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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2화 (2/150)
  • 002화 각오

    영주 대리인이 떠나면서 왕국에서 파견 나왔던 이들이 모두 떠났다.

    사람이 없어 을씨년스러워진 영주성의 서재에서 카이는 테오와 마주 앉았다.

    “정말 사람을 안 구하실 겁니까?”

    “맞아.”

    테오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집사인 그는 차를 타는 것부터 요리와 경호까지 모두를 동시에 해낼 수 있었지만, 혼자서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주인을 제대로 모시는 것 또한 집사로서 가져야 할 덕목. 왕궁에서 파견 나왔던 이들을 모두 돌려보낼 때만 해도 새로 뽑을 이에 대한 인사권을 내줄 줄 알았더니 사람은 하나도 구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혼자서는 이 성을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하다.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놓인 상자 중 하나를 열었다. 카이가 왕궁을 나올 때 챙기라고 해서 챙겼던 상자만 스무 개였는데 뭐하는 상자인지는 알수 없었다.

    그렇게 연 상자에서 몸을 일으킨 것은 1m 정도 크기의 인형이었다. 사람과 똑같이 생긴 인형.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사람인 줄 착각할 정도로 잘 만든 물건이었다.

    테오가 놀라서 그걸 보다가 물었다.

    “이게 뭡니까?”

    “골렘 마법으로 만든 인형(Doll)이야. 최신 모델들인데 집안일 정도는 이들이 할 수 있을 거다. 마석만 끼워주면 돼.”

    테오가 마차에 싣고 온 상자 중 인형이 들어갈 만한 상자는 열두 개.

    “이게 모두 인형입니까?”

    “맞아. 개발 단계라 전투 능력은 떨어지지만, 집안일은 충분히 할 수 있으니 이 중 일곱 개를 내줄게. 그거면 성을 관리할 수 있지?”

    “일단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자네가 데리고 다니면서 시켜 보도록 해. 다섯 기는 내가 사용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알겠습니다.”

    “그럼 전부 깨워서 일곱 기만 데려가. 어지간한 명령은 알아들을 수 있게 설계했으니 잘 따를 거야. 네 목소리에 반응하도록 설계해 뒀어.”

    “제 목소리에요?”

    “넌 내 전속 시종이었으니까.”

    마력을 봉인 당한 후에는 마법을 다루지 못했을 터. 그 말은 바헬을 만나기 전에 이미 이것들을 완성했고, 그때부터 자신에게 명령권을 내렸다는 말이었다.

    테오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인형들을 깨웠다. 상자를 열자 알아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는 인형들은 가발만 씌운다면 아이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일단 성내를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점심때 보자고.”

    “예.”

    테오가 일곱 기의 인형을 데리고 나간 사이에 카이도 몸을 일으켰다.

    카이는 다섯 기의 인형에게 남은 상자들을 하나씩 들게 했다. 크기는 고작 1m 짜리지만 말 한 마리 분의 힘을 낼 수 있는 인형이었다.

    저렇게 보여도 골렘 마법의 총화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엘티온에게 준 것에 비하면 성능이 떨어지지만, 이것만 해도 충분히 도움은 됐다.

    카이는 인형들과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영주성의 구도는 모두 파악한 상황. 지하는 전 영주의 와인 창고였다고 하는데 그 크기가 상당했다.

    그곳에서 카이는 인형들에게 시켜서 장을 모두 부숴서 밖으로 빼내게 했다.

    그렇게 와인 창고를 완전히 비우고 나니 제법 커다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정도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다.

    와인 창고를 정리하는 소란을 듣고 테오가 달려와서는 정리된 공간을 보며 물었다.

    “카이님. 이런 일이라면 제게 시키지 그러셨습니까?”

    “괜찮아. 이 정도는 내가 해도. 어차피 인형들이 한 거고.”

    카이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갑자기 기침을 토했다.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던 카이는 피가 묻어나온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는 말을 이었다.

