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화 영입
엘도 왕국에는 보석 광산이 많았다. 사치품인 귀금속이 나는 곳일 뿐 전쟁에 도움이 되는 철광산이나 진은, 진금 광산은 없었다.
다행이라면 마석 광산이 있어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대로 엘도 왕국의 국왕들은 귀금속 장인들을 귀하게 여겼다.
대륙의 이름난 보석 세공사들이 모였고, 그들이 자리를 잡은 곳이 도시 아인 츠였다.
그런 아인츠의 장인 거리에는 수많은 보석 세공사 중에서도 가히 장인이라 불리는 이들만이 머물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보석 세공사들이 그 장인의 거리에 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아티펙트 브랜드인 엘더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엘도 왕국의 왕가에서 지원한 엘더는 단숨에 그 아름다운 보석 세공에 더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장신구형 아티펙트라는 점 때문에 대륙에서 가장 유명해졌다.
그런 만큼 많은 보석 세공사들이 필요했고, 그들은 엘더의 밑으로 들어갔다.
엘더의 밑으로 들어간 이들은 전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고, 엘더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나 들어가길 거부한 이들은 하나둘 망하거나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의 아인츠 장인 거리는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카이는 그런 아인 츠 장인 거리를 걸었다.
예전에는 비어 있는 가게를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엘디아 공주와 함께 마차를 타고 지나가며 시장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의욕을 드러냈던 일이라 당시에는 카이도 기쁜 마음으로 그녀와 함께 이 거리를 걸었었다.
그때는 온갖 아름다운 장신구가 유리창 너머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을 연 장신구 가게를 찾기가 더 힘들 지경이었다.
카이는 자신이 만든 아티펙트가 엘도 왕국의 장인 거리를 망하게 했다는 것에 쓴웃음을 지었다.
카이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카이가 멈춘 곳은 3층짜리 건물 앞이었다. 장인 거리의 구석진 곳. 1층 가게의 진열장은 텅 비어 있었다.
카이는 그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기억에 있는 곳이었다. 엘디아공주가 잊지 않고 꼭 들르던 곳이었다. 부드러운 선형의 디자인이 유독 기억에 남아있었다.
“흐음.”
카이는 그 건물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자신이 겉만 보았던 엘디아 공주는 자신이 손에 넣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렸다. 이 건물에 살던 보석 세공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얼마나 독한 여인인지는 이혼하고 나서야 알아볼 수 있었다.
영주성을 나서면서도 성을 감시하던 자들을 발견하고 그녀가 아직도 자신을 경계하고 있음을 알았다.
왕가의 그림자. ‘리퍼’.
4성급 육체 강화 능력자 한 명에 3성급 네 명으로 이뤄진 감시 팀이었다.
그만한 전력을 감시에 쓸 정도로 그녀는 자신을 경계하고 있었다. 자신의 마력이 봉인되었고, 성녀가 시한부라는 것을 알려줬음에도 그녀는 만약을 대비했다.
카이는 자신이 움직이게 된 것을 알릴 생각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힘을 키우기로 작정했는데 괜히 적들이 경계하도록 만들 필요는 없어 감시자들을 그냥두고 왔다.
그래서 지금 카이는 자신의 얼굴은 물론이고 마력 패턴조차 바꾸었다. 그를 기억하는 누구도 지금의 카이를 같은 인물이라고 여기지 못하도록.
카이는 그렇게 자신을 숨긴 채로 찾아온 아인츠 장인 거리의 가게를 바라보았다. 테오의 설명을 듣고 찾아왔지만, 건물에는 어떤 기척도 감지 되지 않았다.
정말로 엘디아 공주가 손을 쓴 걸까?
카이가 고민하는 사이에 옆집 가게의 진열장을 정리하던 노인이 밖으로 나왔다.
“하멜을 찾아왔나?”
하멜 귀금속의 다비드 하멜을 찾아오기는 했다. 대대로 보석 세공사였던 가문. 엘디아가 영입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는 보석 세공사.
“다비드 하멜을 찾고 있습니다.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그라면 ‘아침 이슬’에 있을 거네.”
“아침 이슬이요?”
“선술집이라네. 골목을 나가서 다음 블록에 가면 있지.”
카이가 미미하게 인상을 굳혔다.
“보석 세공사가 이런 시간에 선술집에 있다고요?”
보석 세공사는 손이 생명이다. 그런 만큼 제대로 된 보석 세공사는 절제할 줄 아는 인간들이다.
