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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7화 (7/150)
  • 007화 부활

    엘디아 공주는 점심을 먹고 테라스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이 혼 사실은 아직 공개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엘토르 국왕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었다.

    왕국을 구한 영웅과의 사별이 아닌 이혼은 어떻게 하든 구설수에 오를 일이었으니까.

    그의 삶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이상에야 굳이 미리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었기에 결정된 사항이었다.

    덕분에 엘디아 공주도 1년간 근신 아닌 근신을 해야 했다. 왕궁에서는 어떤 파티도 열리지 않았고, 다른 귀족들을 초대하지도 않았다.

    엘폰토 공작이 종종 찾아오지 않았다면 미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장을 넘기던 중에 그녀의 뒤편으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주님. 보고드릴 사안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엘디아 공주는 읽던 책에 책갈피를 꽂고는 조용히 테이블에 내려놓고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야 입을 열엇다.

    “보고해.”

    “하멜 가를 감시하던 팀에게서 그들을 놓쳤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하멜?”

    잠시 기억을 더듬던 엘디아가 나직한 탄성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 고집쟁이 세공사 말이군. 아직도 감시 중이었어?”

    “예.”

    “마저 보고해.”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졌다고 합니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짐도 거의 그대로인 상태랍니다.”

    엘디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팔을 잘라버렸다고 하지 않았나?”

    그 보고를 마지막으로 기억에서 지워버렸었다.

    하멜 가의 디자인은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그 선형의 유려함은 엘디아도 탐을 내던 디자인이었지만, 지금 대륙은 그녀가 내놓은 새로운 디자인에 열광하고 있었다.

    카이가 없어 5성급 아티펙트는 만들지 못하고 있지만, 이제는 굳이 5성급 아티펙트를 만들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엘더라는 이름값만으로 어떤 장신구와도 비교할 수 없어졌다. 지금도 대기가 반년 치나 밀려 있었다. 대륙은 넓고 돈이 많은 귀족은 넘쳐났다.

    덕분에 엘도 왕국은 단순히 돈이 아닌 많은 이권을 얻고 있었다. 엘도 왕국건국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몇 개의 디자인들은 고유의 팬들이 있었지만, 이미 대륙은 엘더에 열광하는 중이다. 이 아성은 위협받을 일이 없었다.

    “그 건은 너희가 알아서 하도록 해. 하멜 가의 디자인 정도로는 엘더를 위협할 수 없으니까.”

    “그럼 조치하겠습니다.”

    엘디아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말했다.

    “결과 나오면 보고해. 그보다 카이는 어때?”

    “성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성에 잠입하는 것은 시종장 테오 때문에 쉽지 않아 외부에서만 확인하는 중입니다. 말린 아프록시아 잎의 양을 늘려서 요구했고, 진금과 진은, 강철까지 주문했습니다. 벨록 상단에 외상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래?”

    엘디아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사용한 말린 아프록시아 잎만으로도 충분히 중독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양을 늘렸다면 그는 심각한 중독에 걸렸다는 얘기였다.

    진금과 진은, 강철까지 주문하는 것을 보니 인형이라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것도 회수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그의 생명은 반년도 남지 않았으니까.

    “영지의 채권으로 외상을 내주라고 해. 그리고 영지의 채권은 내가 따로 사도록 할게. 엘티온이 왕국을 물려받기 전에 직할령을 늘려놓는 것도 좋겠지.”

    “그리 진행하겠습니다.”

    여인이 물러나자 엘디아는 기분이 좋아졌다. 엘더의 돈은 모두 카이가 벌어온돈. 그 돈으로 카이의 영지를 사서 엘티온에게 물려준다면 그 더러운 평민의 손이 자신에게 닿았던 불쾌함을 씻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비드는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카이를 따라서 그의 영주 성으로 온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오자마자 썼던 계약서의 내용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월급은 1만 프랑씩이었고, 새로이 만드는 아티펙트 브랜드 ‘그레이스’의 지분도 5%씩 받기로 했다. ‘그레이스’가 ‘엘더’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해도 그 가능성을 생각하면 놀라운 대우였다.

    그만큼 카이가 하멜 가의 조손을 믿는다는 얘기였다.

    카이는 계약서에 서명을 마치자 목걸이의 새로운 디자인을 부탁했다.

