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미국의 국무장관 로버트 밥이 청와대에 도착하자 수많은 기자들이 자동차에서 내리는 로버트 밥을 카메라에 담았다.
“미국은 이번 괴물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시아에서 대한 제국을 중심으로 군사력이 재편되는 건가요? 말씀 좀 해 주시지요?”
“대한제국에 처음 오신 소감은 어떠십니까?”
기자들의 많은 질문 속에서도 로버트 밥은 입을 굳게 닫고 그냥 지나쳐 갔다.
청와대 입구를 지나자 양옆으로 얼룩무늬 국방색의 로봇이 세워져 있었다.
높이 10미터에 온몸이 기갑으로 둘러쳐져 있고 한 손에는 방패를, 반대쪽 손에는 기관포처럼 생긴 룬 플레이어건을 들었다.
“이게 문종이라는 기갑병기로군.”
전투에서의 활용도나 지상전에서의 활약을 볼 때 몇 세대나 뛰어넘은 무기다.
이런 무기가 대한제국에는 무려 600대가 넘게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런 무기를 기술 협약도 안 하고 미국에 제공하지 않다니 조그만 나라가 많이 컸군. 우리나라한테 사정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잔디 광장이 보였고 그 중심에 푸른 기와를 두른 청와대가 보였다.
“로버트 밥 국무장관님, 어서 오십시오. 대통령 비서실장 오만혁입니다.”
“박성규 대통령은?”
로버트 밥이 기분이 상한 투로 물었다.
미국의 국무 장관이 왔는데 직접 마중 나오지 않고 비서실장을 내보냈기 때문이다.
“지금 다른 나라의 정상들이 와 계셔서 회의장에서 기다리십니다.”
“어쩔 수 없지. 안내하게.”
로버트 밥이 인상을 구기며 오만혁의 안내를 받았다.
청와대 안쪽으로 들어가니 한국의 고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처마와 기둥, 화려한 장식들이 보였다.
“이쪽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청나게 커다란 회의장이 보였다.
너무 큰 크기에 로버트 밥이 신기한 듯 문 밖과 안을 바라봤다.
“이게 바로 공간 확장 장치로군.”
“그렇습니다, 장관님. 요즘 이것을 이용해서 1평 아파트가 유행입니다.”
“좁은 땅에서 살다 보니 별걸 다 하는군.”
로버트 밥의 말에 오만혁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러나 상대가 미국의 국무부 장관이다 보니 튀어나오려던 욕을 참았다.
‘이 개호로 똥구녕, 옥수수, 개나리야!’
많은 사람들이 둥근 테이블에 모여 있었다.
둥근 테이블의 앞에는 각국을 대표하는 대통령과 지도자들이 앉아 있고 그 뒷자리에는 실무자들이 자리했다.
“미국에서 로버트 밥 국무 장관이 도착했습니다.”
오만혁의 말에 사람들이 로버트 밥을 발견하고 인상을 구겼다.
왜 미국의 국무장관을 보고 인상을 구기는 걸까?
로버트 밥은 자리에 앉자 앞에 놓인 두터운 서류를 바라봤다.
[하프 프로젝트와 괴물 출현의 관계]
“뭐야, 이거?”
로버트 밥이 깜짝 놀라서 서류를 집어 들고 내용을 살펴봤다.
한 장 한 장 넘겨 볼 때마다 로버트 밥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중동에서 400만 명이 죽은 뒤에 괴물들이 튀어나오기까지의 에너지 상관관계와 그로 인한 여파들이 여과 없이 쓰여 있었다.
서류의 내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로버트 밥 장관은 입이 바짝 말라 물 한 잔을 들이켰다.
‘내가 왔는데 이런 허황된 자료를 내놓다니 겁을 상실했군.’
로버트 밥은 서류의 내용을 거짓이라고 믿기로 했다.
마음을 정리한 로버트 밥이 고개를 들어 회의에 참석한 각 나라들의 지도자들을 살피다가 맡은 편에 앉아 있는 붉은 머리 청년을 발견했다.
‘미래 그룹의 이성호 회장이로군. 그런데 그가 왜 이런 자리에 있는 거지?’
지금 모인 자리는 국가의 지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그런 곳에 일개 기업의 회장이 참석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때 박성규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회의 진행은 미래 그룹의 이성호 회장님께서 직접 하실 겁니다.”
그 말에 로버트 밥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성호가 둥근 테이블의 중앙에 나왔다.
“반갑습니다. 이성호입니다.”
성호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나서 주변을 둘러봤다.
