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지옥에서 올라온 괴물 같은 놈들이 어떤 노래를 듣고 물러났다는 이야기는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미군들 사이에서는 이때의 일을 575호의 기적으로 불렀다.
전차의 내부에 달린 영상과 575 전차병들이 직접 찍어온 영상이 퍼져 나가면서 사람들은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괴물들이 한국에서 온 소녀의 목소리를 싫어한다.
-역시 한국이 괴물들을 만든 범인이 아니었어.
-수지를 우리들의 여신으로!
575 전차의 기적으로 인해서 미군들이 수지의 팬들이 되었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오해가 풀리는 계기가 되었다.
피닉스시에 마련된 미 주 방위군의 임시 작전 본부,
건물의 중앙에는 수많은 모니터들과 화면들이 화려하게 켜져 있고 작전 통제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시커먼 죽음의 군대들이 일직선으로 피닉스시로 진군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일이면 괴물들이 500만 명이나 사는 피닉스시에 도착하게 된다.
지금도 시민들을 피난시키고 있지만 시간이 한참이나 모자랐다.
“유일한 희망이 이거뿐인데 문제로군.”
백발의 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서 작전 화면을 보며 고민에 싸여 있었다.
미국의 특수작전 사령부의 사령관 클리드였다.
미국의 특수작전 사령부라는 것은 SOCOM이라고 불리며 그 아래에 미국 최고의 부대로 유명한 델타포스, 네이비씰, 그린베레, 나이트스토커, 제75 레인저 부대 등이 있다.
한마디로 전 세계 특수 부대 중 최고를 모아 놓은 최고 중의 최고다.
“왜 안 되지?”
화면에는 시커먼 색의 UH-60 헬기 여러 대가 날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특이한 점은 UH-60 헬기 양옆에 네모난 박스 형태의 스피커를 달고 있다는 것이다.
[델타 원, 노래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델타 투, 여기도 마찬가지다.]
클리드는 575호의 기적에 대해서 듣고 델타포스 대원들에게 실험을 하나 지시했다.
괴물들에게 한국의 가수인 수지가 부른 노래를 들려주고 괴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수지의 노래를 틀었지만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혹시 몰라서 다른 가수들의 노래들을 틀었지만 마찬가지로 소용이 없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나?”
575호 전차에서 찍은 영상에서 괴물들이 괴로워하면서 나뒹구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것만 된다면 이 괴물들을 물리칠 중요한 무기를 얻게 되는 셈이다.
“설마?”
클리드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패튼, 날세. 쉬는데 미안하군.”
패튼은 575호 M1A2 전차의 전차장이다.
[아닙니다. 클리드 사령관님.]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말이야. 그 노래가 혹시 라이브였나?”
[네, 라이브였습니다.]
“알았네. 고맙네.”
[아닙니다.]
패튼과의 통화가 끝난 클리드 사령관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지라는 가수가 지금 LA에 있다지?”
“넵! 지금 공항에서 출국 수속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당장 모셔와야겠다.”
“네?”
“뭐하나? 가서 정중히 모셔와!”
“넵, 알겠습니다.”
“이건 명령이 아닌 부탁인데 진짜 정중히 모셔 와야 해.”
“넵!”
그 시간 수지는 LA공항에 있었다.
거대한 도시에 맞지 않게 비좁은 이 공항은 보조 비행장도 작아서 문제가 많은데다가 그곳까지 가기 위한 30킬로미터의 도로는 헬게이트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수지는 어렵게 LA 공항까지 와서 경호원, 매니저, 공연 스태프들과 함께 출국 수속을 받고 있었다.
수지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가 가끔 고개를 돌리면 사방에서 비명과 함께 고함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끼야아! 여길 봐주세요.”
“언니 너무 사랑해요.”
“전 정부의 거짓말은 안 믿어요.”
“수지는 사랑입니다.”
주변에 수지의 팬들이 한가득하지만 그들도 수지를 보호하기 위해 모여 있는 것이고 보안 요원들까지 합세해서 혹시 모를 사태를 잘 막아 주고 있었다.
이런 팬들을 내버려 두고 도망가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삐리리리, 삐리리!
갑자기 울려온 벨 소리에 핸드폰을 확인하니 성호다.
