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 회장님-198화 (198/225)
  • 《198화》

    LA의 로즈볼 스타디움에서 원래 수지의 공연이 있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대한제국 간의 분위기가 험악해 지면서 공연이 취소되어 버렸다.

    현지 분위기 때문에 수지도 내일 비행기로 돌아가야 했다.

    넒은 경기장의 중앙에는 무대가 아직 철거되지 못해 놓여 있었다.

    “아쉽네.”

    수지는 설치된 무대 위에서 이번 공연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면서 서성였다.

    그러다가 한쪽에 마련된 피아노로 걸어가 앉았다.

    눈을 감으니 그가 떠올랐다.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났다.

    그 자유로운 붉은 머리카락과 밝은 미소가 떠올라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나 바로 그리움이 차오르면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작고 아담한 손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움직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I miss you.]

    (그대가 보고 싶어요)

    [When I first met you, it was like a movie.]

    (그대를 처음 만난 날, 그것은 영화 같았어요.)

    거대하고 깜깜한 경기장에 수지의 피아노 소리와 감성을 자극하는 목소리만이 메아리쳤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 카메라에 담았다.

    전 세계에 수지가 홀로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미쳤다.

    -저절로 눈물이 나.

    -왜 내 마음이 아직도 아픈 걸까?

    -나도 누군가 보고 싶어지네.

    수지의 노래를 듣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자기도 모르게 눌러 주었다.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수지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 중에는 미군들도 있었다.

    미군들은 뉴멕시코와 애리조나주의 경계선인 갈라 국립공원에서 죽음의 군대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중 M1A2 575호 전차에는 네 명이 타고 있었는데 전차장인 패튼, 포수 잭, 운전수 톰, 탄약수 알버트가 그들이었다.

    언젠가부터 시끄러운 전차 안에도 수지의 음성이 작게나마 들려 왔다.

    “알버트, 장전 안 하나?”

    “죄송합니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요. HEAT 장전 완료.”

    “좌표 확인!”

    “쏴!”

    -콰아앙!

    포탄이 날아다니고 사방에서 기관포 소리가 요란했다.

    그리고 그 중간 중간마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버트, 노래 좋은데? 소리 좀 키워봐.”

    “넵, 패튼 상사님.”

    전차장의 명령에 포수인 알버트가 활짝 웃으며 휴대폰의 볼륨을 올렸다.

    전차 안에 수지의 아름다운 노래가 가득 찼다.

    “목소리 진짜 좋네.”

    전장 한가운데 들리는 한순간의 평화였다.

    “괴물들이 몰려온다.”

    “후퇴!”

    “퇴로를 열어.”

    전차와 장갑차들이 줄지어 뒤로 후퇴를 하면서 포탄을 계속 쏘았다.

    언덕을 타고 넘어오는 시커먼 죽음의 군대들이 시커멓게 몰려들었다.

    “패튼 상사님, 우리도 빨리 후퇴합시다.”

    “기다려. 누군가는 놈들을 저지하다가 후퇴해야 해. 우리가 남는다.”

    “넵.”

    다른 전차들과 장갑차들, 미군들이 후퇴하는 동안 패튼의 575호 M1A2 전차는 포를 쏘면 시간을 벌었다.

    주변의 아군들이 거의 사라질 쯤이 되어서야 패튼이 명령했다.

    “톰, 우리도 뒤로 후퇴하자,”

    “넵!”

    M1A2 전차의 궤도가 움직이면서 하부가 뒤로 돌아갔지만 상부에 달린 포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포를 계속 쏘았다.

    -콰앙!

    저 멀리 시커먼 괴물들이 폭발 속에서 터져 나가는 게 보였다.

    “달려.”

    “넵, 상사님.”

    가솔린으로 움직이는 가스터빈 엔진의 웅장한 소리와 함께 전차가 출렁이더니 앞으로 튀어 나갔다.

    17초 만에 50킬로미터를 넘기더니 80킬로미터 이상으로 도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포신 돌려! 놈들이 우측에서 몰려온다.”

    “알버트, 히트 탄 장전!”

    “장전완료!”

