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 회장님-211화 (211/225)

《211화》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낡은 아파트가 하나 있었다.

삼청 아파트!

무려 22년이나 된 아파트로 이제 아무리 수리를 해도 벽에 금 간 것을 어떻게 못 하는 낡은 아파트였다.

-우웅…….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 한가운데서 밝은 빛과 함께 한 인물이 나타났다.

붉은 머리카락에 검은 양복을 말끔하게 입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그를 이제 막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려던 아주머니가 발견하고 놀라서 입을 한자만큼 벌리고 뻐끔거렸다.

요즘 공간이동으로 택배가 배달되는 세상이다.

텔레포트로 사람이 순간 이동된 것보다 나타난 사람의 정체 때문에 아주머니는 더 놀랐다.

“설마?”

눈을 아무리 비벼도 자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았다.

국민들의 영웅으로 TV에서 자주 얼굴이 나왔기에 한 번에 알아봤다.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다는 그가 왜 이 낡은 아파트에 와 있는 걸까?

“이…… 이성호 회장이닷!”

성호는 천천히 걸어서 지하 주차장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다다다닥!

이제 막 주차를 한 그 아주머니가 뛰어왔다.

-띵동!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는데 성호와 아주머니가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성호 회장님이시죠? 아이고, 반가워요. 실제로 보니 진짜 남자답게 생겼네.”

“아, 네.”

“그런데 세계 최고의 부자께서 갑자기 이 낡은 아파트에……?”

“아시는 분이 여기 사셔서요.”

“네에?”

“그럼 이만.”

성호가 10층에서 내리자 아주머니가 아쉬운 듯 망설이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그냥 위로 올라갔다.

“여긴가?”

문 앞에는 고지서와 신문이 수북하게 싸여 있었다.

성호는 호주머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낸 뒤에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초인종을 눌렀지만 안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띵동!

성호는 한 번 더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요?”

갈라진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휠체어를 탄 한 사내가 보였다.

머리카락은 언제 잘랐는지 길게 자라 있었고 수염도 마찬가지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중년인은 오른쪽 뺨에 큰 상처가 나 있었는데 말할 때마다 꿈틀거렸다.

“이회 사령관님, 접니다.”

“아니, 이성회 회장 아닌가?”

그렇다.

그가 바로 과거 제1 항모전대 사령관이었던 이회 사령관이다.

“어서 들어와. 진짜 반갑네.”

안으로 들어가자 휑한 거실이 보였다.

한쪽에는 가족사진과 함께 향이 피워져 있었고 오랜 기간 청소를 안 했는지 퀴퀴한 냄새가 났다.

“용무가 바쁘신 우리 미래 그룹 회장님께서 무슨 일이신가?”

“이제 이걸 돌려 드려야 할 것 같아 왔습니다.”

성호는 이회 앞에 네모난 상자를 놓고 천천히 열었다.

안에는 새하얀 제복과 모자가 들어가 있었다.

가슴에는 금으로 만든 돛대가 달려 있고 모서리에 작은 글씨로 뭔가가 쓰여 있다.

[제1 항모전대 사령관]

“이건.”

“제가 어제부로 제대입니다.”

이회가 멍하니 성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동안 부족한 제가 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이회 사령관님이 직접 하셨으면 합니다.”

“이성호 회장, 내 다리 안 보이나? 이 몸으로 어떻게 사령관직을 한단 말인가?”

“언제나 이회 사령관님이 말씀하셨죠?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회 사령관님, 지금 오키나와까지 미군이 와 있고 이미 교전이 벌어진 상황입니다. 전 이미 제대한 몸이라 공중항모 사령관은 지금 공석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이회는 자신이 없는지 고개가 숙여 졌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폭발 사고로 잘려져 나간 다리가 보였다.

지금도 다리가 있는 듯 고통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자신을 바라보는 성호의 눈에는 신뢰가 한 가득이었다.

“제가 이미 대통령님, 김동선 국방 장관께 말씀을 드려놨습니다.”

