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그 시간 성호는 수지와 함께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를 찾았다.
수종사는 조전시대에 지어진 절로 자연경관이 너무 빼어난 곳으로 세조가 건립한 팔각오층석탑이 대한민국 보물 제1808호로 정해져 있다.
수종사의 산자락 아래에 작은 무덤 두 개가 놓여 있고 그곳에 성호와 수지가 섰다.
그리고 그 뒤로 미래 그룹의 임원들이 나열해 섰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성호는 2년 전, 아버지를 이곳에 이장시키고 나서 처음 왔다.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원한을 풀고 나서 돌아오고 싶었다.
성호가 양손을 모으고 절을 올렸다.
수지가 그 옆에서 성호를 따라 절을 올렸다.
향을 피우고 소주를 한잔 올려 무덤 주변에 뿌린 뒤에 성호가 공손하게 그 앞에 앉았다.
“아버지, 자주 못 와서 죄송합니다.”
성호가 어머니 무덤에도 절을 올리자 수지가 따라서 같이 절을 올렸다.
“어머니, 제 여자 친구입니다. 어떠십니까?”
“김수지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뒤로 성호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마나 에너지를 이용해 제품을 개발하고 전 세계의 에너지 시장을 장악한 이야기부터 폴 막스와 싸우던 이야기까지 그냥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그것을 듣고 있던 수지는 어떨 때는 놀라고 어떤 때는 걱정스레 성호를 바라보았다.
성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지도 뒤따라 일어섰다.
“아버지, 어머니 조금 있으면 저와 이 나라, 그리고 지구의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걸고 전쟁을 해야 합니다. 하늘에서 응원 부탁드립니다.”
[난 괜찮으니 너무 무리하지 말고.]
자상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것 같았다.
성호와 수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미래 그룹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임원들이 앞으로 나와 절을 올렸다.
해가 뉘엿뉘엿해졌을 때 성호와 수지, 미래그룹의 임원들이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잠드신 산을 내려가는 성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태평양에 있는 미 함대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밤에만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저렇게 똘똘 뭉쳐 있는 대형도 이상했다.
현대전에서 전쟁 때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려 주어야 공격을 집중을 할 수 있고 적의 화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
그리고 괌에서 약탈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보급활동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놈들은 폴 막스의 편이다.’
폴 막스의 말을 듣는 놈들인데 항공모함 7대가 모여 있고 미해군 제3함대, 7함대가 모여 있다. 그리고 중동에 있던 미 육군이 포함되어 있다.
그 정도 전력이면 전 세계와 자웅을 겨룰 만했다.
성호 옆으로 최태욱 실장이 다가왔다.
“회장님, 방금 박성규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으로 갔다는 연락입니다.”
“뭐?”
“아마도 평화협정을 진행하고 태평양에 있는 미군들을 회군 시켜 달라고 간 것 같습니다.”
그의 추진력이나 인덕을 보면 당연한 조치다.
전쟁을 일어나기 전에 막는 것이 좋았고 마틴 대통령이 체포된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였다.
성호가 잠시 생각을 한 뒤에 말했다.
“태평양에 있는 미 함대에서 대한제국을 곧 공격할 거다.”
미국의 여론과 정치가들이 어떻게 하든 미국의 군대가 대한제국을 공격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박성규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에 있는 것은 뭔가 불안했다.
“전쟁이 벌어지면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미국에 있는 박성규 대통령에게 백광현과 도깨비들을 붙인다.”
“알겠습니다.”
***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는 인구 70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다.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조지 워싱턴과 미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이름을 합한 이름이 바로 워싱턴DC(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이다.
워싱턴의 상공의 아주 높은 곳이 번쩍이더니 검은색 비행자동차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앞부분에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펄럭이고 있었다.
[천마 임페리얼 포스 넘버 원]
천마 임페리얼에 방탄 성능과 각종 첨단 시설로 경호 능력을 올린 녀석이다.
주변을 선회한 뒤에 미국의 백악관 쪽으로 이동했다.
-슈아아악!
그때 굉음과 함께 날렵하게 생긴 전투기 두 대가 옆에 따라붙었다.
[미합중국 F-22 편대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호위하겠습니다.]
“알겠다.”
잠깐의 통신이 있은 뒤에 속도를 줄인 F-22 전투기들이 양옆으로 호위하듯 날아갔다.
