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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 회장님-41화 (41/225)
  • 《41화》

    한국병원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좋은 병원으로 꼽는다는 곳이다.

    그런 병원의 VIP 병실은 본관 12층에 있으며 단 4개의 방만 있다.

    입구는 유리문으로 막혀 있고 경호원이 항시 지키고 있었다.

    의사들과 간호사도 신원 확인이 아니면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여기인가?”

    입구에서부터 너무 어마어마해서 수지와 그의 아버지 김편종은 VIP 병동의 입구에 그냥 서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딱딱한 경비원의 표정에 도리어 김편종이 긴장했다.

    “이성호 회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확인하고 말씀드릴 테니 기다리십시오.”

    “아, 예.”

    ‘마냥 기다려야 하는 건가? 괜히 왔나? 망신당하는 거 아냐?’

    마침 VIP 변동 유리문이 열리며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김 사장님, 수지 양. 여깁니다.”

    은색 안경에 날카롭게 생긴 최태욱 실장이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그도 폭발 사고 이후 이곳에 계속 있었는지 아직 얼굴에 검댕이 묻어 있었다.

    “회장님은 괜찮으십니까?”

    “사고 후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당당해 보이던 수지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일단 들어가시죠.”

    병실에는 개인 사생활 보호를 위해 환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병실 문이 열리고 커다란 방의 한가운데 성호가 누워 있었다.

    까칠한 붉은 머리에 창백해 보이는 얼굴에 산소 호흡기와 여러 의료 장비들을 달고 누워 있었다.

    “흐흑…….”

    수지는 흐느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수지 양, 회장님은 의식이 없을 뿐 몸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으니 곧 깨어나실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몸에 혹시 이상이 있을까 봐 강동민 소장이 힐러건으로 한 시간이나 치료했다. 그러니 외상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모든 마나와 내공이 사라지면서 탈진했을 뿐이다.

    수지가 성호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손목 위로 악몽으로 생겨난 자잘한 상처들이 징그럽게 엉켜져 보였다.

    “많이 아파? 얼른 일어나…….”

    김편종은 최태욱 실장과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아빠, 나 여기서 당분간 지내도 돼?”

    “당연히 그래도 되지만…….”

    김편종은 최태욱 실장을 살폈다.

    그의 허락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부탁을 드려야 할 처지입니다.”

    ‘둘 사이가 간병을 부탁할 정도인가?’

    성호와 수지의 감정 흐름은 최태욱이 보기에는 그랬다.

    제삼자의 눈이 때로는 정확할 때가 있는 법이다.

    김편종은 모든 것을 믿기로 했다. 미래 그룹의 회장이라는 것을 숨긴 것도, 딸아이의 마음도 말이다.

    “수지야, 친구 간호 잘하고 있어라. 전화는 자주 하고.”

    “뭔 소리야! 집에서 왔다 갔다 해야지.”

    “어? 어……. 그렇구나.”

    “일단 오늘 밤은 여기 있다가 아침에 집으로 갈게.”

    “그래, 알았다.”

    김편종은 VIP 병동을 지나 밖으로 나오며 병실에 남은 딸아이를 생각했다.

    뿌듯하면서도 뭔가 쓸쓸했다. 15년간 혼자서 키워온 딸이 이제 저렇게 커서 자신의 품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 말이다.

    “여보, 이제 수지가 다 컸네.”

    그 뒤로 수지는 아침에 왔다가 저녁 늦게까지 성호 옆을 지켰다.

    VIP 병실에는 손님방뿐만 아니라 모든 시설이 마련되어 있기에 불편한 것은 없었다.

    “성호야, 너한테 내가 친구 이야기했던가? 명지라고 좀 통통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먹는 걸 얼마나 좋아하던지, 전에는 있잖아…….”

    친구들과 있었던 이야기, 전에 놀이동산 갔던 이야기, 자신의 어렸을 때 이야기까지 성호에게 들려주었다.

