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 회장님-36화 (36/225)

《36화》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은 크리스마스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분명 행사도 하고 거리에 트리가 세워지지만 다 같이 행복한 크리스마스는 이미 먼 옛날에 사라졌었다.

돈이 없으니 행사가 줄었고 행사가 줄어드니 자영업자들도 크리스마스 특수를 잃어버렸다.

모든 이유는 1997년 외환위기로 IMF 사태가 벌어지면서였다. 그 아픔은 한참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연도는 뭔가 달랐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특별하게도 눈이 내렸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라는 분위기가 조금 살아나고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개과천선하면서 국민의 일자리가 늘었고 전국의 조직 폭력배들이 통합되면서 사채의 빚에 허덕이던 50만 명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인신매매로 붙잡혀 있던 여자와 남자들이 풀려나고 전국에 판매되던 마약이 사라졌다.

전국 고아원에는 이름 모를 봉사자들이 넘쳤고 각종 기부도 넘쳐났다.

거리에는 캐럴 송이 다시 울려 퍼졌다.

성호는 수지와의 약속을 위해 아침 일찍 잠실에 왔다.

“…….”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어지러웠다.

백 명 이백 명이 아니라 수천 명의 사람이 이 좁은 공간에 몰려 있었다.

12년간의 정신병원 수감 생활, 12년간 이어진 악몽!

모든 것이 성호를 이 많은 사람 사이에서 있을 수 없게 했다.

낮선 사람들, 그리고 홀로 있다는 고독,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소음이 귀를 때렸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람들 틈에서 홀로 있는 느낌에 어지러웠다.

“잘 있었어?”

그때 모든 것을 정리하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고개를 들자 수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성호에게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그런데 저 눈부신 미소를 보자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진다.

“괜찮아? 안색이 창백한데”

“이제 괜찮아졌어. 이렇게 사람 많은 곳은 처음 와 봐서.”

“진짜? 괜찮은 거지?”

“응.”

가는 길에 토끼 인형 모자를 샀다.

‘버튼을 누르면 귀가 움직여 귀엽기는 한데 이걸 꼭 써야 한다고?’

“제발~ 우응?”

수지의 애교에 성호는 머리에 토끼 인형 모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

“자, 여길 봐.”

수지는 셀카봉을 들고 그걸 찍었다. 성호는 모든 것이 어색했다.

그러나 수지의 저 흥분한 표정을 보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수지는 환한 미소로 성호의 손을 잡고 놋대 월드라는 미지의 세계로 이끌었다.

“일단 저거!”

수지가 가리킨 것은 스페인 해적선, 일명 바이킹이라는 녀석이다.

75도 각도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놀이 기구로 초보 놀이기구 사용자에게 추천한다.

다행히도 기다리는 사람이 적어서 바로 탈 수 있었다.

“끼야아아아!”

수지의 비명이 이어졌다. 그러나 성호는 담담했다.

“느려.”

해적선에서 내리자마자 수지가 성호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다음은 저거!”

후룸라이트, 통나무배를 타고 물길을 지나가는 놀이 기구로 조금 무섭고 무난한 놀이 기구다. 그런데 줄이 엄청 길다.

“성호야, 여기 봐봐!”

-찰칵!

조금의 시간만 있다면 셀카를 찍었다. 그냥 사진이 아니라 어플을 이용해서 토끼 모자나 고양이 수염이 얼굴에 그려졌다. 이게 은근히 귀엽고 재미있었다.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던 도중,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이 일어났다. 새치기다.

꼭 이런 곳에 저런 사람들이 있다. 저 개념 없는 새치기 커플.

“아저씨, 새치기하면 어떻게 해요?”

“신경 끄지? 뭘 봐?”

험악하게 생긴 인상에 덩치도 커서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역시 자기가 최고야!”

저 야시하게 입은 여자는 더 꼴불견이다. 그 둘이 꼭 안고 꼴값을 다 떨고 있다.

그냥 넘어갈 성호가 아니다.

“홀드.”

홀드는 몸을 마비시켜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마법이다.

새치기 커플은 줄이 줄어드니 움직이려는데 움직일 수가 없다.

‘뭐지? 몸이 안 움직여.’

‘말도 안 나와.’

몸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안 될 것이다.

-부들부들…….

새치기한 커플이 움직이기 위해 몸부림쳤다. 땀까지 흘리며 몸을 움직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뭐야? 이거 변태 아냐?”

사람들이 꼭 껴안고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새치기 커플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땀을 줄줄 흘리고 있어서 더 수상해 보였다.

“저런 변태가 다 있네.”

