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주변은 새하얀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었다.
뜨거운 사막 위로 아지랑이가 올라오는데 그 위로 두 명의 사내가 걸어가고 있었다.
앞서가던 노란 곱슬머리를 한 사내가 손을 내밀자 뒤에 따라 오던 시커먼 흑인이 물통을 전해 주었다.
-꿀걱, 꿀꺽.
물을 한 모금 마신 뒤에 노란 곱슬머리 사내가 물통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네 놈이 위치를 알고 있다면 공간이동으로 왔겠지만 나만 아는 곳이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힘들게 걸어 왔군.”
“죄송합니다.”
“놈이 인공위성을 이용했다지?”
“그렇습니다. 저희 첩보 위성이 나중에서야 발견했습니다.”
“어이가 없군.”
혼자서는 미사일도 우주로 못 내보내는 나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안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인공위성을 우주 여기저기에 띄워 놨다.
그래서 4,600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던 자신을 찾은 거고 그 바람에 운석의 비를 맞았다.
그 바람에 자신이 키우던 사도들과 일루미나티의 수장들이 몰살당하고 20년간 공들인 탑이 무너졌다.
그 뒤로 폴 막스는 자신의 기척을 숨기고 숨어 다녀야 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냐. 그렇지, 막시무스?”
“그렇습니다. 주인님.”
사실 매우 귀찮은 상황이다.
지금의 상황이 매우 화가 나고 짜증이 나지만 참기로 했다.
많은 사람이 죽고 자신이 마왕으로서 각성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그때가 되면 이성호도 죽을 거고 대한제국도 멸망할 거다.
그 뒤에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죽고 악마가 다스리는 곳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악마들의 왕이 될 것이다.
“놈이 SDU라는 국제 협력기구를 만들었다지? 거기 사무총장이 되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미국은 대한제국의 서울까지 가서 거절을 하고 돌아왔고?”
“그렇습니다.”
“인간은 말이야 의심의 존재지, 그리고 잘 속아. 무슨 뜻인지 알지?”
“이 미천한 종은 잘 모르겠습니다.”
폴 막스의 눈에서 차갑디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크크크, 이럴 때 미국에 괴물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대한제국을 의심하지 않을까? 괌과 오키나와에서 많은 사람이 죽은 것과 하프 인공위성의 오작동이 마나 에너지 때문이라고 말하면 믿을까? 키키키”
폴 막스가 미친 듯이 웃으며 푹푹 빠지는 모래 위를 걸어가다가 갑자기 하늘을 바라봤다.
“여기군.”
아무 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다.
“비키니섬에만 차원의 균열이 있는 게 아냐.”
“네?”
“내가 차원의 틈을 가장 먼저 발견한 곳이 바로 이곳이지.”
폴 막스가 손을 위로 뻗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쓰다듬자 시커먼 스파크가 튀기면서 뭔가가 흐릿하게 보였다.
불규칙적으로 갈라져 있는 틈이었다.
“1945년 7월 16일, 트리니티라는 이름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여기서 핵폭발 실험을 했는데 그때 이곳에 차원의 균열이 생겼지.”
“주인이시여, 그럼 핵폭발이 차원의 균열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겁니까?”
“그래, 핵폭발 정도의 에너지가 압축되며 폭발해야 차원의 균열이 생기는 거지.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많은 핵실험을 한 비키니섬을 찾아갔던 거고.”
모든 사람은 눈에도 보이지 않고 어떤 탐사 장비로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폴 막스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멸망의 문을 여는 마왕, 차이탄의 권능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이곳은 왜 방치하신 겁니까?”
“여기는 균열이 너무 작았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멸망의 문이 절반이나 열리면서 더 커졌어.”
폴 막스의 손이 차원의 균열 속으로 들어가자 검은색의 스파크가 더 크게 일어나며 주변의 모래를 때렸다.
-꽈자자작!
“여기에 괌과 오키나와에서 죽은 자들이 만든 염원을 가지고 지옥문을 열거다.”
폴 막스의 눈이 잔인해졌다.
