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삐리리리!
수지는 휴대폰 전원이 꺼지자 노래를 멈췄다.
노래가 멈췄으니 괴물들이 깨어나 군인들을 공격할 것이다.
이제 남겨진 군인들은 달려드는 괴물들과 사투를 벌이면서 탈출해야 한다.
자신이 살린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오늘 여기서 죽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수지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놈들이 후퇴합니다!”
델타포스 대원인 찰리의 말에 수지의 고개가 급격히 돌아갔다.
“진짜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무전 내용이 그렇습니다. 놈들이 후퇴 중입니다.”
워리놈이 달아나자 죽음의 군대들이 그 뒤를 따라서 후퇴를 시작한 것이다.
아직 멸망의 문이 온전히 열린 것이 아니기에 워리놈이 없다면 전원 연결이 안 된 노트북과 다를 바가 없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몸에 담긴 어둠의 에너지가 방전되는 것이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녀석들이 피닉스시에서 빠져나가자 필사의 각오로 탈출하던 미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놈들이 달아난다!”
“살았다.”
달아나는 놈들을 향해서 미군들이 그동안의 분풀이를 하듯 포탄과 기관포를 쏟아부었다.
-다다다다!
-쿠웅!
-콰앙!
폭음과 총성이 수지가 타고 있던 장갑차 안에서도 들렸다.
“찰리, 부탁이 있어요.”
“말씀하시죠.”
수지의 말에 찰리가 공손하게 물었다.
이제 수지는 미국 본토에 있는 모든 주 방위군들에게는 여신과 같은 존재다.
“원래 있던 곳까지 가줘요.”
“가는 건 어렵지 않은데 왜 그러십니까?”
“그곳에 제 남자 친구가 있어요.”
“네?”
찰리가 당황스러워하며 되물었다.
여신에게 남자친구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남자 친구분이시라면 누구?”
“아까 나타난 도깨비 가면 말이에요.”
“아!”
생각이 났다.
각종 장비가 달린 검은색 특수복에 하얀 도깨비 가면, 그리고 짧게 기른 붉은 머리카락을 한 남자를 말이다.
무슨 특수 장비를 착용했는지 하늘을 날아다녔다.
“그럼 그가? 진짜 남자 친구입니까?”
“네, 진짜 제 남, 자, 친, 구, 입니다.”
“알겠습니다. 샘! FOS 방송국으로 돌아간다.”
“넵!”
샘은 찰리의 명령에 어떤 이유도 묻지 않고 장갑차를 돌렸다.
-부아아앙!
도망갈 때는 이리저리 움직이고 흔들려서 정신이 없었는데 돌아갈 때는 그저 약간 시끄러운 트럭 같은 느낌이었다.
30분 정도를 달려서 FOS 방송국으로 돌아온 장갑차에서 빠르게 델타포스 대원들이 튀어나와 사주 경계 하면서 주변을 엄호했다.
주변을 예리하게 관찰하다가 손을 빙글 돌렸다.
“클리어.”
그때서야 수지가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돌아보니 완전히 박살이 난 FOS 방송국 건물과 도로가 보였고 저 멀리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곳이 보였다.
-저벅, 저벅…….
그리고 저 멀리 쩔뚝거리며 걸어오는 한 사내가 보였다.
흰색 도깨비 가면에 붉은 머리카락을 한 성호였다.
흰색 가면 여기저기는 붉은 피로 범벅이었고 부상을 입었는지 손에서는 가는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성호!”
-다다다!
수지가 성호를 향해서 뛰었다.
이미 수지의 눈에서는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
달려드는 수지를 보며 성호가 멈칫했다.
-와락!
수지가 달려들어 그냥 안기자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성호가 뒤로 넘어갔다.
“고마워.”
“…….”
흰색 도깨비 가면 위로 수지의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성호가 살며시 손을 들어 수지를 안았다.
수지가 성호의 도깨비 가면을 벗어서 입술에 키스를 했다.
둘의 뜨거운 입맞춤에 주변에 있던 델타포스 대원들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뭐해! 주변을 수색해야지!”