    다비드는 그동안 술에 절어 살아왔기에 손이 떨려서 디자인 스케치를 직접 할 수 없었기에 에르케에게 디자인 스케치를 맡기고, 조언을 해주는 중이었다.

    엘더의 디자인은 지금 대륙의 귀족들 마음을 훔쳐놓은 상황. 그런 엘더와 견주려면 귀족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디자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비드와 에르케는 매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몇 개의 후보군이 완성되었지만 이거다 하는 디자인은 나오지 않았을 때 테오가 그들을 찾아왔다.

    “카이님이 부르십니다.”

    이곳에 온 뒤로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카이가 자신들을 찾는다는 말에 다비드와 에르케는 그간 디자인한 스케치북을 챙긴 채 테오를 따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영주 성의 지하실이었다. 마법사의 연구실은 본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곳의 모습은 상상과는 조금 달랐다.

    한쪽 벽면에는 온갖 시험 기구들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뭔가를 끓이며 정제하고 있음은 마법사의 연구실을 연상하게 했지만, 반대편은 달랐다.

    금속으로 된 팔은 물론이고, 용도를 짐작하기도 힘든 물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침대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위로 커다란 구체가 준비되어 있었다.

    카이는 시험관 앞에서 끓고 있는 액체를 바라보다가 그들이 내려오자 의자를 옮겼다. 바퀴가 달린 의자가 드르륵 움직여 침대 옆으로 향했다.

    카이가 침대 옆에서 손가락을 튕기자 침대 위에 있던 커다란 구체에 불이 들어왔다. 라이트 마법을 이용한 마법등으로 보였다.

    카이는 다비드와 에르케를 돌아보다가 침대를 툭툭 두드렸다.

    “다비드. 여기 잠깐 누워보시겠습니까?”

    “무슨 일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카이가 다비드의 어깨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신경이 살아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만약 신경이 살아있다면 의수를 달 생각입니다.”

    “의수를 다는데 신경은 왜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거죠?”

    에르케가 끼어들어 묻는 물음에 카이가 손을 옆으로 내밀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무언가가 날아와 손에 잡혔다. 그것을 본 다비드와 에르케의 눈이 커졌다.

    카이는 그것을 들어 보인 채 말했다.

    “다비드의 팔 길이를 맞춰 디자인하기는 했습니다. 신경이 살아있다면 이것과 연결해서 작동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조정 사항이 필요하기는 한데 제 예상이 맞는다면 다시 망치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카이의 긴 설명에 다비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손에 들린 금속 팔을 바라보았다. 정말 다시 망치를 들 수 있을까?

    보석을 세공하는 것은 원석 속에 깃들어 있는 보석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 원하는 형태의 보석이 모습을 드러낼 때의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보석 세공사의 특권.

    다비드는 침대로 걸어가 누웠다. 바로 머리 위에서 밝은 빛이 내리쬐고 있어 눈을 감은 다비드에게 카이가 다가와서는 그의 상의를 풀었다.

    팔이 잘린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그 부분에 새로운 살이 올라 있었다.

    카이가 그 위로 손을 올리자 그의 손 위로 초록색의 빛이 올라와 마법진을 그려냈다. 그 마법진을 통해서 다비드의 신경을 살피던 카이가 마법진 위에서 춤추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다비드가 그 손길을 따라 움찔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에르케가 그 모습을 보고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물었다.

    “할아버지 왜 그러시는 거예요?”

    카이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답했다.

    “신경에 자극이 와서 그러는 거야. 다행히 신경은 많이 손상되지 않았어. 다만 약해진 신경은 훈련을 통해서 강화해야 할 것 같아.”

    카이가 손을 떼자 마법진이 사라졌다. 카이는 손가락을 튕겨서 침대 위 구슬의 빛을 끄고는 다비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비드가 눈을 뜨자 카이가 입을 열었다.

    “신경은 대부분 살아있습니다. 다만 의수를 달려면 결국 상처를 다시 가르고, 지지대를 몸에 박아야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다비드는 눈에 열망을 가득 담은 채 답했다.

    “다시 망치를 들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카이는 그 말을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의수를 단다고 해도 미세한 힘 조절까지 가능해지려면 적응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카이의 시선이 에르케를 향했다.

    “자리를 비켜줘.”

    에르케는 다비드의 눈을 보고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 할아버지 다시 망치를 쥐게 해주세요!”