“그 뒤에 천만 명, 미국 땅에서 딱 그 정도만 죽이면 된다. 이성호 그놈도 여기가 미국이기 때문에 함부로 간섭하기 힘들 거고.”
-쩌저저적…….
공간이 열리며 차원이 균열이 커져갔다.
“차파타카야 타차!”
주문이 이어질 때마다 시커먼 오러가 폴 막스의 몸에서 쭉하고 뽑혀져 나와 차원의 틈에 흡수되었다.
-우웅…….
그러다 어느 순간 시커먼 균열이 선명해지며 공중에 드러났다.
다만 둥글게 만들어지지 못하고 불규칙하게 일자로 찢어진 구멍이었다.
“젠장, 270만 명이나 죽이면서 만들었는데 이 정도밖에 못 열다니.”
머맨들의 공격으로 괌에서 150만 명, 오키나와에서 120만 명이 죽었는데 그때 나온 마이너스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다.
그럼에도 이 정도밖에 열지 못했다.
-달그락!
시커먼 균열 속에서 뼈로만 이루어진 녀석이 하나둘 튀어나왔다.
다크 스켈레톤 병사!
“이번에는 뼈다귀들인가?”
폴 막스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턱관절을 달그락거리며 나타난 해골병사를 바라봤다.
-꽈자자작…….
그때 구멍 안에서 어떤 존재가 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 바람에 차원의 균열이 부서질 듯 흔들거렸다.
[젠장, 좁아서 나갈 수가 없네.]
목소리를 들어 보니 아는 놈이다.
“오! 워리놈인가?”
워리놈이라면 차이탄을 따르는 여섯 악마 군단장 중 하나로서 죽음의 힘을 다루는 놈이다.
다만 발록과 함께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다루기 쉽지 않은 녀석이다.
그러나 전투력만큼은 뛰어나서 이놈이 밖으로 나온다면 천만 명 죽이는 거야 순식간이다.
[그렇다. 나 워리놈이다. 그런데 이게 뭐야! 구멍이 왜 이렇게 작아?]
“네 부하들을 시켜서 사람들을 딱 천만 명만 죽여, 그럼 구멍이 더 커질 거니까.”
[정말 귀찮게 하는군.]
“군단장 주제에 시키는 대로 그냥 하지?”
[난 네놈의 종이 아냐. 그리고 지옥은 강자지존 아닌가?]
“그래서 해보겠다고?”
폴 막스의 눈에서 마왕의 권능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 구멍이나 좀 넓혀줘.]
“네놈이 스스로 나와. 난 갈 곳이 있어서 말이야.”
[아놔, 이건 네 권능이잖아!]
“왜? 나와서 한번 해보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빌어먹을.]
폴 막스가 주변으로 퍼져 가는 뼈다귀들을 바라봤다.
“이놈들이 날뛰면 중동에 있는 미군들이 본토로 움직일 거다. 할 일이 많다. 막시무스, 가자.”
“넵, 주인님.”
바닥에 시커먼 구멍이 만들어지더니 폴 막스가 그 아래로 사라졌다.
***
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시골 마을 앨라모고도의 서쪽에는 석고로 이루어진 사막이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핵폭발이 일어난 장소다.
사막과 앨라모고도 사이에는 미 공군 비행장이 하나 있었다.
홀로먼 에어포스 베이스라고 불리는 곳으로 폭격기의 기지로 활용되고 때로는 오래된 항공기나 표적기들을 보관하는 공군 기지다. 그중에는 스텔스 전폭기인 F-117도 있다.
그날은 특별할 것도 없는 햇볕이 반짝이는 따뜻한 오후였다.
군인들은 대부분 부대로 들어가 일을 하고 동네 놀이터에는 꼬마들이 놀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저게 뭐지?”
시커먼 뼈로 이루어진 시체가 달그락거리면서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였다가 그 수가 늘어나더니 어느 순간 수십 마리로 늘어났다.
아이들은 처음에 그게 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왈! 왈!”
아이들 옆에 있던 셰퍼드 종인 강아지, 맥스가 짓지 않았다면 말이다.
