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하긴 그렇군.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야. 이성호 회장.”
폴 막스가 활짝 웃으며 붉은 입술을 혀로 적시며 입맛을 다셨다.
“여기는 말이야, 미국에서 67회나 핵실험을 했지. 그래서 방사능 수치가 높아.”
“방사능으로 내가 가진 마나 에너지를 방해할 생각이라면 오산이야.”
“네놈이 방사능을 에너지로 빨아다 쓰는 건 나도 알지.”
“그럼?”
“강력한 핵실험 때문에 이곳에 차원의 균열이 생겼지. 난 그 차원의 좌표를 수정해서 지옥과 연결했어. 난 그것을 멸망의 문이라고 부르지.”
폴 막스는 모르지만 성호는 12년간 꿈을 통해서 멸망의 문을 이미 알고 있었다.
멸망의 문이 열리면 온 세상이 검게 물들고 시커먼 괴물들이 무수히 튀어나와 모든 사람들을 죽인다.
“그리고 나는 그 멸망의 문 너머의 지옥을 다스리는 마왕이지.”
“그래서?”
별로 놀라지 않는 성호의 표정에 폴 막스가 실망한 듯 양손을 들며 어깨를 으쓱했다.
“별로 놀라지 않는군.”
“난 이미 이런 걸 본 적이 있으니까.”
성호의 말에 폴 막스가 도리어 놀라는 눈치다.
“그래? 그럼 이 멸망의 문을 여는 마왕의 이름이 차이탄이라는 건 아나?”
“차이탄?”
12년간의 악몽 속에서도 나오지 않은 이름이다.
“이 세상에는 사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그리스 신화에서는 타이탄이라고 불리고 말이야. 그리고 그 엄청난 존재가 바로 나지.”
폴 막스가 양팔을 벌리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신의 존재가 이렇대 대단하니 놀라라, 감탄해라, 두려워해라 라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성호의 저 뻔뻔하고 태연한 표정을 보자 폴 막스가 도리어 당황해했다.
“큼큼, 놀라지도 않는군.”
“왜? 여기서 놀라야 하는 타이밍인가? 아이고, 놀라라.”
“…….”
성호의 행동에 폴 막스의 얼굴이 확하고 구겨졌다.
“빨리 네놈이 준비한 함정이 뭔지 꺼내 보지? 난 그게 더 궁금하니까 말이야.”
“후회하게 해주지.”
폴 막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버스럭!
우거진 풀숲을 해치고 나타난 존재들은 창백한 피부에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겉모습은 사람 같지만 죽음을 이기고 살아 있는 존재의 피를 마시며 살아가는 존재들!
성호는 포위하듯 나타난 존재들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인간이 아니군.”
“그렇지, 인간은 아니지.”
“지구의 존재도 아니군.”
“그렇지. 지구에 있는 존재도 아니지. 그러나 지구의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고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하지.”
딱 그냥 외모만 봐도 무슨 존재인지 알 것 같았다.
“뱀파이어?”
“정답!”
폴 막스가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소설에 있는 존재들이 나타나니 뭔가 신기하군.”
“크크크, 네놈은 잘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수많은 차원이 있고 그런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소설로 쓰이지, 뭐랄까? 그냥 텔레파시나 꿈의 한 장면 같은 거랄까?”
“그래? 그럼 우리의 이 상황도 다른 어떤 차원에서는 소설로 써지고 있겠군.”
“그런 셈이지.”
“저것들이 뱀파이어라면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들이 이 녀석들의 통제를 받겠군.”
“오! 바로 알아차리는군.”
“여기 있는 녀석들을 다 죽이면 미군들이 풀려나는 건가?”
“절대 아니지. 대장 녀석은 지금 오키나와에 있거든. 대한제국을 박살내기 위해서 미군들을 움직여야 해서 말이야.”
“그래, 거기 있단 말이지?”
성호가 그 말을 듣고 순간 눈을 반짝이며 빛냈지만 금방 그 표정을 감춰 버렸다.
“그래, 거기 있지. 네놈을 내가 붙잡고 있는 동안 대한제국은 멸망할 거다.”
“오호, 걱정이 되는데?”
성호의 저 여유로운 얼굴을 보면 절대로 걱정하는 것 같지는 않다.
“폴 막스, 그런데 이게 전부라면 실망인데?”
“그래? 그래서 하나 더 준비했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폴 막스의 뒤에서 시커먼 뭔가가 일어섰다.
20미터의 덩치, 얼굴의 한쪽은 해골로 이루어져 있고 반대쪽은 썩어가는 피부로 만들어진 존재였다.
죽음의 왕 워리놈이었다.
“살아 있었군.”