    카이는 손을 휘휘 내저었고, 에르케는 테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에르케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보석 세공을 좋아하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직접 배울 때 그가 했던 말도 기억하고 있었다.

    원석을 깎아 그 안에 들어있는 보석의 영롱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은 오직 보석 세공사의 특권이라고 했던 만큼 얼마나 그 일을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할아버지가 다시 팔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이 모든 은혜를 갚으려면 정말로 엘더를 압도할 만한 디자인이 필요했다. 일주일간 고심했던 디자인 정도로는 안 된다.

    더 압도적인 그런 디자인이 필요했다. 에르케는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가 목탄을 집어 들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의 소망이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떠올리자 머릿속에서 샘솟는 영감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계시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뭔가에 홀린 듯 영감을 따라 목탄을 움직였다.

    눈을 뜬 다비드는 자신이 언제 잠이 들었었나 고민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카이가 등진 채 앉아 수정구 하나를 들여다보며 뭔가를 만지고 있었다.

    카이가 뭔가 바빠 보이기에 그를 부르기보다 무심코 몸을 일으키려는데 기이한 소리가 났다.

    빠각.

    그 소리에 카이가 돌아보는 것도 모른 채 다비드는 자신의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바닥을 짚다가 침대를 부숴버렸다.

    다비드는 침대의 귀퉁이를 쥔 새하얀 의수를 바라보던 다비드에게 카이가 말을 건넸다.

    “의수의 출력을 조정하지 않아서 조심해야 합니다. 물건을 부수는 건 괜찮지만,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비드는 그 말에 자신의 팔을 천천히 굽혔다 펴보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카이가 의수를 착용하면 다시 망치를 쥘 수 있다고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힘 조절은 안 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의수라니?

    손가락을 움직여 보니 제 뜻대로 움직였다. 다비드는 그 손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지었다. 진짜로 손가락이 움직일 줄은 몰랐다.

    다비드가 침대에서 내려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카이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카이는 그런 다비드의 어깨를 잡아주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우선은 이걸로 훈련하세요.”

    카이가 건네준 것은 작은 공이었다. 다비드가 그걸 받아서 꼭 쥐자 터질 듯이 찌그러졌지만 실제로 터지지는 않았다. 대신 색이 파랗게 물들었다.

    카이는 그걸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군요. 지금 근력은 3성 육체 강화자가 마력으로 근력을 강화했을 정도의 위력입니다. 파란색이 초록색이 되면 2성, 노란색이 되면 1성, 색이 변하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일반인과 마찬가지입니다. 힘 조절에 성공한 거죠.

    꾸준히 노력하셔야 합니다.”

    다비드는 공을 주물럭거리면서 그걸 내려다보았다. 아직은 검은색으로만 변하는 것을 보아 힘 조절이 안 되고 있었다. 그러나 다비드는 다시 팔을 얻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설령 이 힘을 조절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고 해도 결국 이루고 말 생각이었다.

    카이는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올라가시죠. 에르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에르케!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겁니까?”

    “하루 지났습니다.”

    벌떡 일어난 다비드가 카이를 따라 올라가 응접실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에르케가 있었다. 그녀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퍼뜩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돌리다가 카이와 다비드를 발견하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낫다.

    “할아버지!”

    에르케가 달려드는 것을 보고 카이가 손을 내밀었다.

    “잠깐. 아직 힘 조절이 안 되니 조심해야 돼.”

    “아!”

    다비드는 그 말에 씨익 웃더니 걸어가 왼팔로 에르케를 안아주었다.

    “조금만 기다려다오. 곧 두 팔로 안아주마.”

    “알겠어요. 기다릴게요.”

    에르케가 환하게 웃더니 테이블에 스케치북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보다 이것 보세요! ‘그레이스’의 첫 번째 작품이에요!”

    에르케가 펼친 스케치북에는 목탄으로 그린 목걸이가 있었다. 그걸 본 카이와 다비드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차를 내오던 테오도 그걸 보고는 흠칫 몸이 굳었다.

    카이는 손을 뻗어 목걸이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이름이 뭐지?”

    “‘부활’이요.”

    엘더를 따라잡을 ‘그레이스’의 첫 번째 목걸이. ‘부활’의 디자인을 본 카이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건 통한다!

    이런 파격적인 디자인이야말로 ‘그레이스’의 시작이 될 자격이 있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계획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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