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1화 (프롤로그) (1/150)
  • 001화 프롤로그

    덜컹. 덜컹.

    흔들리는 마차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던 카이는 기침을 참지 못하고 토해냈다.

    “쿨럭. 쿨럭.”

    허리를 숙일 정도로 격한 기침이 끝나고 입을 가렸던 손을 보니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카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카이님. 아직 바람이 찹니다.”

    “잠깐 하늘이 보고 싶었어. 닫을게.”

    창문을 닫은 카이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마차의 흔들거림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끼며 카이는 창문에 손을 올렸지만, 참았다.

    지금 그의 몸 상태로는 찬바람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우습군.”

    무결(無缺)의 마법사라 불리던 자신이 이리도 망가질 날이 올 줄이야.

    평민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재능은 하늘에 닿아 있었다. 배우지 않았음에도 가장 원시적인 마법을 다룰 수 있었다. 그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방랑 마법사덴다르트. 그에게 배운 빙계 마법으로 단숨에 그를 뛰어넘어 6성의 경지에 올랐던 그는 전쟁에 참여했다.

    야만족의 침공에 왕국이 제대로 대응도 못 하고 약탈당하고 불태워질 때 나선 그는 야만족을 이끌던 대전사를 쓰러트렸다. 그 전공 덕에 그는 단숨에 권력의 중심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가 세운 전공은 왕국 내에서 따라올 자가 없었고, 최연소 6성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대륙의 모두가 탐냈다. 그런 인재를 붙들기 위해 국왕은 작위를 내리고, 영지와 함께 공주를 내주었다.

    엘디아 공주.

    국왕의 장녀였던 그녀와 결혼할 때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평민으로 오를 수 있는 끝에 올랐다고 여겼으니까. 게다가 엘디아 공주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평민인 자신과 몸을 섞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몸을 섞었던 것은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한 채 자신의 방을 찾아왔던 단 하루였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9개월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엘디아 공주를 닮아 금발에 푸른 눈을 지닌 아이.

    아들이 태어난 것에 기뻐했지만, 엘디아 공주는 왕족으로서의 교육을 핑계로 아이를 거의 만나보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좋았다.

    왕궁의 아낌없는 지원 덕에 원 없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었으니까.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마법을 접할 수 있었다.

    비록 아내를 안을 수 없다고 해도 아들인 엘티온은 가끔이라도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것만으로 행복했다.

    엘티온은 어린 나이에도 검에 대한 재능이 눈에 띄었다. 마법에 대한 재능은 없었지만, 그저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 엘티온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쓸데없는 골렘 마법까지 파고 들어서 온갖 골렘을 만들어 주었다. 그중에서 탑승형 골렘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말을 타는 것보다 그걸 더 좋아했다.

    그래서 골렘 마법을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엘티온을 돕기 위해서 전투 골렘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개발은 중도에 멈춰야 했다.

    엘도 왕국에 찾아온 재앙.

    8성에 이른 미치광이 대마법사 바헬.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한 지고의 경지에 이른 자가 미치면 어떻게 되는지 명백하게 보여준 자.

    그 전설이 시작된 지 120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정정하게 살아있는 그 대마법사가 약속을 지키라며 왕궁을 찾아왔다.

    50년 전, 그러니 현 국왕의 조부가 약속했던 것은 당시 야만인의 침략에서 엘도 왕국을 지켜주는 대가로 자신의 핏줄 중 하나를 내주겠다고 했던 약속.

    그 약속의 대가로 바헬이 원한 핏줄이 엘티온이었다.

    8성에 이른 바헬의 다른 이명은 도시 파괴자.

    홀로 도시 하나를 파괴할 수 있는 괴물이라는 뜻도 있지만, 실제로 그가 파괴한 도시의 숫자가 열을 넘기기에 붙은 이명이기도 했다.

    그런 바헬이 홀연히 왕궁에 나타났을 때 모두가 절망했다.

    카이도 그때 처음 알았다. 까마득한 벽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런 바헬이 엘티온을 가리켜 손짓하자 엘티온이 떠올라 그에게 날아가 그의 앙상한 손에 잡혔다. 바헬에게 달려들던 근위기사단장의 머리가 손가락 한 번 튕기는 것으로 날아가 버렸기에 감히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엘디아 공주가 눈물을 쏟으며 카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카이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고 그 재능이 하늘에 닿았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바헬의 발끝에도 닿지 못함을.

    그러나 엘디아의 눈물이 아니라고 해도 카이는 엘티온을 바헬에게 내줄 수 없었다. 그 약속이 무엇이었든 자신의 아들을 내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섰다.

    바헬은 엘티온의 어깨를 짚은 채 카이를 바라보다가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리고는 엘티온의 어깨를 놓아주고 말했다.

    자신의 마법을 세 번만 받아낸다면 왕가와의 약속을 물리겠다고.

    카이는 한 번도 받아낼 수 없을 거라 여겼지만, 겁에 질린 엘티온을 보고 나섰다.

    바헬의 첫 번째 마법에 모든 마력을 동원했고, 두 번째 마법을 막기 위해 그 간 준비했던 모든 아티펙트를 잃었다.

    그렇게 바닥에 쓰러진 카이의 가슴에 바헬이 손을 얹었다.

    바헬의 세 번째 마법. 그것은 마력 봉인이었다.

