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일요일 저녁,
-소울의 울림, 애델이 한국에 오다!
서울종합운동장 앞에는 이미 애델의 팬들이 줄을 서고 공연을 기다렸다.
무려 7만 명이 애델의 티켓을 샀다.
성호는 청바지에 회색의 티셔츠, 긴 재킷과 모자를 쓰고 나왔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는 요즘 필수품이다.
“성호, 먼저 와 있었네?”
“어서 와. 많이 안 기다렸어.”
“오, 정답!”
이게 왜 정답일까?
수지는 1월의 추운 날씨 때문인지 코트를 입고 나왔다.
“그건 그렇고, 잠깐 일하러 들릴 때가 있는데 같이 갈까?”
“그래? 일이라는데 내가 가도 돼?”
“그럼, 그리 중요한 건 아니고 미래 그룹에서 이번 애델 공연을 협찬했는데 내가 인사차 들려줬으면 한다는 요청이 왔어.”
“설마! 애델을 직접 보러 가는 거야?”
“응.”
“대박!”
“같이 갈 거지?”
“당연하지!”
수지는 평상시 어른스럽다가도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흥분한다.
“회장님, 이쪽입니다.”
최태욱 실장이 길을 안내했다.
서울종합운동장의 내부로 들어가서도 한참을 걸어서야 애델이 대기 하고 있는 룸까지 올 수 있었다.
대기실 앞에서 성호는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를 벗었다.
-똑똑.
“Come in.”
(들어와요)
안에 들어가니 대기실에는 작은 무대가 만들어져 있었고 애델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방금 연습 삼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나 보다.
“Nice to meet you. I‘m Edel. Lee Sung-ho, right?”
(반가워요. 애델입니다. 이성호 회장님이죠?)
“Good to Miss Edel. That's right. I'm Lee Seong-ho.”
(애델양 반가워요. 맞습니다. 제가 이성호입니다.)
강한 영국식 발음을 성호가 똑같이 발음하자 애델이 눈에 이채가 띄었다.
물론 통역 마법의 효과다.
“런던 특유의 발음을 아주 잘 내시는군요.”
“조금 공부했을 뿐입니다.”
“회장님께서 이룩하신 놀라운 사건들을 영국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영국에도 핵융합 발전소를 지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수지도 영어를 조금 할 줄 안다.
그러나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언제나 우상처럼 생각하던 애델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큰 위로가 되었던 노래를 부른 사람이 바로 애델이다.
그런 그녀가 눈앞에 있으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여기 숙녀분은?”
“제 여자 친구입니다.”
“오! 미래 그룹의 회장님의 피앙세군요.”
애델의 피앙세라는 말에 얼굴이 붉어진 수지다.
“안녕하세요. 한국대 경영학과 1학년인 김수지입니다.”
“반가워요. 김수지 양.”
“전 어려서부터 애델의 팬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었죠.”
“오, 그래요 고마워요. 그럼 오늘 수지 양과 이성호 회장님을 위해 제가 노래 선물 하나 하죠. 공연까지는 1시간 넘게 남았으니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밝게 웃은 애델이 마이크를 잡고 감성을 잡기 위해 특유의 고갯짓을 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반주가 시작되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정말 깊은 곳의 감성을 울리는 목소리였다.
꼬물거리는 수지의 손을 성호가 꽉 잡아 주었다.
수지는 성호의 귀에 대고 말했다.
“나 꿈을 꾸는 거 같아. 애델이 이렇게 우릴 위해 노래를 불러주다니.”
수지는 애델의 노래에 맞추어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평상시 얼마나 많이 불렀는지 모른다.
“수지양도 그렇게 흥얼거리지만 말고 같이 불러요. 제 노래 알죠? 이리 와요.”
애델이 손짓하며 무대 위로 불렀다.
“아! 네…….”
아주 작은 무대에 선 두 사람.
반주가 지나가는 순간 애델과 수지의 눈이 마주쳤다.