뼈다귀 하나가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낡은 칼을 맥스에게 휘둘렀다.
맥스는 그 녹슨 칼을 피하면서 뼈다귀의 팔을 물어뜯었다.
-와작!
뼈는 단숨에 부서졌다.
자신의 뼈를 개가 물고 가니 뼈다귀는 도리어 당황스러워했다.
-달그락.
“맥스 잘한다!”
“크르릉!”
맥스는 뼈다귀를 다시 공격했다.
시끄러운 소음이 일자 주변에서 뼈다귀들이 눈을 붉게 밝히며 몰려들었다.
뼈다귀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맥스에게 칼을 휘둘렀다.
“깨갱!”
용감하게 싸우던 맥스는 끝내 녹슨 검을 맞고 나뒹굴었다.
아이들이 놀라서 울음을 터트렸다.
“으앙!”
그 울음소리에 뼈다귀들이 눈이 붉게 물들며 아이들에게 달려들었다.
-달그락 달그락.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났고 뼈다귀들이 칼을 들고 쫓아왔다.
“아악!”
도망가던 아이 하나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뼈다귀들이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꼬마는 아픈 것도 잊고 뒤를 돌아보자 시커먼 칼날이 머리로 휘둘러지고 있다.
“엄마!”
-타아앙!
그때 총소리와 함께 칼을 휘두르려던 뼈다귀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톰! 어서 이쪽으로.”
저 멀리 군인들이 달려오면서 소총으로 뼈다귀들을 공격했다.
-바바바바!
바로 뒤에 스트라이커 장갑차까지 나타나 M151 RWS M2 중기관총을 발사했다.
시커먼 파편들이 날리면서 뼈다귀들이 부서져 나갔다.
“전부 부셔버려!”
잠깐 사이에 공군기지에서 AH-64 아파치 헬기까지 날아왔다.
공중에서 M230E1 30mm 체인 건이 발사되면서 뼈다귀 괴물들은 아무 힘도 못 쓰고 박살이 났다.
-콰가가가가!
뼈다귀들이 그냥 기관포에 갈려 나가면서 사라져 갔고 장갑차들이 돌진하며 뼈다귀들을 밟아서 박살 냈다.
계속 부수며 전진하다 보니 앨라모고도로 외곽에 있는 사막까지 오게 되었다.
사막에서 뼈다귀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것들의 정체가 뭐야?”
“어디서 오는 거지?”
미군들은 엄청난 화력으로 뼈다귀들을 부수면서 사막으로 전진했다.
그리고 그곳에 검은색 틈을 발견했다.
돌이나 바닥, 건물의 틈이 아니고 공중에 틈이 생겨 있었다.
폭은 1미터정도에 길이는 2미터 정도의 불규칙한 틈은 공중에 그냥 떠 있었다.
그 틈새로 계속해서 뼈다귀들이 나오고 있었다.
“놈들이 계속 나온다. 쏴!”
이유 같은 건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검은색 틈새에서 계속해서 뼈다귀들이 나왔다.
-바바바바!
삼각대형으로 떠 있던 3대의 AH-64 아파치 헬기가 공중에서 뼈다귀들에게 30mm 체인건을 마구 발사했다.
그리고 십여 대의 스트라이커 장갑차들이 M2 중기관총을 발사했다.
시커먼 뼈다귀들은 아무 힘없이 부서져 나나면서도 갈라진 틈새에서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이러다 끝이 없겠어. 저게 뭔지는 모르지만 저 구멍부터 부셔야 해.”
-콰아앙!
아파치 헬기의 옆에 달린 AGM-114 헬파이어가 발사되면서 뼈다귀가 튀어나오던 검은 틈새가 폭발했다.
-달그락, 달그락…….
폭발의 화염 속에서 또다시 뼈다귀들이 나타났다.
차원의 틈새는 헬파이어 미사일의 공격에도 멀쩡했다.
“계속 쏴!”
-콰아앙, 콰아앙!
헬파이어 미사일 말고도 공대지 히드라 로켓이 수도 없이 날아갔다.
화염과 폭발 속에서도 계속 뼈다귀들의 수가 늘어갔다.