    카이가 가진 모든 재능을 단숨에 옭아맨 주박. 바헬은 그렇게 쓰러진 카이의 앞에 서서는 흘흘 웃으며 말했다.

    이것으로 세 번의 마법을 막았으니 왕가의 약속을 물리겠다고.

    그것이 과연 막은 것이었을까?

    그저 바헬의 손에 놀아난 것밖에 되지 않았다.

    현 국왕 엘토르는 크게 기뻐하며 카이의 공을 잊지 않겠다고,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카이를 도와주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8성의 바헬이 내린 주박은 하늘 교단의 성녀가 직접 왔음에도 풀 수 없었다. 오직 바헬 본인만이 풀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성녀는 떠났다.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마법사.

    게다가 단순히 마력을 봉인한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카이의 몸과 정신을 갉아먹는 주박이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카이를 찾아온 것은 엘디아였다. 그녀는 카이의 곁에 다가와 담담히 요구했다.

    이혼해 달라는 요구를.

    카이의 드높던 자존감은 이미 바닥을 친지 오래. 마력을 잃고 마법을 쓸 수 없게 된 그는 더는 천재 마법사가 아니었다. 대륙의 신성이라 불렸던 찬란했던 시절이 끝났음을 알았다.

    그리고 엘디아가 그걸 선고한 것이었고.

    카이는 거절했다. 엘디아 공주와는 정조차 들지 않았지만, 엘티온을 생각해서 거절했다.

    그때 엘디아 공주가 털어놓았다. 엘티온은 사실 카이의 아이가 아님을. 그 아이는 엘폰토 공작의 아들이라고.

    엘도 왕국의 왕국제일검이라 불리는 엘디아 공주의 사촌 오빠.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엘디아가 임신한 후에야 자신과 잠자리를 했고, 엘티온을 낳았다. 엘티온이 그토록 선명한 금발과 푸른 눈을 가졌던 것도 모두 왕가의 핏줄을 진하게 이 어받았기 때문.

    마법의 재능이 아니라 검의 재능을 타고난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바헬이 엘티온을 원한 이유도 그것 때문임을 알았다. 순수한 왕가의 혈통을 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도 아닌 엘티온에게 온갖 사랑을 담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지키려 했다는 것이 사실은 모두 엘디아에게 농락당한 것임을 알았다.

    자신이 멀쩡했다면 엘디아는 끝내 이 사실을 숨겼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을 털어놓아 마지막 남아있던 카이의 자존감마저 짓밟아 뭉갰다.

    그 모든 것을 깨닫자 더는 왕궁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순순히 이혼하기로 했다.

    엘토르 국왕이 끝까지 붙잡으려고 하는 것을 보아 그는 엘디아의 만행을 모르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어차피 죽어가는 몸 이곳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엘티온이 와서 그를 말렸을 때는 솔직히 흔들렸다.

    엘티온은 엘디아의 만행을 몰랐으니까. 키운 정이 있어 마음이 흔들렸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떠났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기에.

    성녀가 말하기를 길어야 1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 했다.

    죽음이 다가오자 그제야 고향이 그리워져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나온 것은 그의 전속 집사였던 테오였다. 야만인의 침략 때 무너졌던 벨페르 남작가의 삼남이었던 테오는 그 복수를 해주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전속 집사가 되었다.

    왕궁을 떠날 때 남으라고 했음에도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한 녀석이었다.

    마차의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더니 테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주이신 카이 백작님이다. 문을 열어라.”

    곧 소란이 들렸고, 성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이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기다렸고, 마차는 다시 움직였다. 한참을 기다리니 마차가 멈췄고, 테오가 와서 문을 열었다.

    “내리시죠.”

    카이가 마차에서 내리니 영지를 관리하던 영주 대리인이 다가와 가슴에 손을 얹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영주 대리인은 머리가 반쯤 벗겨진 노신사였다. 왕궁에서 파견한 영주 대리인도 이번에 돌아가야 했다.

    이혼하며 왕가의 자격을 상실한 카이가 왕국의 영주 대리인을 데리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고했네. 방으로 가고 싶군.”

    “모시겠습니다.”

    영주 대리인을 따라 걸음을 옮겨 방에 도착하니 테오가 벽난로에 장작을 넣어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테오가 1성 마법인 점화로 불을 붙여 장작에 불을 피우는 사이에 카이는 창가로 걸어가 밖을 바라보았다.

    유리로 된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고향의 풍경을 눈에 담던 카이는 창문을 열었다.

    “카이님.”

    카이는 테오가 걱정스레 말을 걸었음에도 손을 들어 그를 말리고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코로 파고드는 빵 냄새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왕궁에서 맛보았던 진미와 다르다. 비싼 버터를 쓰지 못해 고소함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고향으로 돌아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좋군.”

    그리운 냄새. 밑바닥에서 시작했던 카이는 시작점으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묘한 위안을 얻었다.

    왕궁의 모든 이들은 카이가 죽을 거라 여겼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엘디아 공주가 밝힌 그 비밀 덕분에 자존감은 떨어졌지만, 대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타올랐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되살아났다.

    그러나 왕궁에 있다가는 오히려 살아날 길이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이혼하고 왕궁을 떠났다.

    그렇게 돌아온 고향. 왕궁의 눈이 닿지 않는 이곳에서 살길을 찾을 생각이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각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