“줄을 서다 느낀 건가?”

“커플이 그거 하는 중.”

“저 커플 119에 실려 갔다고 하네요.”

긴 줄이었지만 끝내 성호도 후룸라이트를 탔다. 물이 튀겨서 얼떨결에 조그마하게 실드를 쳤는데 수지가 눈을 감고 있어서 들키지 않아 다행이다.

“그다음은 저거!”

아틀란티스, 시속 72㎞로 달리는 보트를 타고 미스터리 신전을 달리는 놀이 기구다.

문제는 성호에게는 느렸다는 정도?

“너는 하나도 안 무서워?”

“느려서.”

“푸하하……. 어디서 뻐기기는.”

점심은 근처의 햄버거집에서 먹었다. 그냥 보통 맛이었지만 성호는 처음 먹어 본다.

두 개의 빵 사이에 두툼한 패티, 양상추와 달콤한 소스가 일품이었다.

“쩝쩝, 이거 정말 맛있다.”

“대박, 너 벌써 다섯 개 째야.”

밥을 먹고 나서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길을 걸었다.

“성호, 너는 어렸을 때는 어땠어?”

성호는 수지의 질문에 어렸을 때를 되돌아봤다. 부모님과 함께 있던 7살 이전의 삶은 어땠을까?

“울보였어.”

갑자기 왜 엄마에게 안겨 울던 기억이 났을까?

“그래? 나는 말괄량이라는 말 많이 들었는데. 그래서 별명이 말괄량이 삐삐였어.”

수지도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수지의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 혼자 자기를 키웠는데 얼마나 엄하게 키웠던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야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주변이 노랗게 물들고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빵빠바바!

사방에서 불빛이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하고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산타 복장을 한 배우들이 춤을 추며 행진을 시작했다. 그 뒤로 요정들과 키다리 복장을 한 사람들도 지나갔다.

그리고 나타난 산타.

빨간 우주 비행기를 타고 나타난 산타가 손을 흔들자 수지가 통통 뛰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성호, 뭐 해. 너도 손을 흔들어.”

“어? 어.”

얼떨결에 산타에게 손을 흔들었다.

-찰칵!

그걸 또 찍는 수지다.

회전목마는 꼭 타고 나가야 한다고 해서 타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는데 서서히 회전하는 목마에 수지가 먼저 탔다. 그리고 옆에 성호가 탔다.

그냥 돌아가는 주변과 아름다운 노래일 뿐인데 성호와 수지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서로 손을 꼭 잡고 말이다.

수지가 회전목마를 타고나서 풍선을 사자고 해서 성호의 손을 이끌었다. 풍선의 모양도 옛날처럼 둥근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중에서 하트 모양의 풍선을 샀다.

“너 수지 아니냐?”

그때 나타난 녀석들, 고등학생으로 보였는데 입은 옷을 보니 그냥 있는 집 애들이 아니라 준재벌 집 2세 같았다.

“크크크……. 맞네, 수지네.”

“동석아, 네 마누라 바람피우다 걸렸다. 하하하.”

‘이건 뭐 하는 녀석들이지?’

성호의 미간이 찌푸려 졌다.

동석이라고 불린 녀석은 무리의 가운데에 있었다.

여드름투성이에 뚱뚱한 녀석이 뭐 때문인지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꼴불견이었다.

“수지, 내가 전에 경고했지. 넌 내꺼야. 누구든 너한테 접근하면 죽여 버린다고 했어, 안 했어?”

녀석이 성큼성큼 걸어와 수지의 손을 잡으려 했다.

“거기까지.”

성호가 녀석의 손을 잡았다.

“으악!”

성호가 지그시 누른 곳은 손목에 있는 혈 자리 중에서도 눌렀을 때 가장 아프다는 곳이다.

아마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아플 것이다.

“놔, 이거 안 놔?”

성호가 손을 놓자 그 기세에 동석이라는 녀석이 뒤로 넘어갔는데 그걸 뒤에 있던 친구들이 잡아 줬다.

“수지, 너 이런 놈이랑 만나는 거야! 네 아버지 회사가 어떻게 돼도 괜찮다는 거네.”

성호가 나서려고 했지만, 수지가 먼저 나섰다.

“어이없네. 거기서 울 아빠가 왜 나와!”

-퍽!

“크악!”

남자의 약점을 기세 좋게 가격한 수지다.

‘거기는 많이 아프겠다. 안 터졌나?’

“아구구…….”

수지가 씩씩거리면서 외쳤다. 녀석은 그곳을 부여잡으며 엎어졌다.

