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청와대 지하의 상황실 중앙에는 거대한 지도가 펼쳐졌다.
인공위성을 통한 마나 탐지한 자료들이 지도에 빼곡하게 표시가 되어 있었다.
“제가 이번에 구상한 작전은 포위섬멸전입니다.”
이번 작전을 짠 제1 제국군 사령관 김필중이 말했다.
“먼저 삼면을 이렇게 포위하기 위해 제1함대, 2함대, 3함대가 출발했습니다.”
대한제국의 제2 함대는 오키나와에서 북쪽으로 4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기했다.
그리고 제1 함대는 일본 규슈 지방의 남쪽 끝에 있는 야쿠시마섬과 니시노 오모테시섬 사이를 지나 필리핀해를 거쳐 빙글 돌아 오키나와섬의 남쪽으로 향했다.
제3 함대는 오키나와에서 동쪽으로 4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일본의 구치노시마섬과 도시마무라섬 중간에서 대기했다.
그가 세운 작전은 말 그대로 포위 섬멸전이었다.
비록 숫자와 화력은 미군이 강하지만 대한제국은 스텔스 기능과 항공권의 우세를 앞세워 공격하겠다는 작전이었다.
“세 방향에서 공격하는 동안 미군들은 우왕좌왕하다가 전멸할 겁니다.”
제1 제국군의 사령관으로 김필중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자랑하듯 말했다.
그의 말에 성호가 한숨을 쉬었다.
“만약 미군이 대한제국의 이동 경로를 뻔히 알고 있다면요?”
“우리 대한제국의 전함들은 스텔스 기능이 뛰어나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네.”
성호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면서 말했다.
“이미 전남함이 공격당한 거 보셨죠?”
“그거야 그 이상한 안개에 들어간 뒤에 미군들이 전남함을 찾을 수 있던 거라고 생각하네.”
“그런데 뭔가 앞뒤가 안 맞지 않나요?”
“뭐가?”
“전남함이 거기 있는 줄 어떻게 알고 그쪽으로 안개를 이동시켰을까요?”
“그건…….”
생각해 보니 이상하기는 했다.
“이미 전남함의 행적이 적들에게 노출되어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놈들은 지금 대한제국의 이동 경로를 환히 알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의 경로를 알고 있다고 해도 놈들은 어쩔 수 없을 거네.”
“포위 섬멸하려던 게 걸리면 각개 격파당하는 건 아시죠?”
성호의 말에 김필중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이미 작전이 시작되었는데 어떻게 하지?”
이번 작전을 생각해낸 김필중 사령관이 난처해했다.
이동 경로가 뻔히 보이는데 숫자를 나눠서 포위 작전을 하다가는 각개 격파당하기 딱 좋았다.
성호가 당황해하는 김필승 사령관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리고 이번 작전에 가장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무슨 문제점?”
성호의 말에 김필중 사령관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지금 오키나와에 모여 있는 미군들의 움직임은 자연스럽지 않고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슨?”
“예를 들어 밤에만 움직인다던가. 통신이 안 된다든가 하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요즘 미국 본토의 통제도 따르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러네.”
성호의 말을 들어 보니 그런 것 같기는 했다.
그전까지는 무전기도 일부러 끄고 전략상 밤에만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라 꼭 밤에만 움직여야 하는 이유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오키나와에 있는 미 해군은 미국의 통제를 벗어났습니다.”
“응? 뭔 소리야 그게?”
“말 그대로입니다. 지금 오키나와에 있는 전함들은 미국이 아닌 다른 세력에게 통제되고 있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지?”
“방금 전 인터넷 기사로 미국의 티모시 대통령이 기자 회견을 열어 대한제국과의 전쟁을 반대하며 오키나와에 있는 군대가 미국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럴 리가?”
“직접 방송을 보시죠.”
성호가 방송 화면을 공중에 띄웠다.
미국의 CNM, FOX 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나라 언론들이 티모시 대통령의 말을 전하느라 분주했다.
-티모시 대통령은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한다는 발표를 한 가운데…….
-태평양에서 돌아오는 미군들과의 통신 두절되어…….