“덕분에.”
워리놈은 성호와의 전투 중 팔을 하나 잃었다.
문제는 팔과 함께 그가 가진 오러까지 잘려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몸에 있던 힘의 절반이 사라졌고 도망을 쳐야만 했다.
이후 회복하는 동안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끝내는 더 강해졌다.
멸망의 문에서 다크에너지를 다량으로 흡수했기 때문이다.
-콰자자작!
워리놈의 주변으로 유령처럼 망토가 펄럭였다.
확실히 전보다 더 거대해졌고 강해졌다.
-우우웅…….
그리고 양손에 들린 시커먼 검도 더 강력해 보였다.
“전보다 강해졌네?”
“오늘은 확실히 죽여주지. 죽음의 군대여 저놈을 죽여라!”
워리놈의 명령이 끝나자마자 주변의 바다가 출렁거렸다.
-달그락, 달그락!
시커먼 갑옷을 입은 죽음의 군대들이 바다에서 백사장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검은 말을 탄 다크 나이트들이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칼을 뽑아 들었다.
“많이도 모였군.”
죽음의 군대와 다크 나이트, 뱀파이어들이 사방을 포위했다.
“자, 이성호. 어때? 마음에 드나? 네놈이 이것들을 상대하는 동안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에 의해 대한제국은 멸망 할 거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성호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뭔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성호에게 있었다.
성호의 움직임에 주변에 있던 뱀파이어들이 전투를 위해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드러냈다.
죽음의 군대와 다크 나이트들도 방패와 검을 고쳐 잡고 성호에게 한 걸음씩 다가왔다.
“크르르르…….”
주변이 성호와 괴물들이 내뿜는 살기로 짓눌러졌다.
내뿜는 에너지가 점점 강해지자 놈들의 눈이 더욱 붉어지면서 엄청난 살기가 성호를 향해서 뿜어져 나왔다.
-웅웅…….
성호의 주변으로 빛으로 이루어진 검이 하나둘 공중에 떠올라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심검(心劍)!
강력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검으로 검술 최고의 경지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라 여덟 개나 되었다.
-휙휙휙휙!
성호를 중심으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회전했는데 회전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둥근 막이 만들어졌다.
그 심상치 않은 기세에 죽음의 군대와 뱀파이어들이 긴장하며 성호 주변을 포위했다.
성호를 빼고 작은 섬이 온통 시커멓게 물들었다.
“크와아앙……!”
가장 먼저 뱀파이어가 오른쪽을 돌면서 성호에게 빠르게 달려들었다.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놈들의 속도는 인간이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놈들의 기다란 손톱에는 독이 발라져 있어 할퀴는 순간 몸에 마비가 온다.
그때 마비된 숙주의 피를 뱀파이어는 빨아 먹는다.
-콰자작!
고속으로 회전하던 심검이 달려들던 뱀파이어를 따라가며 움직였다.
그리고 달려들던 뱀파이어는 피를 튀기며 그대로 갈려 나갔다.
뱀파이어들이 달려들자 사방에서 죽음의 군대들도 달려들었다.
“오호!”
폴 막스가 피가 튀기는 장면을 보고 흥분해서 감탄사를 내뿜었다.
“죽여라! 좋아! 한꺼번에 달려들어!”
폴 막스가 흥분하면서 내지른 명령에 뱀파이어들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우웅…….
-콰자작!
여덟 개의 심검이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뱀파이어들과 죽음의 군대를 공격했다.
괴물들은 심검의 예기를 막지 못하고 모두 잘려 나갔다.
그럼에도 죽음의 군대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라 두려움이 없기에 마구 달려들었고 뱀파이어들은 급속도로 회복하는 신체를 믿고 달려들었다.
뱀파이어는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정도로 죽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처음으로 심검이 막혔다.
“어쭈?”
성호가 심검을 막은 다크 나이트를 바라봤다.
비록 심검을 한 번 막았지만 다크나이트가 받은 대가는 처절했다.
검과 갑옷이 부서지고 땅에 처박혀서 찌그러져 있었다.
[죽여라.]
[마왕님의 명령이다.]
[인간을 죽이고 멸망의 문을 열어라.]
죽음의 군대들 머릿속에는 광기에 사로잡힌 멜로디가 계속 퍼져 나갔다.
-콰자자작…….
성호의 주변으로 죽음의 군대들이 죽으면서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작은 언덕같이 변한 곳에는 시커먼 갑옷과 검, 창으로 이루어진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이러다가는 끝이 없겠군.”
그러나 사방에서 날아드는 뱀파이어의 공격에서도, 끝도 없이 달려드는 죽음의 군대 안에서도 성호는 여유로웠다.