“정신차렷! 아직 괴물들이 남아 있을지 모르잖아!”
“거기 총 똑바로 안 들어!”
찰리의 외침에 뎉타포스 대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피닉스시의 주변이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
성호와 수지는 근처에 마련된 천막 안에서 쉬고 있었다.
성호는 전기 코드를 붙들고 마나를 충전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말하자면 긴데 말이야. 내가 공항에 있을 때 미군들이 찾아와서 같이 가자고 부탁을 하더라고.”
성호의 눈에 분노의 기운이 서렸다.
“그래서?”
“내가 가자고 결정한 거니까 눈에 힘 빼지?”
“일단 들어 보고.”
여기서 수지에게 조금만 협박이라도 했으면 미국이고 뭐고 메테오로 중요시설을 타격해서 끝장내버릴 생각이다.
“동영상을 하나 보여주는데 내 노래에 괴물들이 괴로워하더라고.”
“응?”
“내 노래에 무슨 힘이 있나 봐. 그냥 노래를 부르면 괴물들이 괴로워하면서 쓰러지더라고.”
“진짜야?”
“그럼 진짜지.”
“그래서?”
“미군이 그걸 나한테 보여주면서 부탁하더라고, 그래서 따라 왔어.”
“그냥? 덜컥 믿고?”
“응.”
저 순진무구한 수지의 얼굴을 보자 성호가 할 말을 잃었다.
“어렸을 때 낮선 사람 쫓아가지 말라고 누가 안 가르쳐줬어?”
“나 잘못한 거야?”
눈물이 글썽이는 수지의 얼굴을 보자 성호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큰일 나면 어쩔 뻔했어.”
“아무 일도 없었잖아.”
저 순진무구한 얼굴에 누가 뭐라고 하랴.
수지와 성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천막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50 대로 보이는 짧은 백발에 갈색으로 물든 얼굴에 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었다.
“미국의 특수작전 사령부의 사령관 클리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아, 네……. 이성호입니다.”
둘이 서로 악수를 했다.
“이미 미래 그룹의 이성호 회장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평상시 팬이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제 며느리가 임신 중 난소암 판정을 받았다가 힐러 치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그리고 여기 계신 수지 양과의 관계에 대해서 대원들에게 들었습니다.”
클리드의 말에 성호와 수지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성호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지금 대한제국과 미국은 서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기 있는 모든 미군들은 수지 양과 이성호 회장님 편입니다.”
“감사합니다.”
“저희가 대한제국까지 안전하게 모셔 드리겠습니다.”
성호가 클리드의 눈을 바라봤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클리드의 눈은 맑았고 흔들리지 않았다.
진실하고 신념이 강한 사람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가져온 장비만 충전이 되면 바로 공간이동으로 대한제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보면 볼수록 대한제국의 기술력은 놀라운 것 같습니다.”
“그 전에 클리드 사령관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귀담아듣겠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많은 늙은이라 상관없습니다.”
클리드의 밝은 표정을 보며 성호가 공중에 입체 화면을 띄웠다.
수십 개의 화면들을 신기한 듯 클리드가 바라보자 성호가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보실 자료는 CIA를 뒤에서 조정하는 세력에 대한 자료입니다.”
너무 방대한 자료라 클리드도 어디서부터 봐야 하는지 난감했다.
“여기 보시면 이란의 핵폭탄이 사우디로 몰래 넘어갈 때 미국의 눈이라는 NSA가 도와준 정황 증거들입니다.”
“뭐요?”
클리드가 놀라서 성호가 가리킨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오작동한 하프 프로젝트를 CIA가 어떻게 계획했으며 자료를 넘겼는지 조사한 자료입니다.”
“정말입니까?”
클리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성호를 바라봤다.
“더 들어 보시죠.”
성호가 화면 하나를 중앙에 놓았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과거 백악관이 테러로 폭발하고 전대 미국 대통령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의 자료입니다.”
“맙소사. 이런 자료들은 도대체 어디서 가져오는 거요?”