-대통령의 통제를 벗어난 미군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
기사 내용들을 바라보는 청와대 내부의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쨌든 미국 대통령은 전쟁을 반대한다는 거잖아.”
“저 정도면 잘하면 미국과 전면전으로 가지 않겠어.”
“서로 간만 보다 전쟁이 끝나겠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이 안 일어나겠다는 해석을 했지만 미 백악관에서 죽을 뻔한 경험이 있던 박성규 대통령은 달랐다.
“다들 잘못 생각하고 있군.”
박성규 대통령의 말에 모두들 의아해하면서 바라봤다.
“대통령 각하, 무슨 말씀이신지 미국이 우리와의 전쟁을 반대한 다잖습니까?”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들은 미국의 대통령이 반대해도 대한제국을 공격할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들은 이제 미국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통제를 따르지 않으니 우리가 싸워서 박살을 내도 미국이 별말이 없겠군요.”
“그게 아니죠. 오키나와에서 미군들이 한 명이라도 우리 손에 죽는 순간 평화 협정이고 뭐고 미국 본토와 전면전이 발생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최대한 미군들이 죽지 않기를 바라야죠. 아직 대한제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미국의 상대는 아닙니다.”
여기 모여 있던 모든 군 장성들이 난감해했다.
“이성호 회장님께서는 좋은 생각 없으십니까?”
박성규 대통령이 성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대책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방어 위주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방어만?”
“그렇습니다. 비록 전함과 전투기의 수가 많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결코 보급 없이 싸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군. 저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것도 문제고 포탄을 무한정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니니 말일세.”
“반면 대한 제국은 핵융합 에너지를 기반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으며 방어를 위한 미사일 생산력도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성호의 말에 김필중이 노발대발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오키나와의 미군들이 공격할 때 방어만 하자는 거요?”
“그렇습니다.”
“그냥 계속 두들겨 맞기만 하자고?”
“잘못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뭔 소리요?”
“우리는 아웃복서와 같은 자세로 싸워야 합니다. 상대방이 지칠 때까지 요리조리 피하는 것은 하나의 전략, 전술일 뿐입니다.”
박성규 대통령이 나서서 성호를 지지했다.
“전, 이성호 회장의 말에 공감합니다.”
김동선 국방장관도 고개를 끄덕이며 성호의 편을 들어줬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 방법뿐이로군.”
이 둘이 성호의 편을 들자 다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났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죄송합니다. 제 전화입니다.”
“에이, 예의가 없어, 예의가.”
김필중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네?”
“나 혼잣말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전화나 받아.”
성호는 그를 한번 노려본 뒤에 전화기를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누구지? 이 중요한 순간에 전화를…….’
모르는 전화번호다.
[상대방이 화상 통화를 걸었습니다. 통화하시겠습니까?]
“화상 통화?”
그때 공중에 전화를 건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노란 곱슬머리에 창백한 얼굴, 잔인해 보이는 새파란 눈을 가진 사내가 하얀 비치 의자에 앉아 있었다.
“폴 막스!”
성호가 고함치듯 소리치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박성규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군 장성들이 의아해하면서 쳐다봤다.
“폴 막스인가?”
박성규 대통령이 짐짓 놀라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호와 박성규 대통령과의 대화를 들으며 무슨 내용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다들 폴 막스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이군. 이성호 회장이 설명을 해주겠나?”
박성규 대통령의 말에 성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녀석의 이름은 로스차일드 폴 막스로서 미국 맨츄스 그룹의 회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호가 분노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지금 오키나와에 미군을 집결시킨 것도 놈의 소행입니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그리고 저놈이 중동과 아시아에 전쟁을 일으켰고 괴물들을 만들어 제주도를 공격했습니다.”
“그 모든 일이 저놈 짓이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김필중이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믿지 않으셔도 할 수 없지만 일단 저와 놈이 서로 통화하는 내용을 보면 알게 될 겁니다.”
성호가 손짓하자 공중에 펼쳐져 있던 작전 지도와 마나 레이더 화면이 꺼졌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쉿.
성호가 화상 통화 카메라 방향을 자신으로 하고 버튼을 눌렀다.
“나다.”
통화가 되자 폴 막스가 활짝 웃었다.