수지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성호?”
[괜찮아?]
그 한마디에 수지의 표정이 울듯 변해 버렸다.
마음 깊은 곳이 갑자기 따뜻해지면서 뭔가가 간질거리며 올라왔다.
“응!”
[조심해서 와,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알았어.”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동안은 밖으로 안 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전할 계획이다.
그런 생각들 때문인지 수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웅성, 웅성…….
그때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 지면서 군인들과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그들을 수지의 경호원들과 매니저들이 막아섰다.
“누구시죠?”
“저희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이들 중에 양복을 입은 한 명이 앞으로 나섰는데 키가 2미터는 넘어 보이고 덩치가 상당했다.
경호원들이 그가 건넨 명함을 보고 놀란 눈치다.
칼 네 개가 그려진 신분증에는 JSOC, 제1 특수 작전 분대-델타라고 쓰여 있었다.
이들은 바로 델타포스다.
미국의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의 직할부대의 명령을 받는 특수임무 부대다.
보통은 민간인으로 변장해서 사복을 입고 다니고 야전에서 청바지를 입고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작전이 진행되면 미국의 최고 특수 부대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나가도 됩니까?”
“아, 네. 비켜 드려야죠.”
군인들이 수지의 주변을 빈틈없이 포위했다.
수지의 팬들이 항의했지만 총까지 든 이들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덩치가 거대한 델타포스 대원이 수지 앞으로 나섰다.
수지는 그의 거대한 덩치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수지 양이시죠?”
“그렇습니다.”
“미국의 특수작전사령부의 찰리입니다. 평소 수지 님의 팬이었습니다.”
“팬인 건 고맙지만 사인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일인가요?”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싫다면요.”
“정중히 모셔 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전 대한제국의 국민입니다. 미국의 명령을 듣지 않겠습니다.”
찰리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수지 님의 결정에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찰리의 태도에 수지의 눈에서 이채를 띄었다.
주변을 군인들이 포위한 상황에서 수지를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중하게 부탁을 하고 있는 찰리의 눈빛에서는 어떤 악의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무슨 일인지 들어나 보죠.”
“감사합니다.”
찰리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서 동영상 하나를 실행시켰다.
“지금 보시는 것은 미군 전차 하나가 괴물에게 포위되었다가 탈출하는 영상입니다.”
화면의 시작은 전차내부에서 시작되어 포탑 위로 올라오는 영상이었다.
[이건 찍어야 해.]
[이건 기적입니다.]
화면이 움직이며 주변을 보여 주었는데 주변이 온통 시커먼 괴물들로 가득했다.
괴물들의 그 끔찍한 외모에 수지가 놀라서 신음이 절로 나오는 입을 손으로 막았다.
“끔찍하네요.”
“저런 녀석들과 미군 병사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수지의 감성적인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 노래네요.”
“네, 수지 님의 노래입니다. 그래서 모시러 온 겁니다.”
수지가 어이없어하면서 찰리를 바라봤다.
“탈출하는 중간에 제 노래가 나와서 절 데리러 왔다고요?”
“화면을 잘 보시면 괴물들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찰리의 말에 수지가 그때서야 전차 주변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괴물들이 보였다.
“괴물들이 왜 이러죠?”
“아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래서 수지 님을 모시러 왔다고.”
“무슨?”
“괴물들이 수지 님의 노래 소리에 저렇게 된 겁니다.”
수지는 이제야 이들이 자기를 데리러 온 이유를 알았다.
“제 노래가 저런 능력이 있다니 당황스럽네요.”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녹음 파일도 많은데 굳이 제가 직접 가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이미 수지 님께서 부르신 녹음된 노래를 틀어 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제 노래가 소용이 없어요?”
“네, 녹음 파일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보여드린 동영상에서 수지 님의 노래는 라이브였습니다.”
“라이브? 설마 제가 저 괴물들 한가운데 가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러 달라는 건가요?”
황당해하면서 수지가 물었다.
“한가운데는 아닙니다. 그리고 수지 님의 신변은 저희 델타포스 대원들이 책임집니다.”
“라이브는 여기서 부르는 걸 송출해도 되지 않나요?”
