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성호는 멸망의 문으로 빨려 들어간 뒤 지옥으로 들어갔다.
지옥은 말 그대로 시뻘건 화염과 비명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마귀라고 불리는 놈들부터 마물이라고 불리는 괴물들까지 다양했다.
-철퍼덕…….
붉은 모래가 펼쳐진 광야 같은 곳에 성호가 떨어졌다.
팔과 다리는 완전히 부서져 버렸고 가슴은 뻥 뚫려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크르르르…….”
주변에서 마물들이 몰려들었다.
“인간이다.”
“아직 살아 있어.”
“맛있겠다.”
“피의 향기가 죽여주는군.”
마물들은 서로를 경계하면서 한 발 한 발 성호에게 다가갔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성호는 부러진 손발을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고통만 밀려올 뿐 꼼짝을 안 했다.
내공도, 마나도 모두 사라졌다.
점점 의식도 흐려져 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죽는 건가?’
-화아악!
갑자기 주변이 환하게 밝아 오면서 어떤 방 안에 성호가 앉아 있었다.
“어?”
부러졌던 손도, 다리도 정상이었고 가슴에 나 있던 구멍도 없었다.
“어서 오게.”
성호 앞에 인자하게 생긴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있었다.
성호는 그가 누군지 안다.
모든 신들의 아버지,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한 신이다.
“누구십니까?”
“이미 알지 않나?”
“왜 절 부르신 겁니까?”
“그것도 이미 알지 않나.”
“왜 저를 선택하신 겁니까?”
“왜 그럴 것 같나?”
“모르겠습니다.”
성호의 대답에 신이 환하게 웃었다.
“내가 자네를 선택한 이유는 영혼 때문이라네.”
“영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지. 누구는 잘살고 누구는 못살고, 누구는 손발 없이 태어나고 누구는 건강하게 태어나지. 크면서 누군가는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가지기도 하지.”
“왜 인간을 불평등하게 만드셨습니까?”
“그것도 영혼 때문이지. 병든 것과 가난한 게 저주 같은가?”
“아닌가요?”
“절대로 아니지.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밝은 쪽을 선택한 이들이 가장 빨리 영혼이 성장하지. 반대로 부자들은 그런 선택의 기로가 없기에 늦게 영혼이 성장하고. 성장이 늦어 깨닫지 못하면 개나 돼지로 다시 태어나야지.”
“그것과 절 선택한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자네는 가장 힘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어. 원래라면 가장 부유할 때 어머니를 잃고 모든 것을 빼앗긴 뒤에 12년간 정신병원에서 살다가 죽을 운명이었지. 그것도 악몽에 시달리다가 말이야.”
“…….”
“그런데 이상하게 네놈이 악몽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더군. 그래서 널 선택했다.”
“그럼 폴 막스는?”
“녀석은 너와 같은 상황이었는데 원망을 선택했지.”
“그럼 전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악마를 죽이고 신이 되어야지.”
“싫습니다.”
“껄껄껄……. 내 피조물들은 모두 신이 되기 위해 난리인데 너는 왜 싫으냐?”
“인간으로 남아 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럼 하지 마.”
“억지로 안 하십니까?”
“신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한단다. 그게 아니었으면 모두 로봇처럼 명령대로 착한 일만 하고 살게 하지, 안 그러냐?”
“그냥 놔두신다고요?”
“대신 인간은 선택의 대가를 받고 사니 무서운 것 아니겠냐?”
“너무 무책임하신 것 아닙니까?”
“아니지, 그 선택이 있기에 영혼이 성장하고 아름답게 변하는 것이란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껄껄껄……. 신이 되면 다 알게 될 텐데…….”
“신이 되기는 싫습니다.”
“인간은 언젠가 나의 자녀가 될 것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지. 가라, 가서 마왕이 되어버린 내 아들을 데려오렴.”
“알겠습니다.”
환상을 경험하고 나서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성호가 눈을 떴다.
-번쩍!
성호의 눈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지옥을 비추었다.
그 빛에 성호에게 다가가던 마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났다.
-우웅…….
성호의 손에 빛나는 검이 들려져 있었다.
이자그,
신을 죽이는 검으로 머맨들의 왕이 들고 다니던 단검이다.
그런 단검이 지금은 긴 장검으로 변해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보니 이자그라는 뜻은 신들의 말로 깨어난 신이 주는 선물이라는 뜻의 줄임말이다.
이자그가 움직이자 공간이 갈라지고 길이 열렸다.
그 공간 너머에 시커먼 마기로 뒤덮인 마왕이 보였다.
마왕은 주변에 모여든 여러 나라의 전함들을 파괴하는 걸 즐기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대한제국의 공중항모 귀선이 납작하게 눌릴 판이다.
-우웅……!
성호의 손에 든 검이 울면서 밝게 빛을 냈다.
“가자.”
성호가 공간의 틈을 열고 지구로 왔다.