그 웃음 뒤에 보인 광폭함과 잔인성 때문에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섬뜩해했다.
[드디어 통화가 되었군, 이성호 회장, 오랜만이야?]
“안 죽고 잘 살아 있었군.”
[물론 그 정도의 별똥별 장난에 내가 죽을 놈은 아니지. 그때 받은 답례로 오늘 오키나와에서 미사일들을 발사했는데 마음에는 들어?]
“많이 심심했나 보군, 쓰잘데기 없는 짓이나 하고. 오키나와에 모여 있는 미국 전함들을 가지고 날 협박할 생각이면 오산이야.”
[물론, 그걸로 되겠어? 앞으로 더 강력한 걸 날려 줄 생각이다.]
“핵탄도 미사일이라 쏠 생각인가? 그런 건 이제 소용없어.”
[그건 이미 써먹어서 식상하지. 우리 얼굴이나 한번 보지.]
폴 막스의 갑작스러운 제의에 성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갑자기 왜?”
[안 만나도 상관은 없지만 전쟁 전에 날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나는데 아주 좋은 기회 아냐?]
“그건 그렇군. 장소랑 시간이나 말해 아주 박살을 내주지.”
[날 믿는 건가? 내가 속이거나 함정이면 어떻게 하려고?]
“뭐가 되었든 내가 다 박살 내면 그만이니까. 장소와 시간이나 말해”
[오늘 아침 8시, 태평양 마셜제도에 있는 비키니 산호초에 버려진 비행장에서 기다리지. 괌에 있는 관광용 비키니섬과 헷갈리지 말라고.]
“너나 어디 가지 마, 나야 알아서 잘 찾아갈 테니까 관 짜 놓고 기다리고 있어.”
[어디 안 가니까 안심하라고 올 때 네놈 관이나 만들어 와.]
누가 들으면 친한 친구의 대화 같지만 성호의 눈에서 뿜어지는 분노와 살기를 보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뚜뚜뚜뚜…….
통화가 끝나자 청와대 지하에 모여 있던 모든 참모진들의 표정이 굳었다.
성호와의 통화를 통해서 저 노란 곱슬머리 녀석이 모든 일의 원흉임이 밝혀졌다.
“저런 미친놈이 있다니.”
“세상에, 저놈이 지금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들을 통제하는 거야?”
“맙소사!”
청와대 지하에 모여 있던 군 관계자들 모두가 분개했다.
그때 성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놈을 만나기 전에 할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이성호 회장 가지 말게. 뻔한 함정이야.”
박성규 대통령이 성호가 걱정되어 말했다.
“아닙니다. 가야 합니다. 제가 놈을 처리하면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들의 위협도 끝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성호가 박성규 대통령과 김동선 대장에게 인사라고 밖으로 나갔다.
“자네가 가면 공중항모 귀선의 통제는 누가 하나?”
김동선 국방 장관이 나가려는 성호를 잡았다.
“귀선은 적당한 분에게 부탁드릴 겁니다.”
“마나 에너지에 대해서 자네보다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전 이미 제대한 몸입니다. 저보다 더 잘하실 분이 한 분 있습니다.”
“설마?”
“생각하시는 그분이 맞습니다.”
“그분보다 더 공중항모 사령관에 어울리는 분이 없지.”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김동선 국방 장관과 남종태 합참의장이 한 번 더 성호를 잡았지만 성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청와대 밖으로 나온 성호는 푸른 지붕의 기와에 걸린 커다란 달을 바라봤다.
“나와라.”
성호의 그 한마디에 주변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모여들었다.
-사사삭!
붉은 도깨비 가면을 쓴 자들이 성호의 등 뒤로 시립하여 무릎을 꿇었다.
성호가 노예 마법으로 만든 백광현과 그의 부하들이다.
과거에는 망치파라고 불리는 강남의 깡패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이들을 대한제국 최고의 특수부대 도깨비라고 부른다.
비록 과거에는 깡패였지만 주인 잘 만나 영웅 대접을 받는 존재들이 되었다.
“가자.”
성호의 발아래에 오망성의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확하고 퍼져 나갔다.
“넵!”
빛과 함께 성호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