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북한의 기갑사단이 휴전선을 넘어서 파주시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막는 대한민국의 군부대가 없었다. 북한군이 내려오는데 아무도 막는 것이 없으니 내려오는 북한군도 이를 놔두는 남한군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미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니 그냥 두고 보기만 했다.
엄청난 장갑차들의 행렬 뒤에 북한의 미사일 부대, 포병들이 줄지어 따라 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뒤에서 쫓아오는 보병과 장갑차의 전력은 대부분이 남침 시에 가장 먼저 돌격했어야 하는 북한의 제1군단이었다.
봉서리에서 월롱면으로 지나가는 1번 국도를 지나가는 그들의 눈에는 대한민국이 신기해 보였다.
전에 선전교육으로 듣던 오해들이 깨져 나가며 당혹해하고 있었다.
파주시로 들어가기 직전, 월롱면을 지나면서 북한의 선군호 전차들 앞으로 대한민국의 경찰차가 호위하듯 달리고 있었다.
무려 20대가 넘는 경찰차들이 나타나 북한군을 호위했다.
북한군은 엄청나게 자존심이 강하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군인들이 호위한다고 했다면 결사반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반 경찰 호위 차량을 붙여 주었다.
어차피 주변에 대한민국 군부대와 서로 연락하면서 이동 중이고 이미 비상 대기 중이니 경찰이 호위하나 군이 호위하나 별 의미는 없었다. 현대전에서 거리는 별로 큰 의미는 아니니까 말이다.
“뭐이네 이거, 남조선이 이렇게 잘 살았네?”
“대단 하구만 고저, 저거이 보라우 집들마다 전부 전기를 쓰고 있어야.”
북한은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큰 도시가 아니면 시간을 정해서 전기가 나온다. 그 시간이 너무 적어 어떤 곳은 전차에 달린 배터리를 사용하기도 한다.
“옆에 지나가는 자동차들 보라우. 여기만 이렇게 많이 다니는 거 아니네?”
“기갑장 중좌 동지가 그러는데 여기는 남조선에서 차가 별로 없는 지역이라고 했시오.”
“뭐?”
그들이 파주시에 들어서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청나게 발전한 대한민국에 입을 다물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서울에 가서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정지!”
대한민국의 경찰 차량에서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자 북한의 기계화 부대들이 줄지어 멈춰 섰다.
비록 대한민국의 경찰이지만 지금은 자신들을 인도하고 있기에 명령을 받았다.
“어떡하지?”
파주시의 입구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그들의 표정이 진지한 것을 보면 환영 인파는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수천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명의 할아버지가 앞장서서 나섰다.
박재식 할아버지. 이 동네에서는 유명 인사다.
박재식 할아버지의 아들은 제1 연평해전 때 참수리 325호정에서 복무하고 있다가 전사했다.
그러나 당시 연평해전은 월드컵 경기로 인해 쉬쉬하며 넘어갔다.
이를 두고 매일 같이 시위하던 할아버지로 유명했다.
그 뒤로 보이는 천명은 되어 보이는 인파.
여기서 북한군과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상상하기도 끔찍한 사고가 난다.
모두 다 검은색 옷에 가슴에는 하얀색의 리본인 상장을 달았고 왼팔에는 삼베로 만든 완장을 차고 있었다.
팔에 찬 완장에는 줄이 두 개 그려져 있었는데 이는 죽은 사람의 직계 가족이라는 뜻이다.
파주시에서 북한군이 가는 길을 막은 많은 사람 대부분이 이런 복장이었다.
-터벅터벅.
힘없는 걸음으로 걸어오는 할아버지가 입는 옷은 장례식장에서 상주들이 입는 그런 옷이었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십니까? 그리고 저분들은 뭐고요?”
북한군을 호위하던 경찰이 할아버지를 막고 물었다.
“여기 북한군은 누가 지휘하나. 만나 봐야겠네.”
“저기……. 할아버지,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일 터지면 큰일 나요.”
“나는 꼭 만나야겠네.”
