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미래 전자의 엄청난 성장세에 수지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파이널 상사는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달 매출이 천만원을 넘기지 못하던 회사가 지금 100억 넘게 순수익을 챙기고 있었다.
하지만 파이널 상사의 외동딸 수지는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잘나가니 수지의 삶도 나아졌지만, 수지는 요즘 걱정이 한가득하다.
‘자유롭고, 잘생기고, 멋진 남자 친구.’
그냥 ‘남자, 사람, 친구’라면 좋겠지만 점점 마음이 빠져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남자 친구가 너무 잘났다.
자신은 서민일 뿐인데 남자 친구는 재벌이다.
그것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유명인이기도 했다.
‘이제야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자신의 남자 친구가 미래 그룹의 회장님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제일 놀라운 것은 그가 하는 모든 일이다.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놀라웠다.
‘성호를 좋아하긴 하지만 부담스러워.’
남자 친구가 잘되니 기분이 좋았지만 그만큼 부담도 커졌다.
침대 위에서 멍하니 성호를 생각하고 있자, 갑자기 그가 궁금해졌다.
‘그룹의 회장님은 이 시간에 뭐 하고 계실까?’
수지는 재빨리 깨톡을 보냈다.
[뭐해?]
[네 생각.]
[정답.]
단번에 정답을 맞힌다.
역시 내 남자 친구는 너무 잘났다.
뿌듯하게 웃고 있으려니 깨톡이 또 울린다. 성호다.
[수지야, 나와.]
[응?]
[집 앞이야.]
[!]
이건 별로 안 반갑다.
여자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지 이 친구는 잘 모르는가 보다.
[조금만, 아주 조그음만 기다려, 진짜 쪼오오오그음만…….]
글자가 늘어난다고 준비할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다.
[…….]
급하게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수지야, 여기야.”
그런데 왜 내 남자 친구는 저 낡은 아펜테에 타고 있는 거지?
미래 그룹의 회장이라며?
상관은 없었다.
수지에게는 성호가 미래 그룹의 회장이라는 것도,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도 상관은 없었다. 그냥 그 처음 자신의 음악에 박수를 쳐주며 웃어주던 그 마음이 좋았다.
낡은 차라 약간의 덜덜거림이 느껴졌지만, 하여튼 수지는 성호와 함께 있는 게 좋았다.
“너 회장님이라고 잘난 체 하면 안 된다.”
“어? 어…….”
저 멍청한 표정을 보니 절대로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미안. 내가 괜한 소리를 했네.”
성호는 최태욱의 말이 떠올랐다.
[여자는 명품 가방이나 자동차를 사줘야 좋아하는 법입니다.]
최태욱의 연애론은 이제 안 믿기로 했다.
“내가 잘 아는 카페가 있어. 거기 가자.”
“그래.”
둘은 드라이브를 즐겼다. 차가 좀 낡아서 덜컹거리는 것도 낭만이고 추억이다.
도시 외곽으로 나갔다.
행주산성을 지나 ‘오페라’라는 카페에 차를 세웠다.
수지가 방방 뛰면서 먼저 커피숍으로 올라갔다.
성호는 선글라스에 붉은 머리카락이 보일까 봐 모자까지 쓰고 나서야 수지를 따라 들어갔다.
“꽤 좋네.”
내부는 붉은 타일 바닥에 깔끔한 장식으로 꾸며 놓았다. 메뉴판을 보니 모르는 이름투성이었다. 그동안 식모살이만 하던 성호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에스프레소 정도였다.
점원이 계산대 앞에서 망설이는 성호를 보고는 먼저 말했다.
“뭘 드릴까요?”
그에 성호가 당황해하면서 수지를 바라봤다.
“네가 먼저 골라.”
“음……. 저는 딸기 프라페 주세요.”
“네. 딸기 프라페 하나요. 손님은 뭐로 하시겠어요?”
“저도 같은 거로 주세요.”
성호가 당당하게 말했다.
“너도 프라페 좋아해? 이거 엄청 단데…….”
“직접 주문하는 게 처음이라…….”
“풋, 이것도 처음이네.”
“항상 처음 하는 건 같이 하기로 했으니까.”