    하루가 지나가고, 이틀이 지나갔지만, 수지는 성호 옆에 있었다.

    수지는 성호의 병간호에 최선을 다했다.

    삼 일째 되던 날, 수지는 조그만 신디사이저를 구해 와서 침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전에 내 노래 좋아했지? 그래서 준비했어.”

    아름다운 연주 소리가 병실에 은은하게 퍼졌다.

    한 손은 신디사이저로 연주를 하고 다른 한 손은 성호의 손을 꼭 잡은 상태로 노래를 불러 주었다.

    -꽉!

    그때 성호가 수지의 손을 꽉 움켜 쥐었다.

    “어? 여기요! 지금 성호가 깨어나려고 해요.”

    항상 대기 중이던 최태욱 실장이 가장 먼저 달려왔고 호출을 받고 담당 의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성호가 눈을 떠서 가장 먼저 본 것은 눈물 자국이 한가득한 수지의 얼굴이었다. 흐릿해서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웃음이 지어졌다.

    “처음이야.”

    “응?”

    “날 위해 울보가 생긴 거, 처음이야.”

    “뭐?”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병실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이동용 CT 촬영 장비와 심전도 측정 장비까지 들어왔다.

    “죄송한데, 잠시 밖에 있어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 검사를 위해서는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도 있어서다.

    “네.”

    수지가 병실 밖으로 나갔다.

    의사들이 성호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다. 혈압이나 반사 신경 뿐만 아니라 CT 촬영을 통해 뇌의 상태까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약간 탈진하신 것 빼고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영양제하고 특식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나가고 나서 성호는 최태욱을 불렀다.

    “도깨비들을 불러서 놈들을 추적해.”

    도깨비들이란 백광현과 같이 노예가 된 망치파 조직원들을 말하는 것이다.

    전에 성호의 명령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폭력조직을 통일할 때 도깨비 가면을 쓰고 다녔다.

    그때부터 그 녀석들을 도깨비라고 불렀다.

    그리고 백광현만큼 사람 찾는 데 뛰어난 사람도 드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나 충전기와 마나 배터리를 가져와.”

    “알겠습니다.”

    최태욱은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나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노예 마법진에 의해 본능적으로 주인과 연결된 것이다.

    의사들이 나가자마자 복도에 있던 수지가 급하게 들어 왔다.

    “의사 선생님들은 뭐래?”

    “약간 탈진한 거래.”

    “다행이다.”

    최태욱 실장이 눈치를 보더니 자리를 피했다.

    “회장님, 저는 이번 사고를 처리해야 해서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갑자기 둘만 남게 되니 좀 어색해졌다.

    아니, 둘에게 더욱 집중하게 되며 조심스러워졌다. 서로에게 소중했기에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 마음이 전해졌다.

    “수능 만점 이성호가 이미 너라는 건 알고 있었어.”

    “그렇지.”

    “그리고 미래 그룹의 회장이 너고?”

    “그래.”

    “너에 대한 기사를 본 적 있어. 작은아버지와의 법정 다툼과 부모님께서 어렸을 때 돌아가신 일들에 대해서 말이야.”

    “…….”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라 표정이 어두워졌다.

    “미안.”

    “아니야, 과거일 뿐인걸, 그리고 네가 있어 다행이야.”

    “왜?”

    “네가 아니었으면 지금 슬픔과 분노로 날뛰었을 테니까.”

    “당연하지, 이젠 너에겐 내가 있잖아.”

    원래 자신의 성격이라면 깨어나자마자 자신을 저격하고 미래 빌딩에 폭탄 테러를 저지른 녀석들을 잡기 위해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지가 있었기에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

    “너에게 미래 그룹 회장이었던 것을 비밀로 해서 미안해.”

    “아냐, 말했어도 안 믿었을 거야.”

    하긴 누가 저 까칠한 붉은 머리를 미래 그룹의 회장으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몸은 이제 안 아픈 거지?”