마왕 루시퍼가 공중에서 찬란한 빛과 함께 나타난 성호를 바라보면서 인상을 구겼다.
“아직 살아 있었군.”
“누구 덕분에.”
“그 늙은 영감탱이를 만난 거냐?”
“그래, 널 데려오라고 해서 왔다.”
“그게 마음대로 될까?”
마왕이 먼저 움직였다.
산처럼 거대한 시커먼 기운이 성호에게 달려들었다.
성호의 검이 밝게 빛나며 공간을 갈랐다.
-콰아앙!
그 충돌로 인한 충격파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마왕과 성호가 계속해서 충돌하고 천지가 뒤흔들렸다.
주변에 모여 있던 대한제국의 함대와 미국의 함대, 여러 나라의 함대들이 그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급하게 후퇴했다.
“맙소사.”
“우리가 지금 뭘 보는 거지?”
파도가 수백 미터나 솟아오르고 하늘의 구름이 갈라졌다.
어떤 전함들도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귀선은 물론이고 어떤 것도 성호와 마왕이 싸우는 근처로 다가갈 수 없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지구 전체가 진동했다.
그 진동이 공기를 타고 종이 울리는 듯이 전 세계로 울려 퍼졌다.
-대에엥, 대에엥, 대에엥!
싸움이 길어질수록 지구에 퍼져 있던 시커먼 구름들이 걷히고 지옥의 문들이 닫혔다.
지옥에서 튀어나온 괴물들은 마기가 사라지자 힘을 잃고 쓰러졌다.
“와! 괴물들이 쓰러져 간다.”
“우리가 이겼다.”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쓰러져 죽어가는 가는 괴물들에게 돌을 던졌다.
괴물들은 안 그래도 이상한 노래 때문에 괴로워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져 있었는데 이제는 죽어가고 있었다.
전 세계의 모든 방송에서 수지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그 노래를 들은 마물들은 쓰러지다 못해 그대로 죽어 버렸다.
수지는 무려 6시간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목소리가 쉬어서 허스키하게 변했지만 그게 더 사람들의 영혼을 후벼 팠다.
[Tell your loved ones that you love them.]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하세요.)
[Your heart will not change even when the mountains and the moon disappear…….]
(산과 달이 사라져도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커, 컥……. 끅끅]
갑자기 목에 뭔가 걸렸는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뚝.
그때 갑자기 전 세계로 방송되던 화면이 꺼졌다.
방송이 끝난 줄도 모르고 수지는 계속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제 그만하셔도 됩니다.”
최태욱 실장이 수지를 말렸다.
“조, 조금만 더요.”
수지는 목이 많이 상했는지 갈라진 목소리였다.
“그만 하셔도 됩니다. 성호 님이 나타났습니다.”
“네?”
수지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어디에요?”
“태평양 한가운데입니다.”
“가요.”
“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요. 지금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지금은 못 갑니다.”
“왜요?”
“거기는 마왕과 성호 님이 싸우는 충격파 때문에 못 갑니다.”
-쿠우웅…….
그때 건물을 뒤흔드는 충격파가 전해졌다.
“이건?”
“성호 님께서 마왕과 싸울 때 나는 충격파입니다.”
“갑자기 왜?”
“아까도 났었는데 노래 부르시느라 집중해서 못 들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태평양이라면서요?”
“아마 이 충격파는 전 세계가 느낄 겁니다. 그 정도로 엄청난 전투라는 반증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가야 해요. 부탁해요.”
수지의 울 것 같은 눈을 보자 최태욱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곳에 가려면 특별한 걸 타고 가야 한다.
최태욱 실장은 미래 그룹의 중앙 연구실로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리……. 툭.
신호가 길게 울리다가 누군가 받는 소리가 났다.
[얼음 땡땡이 형님, 나 지금 바빠.]
강동민 실장은 지금 전 세계로 수출한 마나 무기들과 태평양에서 사용된 마나 무기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강동민, 부탁이 있다.”
[부탁이라니, 얼음 땡땡이 형님이 웬일이슈.]
“태평양 한가운데 갈 일이 있는데 타고 갈 게 필요하다.”
[거기 충격파가 심해서 어려울 텐데…….]
“너도 힘든가?”
[나야 방법이 있지. 대신 같이 갑시다.]
“같이?”
[내 예상이 맞는다면 우리 회장님아 보러 가는 거 아니요?]
“맞아.”
[크크크, 그럴 줄 알았지. 바로 준비하죠. 거기 어디요?]
“회장님 방.”
[오케이!]
오 분도 되지 않아서 텔레포트로 천마 자동차가 회장실 중앙에 나타났다.
-쿠웅…….
갑자기 나타난 자동차 때문에 건물 바닥이 주저앉을 뻔했다.
“강동민, 이거 그냥 천마 자동차잖아?”
“외형은 그렇지. 그런데 방어막만 내가 높여 놨어.”
“견딜 수 있겠어?”