할아버지의 단호한 음성에 북한군을 호송하는 일에 투입된 서문열 경감은 당황스러워했다.
북한군이 자존심이 강해서 대한민국의 다른 군부대의 지시를 받기를 꺼릴 정도다.
서로 적대하며 지낸 기간만 무려 70년이다.
그런 취지에서 경찰이 인도하게 되었다. 이미 무전이나 통신으로 가까운 군부대와 수시로 열락을 하고 있지만, 긴장의 연속이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달라서 국민이 우선이지만 북한은 절대 아니다.
“무슨 일이요? 남조선 동무.”
BTR-80 차륜식 장갑차에 타고 있던 북한군 한 명이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바퀴가 양쪽에 4개씩 달린 BTR-80 차륜식 장갑차는 수륙양용 장갑차지만 수 천대나 보유하고 있어 이번에 대한민국에 갈 때 가져온 것이다.
“이분들은 지금까지 연평 해전 때문에 희생된 분들의 가족들입니다. 북한군의 지휘관을 만나겠답니다.”
“진작에 말하디 그랬시요, 어이 거기 무전병! 날래 815 전차 군단장 동무에게 무전하라우, 여기로 오셔야 된다고 하고 말이디.”
“알갔습네다.”
북한군들은 이번에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엄청난 경고를 받고 내려왔다.
북한은 이미 김성은이 죽고 나서 내전에 휩싸였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까지 쳐들어오고 평양에서 내전이 일어나면서 거의 망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을 대한민국이 도와주면서 평양의 내전도 끝내고, 중국의 군대도 몰아냈다.
그리고 그날 봤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군의 벼락과 도깨비불들을 말이다.
그런 무기가 있으니 북한을 차지해도 되건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들을 도와주었다.
원수를 은혜로 갚았으니 상황을 아는 자들은 남한에 대한 인식이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 북한의 모든 군사력을 움켜쥐게 된 김승철 상장이 남한에서 일 터트리면 다 쏴 죽이겠다고 엄포를 논 상황이라 큰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끼익.
북한이 지휘용 차량으로 사용하는 BTR-40 지휘관용 장갑차가 달려왔다.
BTR-40은 어떻게 보면 지프차와 비슷해 보였지만 앞부분이 농사지을 때 사용하는 트랙터 같이 생겼고 방탄으로 된 작은 창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붕은 대부분 그냥 천막으로 덮어서 사용하는데 공중에서 공격이 오면 방어 수단이 거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단점이 많아 구소련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장갑차이다.
그래서 북한에 팔아넘겼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네?”
“군단장 동지 어서 오시라요.”
주변에 있던 북한군들이 그가 나타나자 차렷 자세로 절도 있게 경례를 했다.
이를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그가 책임자임을 알아보고는 다가왔다.
“당신이 북한군의 지휘관이요?”
할아버지가 앞으로 나서면서 말을 꺼냈다.
표정이 워낙 심각해서 815 전차 군단장도 얼굴이 굳었다.
여기서 이들이 시위하면 오도 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거기에다가 시위대들이 북한군을 공격이라도 해서 반격을 하는 날에는 진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무슨 일입네까?”
“여기 모인 사람은 당신네 북한이 그동안 일으킨 공격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당신네를 용서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보복을 하거나 사과를 받으려고 여기 모인 것도 아닙니다.”
“그라믄 여기 왜 오셨소?”
“우리는 조용히 길을 비켜 주지만 당신들이 지나가면서 우리를 보고 기억하길 원합니다.”
“뭐를 말입네까?”
“평화는 우리네 같은 사람의 아픔을 덮어야 생기는 것임을 말입니다. 그걸 기억하기 원합니다. 우리 민족이 서로를 원수로 보고 다투던 것을 덮기 전에는 평화가 없기에 우리가 먼저 덮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먹고 살기 힘들었고, 미제 앞잡이를 잡아 죽여야 이 굶주림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으니 뭔가 울컥했다.