    “쏴!”

    후퇴하면서 패튼 상사는 전차 밖의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여기서 포위되면 아군도 도울 수 없다.

    “젠장. 너무 빨라.”

    문제는 괴물들이 달려드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고개를 넘어 지나가다 보니 언덕 너머로 놈들이 이미 도착해서 달려들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포위되겠어.”

    패튼이 상부에 달린 기관포를 잡고 쏘기 시작했다.

    -바바바바!

    무수히 많이 날아간 총탄은 죽음의 군대들이 입는 갑옷에 튕겨 나가며 붉은 불꽃을 만들어냈다.

    “뒈져라, 이것들아!”

    대부분의 총알이 튕겨져 나갔지만 일부가 죽음의 병사로 불리는 다크 솔저의 투구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파작…….

    그리곤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쓰러져 버렸다.

    “거기가 약점이구만!”

    신이 난 패튼 상사는 놈들의 투구만 노리고 기관총을 마구 쏘기 시작했다.

    “상사님, 전방에 놈들입니다.”

    운전병인 톰의 말에 기관총을 쏘다 말고 뒤를 돌아본 패튼은 퇴로를 가득 메운 죽음의 군대를 볼 수 있었다.

    “젠장, 톰, 그냥 뚫고 지나간다. 밟아!”

    “넵!”

    M1A2전차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앞으로 돌진했다.

    -콰자작!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죽음의 군대가 만든 포위망을 뚫고 패튼의 M1A2전차가 돌진했다.

    앞으로 돌진하는 전차 위로 시커먼 갑옷을 입은 다크 솔저들이 타고 올라왔다.

    -바바바바!

    패튼은 기관포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전차로 올라오는 놈들을 처리했다.

    -철컥, 철컥!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총알이 다 떨어졌다.

    “맙소사.”

    패튼은 해치를 닫고 전차 안으로 들어갔다.

    포탑 상부의 관측 창으로 보니 밖에서 놈들이 칼로 전차를 두들기고 있었다.

    “놈들이 운전 관측 창에 달라붙어 앞이 안 보입니다.”

    “적외선 관측 장비 파손! 여기도 밖이 안 보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전차의 표면을 빼곡하게 놈들이 달라붙었다.

    “어쩔 수 없지. 레이더만 보고 달려!”

    “넵!”

    “톰, 포신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놈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해.”

    “넵!”

    포신을 빙글 돌리자 일부 괴물들이 떨어져 나가기는 했지만 사방은 이미 놈들에게 포위된 상황이었다.

    -콰아앙!

    그때 뭔가가 전차에 부딪히면서 큰 충격이 전해졌다.

    “으악!”

    전차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이 나뒹굴었다.

    “끄응, 다들 괜찮나?”

    “저는 다리가 안 움직입니다.”

    “잭의 머리에서 피가 흐릅니다.”

    “뭐에 부딪친 거야?”

    포탑 상부에 달린 관측 창으로 밖을 보니 달라붙어 있던 괴물들도 튕겨져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면에 여기저기 부서져서 나뒹굴어 있는 아군 전차들과 장갑차들이 보였다.

    “아군 전차끼리 부딪친 거군.”

    부딪쳐 아픈 팔을 주무르며 패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놈들이 또 몰려온다.”

    새까맣게 몰려든 놈들이 전차를 뒤덮자 또다시 밖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땅, 따다당!

    놈들은 지겹지도 않은지 칼로 전차를 두들겨댔다.

    “백날 해봐라. 부서지나.”

    패튼이 피식 웃었다.

    “톰?”

    M1A2 전차에서 유일하게 톰만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도울 수가 없다.

    “끄응, 저 안 죽었습니다.”

    “다행이네. 엔진은?”

    “가동이 안 됩니다.”

    “어떻게든 해봐, 못 움직이면 꼼짝없이 여기서 죽게 생겼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밖에서는 괴물들이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전차를 계속 때리고 있었다.

    “알버트, 그 노래 좀 틀어봐.”

    “잠시만요.”

    핸드폰의 화면이 깨졌지만 다행히 터치가 가능했기에 실시간 방송을 다시 볼 수 있었다.