“도시 전체에 해당하는 구역에 송출해야 하는데 기술적인 문제로 10킬로터 근처까지 가셔서 불러주셔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찰리가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에 수지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대한제국으로 가서 성호를 보고 싶었다.
미국은 대한제국에 선전 포고한 적국이고 그런 곳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수도 있다.
괴물들을 막기 위해 많은 미군들과 민간인이 죽을 것이다.
미국의 팬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들으며 탈출하던 미군들의 장면이 떠올랐다.
“위험에 처한 팬들을 저버릴 수는 없죠.”
수지의 말에 찰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단, 제 매니저와 함께 갈 겁니다.”
“당연하죠. 이미 출발 준비를 해놨습니다. 가시죠.”
수지는 미군들을 따라서 VIP 통로를 지나 비행장으로 곧바로 나왔다.
그곳에 거대한 수송기 하나가 대기 중이었다.
C-17 수송기였다.
이 수송기는 길이가 53미터나 되고 양쪽 날개에 터보엔진이 2개씩 달려있다.
7.7톤이나 실어 나를 수 있는데 아파치 헬기 3대나 M1A2 전차 하나를 운송할 수 있고 병력 189명을 한꺼번에 이송할 수 있다.
-위이이잉!
C-17 수송기의 엔진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가운데 수지가 뒤쪽 격납고를 통해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간 수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수지 양, 이런 누추한 비행기로 이동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많이 시끄럽죠? 이걸 쓰시는 게 좋습니다.”
헤드폰처럼 생긴 커다란 귀마개를 찰리가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죠.”
굉음과 함께 이륙한 수송기는 1시간을 날아가 애리조나주의 피닉스시에 도착하게 되었다.
수지가 수송기에서 내리자 그 앞에 군인들이 도열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중앙에 백발의 노장, 클리드가 수지에게 걸어 나오면서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특수작전 사령부 사령관 클리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대한제국에서 온 수지 김입니다.”
“차량이 대기 중입니다. 가시죠.”
조금 걸어 나가자 한쪽에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오면서 이야기는 들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네, 대충 들었습니다.”
“타시죠. 나머지는 가면서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클리드가 직접 수지가 자동차에 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었다.
차에 타니 안이 넓었고 고급스러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리무진이 출발하자 그 주변으로 군용 지프인 험비 십여 대가 호위하듯 앞뒤로 이동했다.
클리드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괴물들에 의해서 미군들이 4만 명, 민간인이 170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 말에 수지의 표정이 굳었다.
“언론에서는 괴물들을 미군이 잘 막고 있는 것으로 내보내고 있지만 실상은 얼마 버티지 못합니다. 내일 여기로 괴물들이 들이닥칠 겁니다.”
“네?”
“여기 피닉스가 뚫리면 미국의 남부와 서부는 끝장이 날 거고 천만 명이 죽을 겁니다.”
그 말에 수지의 눈이 커졌다.
“그럼 큰일이지 않나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지 님의 신변은 제가 장담하고 지켜 드릴 겁니다.”
자신들도 막기 버거워하는 괴물들이 오는데 걱정하지 말란다.
‘저 말고 미국이 걱정된다고요.’
수지는 심각해 보이는 클리드의 표정을 보고 속마음을 집어삼켰다.
“일단 피닉스시 방송국에 있는 스튜디오 하나를 빌렸습니다. 그곳에서 수지 님께서 노래를 불러 주시면 그 소리를 쇼크웨이브라는 장치로 전송해서 괴물들에게 들려줄 겁니다.”
“만약 제 노래가 효과가 없다면요?”
“효과가 없다면 수지 님을 즉시 대한제국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노래를 불러 드리죠. 단, 조건이 있어요.”
“말씀하시죠.”
“클리드 님의 이름을 걸고 대한제국과의 전쟁을 막아 주세요.”
클리드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대한제국과의 전쟁은 대통령이 결정한 사안이다.
대통령이 선포한 전쟁은 일단 시작되게 되어 있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일주일 뒤에야 열리는 의회를 통해서 반대하는 것이 유일했다.
“솔직히 제가 군인이라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힘을 다해 전쟁을 막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제 명예와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 말에 수지의 얼굴이 펴졌다.
“그거면 되었어요.”
원래 한 명 한 명의 힘이 모여서 역사를 만드는 거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