릴의 재능이 걸출하다고 하지만 6성에 오르는 것은 이 넓은 대륙의 수많은 마법사 중에 한 줌도 되지 않는다. 그녀가 그 경지에 오를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설령 오른다고 해도 그녀를 워 메이지로 키울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그레이 스’의 수석 마법사가 될 예정이었으니까.

그래도 배우고 싶다면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가르침에는 인색할 생각이 없었으니.

“가르쳐주마. 그러니 이만 가자.”

카이가 그리 말하고 물러나려 할 때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카이가 바라보니 접객원장 베이트였다.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시장님이 뵙고자 하십니다.”

“이들을 방으로 안내해 줘.”

안타르시아 안에서야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신해서는 안 된다.

특히나 지금처럼 누군가와 원한을 산 지금이라면.

베이트가 손을 들자 두 명의 접객원이 다가왔다. 카이는 프릴와 에르케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방에 가 있어.”

“예.”

둘을 보내고 카이는 베이트의 안내를 받아 다시 한번 시장의 방으로 향했다.

원반이 멈추고 도착한 방에는 두 명의 여인이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카이는 그들을 보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인은 클란드라 폰 라이드 클로젠이었다. 클로젠 제국의 3황녀로 클로젠이라는 성이 붙은 여인.

나이가 찼음에도 결혼하지 않고 있어 사교계에서 온갖 소문이 나돌았지만,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는 당찬 여인이었다.

처음 엘더의 아티펙트가 나왔을 때 최초의 제품을 사간 것도 그녀였다. 5억프랑이나 지불하고 가져갔던 여인.

제국의 3황녀 답게 돈이라면 썩어나는 인물이었는데 카이가 놀란 것은 그녀의 생각이었다. 잠깐 얘기를 나눴었지만, 그때의 그녀가 해주었던 말은 엘더를 만들어가는데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었다.

황족이, 왕족이, 귀족이 원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했다.

다른 이들과 자신이 다른 특별한 존재이기를 원한다는 말.

엘더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서 엘디아 공주는 왕궁의 다른 마법사들에게도 축소 마법진을 가르쳐서 그 수를 늘렸다. 덕분에 빠르게 대륙의 아티펙트 시장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그 이름값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더욱 차별화할 생각이었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단순한 아티펙트가 아닌 작품이 될 수 있게 만들 생각이었다.

우선 가지고 올 것은 최고의 아티펙트 브랜드라는 명예부터 가져올 생각이었다. 그것은 모두 클란드라 황녀의 생각이었다.

고귀한 자는 더욱 고귀하게.

그걸 위한 아티펙트가 될 터였다.

그래서 카이는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다. 귀족 중의 귀족. 황족인 그녀에게는 평민이었던 카이가 배울 것이 많았으니까.

“여기 와서 앉아.”

카이가 자리에 앉자 미소를 지은 메르샤가 다리를 꼰 채로 그를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베이트가 은쟁반 하나를 가져왔는데 그 위에는 100만 프랑 짜리 금화가 쌓여있었다.

저렇게 산처럼 쌓아놓고도 흔들림 없이 가지고 오는 그 재주가 대단하다 할 정도였다.

카이가 무심히 그걸 바라보자 메르샤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결투장의 수익금 중 일부야. 승자의 몫이지.”

결투장에서 VIP들은 두 사람에게 돈을 걸어 재미를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유흥을 관리하고 수수료를 걷었던 안타르시아는 그중 일부를 카이에게 건넸다.

카이는 그렇게 받은 돈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얼추 2억 프랑은 넘을 돈이었다. 단순히 수수료의 일부라면 새삼 안타르시아가 버는 돈이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굳이 그걸 밝히지 않았다.

돈은 그저 수단에 불과할 뿐이었으니까.

카이의 시선이 황녀를 향했다. 메르샤는 그 모습을 보고 그녀를 소개했다.

“이쪽은 우리 최고 등급의 VIP. 클로젠 제국의 제 3 황녀이신 클란드라 폰 라이드 클로젠이야.”

카이는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클란드라가 빤히 바라보는 동안 카이는 살짝 허리를 숙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클란드라가 부채를 내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 손등에 살짝 입을 맞춘 카이가 손을 뒤집어 명치 어림에 놓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벨이오.”

클란드라는 다시 부채로 얼굴을 가렸지만, 이 남자에게 흥미가 돋았다.

마법사라는 종족이 얼마나 제멋대로인지 잘 알고 있었다. 황족으로서 수몰의 대마법사 테오르에게 가르침을 받아보았기에 그들이 얼마나 외골수인지 잘 알고 있었다.

최소 6성급 마법사. 그것도 싸우는 것을 보니 워 메이지인데도 불구하고 귀족의 예법을 안다는 것이 그녀의 흥미를 끌었다.

메르샤는 카이가 ‘부활’이라는 아티펙트를 설계한 마법사라는 것을 안다. 지금까지 대륙에 알려지지 않은 조립 마법진이라는 것을 들고 나왔는데 그 구조는 메르샤가 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각의 변환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수많은 조합 중에서 제대로 된 조합을 찾는 것은 고단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카이가 뛰어난 아티펙트 제작자라고 알았는데 오늘 엘폰토를 상대하는 것을 보니 능숙한 워 메이지였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재능이 뛰어난 자는 저 무결의 마법사 카이 이후로 처음이었다.