“아이고, 나 죽네……. 너 오늘은 가만 안 둬. 뭐해, 저 계집 잡아.”

동석의 말에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나섰다. 녀석들은 친구라기보다는 동석이의 부하들이다. 돈 앞에서 친구를 버린 녀석들이다.

‘뭐지, 이 양아치들은?’

꼴에 본 것들은 있어서 있는 폼 없는 폼을 다 잡으며 다가왔다.

성호는 양아치들 앞을 가로막듯이 앞으로 나섰다.

“뭐냐, 이 빨강머리는?”

“꼴에 여자 앞이라고 뻐기냐?”

소란으로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도 있으니 대놓고 마법을 펼칠 수는 없다.

“반가워.”

“뭔 소리야, 이 씨 발라 먹을 감자야!”

급한 성격인 모양이다. 동석이 먼저 성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턱.

성호가 녀석의 정강이를 툭, 차자 녀석의 고개가 숙여지면서 자세가 무너졌다. 영락없이 인사하는 자세가 되었다.

“인사 잘한다.”

“무슨?”

성호가 녀석을 스쳐 지나가면서 아혈과 마혈을 눌렀다.

“컥!”

입과 몸이 다 안 움직일 거다. 마법으로 치면 홀드 정도의 능력이다.

“이 새끼가!”

뒤에 달려오는 녀석은 어디서 복싱을 공부했는지 크게 스트라이크를 날렸다.

또 다른 녀석은 태권도를 배웠는지 발차기가 머리로 날아왔다.

살짝 피한 성호가 두 녀석의 아혈과 마혈을 잡았다.

권투배운 녀석의 정강이 안쪽을 치며 아래로 누르자 엎드려 절하는 자세가 되었다.

“인사 잘한다.”

태권도 하는 녀석의 다리를 방향 그대로 돌리며 무릎 꿇리게 하자 기사들이 작위 수여 받을 때의 자세가 되었다.

“널 추태남으로 임명하노라!”

동석은 자신의 부하들이 순식단에 쓰러지자 당황스러워 했다.

“뭐, 뭐야?”

성호가 어느새 다가와 동석의 어깨를 잡았다.

이미 마혈과 아혈이 점혈되어 있기에 입도 안 움직이고 몸도 안 움직일 거다.

“충고 하나 하지.”

동석은 눈만 데구르르 굴리면서 성호를 바라봤다.

“첫째, 한 번만 더 수지 앞에 나타나면 죽는다.”

엄청난 살기에 동석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둘째, 내 귀에 수지가 널 봤다는 소리만 들려도 넌 죽는다.”

옴 몸의 털이란 털은 다 곤두서고 살이 떨려 왔다.

“한 시간 뒤에 움직일 수 있으니 그리 알고.”

성호가 뒤돌아 수지에게 갔다.

“괜찮아?”

“응, 녀석들이 참 예의가 바르네.”

“?”

머리 위로 물음표가 보이는 수지의 손을 잡고 성호는 급히 자리를 피했다.

“왜 그래?”

“화장실이 급해서…….”

“…….”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와 보니 앞에 무슨 요정들이 지은 듯한 아름다운 카페가 보였다.

“성호야, 저기 가자!”

수지가 폴짝폴짝 뛰며 카페로 들어갔다. 동석에 대한 것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간 뒤였다.

카페에 들어가 음료수와 간단한 간식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수지야, 아까 그 동석이라는 녀석은 뭐야?”

“동석이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무역 회사에서 재료를 납품하는 공장의 사장 아들이야.”

“아버지 회사 이름이?”

“파이널 상사.”

“그럼, 그 동석이네 아버지의 회사는 고려 엔진인가?”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고려 엔진이 납품하는 미래 자동차에 관심이 좀 있지.”

“너 나중에 거기 취업하려고?”

“뭐, 겸사겸사.”

‘미래 자동차의 주인이 나다. 아니, 미래 그룹의 주인이 바로 나다. 입이 간질간질 하네.’

녀석들은 이제 고생 좀 할 거다. 성호의 뒤끝은 끝까지 가니까 말이다.

그 뒤로 1시간을 더 놀다가 놋대월드에서 나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이미 해가 떨어져서 쌀쌀했다.

“눈이다.”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가자.”

지금 주차장에는 최태욱이 고급 승용차에 시동을 걸고 대기 중이다.

“무슨, 지하철 타면 1,500원이면 된다고.”

“그게 아니고…….”

“사람이 아낄 줄 알아야지. 빨리 와 눈 많이 온다.”

수지가 성호를 잡고 지하철로 이끌었다.