작은 손 떨림 하나에 값비싼 보석을 못 쓰게 되니까.
그런 보석 세공사가 대낮에 선술집에 있다니?
어쩌면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은 만나본 후에 할 일이다.
진열장을 정리하던 노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아직도 보석 세공사였다면 선술집에 있지는 않았겠지. 그를 찾아왔다면 한 번 가보게. 직접 보면 이해하겠지.”
노인은 그리 말하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카이는 노인의 가게 진열장을 바라보았다. 진열장에 진열된 장신구들은 이미 유행이 지난 물건들이었다.
엘더의 아티펙트는 유행을 선도했다. 디자인은 엘디아가 했지만, 카이가 그 안에 들어가는 마법진을 만들었기에 그의 심미안도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카이는 ‘아침 이슬’이라는 선술집을 향해 걸으면서 아인츠 장인 거리의 진열장들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디자인 자체가 유행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장신구는 사치품이다. 그리고 사치품은 유행이 지나면 쓰지 않는다. 저런 물건을 차고 나간다면 사교계에서 매장되기 딱 좋았으니까.
카이는 아인츠 장인 거리가 무너진 이유를 짐작하고는 ‘아침 이슬’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도 되기 전인데 자리를 차지하고 술을 마시는 이들이 보였다.
이곳은 시대에 뒤처진 장인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곳이었다.
카이는 그 모습에 가볍게 혀를 차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빈자리에 앉아있으려니 대머리 사내가 다가와서는 식탁을 닦아주며 물었다.
“뭐로 드릴까?”
“식사도 됩니까?”
“안될 건 없지. 양 갈비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이 가능하오.”
“그럼 양 갈비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그리고 과일 주스 하나 부탁하죠.”
“12프랑만 주시오.”
카이가 품에서 10프랑짜리 하나와 1프랑짜리 동전 두 개를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놓자 대머리 사내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카이는 테이블에 팔짱을 끼고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을 살폈다.
대낮에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자는 다섯.
다들 나이가 지긋한 이들이었다. 카이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엘디아와 함께 들렀던 가게였기에 그 보석 세공사의 얼굴은 금세 떠올랐지만 단번에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전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어서였다.
장인이라는 것은 한 길만 수십 년을 매진한 만큼 그 고집도 대단했지만, 자부 심도 남다른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카이도 장인들은 인정해 주었다.
그렇게 자신감 넘치던 이가 고개를 숙인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니 한 번에 못 알아봤다.
다비드 하멜.
자부심도 고집도 모두 내려놓고 술에 의존하는 그를 알아보았지만, 그가 왜 그리 망가졌는지는 바로 이해가 됐다. 노인이 그를 만나보라던 이유가 있었다. 그의 오른팔이 있어야 할 곳에는 어깨부터 헐렁했다.
왼손으로 술잔을 잡고 단숨에 비운 다비드 하멜이 잔을 테이블에 툭툭 두드리자 안쪽에서 대머리 사내가 양 갈비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접시를 들고나오다가 그를 돌아보며 투덜거렸다.
“영감. 외상은 더는 안 돼.”
다비드는 그 말에 인상을 굳혔지만, 따지지 못했다. 길게 한숨을 내쉰 다비드가 일어났을 때 카이는 조용히 그를 따라 일어났다.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 다비드를 따라 걸으며 카이는 기감을 넓혔다. 다비드를 따라 움직이는 시선이 느껴졌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카이는 잠시 고민했다. 척 봐도 저들이 리퍼들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들을 건드리면 자신이 비밀리에 움직이는 것을 들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저들의 눈을 피해서 다비드를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잠깐 고민하던 카이는 리퍼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기척도 없이 그곳으로 간 카이는 방만한 자세로 앉아있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리퍼는 최정예 요원들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몇 년 동안 모든 것을 잃은 늙은 보석 세공사를 염탐하느라 방만해졌다.
그렇다고 그들이 염탐을 소홀하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카이의 움직임을 그들이 읽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카이는 그들에게 다가가 간단히 마력에 침투해 그대로 잠재워 버렸다.
이들이 깨어날 때쯤에는 이미 다비드가 사라진 이후이리라.
다비드는 잠시 가게 앞에 서서 가게를 바라보았다. 그런 다비드에게 옆 가게에서 나온 노인이 물었다.
“아까 누가 여기 와서 구경하다 자네를 찾던데. 못 만났나?”
다비드는 피식 웃고는 손을 휘 내저었다.