    “테오. 앞으로 이곳은 너도 출입금지다.”

    “예? 카이님!”

    “미안하다. 이곳은 나 이외에 누구도 들어올 수 없으니 그리 알아라.”

    테오는 카이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카이의 눈은 세상만사 모든 것을 포기한 눈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대륙의 떠오르는 신성이자 무결의 마법사라 불리던 그때의 그 눈빛이었다.

    야만인의 침공에서 왕국을 구한 영웅.

    테오가 인생을 바치기로 한 이였다.

    그제야 테오도 알았다. 바헬의 주박에 걸렸음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음을.

    그렇다면 자신은 믿고 기다리면 될 일이다.

    “다른 모든 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영지 관리도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카이는 테오가 제 뜻을 읽었음을 알았음에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마지막 하나 남은 자신의 편. 왕궁에 남았어도 충분히 대접받고 살 수 있었을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곁을 지키겠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라왔다.

    그러니 다른 모든 걸 포기하고 도전해 볼 생각이다.

    성녀조차 포기했고, 남은 시간은 1년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몸은 자신이 잘 안다. 마력이 봉인 되었다고 그 감각마저 잃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은 이대로라면 8개월도 버티지 못한다. 그중 제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6개월이나 될까?

    그러니 6개월 안에 결판을 내야 했다.

    마력 한 올 나오지 않게 봉인해버린 바헬의 마력 봉인을 푸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8성에 오르는 것.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바헬의 시험이다.

    시험에 걸린 판돈이 목숨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미치광이가 낸 시험이니 그 정도는 당연한지도 몰랐다.

    그러나 바헬의 시험이 혹독한 면은 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까마득한 벽에 좌절하고 갑작스레 마력을 잃어 끝없이 좌절했었다.

    이게 시험이라는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하늘 교단의 성녀가 찾아와 주박을 풀려다가 실패하고 떠났을 때 신성 마법을 보며 이것이 시험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성녀의 신성 마법은 마법사의 성급으로 따진다면 7성에 달하는 수준. 그 수준의 신성 마법을 보니 자신이 7성에 도달하면 이 봉인도 풀 수 있음을 알았다.

    그것도 카이였기에 생각할 수 있었던 것. 실상은 온전히 8성에 이르러야 깰수 있는 봉인이었다. 하지만 카이라면 맞춤형으로 봉인을 풀 자신이 있었다.

    고작 1년의 시간을 주고 8성에 도달해야만 깰 수 있는 시험을 낸 것만 봐도 바헬이 얼마나 미친놈인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실마리를 잡았음에도 반쯤 포기했던 것은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밝히는 것을 주저하는 중에 엘디아 공주가 다가와 이혼을 요구했다.

    그 배신감에 카이는 굳이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어쩌면 그걸 밝히는 것만으로 입막음을 위해 자신을 죽이려 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카이는 너른 공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6성의 마법사는 전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자다. 마력만 보충할 수 있다면 혼자서도 전장을 초토화 할 수 있는 수준의 마법사.

    일국의 궁정 마법사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다. 그런 마법사가 없는 왕국도 허다할 정도.

    전통 있는 왕국인 엘도 왕국에도 카이 이전에는 6성에 도달한 마법사가 없었다. 그랬기에 국왕이 딸까지 내주며 왕국에 붙들어 맸던 것.

    최연소 6성 마법사인 카이에게 그만한 공을 들였던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7성부터는 대마법사로 분류되는데 그들은 전쟁 억제력이 있을 정도의 마법사들이다.

    대륙에 알려진 7성에 이른 대마법사는 고작 열두 명.

    8성은 인간의 한계라고 알려진 경지로 인간으로 그만한 경지에 이른 이는 역사를 통틀어도 다섯밖에 되지 않았다. 그중 현존하는 이는 단둘.

    도시 파괴자, 미치광이 바헬.

    수몰의 대마도사, 클로젠 제국의 황궁 마법사 테오르.

    그 둘 뿐이다.