    “처음부터 아프지도 않았는걸. 그런데 오랫동안 누워 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하고 갑갑하네.”

    “그럼, 산책이라도 나갈까?”

    “좋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는데 크게 상한 부분은 없는 것 같다.

    불안정하던 마나 서클이 안정화되면서 마나가 소량 남았지만, 내공은 바닥이었다.

    “정말 괜찮은 거지?”

    “그래, 괜찮아.”

    그냥 손을 잡고 있는 건만으로 좋았다.

    두 사람은 VIP 특별 병동 한쪽에 마련된 작은 정원을 걸었다. 작은 호수 주변으로 나무가 있고 50m 정도의 트레킹 코스가 마련되어 있는 곳이다.

    “네 꿈은 뭐야?”

    수지의 물음에 성호가 밝게 웃었다.

    “행복해지는 거.”

    “그건 모든 사람이 꿈꾸는 거고.”

    “다 같이 행복해지는 거.”

    성호의 눈이 잔잔해졌다.

    “그게 뭐야?”

    “내 개똥철학.”

    “피!”

    수지와 산책을 하고 병동으로 돌아와 저녁까지 같이했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너무 좋았지만 이제 끝내야 했다.

    “아버지는?”

    “지금 오고 계신대.”

    “그래? 그럼 내려가자. 주차장까지 내가 바래다줄게.”

    “응.”

    VIP 병동의 입구를 향해 복도를 지나는 동안 둘은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웅성, 웅성…….

    “잠깐.”

    코너를 돌기 전에 성호가 멈추며 수지를 잡아 당기며 안았다.

    “기자들이야.”

    VIP 병동 입구에는 벌써 기자들이 한가득이었다. 경비들이 막고 있지만, 무리일 것이다.

    성호가 깨어난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몰려들었다.

    성호의 품에 안겨 있던 수지의 얼굴이 붉어졌다.

    “숨막혀.”

    “어? 어!”

    그제서야 성호가 수지를 안고 있던걸 알고는 떨어졌다.

    “흠흠, 여기서 해어져야 할 것 같아. 아버지께 말씀 잘 드리고. 잘 가.”

    “응, 어쩔 수 없지. 퇴원하면 꼭 연락하고. 문자 씹으면 알지?”

    “그럼, 어서 가봐.”

    “알았어, 잊지 마. 언제나 너에겐 친구인 내가 있다는 걸”

    “어? 어, 그렇지 당연하지.”

    수지가 VIP 병동 입구를 조심스럽게 빠져나갔다.

    그래도 혹시 몰라 몇몇 기자들이 수지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지려는 순간.

    “최태욱 실장이다!”

    때마침 최태욱 실장이 들어 왔다.

    수지와 최태욱 실장 간에 눈인사가 오갔다. 일부러 시간 맞춰서 나타난 것이다.

    “깨어나신 이성호 회장님의 상태는 어떠신가요?”

    “이번 테러를 미래 그룹이 받게 된 이유가 뭔가요?”

    최태욱 실장이 VIP 병실 입구 앞에 서서 기자들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의 날카로운 분위기에 기자들이 조용해졌다.

    “먼저, 저희 미래 그룹을 생각해 주시고 이렇게 찾아오신 기자님들에게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저의 미래 그룹은 정확하게 확인된 내용만 회사 홈페이지에 기재할 것이며 기자 회견을 준비 중입니다. 다만 이렇게 병원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초대하지 않겠습니다.”

    “…….”

    “열을 세겠습니다.”

    “?”

    “하나, 둘…….”

    최태욱 실장의 말을 알아들은 기자들이 앞 다투어 뛰쳐나갔다.

    -두다다다!

    “뭐해! 짐 챙겨.”

    “뛰어, 승강기를 언제 기다려! 계단으로 내려가.”

    순식간에 기자들이 사라졌다.

    “그럼, 조심히들 가십시오.”

    이 장면을 멍하니 보던 수지에게 최태욱 실장이 정중하게 인사하며 VIP 병동으로 들어갔다.