“인터넷입니다. 대한제국은 이미 인간의 자아를 뛰어넘는 컴퓨터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료를 빼 오는 거야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료들은 외부 인터넷과 연결이 안 되어 있는 걸로 압니다.”
“백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일 년에 딱 한 번 외부와 연결이 되죠.”
“그건 극비인데?”
“아까 말씀드렸죠. 모든 자료는 인터넷에 있습니다.”
“이런.”
클리드는 그렇게도 강력한 자신들의 인터넷 방호벽이 허무하게 무너진 것에 대해서 어이없어했다.
“하여튼, 강제로 삭제된 자료들을 복구한 자료들입니다.”
성호를 한번 바라본 클리드가 자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화면이 내려갈수록 클리드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갔다.
“작전 번호 ZXS1234, 백악관 폭파 작전입니다.”
“이걸 CIA에서 했다고?”
“그렇습니다. 이슬람 무장 단체가 아니고 CIA이었습니다.”
“CIA의 누가?”
“CIA도 하수인일 뿐입니다.”
“CIA도 하수인일 뿐이라고?”
클리드가 놀라서 성호를 바라봤다.
CIA가 어떤 기관인가?
미국의 중앙정보 기관이자 비밀 작전을 담당하는 곳이다.
“그동안 CIA가 아프리카에서 한 공작과 이란과 사우디에서의 공작에 대한 자료들입니다.”
“맙소사.”
자료는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무기들의 수출과 이동, 인물들에 대한 암살, 자금 흐름을 통해서 전쟁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그 정점이 바로 백악관 폭발로 인한 대통령 암살이다.
“여기 이 인물이 모든 일의 바로 주동자입니다.”
성호가 공중에 금발 곱슬머리에 창백해 보이는 사내의 사진을 띄웠다.
“누구요?”
“로스차일드 가문의 폴 막스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라는 말이 나오자 클리드의 표정이 굳었다.
“어쩐지 군부 여기저기에 돈을 뿌리더라니.”
“그리고 지금 미국의 대통령으로 있는 마틴은 폴 막스의 부하입니다.”
“!”
클리드의 표정이 돌같이 굳었다.
미국의 대통령까지 하수인일 뿐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클리드가 처음으로 화를 냈다.
“이 동영상을 보시죠.”
이미 인터넷을 통해서 퍼져 있는 동영상으로 과거 하프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국회의사당 앞에서 마틴과 어떤 인물이 통화하는 내용이었다.
동영상에서는 마틴이 전화 통화로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고 있었다.
“이건…….”
클리드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흔들이며 공중에 떠 있던 자료들을 자세하게 바라봤다.
-CIA 백악관 폭파
-마틴 대통령의 자금 흐름
-NSA의 자료 조작
-하프프로젝트의 오작동에 관여한 CIA
-아시아 전쟁 흐름에 관여한 자금 흐름
하나하나를 보면 연관성이 없지만 모든 자료는 명백하게 한 명이 주도하고 계획한 것임이 확실했다.
“맙소사. 모두 사실이로군.”
“믿으시는 겁니까?”
“이 정도 자료면 안 믿을 수가 없겠군요. 이성호 회장이 바라는 건 뭡니까?”
“미국의 정상화입니다.”
“어려운 이야기군요. 전 일개 군인일 뿐입니다.”
“클리드 사령관님께서 안 하시면 미국은 계속 놈들의 하수인 노릇만 하다가 망가질 겁니다.”
“아니, 그럼 내가 미국의 국가 기관인 CIA와 NSA를 제압하고 백악관을 점령하라는 말이요?”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클리드는 성호의 말에 눈을 감아버렸다.
미국의 중요 기관인 CIA, NSA, 대통령까지 폴 막스라는 놈의 하수인이란다.
그런 정보기관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특수작전 사령부가 유일한 대안이다.
클리드 사령관이 갈등하는 동안 성호도 입을 닫았다.
여기서 마법으로 클리드 사령관의 정신을 제압할 수도 있지만 성호는 자신의 감각을 믿었다.
잠시의 침묵이 이어지다가 클리드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