지하철도 처음 타본다. 여기저기 신기해서 두리번거리는 성호를 수지가 또 신기하게 바라본다.

“너 지하철도 처음 타 봐?”

“응.”

“대박. 너 도대체 어디 있다가 온 거야? 외계인이나 그런 건 아니지?”

“아마도…….”

“너 또 안 해본 건 없어?”

“안 해본 게 너무 많아서 모르겠네.”

“그래? 그럼 앞으로 처음 하는 건 무조건 같이하기로 약속.”

수기가 세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응, 약속.”

“도장에, 복사, 코팅까지.”

“…….”

성호는 말없이 수지가 하자는 대로 했다.

성호는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봤다. 지하철을 갈아탈 때는 또다시 많은 사람과 길의 복잡함에 놀랐다.

그 뒤로도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쳐서 버스를 타야 한다.

“달려!”

수지가 소리 지르며 성호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계속 손을 잡고 있었다.

-부웅!

열심히 달렸지만, 버스는 이미 떠나갔다.

“히잉…….”

수지가 볼을 부풀리며 심술부리는 모습을 성호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날씨는 쌀쌀해지고 사람이 많아서 앉을 자리도 없다.

“엄청 기다려야 해.”

눈이 와서 그런지 버스가 30분이나 기다려야 온다고 표시가 되었다.

“춥지?”

성호가 외투를 벗어서 수지에게 덮어 주었다.

“넌 안 추워?”

“난 안 추워.”

이미 천마신공을 가지고 있는 성호가 추울 리는 없다.

“땡큐, 그런데 옷에서 너 냄새 나”

“어?”

“성호의 좋은 냄새.”

수지의 수줍은 웃음에 얼굴이 붉어지는 성호다.

30분을 기다려서야 버스가 왔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 만원 버스!

수지와 성호도 간신히 버스에 탔다.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가야 했는데 차가 출발하자 사람들이 뒤로 밀렸다.

-터억!

밀려오는 사람들을 성호가 막았다.

-쩌저적…….

손잡이가 많이 약했나 보다.

한쪽 손잡이가 휘어지면서 점점 가까워지는 수지와 성호.

둘의 얼굴이 가까워지고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다.

‘너무 잘생겼어.’

수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30여 분을 달려간 버스는 수지가 사는 평창동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둘은 뭔가 어색한지 서로 말없이 마주 보고 섰다.

잡은 손은 놓지도 않고 말이다.

“성호야, 여기서 헤어져야겠다. 저기 골목을 지나면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그래, 잘 가.”

“응, 그리고 이건 오늘 즐겁게 놀아준 선물이야.”

-쪽.

첫 입맞춤.

성호의 눈이 커졌다.

외로움과 광기,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 있던 슬픔이 순간 사라졌다.

한겨울의 추위도 녹이는 촉촉함에 눈이 저절로 감겼다.

순간 성호가 수지를 살며시 안아 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깊은 키스,

짧지만 긴 시간이 지나갔다.

“처음이야.”

“응?”

“첫 입맞춤이라고 이 병신아!”

수지가 성호의 정강이를 차고 막 뒤돌아 도망갔다.

함박눈이 내리는 가로등 아래에서 수지가 뒤돌아서더니 손을 흔들었다.

“잘 가!”

“응, 나도 오늘 즐거웠어.”

저게 수지의 매력이 아닐까?

성호는 한참을 수지가 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수지는 성호와 헤어지고 아파트 승가기를 올라가며 오늘 달달했던 첫 입맞춤을 생각했다.

“헤헤…….”

그냥 기분이 좋아서 웃음이 나왔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맑고 착해 보이지만 왠지 슬퍼 보이는 눈, 그리고 자기와는 다른 자유로워 보이는 붉은 머리카락, 그리고 잘생긴 얼굴.

-발그레.

그리고 첫 키스.

***

돌아가는 성호를 최태욱 비서실장이 직접 데리러 왔다.

오늘은 주인님의 첫 데이트다.

무서운 주인님의 이런 모습은 처음 봤다.

머리에 쓰신 토끼 인형의 귀가 쫑긋하며 올라갔다 내려왔다.

“최태욱 실장.”

“네, 회장님.”

“고려 엔진 오늘부터 주문 넣지 마.”

“알겠습니다.”

두 번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회장님이다.

“그리고 파이널 상사라는 곳을 알아봐서 미래 자동차와 직접 거래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봐.”

“알겠습니다.”

“정중하게.”

“명심하겠습니다.”

악인에게 악으로, 의인에게는 의인으로 대우하는 것이 성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