박성규 대통령이 탄 임페리얼 포스 넘버 원 비행자동차가 백악관 상공을 한 번 선회한 뒤에 잔디밭 위에 착륙하자 주변에 있던 군악대들이 연주를 했다.
주변을 경호원들이 에워싼 뒤에 자동차의 문이 열리고 반백의 머리카락에 뿔테 안경, 자상해 보이는 인상의 박성규 대통령이 내렸다.
그를 맞이하기 위해 미 국무부 장관인 로버트 밥과 마틴 대통령이 강제퇴임되고 대통령이 된 티모시가 나왔다.
티모시는 약간 통통한 체격에 사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갑작스럽게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 티모시입니다.”
“반갑습니다. 대한제국의 대통령 박성규입니다.”
둘이 악수를 하자 주변에서 기자들이 그 장면을 열심히 찍었다.
백안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박성규는 회의를 진행하길 희망했고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만찬이 마련되어 있지만 바로 집무실로 모여들었다.
“이번에 마틴 대통령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런 못된 놈이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전 빙빙 둘러 이야기하는 걸 잘 못 합니다. 미국에서 선포한 전쟁을 철회해 주시고 서로 평화적인 협정을 통해서 강력한 우방국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건 저희도 바라고 있는 사항입니다. 그리고 원해 한국과 미국은 서로 혈맹관계 아니었겠습니까?”
이렇게 둘이 서로 협정서에 사인을 하고 악수를 했다.
박성규 대통령은 미국과의 전쟁을 막을 수 있어서 좋았고 티모시는 이 평화 협정을 통해서 미국의 경제 위기를 넘길 발판이 될 수 있기에 좋았다.
둘이 손을 잡고 백악관의 잔디밭에 꾸며진 기자회견장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찍기 위해 수많은 언론사들이 카메라를 찍고 난리도 아니었다.
티모시가 박성규 대통령에게 먼저 강단에 서라고 손짓했다.
그에 망설이다가 박성규 대통령이 강단 위에 올라섰다.
“저희 대한제국과 미국은 오늘 서로를 향한 미움과 오해를 거두고 서로 화해하며 협력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질서와 평화를 위하여 함께 움직이고 서로의 경제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협력하기로 하였습니다.”
박성규 대통령의 연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자 미국과 대한제국의 주가가 상승하고 그동안 전쟁 소식에 마음 졸이던 국민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시간 태평양에 있는 괌은 오후 9시를 넘기고 있었다.
주변이 어두워지자 그때서야 미국의 해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전함들이 바다를 가르고 지나가자 주변에 있던 어선들과 컨테이너선들이 놀라서 뱃머리를 돌렸다.
오키나와섬에서 정찰 중이던 보라매 전투기들이 미국의 전투함들을 발견하고 그 소식을 보냈다.
이에 대한제국의 제3함대가 제주도에서 오키나와 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PG-86 전남함이 오키나와 해역에서 미군들과 가장 먼저 조우했다.
전남함은 1,500톤 밖에 안 되지만 마나 에너지를 이용한 무기들을 믿었다.
마나 에너지로 선체를 강화하지 않았다면 호위함인 울산급 전남함이 이런 대서양으로 나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대한제국의 울산급 호위함의 특징은 함포가 많고 층층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말 엄청난 숫자입니다.”
통제실의 중앙에 떠오른 마나 레이더 지도에는 미 해군의 함대들이 모두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항공모함만 7척에 이지스 순양함 22척, 이지스 구축함 52척, 상륙함 8척, 준항공모함 9척, 지휘함 2척, 잠수함 26척, 군수지원함 2척 등의 어마어마한 전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투명화 스텔스 작동 이상 무.”
“보호막 장칙 이상 무.”
“소형 핵융합 발전기 정상 가동 중.”
기존에 있던 전함에 하나둘 추가하다 보니 이제는 엔진까지 핵융합으로 바꿔 버렸다.
“어? 적들이 사라집니다.”
“뭐?”
마나 레이더에 한둘씩 미국의 전함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거대한 항공모함까지 말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지금까지 마나 레이더가 적을 못 잡은 경우를 보지 못했다.
“함장님, 저길 보십시오.”
저 멀리 해안선을 따라 회색빛의 안개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저게 뭐야?”
