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무대가 정리됐다.
지금부터는 인터뷰가 아니다.
미래 그룹의 신제품 런칭쇼가 시작될 것이다.
인터뷰가 끝났지만 모든 기자는 그대로 남아서 런칭쇼를 보고 있다.
이만큼 좋은 홍보 무대가 또 없었다.
무대에는 깔끔한 와이셔츠 차림의 성호만이 홀로 서 있었다.
“저는 오늘 이곳에서 마나라는 에너지로 움직이는 신제품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무대 뒤로 ‘마나 에너지’라는 거대한 글씨가 등장했다.
“마나라는 것은 판타지 소설에서 마법을 일으키는 에너지를 말합니다. 허구일 뿐이죠.”
성호의 손에 작은 반도체가 올려졌다.
“이 작은 반도체가 마나라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장치입니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오는 상상 속 에너지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에너지입니다.”
무대 뒤의 한쪽에는 세계적인 과학 잡지 네츄럴에 나온 마나 역학에 대한 내용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소개합니다. 마나 에너지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미래 연구소의 김동민 소장입니다.”
성호의 부탁에 그냥 앉을 수도 없는 상황, 강동민은 특유의 곱슬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궁금한 것은 과학 잡지에 실려 있는 자료를 보십시오. 그럼 이만.”
강동민은 이 말만 하고 자리에 그대로 앉았다.
귀찮은 티가 다분했다.
강동민은 이 많은 사람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큼큼……. 수고하셨습니다.”
성호가 당황해하며 무대 중앙으로 나섰다.
“오늘 여러분은 세계 최초로 마나를 이용한 마법 가전제품을 보시게 될 겁니다.”
-위잉…….
무대 바닥이 열리며 워싱이라는 제품이 서서히 올라왔다.
“여기 보이는 것이 바로 워싱이라는 제품입니다.”
많은 기자가 워싱이라는 제품을 찍기 위해 플래시를 터트렸다.
“워싱은 어떤 물건이든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일단 실제로 사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호는 자신이 입은 와이셔츠를 벗고 새로운 와이셔츠를 꺼내 입었다.
잠깐이지만 근육질의 상체가 드러났다.
엄청나게 커다란 근육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균형이 잡혀 있었다. 뚜렷하게 굴곡이 져 있는 아름다운 몸이다.
그런 몸에 악몽으로 인한 상처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테러 사건 때 다친 상처들인가 봐?
-복근 봤냐?
-저건 헬스장의 근육이 아냐!
-그런데 저 많은 흉터는 뭐죠?
-이성호 회장의 과거사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으니 주소 보삼.
사람들이 감탄하는 사이 성호는 벌써 새 와이셔츠로 바꿔 입었다.
순간이지만 성호가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하자 그 모습에 1층 로비에 있던 기자들이 쓰러졌다.
“여기 방금 제가 입던 와이셔츠가 있습니다.”
성호가 와이셔츠를 집어서 다른 사람이 잘 볼 수 있도록 들어 올렸다.
“자 여기 제 와이셔츠에 각종 오염물을 묻혀 보겠습니다. 볼펜으로 그림도 그리고 매직으로 제 사인도 써보겠습니다.”
성호가 사인펜과 볼펜을 가지고 자신의 와이셔츠에 마구 낙서를 했다.
-딸칵.
캔커피를 따서 한 모금 마시더니 그대로 와이셔츠에 부어 버렸다.
이제 성호의 흰색 와이셔츠는 세탁소에 맡겨도 원상태로 복원하기 힘들 정도의 상태였다.
“여기 보시면 워싱에는 문이 위아래로 두 개가 달려 있습니다. 위쪽은 식기나 수저들 같은 식기 세척용이고 아래의 것은 세탁용입니다.”
성호의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이게 뭔 소린가? 그럼 세탁기야 식기 세척기야?’
“이 와이셔츠는 아래쪽에 넣습니다.”
워싱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성호의 더러워진 와이셔츠를 넣었다.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이 워싱은 세탁기가 아닙니다. 식기 세척기도 아니죠.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접시 하나를 들어 올렸다.
기름 자국과 토마토소스 자국이 선명한 접시였다.
“이건 제가 방금 전에 먹은 피자의 흔적입니다. 이 접시는 식기 세척용인 위쪽에 넣겠습니다.”
성호가 워싱의 위쪽 문을 열고 접시를 넣었다.
이번에는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화면이 켜지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제 핸드폰입니다. 몇 달간 막 썼더니 더럽네요.”
핸드폰의 스피커와 버튼, 이어폰 꽂는 부분까지 먼지가 한가득이었다.