“뭐라시던가?”

“이회 사령관님보다 더 적격인 사람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회 사령관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가 굳게 변했다.

“이 다리병신이 필요하단 말이지?”

“꼭 필요합니다.”

“좋아! 하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할 거니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지금?”

“지금 전쟁 중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잠시만, 나 좀 씻고 옷도 좀 입고…….”

당황해하는 이회 사령관의 얼굴을 보며 성호가 웃었다.

“수염도 자르는 게 좋겠습니다.”

“왜?”

“산적 같습니다.”

“그런가?”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말끔해진 이회 사령관이 나타났다.

수염도 말끔하게 잘라서 남자답게 생긴 얼굴이 드러났다.

흰색의 제복을 입은 이회 사령관은 벌써부터 사령관으로서의 포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록 두 다리는 잃었지만 사자는 사자다.

그리고 이회 사령관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났다.

잘려진 다리에는 골렘 기술이 접목된 의족이 끼워져 있었는데 그냥 봐서는 사람 다리와 거의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게 만들어져 있다.

-탁탁!

이회 사령관이 의족을 손으로 두들겨 봤다.

“오랜만에 장착해 보는군.”

“불편하지는 않으십니까?”

“전혀, 이걸로 처음에는 아침마다 조깅을 하곤 했지. 나중에는 안 했지만…….”

“그 정도입니까?”

“뭘 그리 놀래? 자네 회사 제품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 하하하.”

멋쩍은지 성호가 뒤통수를 긁으며 웃었다.

“자네가 구상한 그 작전, 통할까?”

“제 예상이 맞는다면 꼭 통할 겁니다.”

“자네 작전을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믿어주지도 않지만 미친놈 소리를 들었겠어.”

“그래서 이회 사령관님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렇지. 나 정도 되니까 자네를 믿어주는 거지. 영광인 줄 알아.”

“감사합니다.”

“시간 없다며, 빨리 가지?”

“알겠습니다.”

성호의 손에서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거실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텔레포트!”

-번쩍!

빛과 함께 주변이 확하고 변하더니 울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다 왔습니다.”

“벌써?”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호를 따라서 복도를 나오자 제복을 입은 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복도를 따라갈 때마다 양옆의 군인들이 절도 있게 경례를 올렸다.

중앙 엘리베이터를 타고 커다란 문 앞에 섰다.

[제1 통제 센터]

공중항모 귀선의 조종실이다.

무기 통제와 작전, 항해가 이 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이회는 공중항모 귀선의 통제 센터 입구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자 안에 있던 작전 통제관과 항해사, 무기 관제사, 레이더 관제병 등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짝짝짝짝!

이회 사령관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모두 진심 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온 박수다.

이회 사령관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뭔가가 눈물샘을 자극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어서 함장 자리에 앉으셔야죠.”

성호의 말에 이회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인 뒤에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회 사령관이 함장 자리로 갈 때까지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함장 자리 앞에서 멈춘 이회 사령관이 주변을 돌아보며 박수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고맙다.”

그 한마디가 이회사령관의 마음 전부였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지금은 전시 중이다. 정신 차리고 각자 위치로!”

“넵!”

공중항모 귀선의 통제실이 또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작전 통제관, 레이더병, 무기 통제사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들의 일사불란한 모습에 이회가 만족한 듯 웃었다.

“역시 자네가 그동안 잘 훈련시켜 놓았군. 응?”

그런데 정작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이성호 회장이 갑자기 안 보였다.

이회 사령관이 성호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지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참 신출귀몰한 인물이야.”

이회 사령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호는 공간이동으로 귀선 밖으로 나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구름을 뚫고 위로 올라왔는데 동쪽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만 남았군.”

성호가 김장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성호, 아침 일찍 웬일이야?]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 수지가 전화를 받았다.

“저기 말이야…….”

[너 항상 어려운 부탁할 때마다 그러더라, 뭔데?]