“우리 회장님아가 8단계 임페리얼 실드라고 했는데 아무튼 엄청 단단한 방어막이라고 하더라고.”
“그래?”
최태욱 실장은 수지를 천마 자동차에 가장 먼저 태웠다.
“수동 모드.”
[관리자 모드에서 수동 모드로 변경했습니다.]
“꽉 잡아.”
“응?”
-콰자작!
천마 자동차는 미래 빌딩의 창문을 깨고 공중으로 튀어 나갔다.
정면에 화려한 서울이 그대로 펼쳐졌다.
“우와아아악!”
이들을 태운 천마 자동차는 수직으로 상승한 뒤에 그대로 태평양을 향해서 날아갔다.
-슈가가각…….
순식간에 한반도와 제주도를 지나 망망대해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조금 더 가자 시커먼 구름이 태풍과 같이 휘몰아치는 곳이 보였다.
-쿠궁!
그곳에서 간헐적으로 퍼져 나가는 충격파에 천마 자동차가 움찔했지만 그나마 잘 견디고 있었다.
-슈구구국…….
그때 천마 자동차의 옆으로 전투기들이 따라붙었다.
전투기의 옆에 태극기와 해동청 마크가 있는 것을 보니 해동청 전투기였다.
[여기는 대한제국의 해동청 전투기다. 당신들은 무단으로 연합군 작전지역으로 가고 있다. 소속과 사유를 말하지 않으면 격추하겠다.]
아마도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대한제국과 연합군이 이 근처에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할까요?”
최태욱이 수지에게 물었다.
“달려요.”
“네?”
“아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방어막을 가졌다면서요. 달려요.”
“카카카, 역시 우리 회장님의 연인이다.”
수지의 말에 강동민이 환하게 웃으며 천마자동차의 엑셀을 밟았다.
-슈가가각!
해동청 전투기들은 자신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돌진하는 천마 자동차를 어이없이 바라봤다.
“저걸 쏴, 말아?”
어차피 저대로 간다면 지금 신과 마왕의 전투에 휩쓸려 죽을 거다.
해동천 전투기들도 여기서 100여 킬로미터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다.
순식간에 수지가 탄 천마 비행 자동차는 이미 시커먼 구름이 휘몰아치는 태풍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해동청 전투기들은 그냥 기수를 돌렸다.
“그냥 가는데요.”
“다행이다.”
-쿠구구궁!
그때 엄청난 충격파가 천마 자동차를 때렸다.
“으악!”
“뭐라도 꽉 잡아!”
“맙소사!”
주변으로 반짝이는 방어막이 일어나면서 막았지만 그 충격 때문에 천마 자동차는 이리저리 흔들려야 했다.
추풍낙엽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던 천마 자동차는 끝내 바다로 처박혔다.
-풍덩!
천마 자동차는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가 위로 튀어 오르면서 곧이어 수면 위로 튕겨져 나왔다.
-쿠궁
또다시 충격파가 전해지고 천마 자동차 주변으로 반짝이는 방어막이 생겼다.
-화아악!
그때 갑자기 뭔가가 터져 나가면서 밝은 빛을 내뿜었다.
그 엄청난 빛에 수지와 같이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손으로 눈을 가렸다.
-쩌저정…….
뭔가 부서지는 소리에 눈을 뜨니 저 멀리서 거대한 뭔가가 부서지면서 가루로 변해서 흩어지고 있었다.
마왕 루시퍼였다.
끝내 성호가 루시퍼를 이긴 것이다.
“성호다!”
수지가 떨어지고 있는 작은 점을 가리켰다.
“봤습니다.”
성호로 생각되는 작은 점이 바다로 떨어지고 있다.
-부아아아앙!
천마 자동차가 바다를 위를 가르며 앞으로 빠르게 달려갔지만 이미 성호는 바다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풍덩
잠시 뒤에 수지와 일행이 도착했을 때 성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긴데……. 여기로 떨어졌는데.”
주변에 퍼져 있던 시커먼 구름들이 사라져 가면서 반짝이는 햇살이 뚫고 들어왔다.
푸른 바다가 반짝이고 있지만 성호는 보이지 않았다.
-딸각!
수지가 천마 자동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수지 님!”
최태욱 실장이 말리려 했지만 이미 바다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풍덩!
사실 최태욱 실장은 수영을 못한다. 그리고 그건 강동민도 마찬가지, 오직 수지만이 어렸을 때 바닷가 근처에서 산 증거를 보여 줬다.
바다로 뛰어든 수지의 눈에 알 수 없는 확신이었다.
그 알 수 없는 확신을 따라서 무작정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그때 수지의 손에 뭔가가 잡혔다.
힘없이 눈을 감고 있는 성호의 손이었다.
손을 당기니 힘없이 눈을 감고 있는 성호가 보였다.
수지가 성호의 입술에 산소를 불어 넣었다.
-부글, 부글…….
그리고 성호가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