“제 핸드폰은 아래의 일반 세탁용에 넣겠습니다.”
성호는 핸드폰도 워싱에 넣어 버렸다.
-이건 뭐지?
-이건 어느 제품군에 들어가야 하는 거지? 핸드폰이 왜 거기 들어가는데?
뭐라고 해야 하는 제품인지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했다.
“혹시 넣고 싶은 물건이 있으신 분?”
맨 앞에 있던 기자가 1시간 전에 먹다 버린 컵라면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건 아까 먹다 버린 컵라면 용기인데 이것도 되나요?”
“되고말고요. 이게 성공하면 재활용 산업에 큰 파장을 일으키겠군요.”
성호가 붉은 자국이 선명한 컵라면 그릇을 식기 세척용 문을 열고 넣었다.
“더 넣고 싶은 물건이 더 있나요?”
“혹시 이것도 되나요?”
카메라 맨 중 하나가 자신의 운동화를 벗었다.
“이거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도 넣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뭔가 홈쇼핑 같은 분위기인데 절대 홈쇼핑 아닙니다.”
세탁용으로 와이셔츠, 핸드폰, 운동화가 들어갔다.
식기 세척용으로는 피자를 먹었던 접시와 버려진 컵라면 용기가 들어갔다.
“자, 그럼 작동 시켜 보겠습니다. 참고로 워싱은 220V 전기로 작동되며 물이나 어떤 세제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버튼을 누르자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작동이 시작되었다.
단 1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작동이 끝났습니다.”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워싱과 성호를 번갈아 보았다.
단 1분이라는 아주 잠깐의 시간이다. 그런데 끝이라고?
어떤 기계가 저런 짧은 시간에 세탁기나 식기 세척기 같은 효과를 낸다는 말인가?
“먼저 제 와이셔츠입니다. 깨끗해졌죠?”
성호가 입었던 와이셔츠다.
볼펜과 사인펜, 커피까지 쏟은 와이셔츠다.
그런데 새로 산 것처럼 깨끗해 보였다.
“제 핸드폰도 깨끗해졌네요. 그리고 화면도 잘 들어오고요.”
워싱에서 꺼낸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위쪽 것도 봐 볼까요? 어디 보자. 컵라면 용기네요. 와우, 빨간 국물 자국까지 깨끗하게 없어졌네요? 재활용 산업에 새로운 바람이 불겠어요.”
컵라면 모양은 찌그러지거나 구겨지지 않았음에도 안쪽의 얼룩이 사라지고 없었다.
새것처럼 하얀색이다.
“전부 이렇게 새것처럼 깨끗하게 변했습니다. 마술쇼냐고요? 아닙니다.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이번 미래 그룹에서 일주일 뒤에 판매가 될 제품입니다.”
사람들은 이 워싱에 충격을 받았다.
워싱!
원래는 그냥 씻는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의 이름을 가진 워싱이라는 기계는 빨래뿐만 아니라 그릇, 운동화, 전자 제품까지 다양하게 넣기만 하면 깨끗하게 되어서 나오는 제품이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이제 다른 세탁기나 식기 세척기는 필요 없어진다.
물도, 세제도 사용하지 않는다.
기존의 세탁기나 식기 세척기로 인해서 발생하는 생활폐수가 워싱에는 전혀 없다.
그리고 작동 시간은 얼마나 빠른가?
단 1분이었다.
이제 세탁과 설거지는 정리하는 시간만 있으면 된다.
“이거 혹시 마술 쇼 아냐?”
“운동화랑 컵라면은 기자 회견장에서 방금 받은 거잖아요.”
“제품으로 판매된다고 하니 쇼일 수가 없죠.”
“이게 전 세계에 팔리기 시작하면? 와, 소름 돋아!”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감탄하는 사이 성호는 워싱을 한쪽에 치우고 손바닥 크기의 물건을 들고나왔다.
무대 뒤에 커다란 글씨가 떠올랐다.
-트루스.
“이것이 미래 전자의 두 번째 신제품 트루스입니다.”
작았다.
성호가 검은빛이 도는 물건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나왔다.
반원형에 얇은 모양이라 각도기 같은 모습이다.
성호가 트루스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많이 사람이 잘 보일 수 있게 했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트루스는 입체영상 장치입니다. 3D TV가 많이 보급되었지만 그건 안경도 써야 하고 눈을 현혹하는 장치일 뿐입니다. VR은 써야 하는 게 더 크죠.”