“할아바이 동무의 말을 들으니끼니 뭔가 알 것 같습네다. 솔직히 우리네 북한군들도 남조선 사람에게 분노를 가지고 있습네다. 그거이 어떻게 하루아침에고쳐지갔습네까? 그런데 오늘 여기 모인 남조선 동무들의 마음과 뜻이 이리 크니 놀랐습네다. 우리네가 먼저 죄송하다고 했어야 합네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소.”
“할아바이 동무, 혹시 근조기 같은 것 또 있습네까?”
근조기는 장례식 또는 조문 행사에 사용되는 깃발이다.
“뭐에 쓰시려고 그러시오?”
“우리 목적지가 부산입네다. 그곳까지 근조기 깃발 달고 가갔시요. 미안한 마음 어찌 다 표현 하갔습네까마는 이렇게라도 해야갔시요.”
“고맙습니다.”
북한군이 파주시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양쪽 길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북한군들은 그들에게 군인으로서 경례하고 있었다.
장갑차의 가장 선두에는 검은색의 근조기가 달려 있었고 이 장면이 대한민국 전체에 생방송 되고 있었다.
엄청난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에 대해서 감탄하던 그들이지만 이제 아무 말 없이 경례하면서 전차를 몰고 있었다.
검은색의 상복을 입은 대한민국 시민들이 거리서 마냥 울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누구도 말을 하거나 또는 화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묵묵히 파주시를 통과하는 북한군에게 평화는 말이 아닌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 희생이 분노와 원망으로 갈 때는 절대로 평화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용서.
그것을 성호의 노예들이 보여 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평화는 많은 희생과 아픔을 덮고 서로를 용서하기 전까지는 이뤄지지 않는다.
***
울산에 있는 한진 조선.
5년 전에 경제 위기로 문을 닫은 조선 업체인데 아직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없는 곳이다.
성호는 해군 참모 총장 최진철의 부탁으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이번에 보국훈장도 받으면서 이 계급 특진한 걸 축하하네. 이제 이성호 대위인가?”
북한의 내전, 그리고 중국과의 전쟁에 마나 에너지를 이용한 무기들이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면서 이 계급 특진하게 된 것이다.
“전역까지 1년 남았습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성호 대위, 진급도 빠른데 그냥 군대에 말뚝 박는 건 어떤가?”
“제가 미래 그룹 회장인 걸 가끔 깜박하시는 것 같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현역 제대하는 기간에만 복무하겠다고 김동선 합참의장님과 약속했습니다.”
“쩝, 아쉽군.”
최진철은 성호를 허름한 조선소의 배를 만드는 도크로 데려갔다.
유조선이나 컨테이너선을 제작하던 곳이라 커다란 도크가 두 개나 있는 곳이지만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았는지 녹이 슬고 먼지가 가득했다.
“이게 항공모함이 될 뼈대일세.”
“저건 유조선 아닙니까?”
그곳에는 길이 580미터짜리 거대한 유조선이 만들어지다 말고 폐기되어 있었다.
“그래 보이나? 잘 보게. 겉에 붙은 철판을 보지 말고 빼 대만 보면 뭔가 감이 안 오나?”
“유조선이 항공모함이 될 수 없다는 건 잘 아시죠?”
“알지, 용골이 버티지 못하고, 자이로를 이용한 항공기 이착륙도 안 되고, 함재기 및 각종 무기들의 무게도 못 버티지. 그러니까 뼈대만 보라고.”
성호는 최진철의 말대로 폐기 직전의 유조선의 뼈대만 자세히 봤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용골 모양이 약간 이상했다.
원래 유조선은 앞뒤로 엔진이나 설비가 들어가고 중앙에 오일 탱크가 있기에 중심을 중앙에 두지 않는다.
오일이 없으면 중심을 맞추기 힘들기 때문에 바닷물을 넣어서 수평을 맞출 정도다.
그러나 항공모함은 자이로를 이용한 균형 잡는 것부터 빠른 항해, 그리고 넓은 갑판을 위해 모양 자체가 달라진다.