한걸음, 한걸음 계속해서 폴 막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 앞길을 수많은 죽음의 군대와 뱀파이어들이 막아섰다.
[천마신검 천마멸악(天魔滅惡)!]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성호 앞을 막던 녀석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갔다.
“폴 막스! 거기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어. 아주 박살을 내주지.”
폴 막스가 도리어 성호가 내뿜는 기세에 흥분해서 고함을 쳤다.
“저놈을 죽여 버리라고! 찔러! 찌르라고!”
폴 막스의 미친 듯한 발악에 모든 뱀파이어의 몸이 붉게 변하면서 순발력과 파워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까가각…….
처음으로 성호의 주변에서 불꽃이 튀기며 뱀파이어의 손톱이 긁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건 그냥 보호막을 두들길 뿐 성호의 옷자락조차 닿지 못했다.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여, 다 죽어라!”
성호의 손이 움직이면서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빛이 둥글게 모이면서 오망성 마법진이 입체적으로 떠올랐다.
“디바인 라이트!”
성호를 중심으로 밝은 섬광이 주변을 휩쓸었다.
-번쩍!
그 빛에 쏘인 뱀파이어들이 재가 되어 부서져 나갔다.
“끄아아아아!”
온몸에 불이 붙어 타들어 가는 뱀파이어의 비명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그 범위가 넓지 않아 고작 주변 십여 미터에 모여 있던 뱀파이어들만 재로 변해 흩어졌다.
그리고 죽음의 군대는 성호가 만들어난 빛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처음으로 성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확실히 마법의 위력이 줄어들었다.’
방사능의 영향도 있지만 사방에 퍼진 진득한 다크 에너지의 영향이 더 컸다.
“낄낄낄, 네놈이 사용하는 마나 에너지는 여기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지.”
사방에서는 아직도 무수히 많은 죽음의 군대와 뱀파이어들, 다크 나이트들이 성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녀석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는 광역 마법뿐이다.
그러나 광역 마법은 마나의 소모가 매우 큰 편이다.
“썬더스톰!”
-콰르릉!
성호의 팔을 중심으로 마법진이 회전하듯 만들어지면서 사방으로 번개를 발사했다.
그러나 평상시와는 다르게 마법의 위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성호는 자신의 심장에서 점점 줄어들어 가는 마나를 알고 있음에도 사방에 마법을 난사했다.
“화이어 볼!”
“썬더 볼트!”
“화이어 필드!”
성호의 주변으로 마법에 의한 폭발이 휘몰아치면서 죽음의 군대들이 몰살을 당했다.
그렇게도 악착스럽게 달려들던 뱀파이어들과 다크 나이트들도 주춤하면서 한발 물러섰다.
“윈드 블레이드!”
성호의 외침에 주변으로 칼날 같은 바람이 일며 주변을 초토화했다.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들이 소모되었다.
-치이이이익……!
성호의 등 뒤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올라왔다.
등에 달린 워프게이트 마나 차지 시스템이 타들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성호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얼마 버티질 못하겠군.”
지구에는 마나가 없다.
그러나 성호는 전기를 마나로 바꿔서 사용하고 있고 지금은 핵융합 발전기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바로 마나로 변화 시켜 사용 중이다.
그리고 전 세계에 미래 그룹이 건설한 50여 개의 핵융합 발전소에서 워프게이트 마나 차지 시스템을 통해 성호에게 전송되어 온다.
지구에는 마나 에너지가 없는데도 마나를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문제는 그 엄청난 에너지를 장치가 감당하지 못하고 금방 과열된다는 것이다.
“이성호 회장, 뭔가 문제가 생겼나 봐? 낄낄낄…….”
폴 막스의 말에 성호의 인상이 구겨졌다.
“알고 있었나?”
“그럼, 네놈의 약점을 항상 연구했으니 알고 있었지.”
폴 막스는 과거 성호와의 전투를 통해서 워프게이트 마나 차지 시스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워리놈과 성호와의 전투를 보고 약점을 파악했는데 지금 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장비에 무슨 결함이 있는지 장시간 사용하면 버티지 못하고 타버리는 것이다.
“놈은 이제 얼마 버티지 못한다. 몰아쳐라!”
폴 막스가 흥분하면서 외쳤다.
성호에게 달려드는 죽음의 군대들이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간간이 다크 나이트들의 공격과 뱀파이어의 공격이 성호의 보호막을 두들겼다.
-콰짜자작!
성호의 등 뒤에 달린 마나 차지 시스템이 붉게 달아 오르면서 그것을 냉각하기 위해 더욱 많은 수증기가 뿜어져 올라왔다.
-퍼어엉!
그러다 끝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