성호가 얼굴에 커다란 안경을 써야 하는 제스처를 하자 기자들이 웃어댔다.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것들은 실제 입체 영상은 아닙니다. 눈속임이죠. 실제 입체 영상이라는 것은 이런 겁니다.”
성호가 말을 이어가며 트루스를 무대 앞에 놓고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번쩍-
트루스의 반원형 모서리 부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성호가 나타났다.
실제 성호와 똑같이 생긴 홀로그램에 사람들이 경악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삼광 레이저 방법도 아니야. 그리고 저렇게 선명한 영상은 뭐지?”
“대단하다.”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입체 영상은 안개가 낀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저건 뒤에 있는 사물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확실한 모습을 가진 홀로그램이다.
실제 성호와 입체 영상 성호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이 모습은 지금 트루스의 카메라에 잡힌 저의 모습을 투영한 것입니다.”
성호가 움직이자 트루스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성호도 똑같이 움직였다.
그에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언젠가는 만들어질 기술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보고난 뒤의 충격은 더했다.
성능은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성호와 실제 성호의 모습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이거 홈쇼핑 방송 아닙니다. 그리고 마술 쇼도 아니고요. 앞으로 미래 전자에서 판매될 제품입니다.”
성호가 무대 앞에 서며 양손을 옆으로 펼쳤다.
-화아악!
공중에 갑자기 무수히 많은 화면이 나타났는데 모두다 트루스를 통해서 만들어진 입체 화면들이다.
인터넷 화면, 동영상 재생되는 화면, 단순한 광고 배너, TV 방송 등의 화면들이 여러 크기로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 떠 오른 많은 화면을 보면서 입을 다물 줄 몰랐다.
“핸드폰, 태블릿, 컴퓨터 모니터, 각종 장비의 계기판과 간판들이 트루스로 바뀔 겁니다.”
-쿠웅!
충격이었다.
기자들은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고 외신 기자들은 자신들의 나라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난리도 아니었다.
이제 모든 모니터 화면 시장은 끝났다.
핸드폰의 화면부터 TV, 모니터, 평면으로 된 전자 계기판 시대의 종말을 오늘 선언 받은 것이다.
“마지막 제품입니다.”
-힐러.
유리관이 덥힌 침대 형태의 제품이었다.
“이 힐러는 사람의 병을 고치는 장치입니다.”
‘이제는 미래 그룹에서 병을 고치는 제품도 만드는구나.’
앞서 소개된 제품들이 너무 놀라워서 이 정도는 침착하게 들어줬다.
“치료 항목은 모든 외상 및 골절, 모든 암, 병균에 의한 손상, 뇌 손상, 신경 손상 등입니다.”
‘뭐? 너무 빨리 지나가서 잘못 들었나? 방금 모든 암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무대 뒤의 화면에 성호가 말했던 힐러의 치료 항목이 나열되었다.
-화상
-모든 외상
-모든 골절
-모든 암
-병균에 의한 손상
-뇌 손상
-신경 손상
런칭쇼에 모인 모든 사람이 입을 한 자만큼 벌리고 다물 줄 몰랐다.
“다만 이 제품은 아직도 연구 중이라 출시가 좀 늦을 겁니다. 병원에서만 사용이 가능하게 될 것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이수한 분들만 사용할 수 있다는 거죠.”
병원에서만 사용하게 할 생각이다.
워싱이나 트루스로 인해서 세탁기 사업이나 모니터 시장이 타격을 받겠지만 그건 또 다른 시장으로의 대체되어 이동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업을 대체할 수는 없다.
아무리 힐러라는 마법이 사람을 치료한다고 해도 못 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성호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따라서 이건 지금 사용할 수 없어 보여 드릴 수가 없네요.”
어두웠던 조명이 들어오고 화면들이 모두 꺼졌다.
“모든 질문은 회사 홈페이지에서 공식적으로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성호가 꾸벅 인사하더니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미래 빌딩 홀에 모인 기자들은 수천 명이 넘는다. 그들 모두가 손을 들고 고함을 질러 댔지만 아무런 질문도 받지 않고 사라졌다.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제품에 관해 이야기할수록 광고 효과는 커집니다.”
기획 담당 김만득 과장의 설명이었다.
성호가 내려간 뒤에 총 5대의 워싱과 10대의 트루스가 제공되면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사용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대박, 이거 어떻게 이렇게 깨끗해지는 거지?”
“그 많던 찌꺼기들은 어디로 사라지는 거야?”
“이제 세탁 업체는 망하게 생겼네.”
“봤냐? 입체 영상이 너무 똑같아서 아이돌 가수가 진짜 온 줄 알았다니까?”
세계 전자 시장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