러시아나 사우디, 일본과 중국, 주변에 있는 많은 나라들, 초 에너지 협력국들은 성호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국가들은 미래 그룹과의 협력이나 마나 무기 수입 때문에 성호 편을 들 것이다.
오직 미국의 로버트 밥만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성호를 노려보았다.
성호의 뒤에 거대한 지구본이 입체적으로 떠올랐다.
“뒤에 보시는 것은 일주일 전에 MOS 즉, 대한제국의 마나 관측 위성이 잡아낸 영상입니다. 위에 보시면 미국이 중동에서 군사 위성으로 인공 지진을 일으키는 것이 보일 겁니다.”
붉은색의 선들과 수치들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정리가 되고 미국의 하프 프로젝트 인공위성과 중동의 어느 도시를 비추었다.
막대한 에너지의 방출과 그로 인해서 오로라가 대기 중에 생기고 나서 9.5의 지진이 일어난 것을 보면 누가 봐도 미국이 인공 지진을 일으킨 것이다.
로버트 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 저 지진은 미국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악질 SLD을 공격하려다가 조절에 실패해서…….”
“입 닥치시오!”
사우디의 알사우드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를 냈다.
“저기서 죽은 우리 이슬람 형제들이 몇인지 아시오? 무려 400만이요. 400만!”
“그, 그것은 실수 아닙니까. 실수.”
한두 나라도 아니고 무려 64개나 되는 국가들이 미국에서 온 로버트 밥을 노려봤다.
“쩝,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이번 희생당하신 분들에 대해서 미국을 대표해 사과드립니다.”
본전도 못 건지고 로버트 밥이 자리에 앉았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되자 성호가 말을 이어나갔다.
“로버트 밥 국무장관님의 말씀처럼 그건 단순한 사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이 인공 지진으로 400만 명이 죽었습니다.”
성호의 말이 끝나자 로버트 밥은 침음성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이 많은 국가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미국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를 여과 없이 보여 주고 있다.
“문제는 그 뒤에 에너지들이 특정한 파장을 만들며 마셜 제도로 모여들었습니다.”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지구본에는 각종 수치로 에너지 파장의 이동을 자세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곳을 중심으로 괴물들이 튀어나왔습니다.”
성호의 뒤에 그때 나타난 괴물들의 시체와 그로 인해서 파괴된 도시들의 사진이 떠올랐다.
너무 비참한 장면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침음성을 내뱉었다.
“이 일로 단 하루 만에 270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건 인류 역사상 가장 빨리 사람들이 죽은 숫자입니다. 이는 인류의 존망을 위협하는 매우 심각한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성호의 뒤에 있는 지구본이 빙글 돌면서 어떤 숫자들을 만들어냈다.
숫자들이 모여서 지구 전체를 감쌌다.
“이 수치들은 오늘 아침에 받은 자료입니다. 이걸 보시면 괴물들이 튀어나왔을 때와 같은 파장이 아직도 지구 전체에 퍼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따라서 지구의 어떤 곳이든 괴물들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습니다.”
-웅성, 웅성…….
회의장은 또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이제 여기 모여 있는 65개국의 사람들은 모두 괴물들이 지구의 어떤 곳이든 갑자기 나타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저희 미래 그룹은 몬스터 방어를 위한 연합국에 한해서 다운그레이드 형이기는 하지만 마나 무기들을 수출할 계획입니다.”
성호의 말에 회의장이 더욱 술렁거렸다.
대한제국이 일본과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을 꼽자면 그 첫 번째로 마나 에너지를 이용한 무기를 꼽는다.
다운 그레이드 형의 무기지만 그것을 수입한 사우디는 침략한 SLD를 물리치는 기적을 만들었다.
“저희 대한제국과 함께하실 분이 계십니까?”
성호가 주변을 둘러봤다.
“나는 괴물들을 퇴치하기 위해 협력하자는 제안에 찬성일세.”
사우디의 알사우드 국왕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찬성했다.
그 뒤를 이어 독일과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이 찬성했다.
“러시아도 함께 하겠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번 사고의 원인 재공자인데 책임지는 차원에서라도 함께 안 하실 겁니까?”
러시아의 마브로스키 외교장관이 미국을 압박했다.
“마브로스키 외교장관님, 저는 이성호 회장이 보여준 자료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괴물들은 미국의 첨단 무기만으로도 막을 수 있습니다.”
“지구의 위기 상황인데 미국은 함께 하지 않겠다고요?”