핵추진 항공모함의 경우 무거운 원자력 발전기를 달기 위해 중앙의 용골이 엄청 단단하게 지어진다.
“저건?”
“그래, 내가 5년 전에 몰래 숨겨 둔 항공모함의 뼈대일세.”
“그것도 하부 뼈대만 있군요.”
“그렇지, 저건 하부고 그 위에 비행갑판을 버티는 베이스가 올라가고 그 위로 비행갑판, 함교가 올라가지.”
지금 보이는 부분만 580m 길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커지면 문제가 많다.
크기는 곧 많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는 매우 느린 항공모함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 된다.
현대전에서 느린데 크기까지 크면 표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크게 만든 겁니까?”
“남자들의 로망이지. 큰 배! 껄껄껄”
이 바보 같은 사람이 해군 참모 총장이라니.
“농담일세. 솔직히 이렇게 크게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게 아니라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지.”
최진철의 말은 이랬다.
5년 전, 처음 항공모함에 대한 예산을 따낼 수가 없자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친구 녀석이 운영하던 한진 조선이 망하게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친구를 만나서 술 한잔 걸치다가 항공모함 이야기가 나왔는데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한다.
“항공모함?”
“그래 이 친구야. 항공모함만 있으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빌빌거리겠어?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꼭 만들어질 거고.”
“그래? 그럼 이 친구야, 어차피 이놈의 한진 조선은 망하게 생겼으니 보험 하나 들도록 하지.”
“무슨 보험?”
“지금 우리 조선소에 이제 막 만들려던 수출용 유조선이 하나 있어.”
“그게 왜?”
“그거 수주한 회사가 이미 망해서 돈 받을 때가 없거든.”
“유조선으로 항공모함 만들려고? 유조선이랑 항공모함은 다른 거 알지?”
“당연히 알지. 이래 봬도 항공모함 만드는 미국의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 있었으니까 잘 알지.”
미국의 버지니아주에 있는 뉴포트 뉴스 조선소는 550에이커의 면적을 가지고 있고 900척 이상의 군함과 선박을 건조했다.
특히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CVN-76)과 최신의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CVN-78)가 이곳에서 건조되었다.
“그럼?”
“크기는 좀 커지겠지만 유조선으로 위장해서 뼈대를 미리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좋지 않을까? 나야 어차피 망할 거 빚을 더 지지 뭐.”
“자네는 나중에 항공모함 예산이 나오면 그때 돈을 받고?”
“그렇지.”
그 뒤에 친구는 빚 때문에 재판을 받고 아직 교도소에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이 거대한 항공모함 뼈대가 만들어진 유래라고 한다.
듣고 있으니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친구와의 거래니까 군 비리 아닌가?
나라를 위해 빚까지 지고 감옥에 갔으니 애국자인가?
모르겠다.
“최진철 참모 총장님, 그래도 그렇지 저건 너무 큰 거 아닌가요?”
“모르는 소리! 항공모함이 커지면 좋은 점이 세 가지일세. 첫째, 항공기를 많이 실을 수 있고. 둘째, 무기와 연료를 많이 실을 수 있지. 마지막으로 방어력 향상과 항해 안전성이 뛰어나게 되지.”
일리는 있다.
일단 항공모함의 기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재기에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함재기에 사용될 원료와 무기를 많이 실어 나를수록 작전 능력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
크기가 크니 운행의 안정성뿐만 아니라 미사일 한두 발로는 가라앉지도 않을 거다.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너무 커서 표적이 되는 문제는요? 느려 터져서 도망도 못 갈 텐데 말입니다.”
“크크크, 자네가 있지 않은가! 그 보호막에 투명화 장착해 주게!”
“끄응.”
그렇다 기적을 일으키는 대마법사 회장님이 여기 있다.
보통 항공모함의 3배에 달하는 크기다.
미래 중앙 연구소의 강동민이 이 소식을 들었으면 아마 최진철 해군 참모 총장의 멱살을 잡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