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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6화 (6/150)
  • 006화 계약

    나이를 먹으니 상대가 진심인지 아닌지는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상대는 진실된 감정으로 자신을 필요해 하고 있었다. 이렇게 진심으로 자신을 대하는 이를 얼마 만에 보는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다비드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엘더의 영입 제안을 거절하고 점점 사업이 어려워졌다. 그래도 하멜 가의 디자인을 좋아 해주는 노귀족들이 있어 어떻게든 사업을 꾸려갈 때 일이 벌어졌다.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던 목걸이를 리폼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 목걸이를 훔치기 위해 도둑들이 들었고, 그들을 막다가 팔이 잘렸다.

    그들은 결국 목걸이를 훔쳐갔지만, 팔이 잘린 채 쓰러진 다비드를 내려다보던 그 눈빛은 단순한 도둑 같지 않았다. 무덤덤한 눈빛으로 잘린 팔을 바라보다가 떠났던 도둑을 떠올린 다비드가 고개를 숙여 카이를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젊은이가 최고의 예우로 자신을 청하고 있었다.

    자신의 처지를 알면서도 자신을 청하는 저 젊은이에게 남은 생을 맡겨도 될까?

    다비드가 고개를 숙여 술잔을 내려다볼 때 불쑥 끼어드는 손이 있었다.

    “할배. 뭘 그리 고민해?”

    다비드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한 여인이 나타나 술잔을 호쾌하게 비웠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술잔을 뒤집어 탁 소리 나게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카이를 바라보았다.

    “하멜 가의 보석 세공사를 원하나 본데 나 에르케 하멜이 그 청을 받아들이죠.”

    카이의 기억에 있는 여인이었다.

    엘디아 공주가 장신구들을 구경하는 동안 심심해하는 카이에게 다가왔던 소녀. 다비드는 자신의 손녀라고 소개하며 그녀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했었다. 이대로 큰다면 아마 대륙 최고가 될 거라고 얘기했던 소녀.

    소녀는 7년 사이에 여인이 되어 있었다.

    아마 엘디아가 그녀의 재능에 대해 들었다면 그녀 또한 팔이 잘려나갔을지도 모를 보석 세공사.

    월척이다!

    엘더의 영입 제안도 거절했던 이들이라 그들을 영입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이 거절하지 않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대접하겠다고 내온 찻잔에 이가 나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찻잔에 들어있는 것은 그냥 따뜻하게 데운 물이었다. 카이의 손길이 이가 나간 찻잔을 만지작거리자 에르케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할게요.”

    카이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자 에르케가 주위를 돌아보며 답했다.

    “목걸이 도난 사고 배상금 때문에 이 집은 넘어갔어요. 다행히 그 목걸이의 주인이었던 노부인께서 저희가 여기서 머물 수 있도록 해줬지만,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아들은 이 건물을 팔겠다고 하는 실정이 고요.”

    다비드는 한숨을 푹 내쉴 뿐 끼어들지 않았다. 에르케는 그런 다비드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는 양손을 활짝 펼치며 말했다.

    “그래서 곧 길거리에 나 앉기 직전이었는데 짜잔! 이렇게 저희를 고용해 주시겠다고 나타나신 것을 보니 정말 하늘 신 시엘께서 보살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네요.”

    어딘가 가벼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손에는 굳은살이 잔뜩 박혀 있었다. 그것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실력은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어차피 원하는 것은 다비드의 경험과 안목이었다. 엘디아가 손에 넣지 못해 망가트린 것만 보아도 그의 안목은 믿을만했다.

    생각해 보면 그 선형의 아름다움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 클래식한 멋이 있었다. 그러니 노귀족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그들의 물건을 찾는 이들이 있었다.

    게다가 그 세공 실력은 자신이 만들려는 새로운 브랜드에 꼭 필요했다.

    “제가 원한 건 하멜 가의 보석 세공에 들어가는 유려한 디자인과 그 세공 실력입니다.”