    ***

    늦은 저녁, 해가 떨어져 병원 밖은 매우 어두웠고 볼 꺼진 VIP 병실은 더욱더 어두웠다.

    어둠에 잠식된 병실에 최태욱 실장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들어 왔다.

    “회장님, 가져왔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은?”

    “36명입니다. 이미 회사 차원에서 장례와 보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으드득…….

    분노로 이가 갈렸다. 아무 죄도 없는 36명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의 연인이었고, 부모였으며 자식이었던 36명이 떠났다.

    “도깨비들은?”

    “녀석들을 쫓고 있습니다.”

    “최 실장, 가서 유가족들의 상처들이 덧나지 않게 돌봐줘.”

    “알겠습니다.”

    미래 빌딩이야 다시 사거나 세우면 된다. 그러나 사람은 다시 살 수 없고, 다시 세울 수 없다.

    사라지면 끝이다.

    이제 성호 혼자 남은 어두운 병실은 고요했다.

    -바지직, 빠지지직…….

    전기 콘센트를 꽂아 놓은 마나 차지 마법진만이 과전류로 인해 번쩍이며 주변을 밝혔다.

    성호는 한 손에 마나 차지 마법진을 잡고 자세를 잡았다.

    환자복을 벗은 성호의 몸은 정말 아름다웠다. 모든 근육이 잘게 부서지며 몸의 균형을 이루어갔다.

    근육들의 움직임에 악몽으로 인해 생긴 자잘한 상처들이 꿈틀거렸다.

    흡혈불괴신공은 다른 사람의 내공을 흡수해서 신체의 근육, 체력, 근골을 강화하고 최적화시켜주는 무공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잔인한 무공이지만, 성호는 자신의 심장에 있는 마나를 흡수할 뿐이다.

    전기가 마나로 마나가 내공으로 변형되는 특별한 사이클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108가지 동작으로 이루어진 움직임은 성호의 몸을 최적화시키기 시작했다.

    -슈아악!

    피부 밖으로 나오는 땀들이 열기에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움직일수록 성호의 몸이 붉어지며 누워 있는 동안 망가졌던 몸을 최적화시켰다.

    그다음, 성호는 천마 신공을 운용했다.

    -쿠쿠쿠쿠…….

    잔잔한 울림이 내부에서 밖으로 이어지며 병실 가득 진득한 광기가 차올라 공기를 짓눌렀다.

    -빠지지직…….

    어마어마한 전기가 소모되면서 에너지는 마나로 변형되었다가 내공으로 흡수되었다.

    4시간이 넘게 마나 충전을 하고 나서야 5 서클의 방대한 마나도 완충되었고 단전도 내공으로 가득 찼다.

    “이제야 좀 살겠네.”

    그동안 밥 달라고 조르던 심장의 마나 서클과 단전이 빵빵해졌다.

    성호는 최태욱 실장이 가져다 놓은 가방을 꺼냈다.

    가방을 열자 그 안에 마나 배터리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강동민 소장을 통해서 최태욱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아직은 구리로 만든 거라 한 번 사용하고 버려야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아직 적당한 물질을 찾지 못해 마나 배터리는 구리를 이용하는 중이다.

    마나 배터리를 손목에 두 개씩, 총 4개를 달았다. 그리고 허리에 벨트를 이용해서 줄줄이 마나 배터리를 달았다.

    충전기를 단 마법사의 무서움이 뭔지 보여줄 생각이다.

    자신을 저격하고 미래 빌딩을 폭파한 녀석의 비웃던 얼굴이 생각났다.

    “조금만 기다려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는 분노가 실렸다.

    병실의 창문이 열리자 추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며 커튼이 팔랑거렸다.

    “플라이.”

    성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인비저블.”

    공중에 떠 있던 성호의 몸이 조금씩 투명해지더니 끝내 사라졌다.

    병실에는 펄럭이는 커튼과 차가운 한기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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