“오늘 아침 폴 막스, 그 녀석과 싸우러 가.”

[잘 다녀와.]

“…….”

울거나 화를 내거나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쉽게 말해서 뭔가 허전하기까지 했다.

[왜? 내가 너무 쉽게 말해서 그래?]

“좀, 그렇기는 하네.”

[내가 울고 짜서 뭐 하겠어. 내가 말려도 갈 거잖아.]

“그건 그렇지.”

[그리고 난 이제 널 믿어.]

수지의 그 한마디에는 어떤 힘이 있었다.

성호의 텅 빈 한 곳을 꽉 채워 주는 듯했다.

[그리고 난 이제 널 사랑하는 거, 피하지 않을 거야.]

“응?”

성호가 놀라워하면서 물었다.

“뭐라고?”

[바보야, 널 사랑한다고.]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해서 귓속으로 심장의 두근거림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니까 다치지 말고, 이겨서 꼭 다시 돌아와, 알아들었지?]

수지의 말에 성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알았어.”

성호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나도 널 사랑해.”

[알아.]

통화가 끝났는데도 심장이 계속 두근거렸다.

12년간의 악몽과 정신병원에서의 삶, 살해당한 아버지와 미래그룹을 지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던 모든 것이 어렵고 지옥같이 자신을 압박했다.

그런 자신의 삶이 아름답게 빛이 나는 듯했다.

“이제 가볼까?”

-차자자작!

성호의 옷 위로 시커먼 특수복이 자동으로 입혀졌다.

그리고 얼굴에 흰색의 도깨비 가면이 씌워졌다.

과거 배달국(倍達國)의 제14대 천왕인 치우천왕의 얼굴을 상징하는 도깨비 가면이었다.

-우웅…….

그리고 특수복의 여기저기에서 푸른 빛줄기의 마법진이 밝게 빛났다.

두 주먹을 있는 힘껏 움켜쥐어 봤다.

-꾸욱…….

“이제 끝내자, 폴 막스. 워프 게이트.”

성호 앞에 둥근 마법진이 만들어지고 대기가 출렁거리며 워프게이트가 만들어졌다.

워프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의 사물이 변하면서 파도 소리가 들려 왔다.

-쏴아아, 쏴아아!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검은 모래가 펼쳐진 백사장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바다도 검은색이다.

산호초 때문에 신비한 푸른빛을 내뿜던 바다여야 하는데 시커멓게 물들어 있다.

백사장 옆에는 화려한 요트 하나가 정박해 있고 시커먼 바다는 을씨년스러웠다.

“온통 검은색이군.”

하늘을 올려다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시커먼 하늘이 보였다.

시커먼 구름에 햇빛이 가려져 온 사방이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사방이 온통 다크 에너지로 가득하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주변에 다크 에너지가 가득했다.

-타다닥!

성호의 주변으로 불꽃이 튀기며 뭔가가 타들어 갔다.

“방사능?”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미국은 핵실험을 67회나 했다.

수소 폭탄 실험도 많이 했는데 그때 이 근처의 섬 두 개가 사라졌다.

“저기 있군.”

그냥 나 여기 있소 하며 살을 파고드는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작은 나무 사이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니 무너져 버린 집과 흰색으로 지어진 창고가 보였고 그 너머에는 커다란 활주로가 보였다.

잡초가 여기저기 자란 낡은 비행장이었다.

-휘이이이…….

비행장이건만 비행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성호는 아무 말 없이 앞으로 천천히 걸었다.

“왔군.”

활주로 반대편에 있는 낡은 격납고 건물에서 노란곱슬머리를 한 폴 막스가 걸어 나왔다.

“폴 막스, 네가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있었군.”

“난 그런 하수는 사용하지 않아. 날 뭐로 보고.”

“이제 꺼내놔 봐. 무슨 함정을 파 놓은 거지?”

“함정인 줄 뻔히 알고 오다니 담이 크군.”

“무슨 함정이든 박살을 내버리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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