“지금 지구방위본부나 우주방위본부를 만들자는 겁니까? 유치하게 초등학생들도 아니고 말입니다. 믿을 수 없는 자료도 그렇고 65개국이나 모여서 한다는 소리가 너무 유치한 거 아닙니까?”
로버트 밥이 주변을 둘러봤다.
옛날 같으면 모두 미국의 눈치를 보던 나라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미국이 약해졌기 때문도 있지만 대한제국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로버트 밥은 이 모든 상황이 불만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런 이름이면 좀 유치하군요.”
그때 중국의 주석인 칭융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 중국은 이 유치한 상황을 이해하시는군요.”
로버트 밥이 반기며 웃었다.
“몬스터 같은 초자연적 재난을 방어하는 뜻에서 Supernatural disaster Defense Union(초자연 재해 방어 연합국) 라고 부르는 것은 어떻습니까?”
“네?”
로버트 밥이 황당해하며 중국의 주석인 칭융민을 바라봤다.
“좋습니다. 줄여서 SDU라고 부르죠.”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
프랑스의 피용 대통령이 성호의 눈치를 본 뒤에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연합국인 SDU가 만들어졌으니 대표를 뽑도록 하죠.”
사우디의 알사우드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누가 대표가 되는 게 좋겠습니까?”
사람들이 대표를 뽑는 이야기로 넘어가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고민을 했다.
무려 65개국이나 모여 있는 연합군을 이끌 수장을 뽑는 거다.
“전 이번에 저와 함께 온 미 합참의장을 지낸 던퍼드를 추천합니다.”
로버트 밥은 군사적인 협력국인 만큼 미국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이번 SDU에 가입 찬성부터 하시죠?”
러시아의 외교부 장관인 마브로스키가 피식 웃으면서 조롱했다.
“저는 미래 그룹의 이성호 회장을 추천합니다.”
마브로스키가 성호를 강력 추천했다.
“중국은 대 찬성입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도 찬성입니다.”
그러자 중국의 칭융민과 일본의 가이치 총리, 러시아가 찬성했다.
“아니, 기업의 회장이 뭘 안다고 국가 간의 군사 연합의 대표가 됩니까?”
로버트 밥이 황당해하면서 말했다.
“말을 삼가 하시죠.”
그때 박성규 대통령이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말이 틀렸습니까? 미래 그룹의 이성호 회장은 나이가 22살밖에 안 된 애송이일 뿐입니다.”
“말을 삼가시죠. 그 애송이가 대한제국의 황제 폐하십니다.”
“네?”
로버트 밥이 황당해하면서 물었다.
“아직 공표하지 않았지만 대한제국의 황제로 대관식을 준비 중입니다.”
박성규가 성호를 바라보면서 한쪽 눈을 깜박였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성호 황제 폐하!”
“그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성호에게 몰렸다.
여기서 거절하면 박성규 대통령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다.
“에효. 맞습니다.”
성호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미국의 국무장관에게 모여졌다가 다시 박성규 대통령에게로 돌아왔다.
“여러분들은 갑자기 미래 그룹의 이성호 회장이 황제라고 하니까 의문이실 겁니다. 아직 대관식을 하지 않아 공표하지 않았지만 여기 계시는 이성호 님은 사실 조선시대 순종 황제의 자손이십니다.”
“기업의 회장이 황제라니 말도 안 됩니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국제적 결례임에도 로버트 밥이 경악하며 말했다.
“근거 자료야 제가 청와대 사이트에 올릴 겁니다. 거기다 대관식도 준비 중인데 대한제국의 대통령인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대한제국의 대통령까지 저렇게 나와서 이야기하니 안 믿을 수가 없다.
“오늘 회의를 주최하신 분도, 대한제국을 대표하실 분도 이성호 황제 폐하십니다. 전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 이성호 황제 폐하가 SDU의 수장이 됨을 적극 추천합니다.”
미국의 로버트 밥 국무장관은 지금 입이 바짝 말라갔다.
이렇게 되면 SDU라는 몬스터 방어 연합국이 바탕이 되어서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중동의 영향력이 대한제국을 중심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런 것에 찬성하고 가입하는 것은 미국과 로버트 밥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저희 미국은 괴물이 나타나면 스스로 물리칠 능력이 충분히 있습니다. 따라서 SDU에 가입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SDU에 가입하지 않기로 했으니 여기에 더 있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전 본토에 일이 많아 먼저 가겠습니다. 그럼 이만.”
로버트 밥이 얼굴을 붉히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 청와대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를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쉬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