“뭔지는 모르지만 저 안개가 낀 장소에 마나 레이더가 통하지 않습니다.”
회색의 안개는 점점 진해지더니 이제는 아예 시커멓게 되어 버렸다.
“우리가 도리어 적을 못 보게 되다니 어이가 없군. 총원전투 배치”
“총원전투배치!”
-위잉, 위잉!
구령과 함께 해병들이 바쁘게 자신의 위치를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커먼 안개는 점점 퍼져 나가서 이제는 전남함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일대까지 모두 덮어 버렸다.
-위이잉, 위이잉!
그때 갑자기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함장님, 10킬로미터 앞 미사일입니다.”
“뭐?”
지금까지 대부분의 적들은 대한제국의 함대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선제공격을 당한 적이 없다.
“채프플레이어 뿌리고 급선회 기동을 실시한다.”
전남함의 주변으로 불이 붙은 플레이어가 뿌려지고 고속으로 회피 기동을 시작했다.
그때 수면을 따라 낮게 날아오던 새하얀 미사일이 위로 솟구치더니 전남함의 함교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콰아앙!
전남함의 함교 부근에 푸른색의 보호막이 생기면서 폭발로 인한 피해를 막았다.
“놈들이 우릴 볼 수 있다. 전속력 후퇴.”
지금까지 일본과 중국과의 전쟁에서 투명화 스텔스 기능 덕분에 항상 숨어서 적을 쏠 수 있었다. 그런데 방금 공격을 보면 유리는 못 보는데 적은 대한제국의 전남함을 발견한 것 같았다.
전속 항진으로 후퇴를 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미사일이 날아왔다.
-콰아앙! 쿠웅!
“젠장, 어디 있는 거야?”
-쩡!
-콰아앙!
그때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선미 부분이 터져 나갔다.
그 충격에 함미에 있던 해군들이 나뒹굴었다.
“으악!”
“뭐야?”
“방어막을 뭔가가 뚫었다.”
“전속 후퇴!”
마나 핵융합 발전기가 최고 속도로 돌아가자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전남함이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쩡!
-콰아앙!
이번에도 뭔가 깨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76mm 함포가 터져 나갔다.
“함장님, 이대로 가다가는 전멸입니다. 그걸 사용하죠.”
“그거 아직 시험도 안 한 거라며?”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젠장, 그럼 빨리해봐!”
해병들이 엔진룸에 들어가 바쁘게 뭔가를 작동했다.
-우우웅…….
순간 전남함 전체가 푸른 빛에 휩싸이더니 굉음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전남함이 사라진 자리로 하픈 미사일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내리고 강력한 폭발이 일대를 휩쓸었다.
“쩝, 아쉽군.”
뱀파이어들의 수장인 블라드가 입맛을 다셨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의 종이 된 인간들로부터 과학 기술을 배웠다.
인간들이 가진 무기에 적용된 과학기술은 놀라웠다.
미사일과 레이더 기술, 그리고 대한제국이 운용하는 전술들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대한제국이 마나 에너지를 사용하면 우리는 다크 에너지를 사용하면 그만이다.”
블라드는 죽음의 힘이라는 다크 에너지를 미국이 가진 첨단 무기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블랙 필드라고 불리는 검은 안개와 그 안개를 이용한 레이더 장치였다.
다크 에너지를 머금은 안개를 이용해 자신들의 위치를 속이고 적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다.
“저기 뾰족해 보이는 배에 달린 무기가 레일건이라고 했나?”
블라드가 가리킨 곳에는 줌왈트라는 이름의 전함이 항해 중이었다.
줌왈트는 14,500톤급 구축함으로 총 80셀의 수직미사일 발사대와 두 개의 레일건을 장착했다.
이 전함의 가장 큰 특징은 스텔스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었다는 것과 레일건에 있다.
레일건은 전자기장 펄스를 이용해 포탄을 발사하는 것으로 속도와 정확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탄환의 엄청난 속도 때문에 연속으로 실드를 만들어내는 프록실드가 버티지 못하고 깨져 나간 것이다.
“맞습니다. 레일건입니다. 블라드님.”
“파괴력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만.”
“감사합니다.”
“오키나와라는 섬을 점령하고 나면 대한제국으로 직접 미사일 공격할 계획이니 공격 목표들을 잡아 놓도록.”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