    다비드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더니 카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 아이의 실력이라면 믿을 만할 거요. 다만 우리가 왜 필요한지 설명을 듣고 싶소.”

    카이의 시선이 다비드를 향했다. 그러고 보니 엘더의 영입 제안도 거절할 정도로 고집이 센 이였다.

    카이는 솔직히 말했다.

    “저는 마법사입니다. 그리고 아티펙트를 만들고자 합니다.”

    아티펙트라는 말에 다비드와 에르케 둘 다 표정이 굳어졌다.

    “저기 고용주님. 아티펙트라고 하셨나요? 본국에 아티펙트 명품 브랜드 엘더가 있는 것은 알고 계시죠?”

    “알고 있지.”

    “그런데도 왕국 내에서 아티펙트를 만들겠다고요?”

    “응.”

    카이는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 엘더를 넘어서는 것이 내 목표니까.”

    에르케가 실소하고는 답했다.

    “풉. 진심이세요? 저 무결의 마법사 카이가 디자인한 소형 마법진 덕분에 장신구로 아티펙트를 만들 수 있게 된 데다가 엘디아 공주의 디자인으로 대륙을 선도하고 있는 엘더를 넘어서겠다고요?”

    카이가 아무런 대답도 없자 에르케가 이 순진한 고용주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첫째로 요즘 아티펙트는 장신구 크기만 해야 해요. 문제는 무결의 마법사 카이가 만든 마법진만큼 작게 마법진을 설계하지 못한다면 아티펙트로서 엘더와 견줄 수 없죠. 둘째로 엘디아 공주의 디자인은 지금 대륙의 모든 귀족 영애들의 마음을 훔쳤죠.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을 생각하면 신생 아티펙트 브랜드가 자리를 잡기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도 되지 않아요.”

    에르케의 설명에 카이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생각보다 잘 알고 있네?”

    “물론이죠. 엘더만 생각하면. 으득.”

    이를 깨무는 에르케를 보고 카이는 흡족했다. 엘더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다비드의 팔이 저리된 것이 엘디아의 입김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나 보다.

    다비드가 심각하게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아티펙트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라면 영입을 포기하는 것이 어떻겠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비드는 고개를 돌려 에르케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의 재능이라면 분명 엘더와도 견줄만할 것이오. 하지만 엘더는 지금까지의 아티펙트 역사를 다시 쓴 곳이오. 그런 엘더에 견줄 아티펙트를 만든다고 하니 그저 걱정이 앞설 뿐이오.”

    카이가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할 때 다비드는 자신의 헐렁한 팔소매를 잡고는 답했다.

    “그리고 이것도 그렇소. 난 그 도둑이 들었던 사건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소.”

    다비드는 팔을 잃고 나서, 만약을 위해 에르케에게 남들 앞에서 실력을 숨기라고 말했다. 그렇게 지내온 7년이었다. 그 뒤로 제대로 된 일거리도 없이 간신히 연명만 해왔다.

    자신처럼 팔이 잘리지 않으려면 그녀의 재능을 숨겨야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이라도 해봤다. ‘요정의 눈물’로 영입을 권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보석 세공을 할 수 있겠다고 잠깐 꿈꿨었다.

    그만한 돈이 있다는 것은 그만한 영향력이 있다는 말이니 그의 밑으로 가서 보호를 받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아티펙트를 만들겠다니?

    계란으로 바위를 깨부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저 수많은 마탑이 왜 엘더를 넘어서지 않았겠는가? 그들이 성장도 못 하도록 짓밟았을 텐데.

    “잠시 마음이 혹했지만, 생각해 보니 당신도 위험에 빠질 수 있소. 특히나 아티펙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면.”

    다비드는 오히려 카이를 걱정했다. 장신구 형 아티펙트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엘더가 합법적으로만 손을 쓸 것 같지는 않았다.