“맙소사.”
아무리 공격해도 뼈다귀들은 계속 나왔다.
“총알이 이제 얼마 없어.”
“젠장, 여긴 다 떨어졌어.”
스트라이커 장갑차에 있던 군인들이 비어있는 탄약통을 흔들었다.
뼈다귀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미군들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총알이 떨어지면서 미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빠르게 후퇴하는 것뿐이었다.
“후퇴.”
그나마 남아있던 소총의 탄약들을 다 소모하면서 퇴로를 만들었다.
아파치 헬기들도 총알과 미사일이 떨어져 기수를 돌려 회항하는 상황이라 도울 수가 없었다.
-티잉!
그때 뭔가 장갑차의 표면을 때렸다.
“화살?”
21세기에 화살 공격이라니!
뒤이어 무수히 많은 화살이 하늘을 뒤덮으며 비처럼 쏟아졌다.
“으악!”
장갑차 밖에 있던 일부 미군 병사들이 화살에 맞으며 쓰러졌다.
스켈레톤 병사는 칼을 들고 단순하게 달려드는 녀석이다.
스켈레톤 아처는 아무 곳에나 활을 쏘는 녀석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뼈다귀들을 분류 할 수 있었다.
-쩌저저정!
그때 뭔가가 차원의 틈새를 통해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팔을 내뻗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각종 보석과 금으로 치장한 손인데 살은 하나도 없고 뼈만 앙상하다.
“크아앙!”
그리고 터진 포효에 달아나던 미군들이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끼기기긱…….
뼈가 갈리는 소리가 나면서 놈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틈새로 서서히 들어나는 놈의 얼굴!
보통 사람의 세 배나 큰 해골이다.
해골에 황금빛 왕관을 썼다.
그리고 하얀 수염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리치!
강력한 마법사가 불사의 욕망에 사로잡혀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바친 놈이다.
자신의 생명을 라이프 베셀에 넣어둠으로 육체가 썩어 사라져도 생명력만큼은 남아서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인간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말도 하고 사람 같지만 200년이 지나면서 말도 못 하게 되고 그냥 몬스터가 되어 버린다.
본능적으로 마법을 사용하지만 계산 능력이 없어서 그냥 마력을 내뿜는 수준이다.
그러나 위력은 7서클 마도사급!
“데스 라이어 볼!”
-콰아앙!
푸른 불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 후퇴하던 아파치 헬기를 때렸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산산 조각난 아파치의 파편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맙소사, 아팟치 헬기가 당했다.”
“도망가!”
-파작…….
미군들은 총알이 떨어져서 개머리판으로 뼈다귀 녀석들을 박살 내며 퇴로를 열고 있었다.
화살이 날아오고 화염 덩어리가 떨어져서 폭발을 일으켰다.
사방에는 무수히 많은 뼈다귀들이 몰려들었다.
-푹!
“크윽!”
사투를 벌이던 병사의 등으로 녹슨 칼이 찔러 들어왔다.
칼을 맞은 병사는 힘이 빠지면서 뒤로 밀려 엎어졌다.
쓰러지며 위를 보니 수많은 뼈다귀들이 붉은 눈을 하고 칼을 휘두르고 있다.
그리고 몰려드는 칼질!
피가 사방으로 튀는 가운데 죽어가는 병사의 눈에 느린 화면으로 하늘에서 뭔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A-10, 저 녀석의 별명은 썬더 볼트다.
A-10 전투기의 무서움은 GAU-8 개틀링포에 있다.
30mm 7연장 중기관포로서 크기만 자동차 하나 정도고 분당 4,500발이나 발사한다.
-뿌라라라!!!
특유의 소리가 들리며 GAU-8 개틀링포가 발사되었다.
주변이 완전 뒤집어질 정도로 30mm 개틀링포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수히 많은 로켓과 폭탄 공격이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폭발로 만들어진 자리를 빠른 속도로 시커먼 뼈다귀들이 메꿨다.
“너무 많아.”
엄청난 폭탄을 터트렸는데도 반딧불처럼 반짝이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