    [The moment the stars fall in the morning.]

    (아침에 별이지는 순간)

    [I remembered the voice you called me.]

    (당신이 날 부른 음성이 떠올랐습니다.)

    또다시 전차의 내부에 아름다운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눈을 감으면 어렴풋이 사랑하는 이들이 생각나게 하는 그런 노래였다.

    “이 어메이징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야?”

    “수지입니다.”

    “아! 그 한국에서 왔다는? 그런데 한국에서 저 괴물들을 만들었다고 안 했나?”

    “전 그거 안 믿습니다. 지금 인터넷 개인 방송들은 이 문제로 난리라고요.”

    “왜?”

    패튼 상사가 궁금한 듯 물었다.

    “이걸 보세요.”

    알버트가 좁은 통로를 지나 패튼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개인 방송인들이 각종 자료들을 가지고 이번 미국의 마틴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었다.

    방대한 자료들은 너무 자세하고 정확해서 반박할 수도 없을 정도다.

    “맙소사.”

    특히 마틴이 누군가와 전화 통화하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거 완전히 미국 국민들이 속았는데?”

    “그렇죠?”

    “수지라고 했나? 진짜 영혼까지 울리는 목소리다.”

    “그렇죠?”

    알버트가 활짝 웃었다.

    -따다당, 따앙!

    음악이 흘러나왔지만 밖에서 들리는 괴물들이 칼로 때리는 소음이 더 시끄러웠다.

    “음악을 좀 더 크게 틀어 볼 수 있을까?”

    “전차 주 엠프에 연결할까요?”

    “좋지.”

    알버트가 전차의 엠프에 휴대폰을 직접 연결했다.

    [I want to say I love you]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확실히 소리가 커지자 목소리에 담겨 있는 호소력이 올라갔다.

    마음 깊이 있던 영혼을 긁는 목소리에 저절로 울컥하고 뭔가가 올라왔다.

    “크윽, 저절로 눈물이 나네.”

    “이런 상황에 이런 노래를 듣게 되다니.”

    “목소리가 진짜 미쳤다.”

    “조용히 좀 해봐!”

    전차장인 패튼의 말에 모두 입을 다물자 오직 수지의 노래만이 전차 내부를 가득 채웠다.

    “응?”

    그런데 밖에서 괴물들이 두들기는 소리도 안 들렸다.

    “너무 조용한 거 아냐?”

    패튼의 말에 탄약수인 알버트가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어 울었다.

    “흑흑……. 메리야.”

    “뭔 소리야?”

    “훌쩍, 너무 조용하다면서요?”

    “그게 아니고 밖에 말이야.”

    “아!”

    그때서야 패튼의 말을 깨달은 전차병들이 밖을 살펴봤다.

    포탑 상부에 달린 관측 창에 옹기종기 모여서 밖을 보고 입을 쩍 하고 벌렸다.

    괴물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져서 나뒹굴고 있었다.

    “뭐여?”

    “갑자기 왜 쓰러지고 지랄이야?”

    주변을 보니 오직 자신들이 탄 575호 M1A2 전차의 주변에서만 놈들이 저 지랄을 하고 있다.

    “음악 꺼봐.”

    패튼의 명령에 알버트가 핸드폰의 재생 화면을 정지했다.

    수지의 노래가 끊어지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끼리리릭!

    -크르르르…….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던 괴물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음악을 다시 틀어.”

    수지의 노래가 다시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그러자 밖에 있던 시커먼 녀석들이 또다시 머리를 부여잡고 나뒹굴었다.

    -키기긱, 위이이잉!

    그때 마침 전차의 시동이 걸렸다.

    “패튼 상사님, 엔진이 가동되었습니다.”

    “톰, 달려!”

    “넵!”

    전차가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꽈자자작!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전차가 앞으로 돌진했다.

    패튼이 포탑의 해치를 열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M1A2 전차 575호가 지나갈 때마다 괴물들이 달려들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괴로워했다.

    “알버트, 볼륨을 더 올려!”

    “넵!”

    그날, 이 전설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괴물들과의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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