“팔이 없는 걸 보고 돌아갔나 보지.”
다비드는 그리 말하고는 터벅터벅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3층의 집 앞에서 그 문을 만지던 다비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곧 여기도 떠나야 한다.
다비드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장을 열어서 확인해 보았다. 술병이 있었지만, 술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불쑥 목소리가 들렸다.
“술을 찾으시는 겁니까?”
다비드가 움찔하며 술병을 거꾸로 쥐고 뒤돌아 섰을 때 한 사내가 그 자리에서 있었다.
“누구요?”
“술 살 사람이요.”
다비드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하긴 어차피 이 집도 곧 자신의 집이 아니게 될 테고, 술을 사준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자네가 날 찾아왔다는 사람인가?”
“예. 그럼 앉아도 될까요?”
“그러시오.”
카이는 자리에 앉아 품에서 술병을 하나 꺼냈다. 고급 크리스탈 병에 들어있는 푸르스름한 술을 가져왔다. 병부터 고급진 크리스탈 병이라 예술품을 연상케 했다.
다비드가 그걸 보고는 눈이 커졌다.
“‘요정의 눈물’이오?”
“알아보시는군요.”
카이는 크리스탈 병의 마개를 열고 그 향을 맡아 보았다. 확실히 ‘요정의 눈물’이라는 것을 확인한 카이는 전용 잔도 꺼냈다.
카이는 전용 잔에 ‘요정의 눈물’을 조금 따른 후에 가볍게 잔으로 원을 그렸다. ‘요정의 눈물’이 그 움직임을 따라 잔을 휘감자 그것을 가볍게 옆으로 털어낸 카이가 잔에 가득 ‘요정의 눈물’을 따라서 다비드에게 내밀었다.
다비드는 자신의 앞에 놓인 ‘요정의 눈물’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카이를 바라보았다.
“자네 ‘요정의 눈물’을 마실 줄 아는군?”
그냥도 최고급 술이지만, 그 맛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조금 전의 과정이 필요했다.
카이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주향이 사라지기 전에 마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다비드는 잠시 주저하다가 앞에 놓인 ‘요정의 눈물’을 쭉 마셨다. 부드럽게 넘어간 술에 전신이 짜릿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 짜릿함과 함께 눈물이 맺혔다.
제대로 마신 ‘요정의 눈물’은 눈물을 부른다고 했다.
다비드는 고개를 들어 그 눈물을 흘려보냈다. 천천히 고개를 숙인 다비드는 카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카이는 두말하지 않고 다시 한 잔을 채워줬다. 다비드는 다시 한잔을 비웠고, 카이는 마지막 잔을 채워줬다.
마지막 잔이 차오르자 다비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비드는 고개를 들어 카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알고 이러는 건가?”
‘요정의 눈물’은 딱 석 잔만 나오는 술. 그러니 한 잔에 1만 프랑이나 하는 술로 한 병의 술을 모두 한 사람에게 권하는 것은 드문 일이기도 했지만,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제국의 선대 황제가 8레벨의 황궁 마법사 테오르가 아직 5성에 머물 때 그의 재능에 탄복하며 그를 영입하기 위해 석 잔의 ‘요정의 눈물’을 권했다.
석 잔의 술을 온전히 마신 테오르가 눈물을 쏟으며 제국의 황제를 따라 황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결국 8성에 오르고 대대로 황궁 마법사로 남아있었기에 아직도 당시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 귀한 이를 영입하기 위해서 최고의 예우로 청하는 것이 ‘요정의 눈물’ 석 잔을 권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카이도 엘토르 국왕에게 이 석 잔의 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부마가 되었었다.
“물론입니다.”
카이의 대답에 다비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찾아왔군.”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비드는 술잔을 잡지 않고 왼손으로 자신의 헐렁한 오른쪽 소매를 들어 보였다.
“어디서 뭘 듣고 찾아왔는지 모르겠으나 더는 세공을 못 하는 몸이네.”
카이는 골렘 마법으로 인형도 만들어내는 마법사다. 그런 그에게 팔 하나 없는 것은 장애도 아니었다. 물론 그런 쪽으로 만들어 보지 않아 정밀한 작업을 당장 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것도 해내게 할 자신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의 경험이었다. 그렇게 뛰어난 장인을 손에 얻기 위해서 3만 프랑을 투자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3만 프랑은 카이에게도 적은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뛰어난 보석 세공사를 영입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는 돈이었다.
“당신이 필요합니다.”
돌싱 후 대마법사-계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