클란드라가 소개해 달라고 은근히 말하기에 자리를 주선하기는 했지만, 메르샤도 호기심이 일었다.

카이가 보여준 그 작은 불의 고리는 상대의 마력마저 태워버리는 마법이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불속성의 마법이었다.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는 육체 능력 강화자들에게 있어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능력. 게다가 순간 팔과 다리가 잿더미가 되어 버리는 강력한 위력.

보기에는 6성급 마법사지만 메르샤도 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실로 미래가 기대되는 마법사.

그래서 겸사겸사 보았는데 이 마법사는 귀족의 예법을 알았다. 메르샤도 천생이 마법사라 등한시하지만, 안타르시아의 시장으로 대륙의 내로라하는 귀족들을 만나면서 어깨너머로 익힌 예법을 제대로 익히고 있었다.

비록 말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그건 마법사로서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2억 프랑이 넘는 돈 앞에서도 덤덤한 모습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 아닌 걸까?

경매장에 자신의 아티펙트를 가지고 왔을 때는 돈을 쫓는 부류인 줄 알았지만, 지금 보니 그는 돈이 아닌 다른 것을 쫓고 있었다.

“용건은 이게 전부인가?”

메르샤는 고개를 기울이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모습도 그렇고 제국의 황녀 앞에서도 예법은 지켰지만, 전혀 흔들림이 없는 모습이다.

“간단히 차 한잔할 생각으로 부른 거야. 다른 뜻은 없었어.”

카이는 그 말에 남은 차를 훌쩍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보도록 하지.”

카이는 손을 뒤집어 명치 어림에 놓고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카이가 뒤돌아 떠나는 모습을 보고 클란드라가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남자군요.”

“맞아. 보면 볼수록 재미있네.”

삼십 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6성이라. 무결의 마법사가 워낙에 어린 나이에 6성에 올라서 그렇지 저 사내 정도만 되어도 대륙에서 그 이름이 쟁쟁할 터였다.

그런데 불쑥 튀어나온 이름이었다.

저만한 화염 술사가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메르샤와 클란드라가 서로 잔을 살짝 들어 보이고는 음미했다.

이번 ‘플레이트’는 확실히 재미있었다.

엘디아는 안다르시아에 머무는 하늘 교단의 성직자가 걸어준 마법으로 잠이든 엘폰토를 바라보았다.

왕국 제일 검이라 불리던 그가 불구가 되어 누워있었다. 성직자가 말하기를 소실되어 버린 팔과 다리는 복구할 수 없다고 했다.

그건 엘디아도 잘 아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성녀라고 해도 잘린 팔을 붙일 수는 있을지라도 다시 자라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아무리 엘더가 돈이 많아도 엘폰토는 평생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잃은 채로 살아야 했다. 고통에 허덕이며 눈물 콧물 흘리는 모습을 보니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성직자의 말을 빌리자면 당분간은 어떤 방법으로도 저 고통을 잊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게다가 실제로 고통을 느끼지 못해도 환각통을 느끼게 될 거라고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엘티온의 검술 스승이기도 한 엘폰토가 이리되었으니 절로 걱정이 앞섰다.

그건 그렇고 그 남자는 뭔가 싶었다. 처음부터 엘폰토를 농락한 마법사.

아무리 정정당당한 결투였다고 해도 엘폰토는 일국의 공작이다. 그런 이의 팔과 다리를 잘라내는 것도 아니고 태워서 없애 버리다니?

극악무도한 자가 아닐 수 없었다.

엘디아는 한숨을 내쉬고 악몽이라도 꾸는 것인지 미간을 찌푸린 채 신음하는 엘폰토의 머리를 쓸어넘겨 줬다. 그 손길에 조금은 편안해진 엘폰토가 손을 들어 엘디아의 손을 잡았다.

엘디아는 잠깐 그 손을 내려다보고는 탁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걸어간 엘디아는 번쩍이는 안타르시아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플레이트’ 경매 당일.

카이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몇몇 귀족들이 그를 알아보고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아는 체를 했다. 카이 덕분에 돈을 땄든 잃었든 그들은 모두 그 덕분에 즐거움을 얻었다.

6성급 기사의 팔과 다리가 산채로 태워지고,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구경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줬으니 카이를 인정한 것이다.

카이는 경매장에 에르케와 프릴을 데리고 왔다. ‘플레이트’는 대륙에서 제일가는 경매인만큼 이곳에 나오는 물건들을 보는 것만으로 안목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경매가 시작되고 사회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손을 뒤집어 명치에 대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대륙 제일의 경매 ‘플레이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엄선된 오늘의 작품은 10점으로 모두 특급 감정사 한스와 시장이신 메르샤 님이 직접 감정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가치는 안타르시아의 ‘플레이트’가 보장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블레이튼 마탑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정련한 검입니다.”

경매 물품의 순서가 뒤로 갈수록 그 가치가 높다고 안타르시아가 보장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이는 옆에 놓인 안내 책자를 집어 들었다. 출품한 경매 물품의 순서가 적혀 있는 것.

간단히 이름만 적혀 있는 것이지만, 카이가 원한 것은 딱 그 정도였다. 예상대로 카이가 출품한 ‘그레이스’의 ‘부활’이 가장 마지막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슬쩍 고개를 드니 홀로 자리에 앉아있던 엘디아가 손에 쥐고 있던 안내 책자를 구기고 있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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