수지가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두세 번 하더니 애댈과 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수지의 목소리에 애델의 눈이 한자만큼 커졌다.
이 목소리, 이 감성, 이 울림!
그녀였다.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
자신이 대한민국에 온 이유!
수지는 애델이 노래를 멈춘 지도 모르고 눈을 감고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천상의 천사 같았다.
노래가 끝나고 눈을 뜬 수지가 애델을 바라봤다.
‘왜 안 불러요?’
눈에 그려진 수지의 뜻을 읽은 애델이 밝게 웃었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 데뷔했던 시절처럼 너무 순수했다.
애델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 노래 중에 ‘너에게 미쳐 있어.’, 알죠?”
“네.”
애댈의 말에 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아노 반주가 약간 단순해지며 노래가 시작되었다.
둘의 음악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노래를 듣는 모든 사람은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
노래가 끝났다.
그 여운을 삼키고자 애델과 수지, 그리고 성호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매니저와 주변에 있던 스텝들은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짝짝짝!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수지 양! 나와 같이 무대에 서 줘요.”
“네?”
애델이 수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반대로 노래를 취미로만 했으면 했는데 이 큰 무대에서 같이 부르는 순간 세상의 이목이 집중될 거다.
그러나 정말 간곡하게 부탁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수지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수지 양이 거절하면 저 울어 버릴꺼에요.”
수지는 잠시 망설였다.
영국의 최고의 가수라는 애델과 한 무대에서 놀래를 부르는 건 영광이었지만 또한 부담이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수지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할게요. 같이 부를 수 있어 영광이에요.”
“제가 더 영광이죠.”
“그런데, 제 본명과 얼굴을 가렸으면 해요. 가면 같은 걸 쓰고 나가면 안 될까요?”
“물론 되고말고요.”
애델은 알고 있었다. 이 젊은 여성 보컬의 힘을 말이다.
아마 그동안 세상에 나온 모든 가수들을 씹어 먹을 거다.
새로운 전설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그럼 이제 세계를 놀라게 해 볼까요?”
서울종합운동장 안에는 이미 7만 명이 애델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앙에 거대한 무대가 만들어지고 오케스트라를 생각나게 할 정도의 밴드들이 자리했다.
한가운데에 조명 한줄기가 비치고 그녀가 올라왔다.
-와아아아!
엄청난 함성이 서울종합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피아노 반주가 천천히 연주되고 애델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의 최고의 히트곡 ’모두 널 좋아해‘가 흘러나왔다.
7만 명의 모든 사람이 그녀의 매혹적인 목소리에 숨을 죽였다.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의미를 전해 주기 위해 8개의 방향에서 입체적으로 한글 자막이 떠올랐다.
그 뒤로 30분 동안 애델의 히트곡인 ‘당신 마음에 내 사랑을 만들겠어.’, ‘비가 내 아픈 마음에 내려’, ‘계속해서 널 생각하며’ 등이 이어졌다.
-와아!
애델은 작은 테이블 위에 있던 물을 들어 목을 축이고는 방청석을 둘러보았다.
그녀를 중심으로 360도 전체가 방청석이다.
“오늘 전 한국에 와서 너무 기쁩니다. 여러분을 만나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아!
애델이 뒤를 돌아보고 손짓했다.
“여러분들에게 소개할게요. 제가 그동안 찾아 헤매던 동영상의 주인공, SJ입니다.”
무대 아래에서 그녀가 서서히 올라왔다.
그녀는 검은색 드레스에 눈만 가린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오!”
“우와!”
여기 모인 대부분은 애델이 한국에서 이 여성 보컬을 얼마나 찾았는지 알고 있다.
콘서트 매인 공지에 떠 있는 그 동영상.
영상은 멀리서 찍어 엉망이었지만 노래 실력만은 최고였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영혼을 울리는 감성을 지녔다.
“오늘, SJ와 같이 듀엣으로 노래를 부를 겁니다. 괜찮죠?”
“좋아요!”
“와아!”