“푸웃……. 너도 가끔 보면 귀여운 데가 있어.”
미래 그룹의 회장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수지가 유일할 거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고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이 바로 여자다.
그리고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남자다.
성호와 수지는 창문가에 앉아서 밖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언젠가 내가 미래 그룹의 회장이라 힘든 일이 생길 거야.”
“난 괜찮아. 네가 그룹의 회장이든, 거지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렇지,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한 번 더 말하는데 우린 아직 사귀는 게 아니야. 아직은…….”
“어? 어…….”
수지는 당황스러워하는 성호의 저 순수한 모습이 좋았다.
거대한 그룹의 회장이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은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
‘허락해 버리면 막 빠져들 거 같단 말이야.’
***
드디어 미래 그룹의 세 번째 제품인 힐러가 출시되었다.
한국 대학 병원에서 출시 기념으로 기자 회견을 열었다.
그동안 의학 기계에 대한 검사와 임상 시험, 많은 법적인 서류들과 규제를 통과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힐러,
힐러는 이번에 미래 그룹에서 출시하는 의학 기기의 이름이었다.
트루스와 워싱을 경험했기에 큰 기대를 하고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미래 그룹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설명서에는 모든 질병을 치료 할 수 있는 신개념의 장치라고 되어 있을 뿐이라 더 궁금증을 유발했다.
어떤 곳도 이 힐러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는 곳이 없었다.
의학 기기이기 때문에 지금은 허락된 몇 개의 병원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니 무슨 제품인지 궁금증만 늘어날 뿐이다.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의학 기계가 거기서 거기지 뭐.”
“아주 약간의 효과만 있는 거 아냐?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데.”
“분명 이건 보조 치료 장비나 후유증 완화를 위한 기기가 아닐까?”
한국 병원의 장기영 박사는 미래 그룹을 대신해서 힐러를 세상에 선보이기로 했다.
한국 병원의 3층에 마련된 대강당에는 기자와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병원의 외과 담당의사 장기영입니다.”
한국 병원의 외과 담당 장기영 의학 박사가 강단에 나와서 마이크를 잡았다. 하얀 백발과 인자해 보이는 주름이 가득한 인상과는 대조적으로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미래 그룹에서 만든 힐러입니다.”
한쪽에 천이 올라가며 가려져 있던 물건이 드러났다.
높이 2m 정도 되고 길이가 2.5 미터 정도 되는 침대 형태의 장치가 드러났다.
모양은 성호가 처음 런칭쇼에서 보여준 모양보다 더 세련되게 업그레이드되었다.
머리 쪽이 20도 정도 기울어져 올라가 있고 색상도 백색과 하늘색이 조화롭게 그려져서 SF영화에 나오는 장치 같았다.
윗면은 유리관으로 덮여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쿠션을 보면 사람이 편하게 누울 수 있는 공간도 넓게 확보되어 있었다.
이 의료 기기가 바로 힐러다.
“이 힐러는 다음과 같은 증상에 사용합니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했다
기자들이 노트북과 태블릿PC를 꺼내 들며 장기영 박사의 말에 집중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외상적인 부분 전부, 바이러스에 대한 감염 전부, 암이나 이상 세포에 대한 질병 전부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치료되는 수준이 아니라 완치되는 수준입니다”
“…….”
기자들이 ‘이게 뭔 소리인가’ 하면서 장기영 박사를 쳐다보았다.
“미래 그룹에서 저에게 석 달 전 이 힐러의 성능에 대한 테스트를 의뢰하였습니다. 임상 시험을 정식으로 의뢰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한국 병원은 그동안 임상 시험을 통해서 많은 환자를 치료하였고 그 데이터를 수집하였습니다.”
기자들이 터트리는 번쩍이는 카메라 불빛에 장기영 박사가 눈을 찌푸렸다.
“흠흠, 치료된 증상을 자세하게 말씀드리자면 외상은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힐러 장치에서 치료를 받으면 바로 붙습니다. 물론 신경세포나 근육과 피부 조직의 손상도 완벽하게 치료가 됩니다.”
‘지금 뭘 들은 거지? 잘린 팔다리가 붙는다고?’