    다비드의 걱정을 읽은 카이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안위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모습.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하도 거하게 뒤통수를 맞아서 인간에 대한 불신이 싹 트던 카이조차 마음을 열 정도로 올곧은 인생을 살아온 고집이 느껴지는 장인.

    딱 카이가 원하던 인재다.

    그래서 카이는 그들의 앞에서 마법을 해제했다. 카이의 본래 얼굴이 드러났다.

    오랜 시간 마력 봉인으로 쇠약해진 몸에 그 봉인을 풀기 위해서 노력하며 비쩍 말랐지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비록 7년의 시간을 지나서라고 하나 조금 전까지 그를 떠올렸던 다비드는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다, 당신?”

    카이는 미소를 지은 채 인정했다.

    “알아보시는군요. 오랜만입니다.”

    에르케도 카이를 알아보고는 딸꾹질을 시작했다.

    “에끅! 무결의 마법사?”

    바헬이 왕궁을 찾아와 근위기사단장을 죽이고, 카이의 마력을 봉인한 것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카이의 이혼 사실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걸 아는 것은 왕가나 아니면 고위 귀족만이 가능한 일.

    이들의 오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카이는 그 부분을 바로잡아주기로 했다.

    “카이입니다. 엘디아 공주와는 이혼했고, 엘더는 빼앗겼습니다.”

    에르케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엑? 왜요?”

    아직 어린 에르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비드는 어른의 사정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는 천천히 그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녀가 이런 끔찍한 일을 했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들은 엘디아 공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만들었던 장신구형 아티펙트가 일으킨 나비 효과의 피해자였다. 카이의 진심이 느껴지는 모습에 에르케는 다비드의 눈치를 살폈다.

    에르케는 무결의 마법사 카이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야만인의 침략으로부터 왕국을 구해낸 영웅. 야만인 참살자. 평민의 신분으로 6성급 마법사가 되며 엘디아 공주와 결혼해 백작의 작위까지 받은 모든 평민의 우상이었다.

    7년 전 그를 만났을 때 소녀였던 에르케는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던가?

    그런 그가 자신들을 영입하겠다고 찾아왔다.

    자신이 직접 만들었던 엘더를 넘어서겠다고 하며 나타난 그를 보니 마음이 확기울었다.

    할아버지는 말했었다. 가문이 망한 것은 엘더의 영향인 것 같으니 재능을 숨기고 살라고. 그러나 무결의 마법사 밑에 있다면 위험할 일 따위는 없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

    다비드는 에르케의 부름에도 말없이 아직도 허리를 숙이고 있는 카이를 바라보았다.

    카이는 이곳에 올 때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얼굴까지 드러내고 자신을 원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백작위를 받은 귀족이다. 그런 그가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은 과거 하멜 귀금속을 찾아왔을 때 보았던 그 수더분한 외모에 순수했던 눈빛 그대로였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수척해진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까지했다.

    다비드는 카이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뜨거운 눈으로 카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주저하다가 물었다.

    “정말 엘더를 넘어설 겁니까?”

    카이는 눈을 사납게 빛내며 솔직히 답했다.

    “단순히 엘더를 넘어서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엘더의 모든 것을 빼앗아 올겁니다. 그들이 거머쥔 명예와 부까지 모조리.”

    자신이 처한 자세한 내막까지는 아직 알려줄 수 없었지만, 이 정도 진심은 보일 수 있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다비드는 카이의 눈에 서린 진심을 읽었다. 이혼은 당했고, 엘더를 빼앗겼으리라.

    그 분노를 읽은 다비드는 왼손으로 카이의 손을 꼭 쥐었다. 그 손에 담긴 힘에서 다비드의 분노를 카이도 읽을 수 있었다.

    “같이 하겠습니다. 제가 돕겠습니다.”

    “저도 도울게요!”

    에르케가 얼른 달려와 마주잡은 카이와 다비드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며 외쳤다. 그 모습에 다비드와 카이는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돌싱 후 대마법사-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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