“듣고 싶어요!”
모두들 애델과 한국의 이름 모를 여성 보컬과의 무대를 기대하고 있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수지와 애델의 눈이 마주쳤다.
기타가 먼저 연주되고 애델이 파워풀한 목소리로 먼저 시작했다.
두 소절이 지나자 수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터져나간 목소리!
수지의 맑고 파워풀한 목소리에 사람들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파워와 감성을 모두 가진 목소리!
그것이 바로 수지의 목소리였다.
-와!
둘의 목소리는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영혼을 울리는 감성은 비슷했는데 애델은 묵직했고 수지의 목소리는 시원했다.
드럼이 연주되기 시작하면서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갔다.
폭발적인 가성이 터져 나가고 둘의 감성이 섞이면서 엄청난 파워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음악이 끝났지만, 관중들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귀가, 마음이 다음 곡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이 환상의 듀엣은 마약과도 같았다.
음악이 끝났는데도 사람들은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러분, 오늘 저는 SJ와 함께 한 공연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요. 마지막 무대는 그녀에게 양보하려고 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괜찮죠?”
-와아!
그냥 보통 실력이었다면 애델의 곡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뛰어난 음색에 마음이 절로 움직였다.
-SJ!, SJ!, SJ!
“그녀가 부를 곡은 ’너와 내가 어렸을 때’에요.”
노래의 제목을 부르고는 애델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관중석으로 내려갔다.
저 털털함이 그녀의 또 다른 매력이다.
간이 의자에 앉은 애델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나도 관중이 되어 그녀의 노래를 듣겠어요.”
자신도 하나의 관중으로 감상하겠다는 의지였다.
-파박…….
모든 조명이 꺼지고 수지 혼자 무대에 섰다.
떨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 떨림을 애써 눌렀다.
그리고 눈을 뜨자 저 멀리 그가 보였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단 하나.
아무렇게나 기른 붉은 머리카락, 순수해 보이지만 세상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슬픈 눈.
한눈에 반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을 한 번도 전한 적 없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가 거기 있었다.
-모두가 네가 하는 모든 것을 사랑해
-너의 말부터 너의 움직임까지
수지의 목소리가 서울종합운동장에 울리자마자 사람들은 벌떡 일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깊은 저곳에서 어떤 느낌이 올라왔다.
-너의 모든 것은 영화 같았고 너의 목소리는 한편의 노래 같았어.
따뜻하고, 그립고, 보고 싶은 그 느낌!
그 울림에 울컥하고 눈물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터져 나온 고음 파트!
-내가 널 만났던 그때…….
음악이, 아름다운 목소리가 끝났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작은 불빛만이 남았다.
거대한 영혼을 울리는 감정이 공연장을 잠식했다.
“와아!”
나중에서야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한동안 아무도 공연장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최고의 공연이었다.
-대한민국에 세계적 보컬 탄생하다.
-애델이 감탄한 그녀는 누구인가?
언론사들이 이 공연을 대서특필했다.
-내내 울었다.
-아직도 나 공연 생각만 하면 눈물이 흘러나와.
-그런데 SJ, 그녀는 누구지?
모든 사람이 SJ라는 닉네임의 여성 보컬의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애델의 공연 중 부른 그녀의 ‘너와 내가 어렸을 때’는 각종 매체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끌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녀를 그렇게도 궁금해할 때, 그녀는 사랑하지만 아직은 남자친구인 그와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런 무대에서 내가 노래를 하다니 아직도 떨려.”
“네가 애벨 보다 더 잘 부르더구만.”
“말도 안돼, 성호 너 한 번만 더 놀리면 죽어!”
“아까 날 보면서 부르던데?”
“그...그건, 그냥 아는 사람이 너뿐이잖아! 오해 하지마! 아직 우린 사귀는 거 아니라고!”
수지의 입은 쉬지 않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녀의 이 푼수 같은 모습은 영화 같았고 이 쾌활한 목소리야말로 한편의 노래 같았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성호가 밝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