장기영 박사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무리 의학 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그냥 장치를 이용해 잘린 손과 발을 붙이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외과 전문의가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신경과 근육을 이어도 완벽하지 않은 것이 절단 환자의 수술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화상 환자의 죽은 세포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는 겁니다. 이전과 같은 피부로 돌려놓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환자는 일주일 뒤에 완치되었습니다.”
전신 화상 환자가 정상적인 피부를 가진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데 완치에 걸리는 시간이 일주일이란다.
“그리고 바이러스에 대한 부분은 조금 더 세밀한 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 쥐나 토끼 같은 동물 실험을 진행하다가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했습니다.”
바이러스는 무리일 것이다.
그 종류도 너무 많았고 전부 특징이 달랐다.
“일단 침입한 어떠한 바이러스도 힐러로 퇴치할 수 있습니다. 에이즈나 메르스, 홍역, B형 간염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몸에 좋은 바이러스 및 균, 효소들은 2배 이상 증식하며 이로 인하여 면역력이 향상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다시 엄청난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갔다.
이제 세상의 모든 바이러스가 치료된다는 엄청난 발표다.
“마지막으로 암과 이상 세포로 증상은 정상 세포로 변환시키며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일주일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완치는 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대박! 지금 상처 없이 외상을 치료한다고 한 거야?”
“에이즈를 치료한다고?”
“암을 전부 치료할 수 있단 말인가? 맙소사!”
“저거 믿어야 하는 거지?”
“다 뻥이다.”
기자들이 질문하려고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고함을 지르고 난리가 아니었다.
저 힐러로 치료가 되는 증상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손발이 잘릴 정도의 상처와 화상, 암, 에이즈, 각종 세균으로 인한 감염이 전부 포함되었다.
기계 하나로 치료할 수 있다고 하기에는 그 범위가 너무 넓었다.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힐러의 작동 원리는 저도 모르니 그것도 말씀 못 드립니다. 다만 3달 동안 한국 병원에서 임상 실험한 데이터를 공개하니 그것으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힐러는 현재 한국에 있는 25개 병원에서만 사용하게 됩니다.”
장기영 박사의 뒤에 트루스를 통한 거대한 입체 화면이 뜨더니 대한민국의 지도가 만들어졌다.
지도에 표시된 25개의 병원의 위치와 이름들이 나열되었다.
전국에 인구수에 맞추어 골고루 선정된 것이다.
“미래 그룹에서 더 많은 힐러를 만들고 싶어도 들어가는 돈이나 희귀 금속 자원이 없어서 그렇게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한 달간은 위급한 환자들만 우선 치료를 서두를 계획입니다. 이상입니다.”
장기영 박사가 강단을 내려갔다.
전 세계가 한 번 더 미래 그룹 때문에 들썩였다.
워싱과 트루스로 가전과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점하더니 이번에는 의료 기계를 선보여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장기영 박사가 발표한 ‘한국병원의 힐러로 인한 치료 사례에 대한 데이터’의 내용이다.
임상 시험 중에 힐러로 치료받은 사람만 228명이다.
치료 전, 그들에게 당부한 것은 정보보안이었다. 그래서 임상 시험 대상자들은 한국 병원의 별동에 위치한 병실에서 따로 관리되었다.
가족들에게는 힐러로 치료된 뒤에도 보안에 철저하게 신경을 써달라고 했다.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보안을 지키는 거야 당연했다.
힐러로 치료받은 사람 중에 암 환자가 무려 115명이었다.
위암, 폐암, 백혈병 등의 일반 암과 골수암, 피부암, 유방암 등의 암도 치료가 되었다.
외상 환자로는 화상 환자가 22명, 교통사고로 인한 불구가 된 외상 환자가 8명, 뇌세포 파괴로 인한 의식불명 환자가 12명이었다. 에이즈 환자는 무려 33명이나 되었는데 전부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 놀라운 사실이 외국에 알려지면서 엄청난 사람들이 돈을 싸서 한국을 찾았으나 대기 번호표를 받아야 했다.
기다리는 데만 일주일에서 한 달이나 한국에 머물러야 하니 그로 인하여 국내의 내수 경기를 살리는데 큰 효과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