    바헬은 120년을 넘게 산 노괴였고, 테오르도 80이 넘었다. 클로젠 제국의 황궁 마법사 테오르도 8성에 오르는 데는 60년이 넘게 걸렸다.

    그걸 보면 바헬이 건 주박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살아남거든 꼭 다시 한번 보자고. 늙은이.”

    사실 6성 마법사가 7성 이상의 대마법사를 만나볼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먼저 만나러 갈 이유도 없었고, 만나봐야 좋은 꼴 보기도 힘들었으니까.

    7성 대마법사들은 6성 마법사들을 만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죽이려고 했다.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죽는다고 보면 좋았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려는 자를 살려둘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7성 이상의 마법을 견식할 기회가 없다. 그랬기에 7성의 벽을 도저히 넘을 빌미조차 찾지 못했다.

    그랬던 카이는 바헬의 마법을 두 번이나 보고, 성녀의 신성 마법을 보았다.

    덕분에 7성급 이상의 마법이 어떤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마나. 그 마나를 품고 힘을 부여한 것이 마력.

    인간이 마력을 품는다는 것은 마나에 의지를 담았다는 것. 그런 마력의 형태를 조각하고, 속성을 담아내고, 조작한다. 그런 속성으로 주위의 마나를 이용하는 것.

    그리고 주위의 마나를 자신의 마력으로 지배하는 것.

    그렇게 6성에 올랐다.

    그러나 8성급 마법은 세계의 법칙을 비틀었다. 상상도 못 했다.

    공간에 간섭했기에 카이의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에 간섭했기에 모든 아티펙트가 먹통이 되고 마법에 직격 당했다.

    그것이 8성급 마법.

    그에 반해 신성 마법은 달랐다. 7성급에 이르렀지만, 그것은 마법과는 궤가 달랐다.

    신이라는 존재를 믿는다는 것만으로 그만한 힘을 빌릴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실마리가 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 마력을 다룰 수 없는 상태라는 점. 자신도 외부의 힘을 빌려 이 봉인의 열쇠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봉인의 열쇠가 완성되면 아마도 자신은 7성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그럼 시작해 볼까?”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만 카이의 뛰어난 직관으로도 이 마법진이 단숨에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험도 자신에게 직접 해야 하는 상황.

    7성에 오르려면 목숨도 걸어야 하지만 막대한 돈도 걸어야 했다.

    창밖의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아들 엘티온의 모습을 바라보던 엘디아는 아들이 휴식을 취할 때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 카이가 사라지고 엘티온은 굉장히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그 모든 걸 이겨내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오히려 그 상실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더욱 노력한 덕분인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저 아이는 나를 뛰어넘을 거다.”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엘디아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사촌 오빠이자 왕국제일검이라 불리는 엘폰토가 크리스탈 잔을 든 채 미소 짓고 있었다.

    엘디아는 창가에서 벗어나 사촌 오빠에게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그런데 카이는 어떻게 됐어? 죽었어?”

    “카이?”

    엘폰토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녀석은 끝났어.”

    “정말?”

    엘디아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엘폰토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성녀가 공언했었지. 그 녀석은 아무리 잘살아봐야 1년이라고. 그것도 요양에만 집중해야 연명만 가능할 뿐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길어야 6개월이었지.”

    “그건 나도 알아. 그만큼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러지.”

    엘폰토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영지로 돌아가자마자 왕국에서 보낸 관리인을 모두 내보냈기에 영주성을 염탐할 수는 없게 됐지만, 놈의 시종이 거래하는 상단을 알아냈지. 마법사답게 마력석과 마력 가루에 온갖 금속을 구하는 것 같더니 얼마 전부터 말린 아프록시아 꽃잎을 구하고 있어.”

    “아프록시아 꽃잎?”

    “그래. 지독한 마약이지. 몰락하는 영웅답다고 해야 할까?”

    엘디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질 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춘 엘폰토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녀석은 끝났어.”

    돌싱 후 대마법사-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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