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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 회장님-29화 (29/225)
  • 《29화》

    수지가 성호를 데리고 간 곳은 일명 평창동에서 유명하다는 떡볶이집이었다.

    앉을 수 있는 자리도 몇 개 없었는데 모든 곳에 손님이 앉아 있어서 밖에 있는 간이 테이블로 접시를 들고나왔다.

    “먹어, 여기가 진짜 떡볶이 맛이 오지거든.”

    “……어? 어.”

    얼떨결에 여기까지 와 버렸다.

    떡볶이는 확실히 맛있었다. 그러나 성호는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을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었다.

    “맛있지?”

    “그러네.”

    확실히 떡볶이는 맛있었다.

    안에 들어 있는 떡의 쫄깃함이나 어묵의 탱글함이 살아 있었다. 문제는 이 붉은 고추장 소스다. 뭐가 들어 있는지 계속 손이 갔다.

    “너 붉은 머리로 물들인 거 잘 어울린다.”

    “이거 물들인 거 아냐.”

    “그럼?”

    “부작용 때문에 자연적으로 변한 거야.”

    “대박.”

    이 여자는 그걸 또 믿어 준다. 사실이기는 하지만 세상 누가 그대로 믿어 줄까?

    이 여자는 뭔가 같이 있으면 따뜻했다.

    “너도 수능 봐?”

    “응, 당연하지.”

    “실용 음악은 수능 안 보는 걸로 아는데?”

    “나 실용 음악 아냐. 난 경영학과 지원해.”

    “경영학과? 그 노래 실력에?”

    경영학과 지원하는 분의 노래 실력이 프로급이다. 다른 가수들을 씹어 먹을 실력으로 경영학과에 가겠단다.

    “노래는 울 아빠가 넘 반대해서 취미로만 하려고…….”

    “아깝겠다.”

    “어쩔 수 없지. 넌?”

    “나는 아직 과를 정하지 않았어.”

    “좋겠다. 부모님이 강요하는 게 없어서.”

    성호의 표정이 굳었다. 어머니라면 어떤 학과에 가라고 하셨을까? 아니면 자신의 선택에 무조건 지지해 주셨을까?

    “왜?”

    “나 어렸을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어.”

    “아! 미안.”

    “아니야, 옛날 일인걸. 그런데 넌 내가 누군 줄 알고 밥 사라고 한 거야? 처음 보는 사람한테.”

    수지가 눈부시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 성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네가 마음에 들어서.”

    “큼.”

    목구멍에 넘어가던 떡볶이가 튀어나올 뻔했다.

    “자유로워 보이는 붉은 머리카락, 그 미소, 그리고 네가 박수친 것도 기분 좋았고.”

    수지의 미소에 성호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난 부모님이 엄해서 한 번도 이렇게 해본 적이 없어. 그래서 꼭 해보고 싶었는데 딱 마음에 드는 네가 나타난 거지.”

    “취향 저격이네.”

    “그렇지.”

    성호는 수지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집 앞에 경찰차가 와 있다는 것이다. 무려 2대의 경찰차와 십여 명의 경찰과 형사들까지 보였다.

    “이거 뭐여.”

    자신의 집이건만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내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껴야 했다.

    “성호 님, 전화도 안 받으시고 너무 늦으셔서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실종 신고를 했어?”

    “넵.”

    “머리 박아.”

    “…….”

    경찰들에게 죄송하다고 해명하고 돌려보냈다.

    경찰들도 바쁘다. 그런 분들을 위해 따뜻한 캔 커피를 나눠줬다.

    그리고 최태욱 실장의 과한 처사에 대한 응징은 바로 이루어졌다.

    그의 과한 처사 덕분에 경호원들과 일하는 아주머니들도 집에 못 가고 걱정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다들 저 기다리느라 저녁 안 드셨죠? 오늘 저녁 식사는 같이하죠”

    성호의 집에서 일하는 분들은 모두 12명이다.

    성호는 지혜의 학문이라는 마법과 하늘과 땅의 이치를 배우는 천마 신공을 익혔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는 사람 보는 눈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그가 보에도 최태욱 실장이 까다롭게 뽑은 티가 났다. 사람들이 진실해 보였고 성실해 보였다.

    순식간에 마당에 숯불이 올라가고 고기들이 준비되었다.

    “이권희 집사님, 그동안 제가 바쁘다 보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네요.”

    “회장님,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이권희는 50대 중반에 마른 편이고 얼굴에 생긴 잔주름들이 있었지만, 웃는 상이라 표정이 밝고 젠틀해 보였다. 반백의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뒤로 넘기고 있었다.

    “회장님, 이번에 새로 오신 분들을 소개해 드려도 될까요?”

    “네, 저야 좋습니다.”

    “이쪽은 전주에서 올라오신 박순자 아줌마고 여기는 집을 지켜 줄 새로운 경호원들입니다.”

    박순자 아주머니는 서글서글해 보였고 친구 집 엄마 같은 모습이었다.

    경호원으로 온 다섯 명은 날렵해 보였는데 팔과 목 등의 근육을 보면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들 같았다.

    “집에 사람들이 많아지니 좀 더 생동감이 있어 좋네요. 어려운 일 있으면 눈치 보시지 마시고 말씀해 주시고 아직 세상에는 제 얼굴이 알려지면 안 되니 보안에 신경 써 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한집에서 살게 된 사람들이다. 가족처럼 신경 써 주고 싶었다.

    어떤 갑질하는 회장님들의 가족들처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태욱 실장님, 이분들의 가정적인 어려움까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차가 낡았으면 바꿔주시고 집에 아이들 학원비랑 등록금 같은 것도 챙겨 주시길 바랍니다. 이분들은 미래 그룹의 정직원으로 전환해 주세요. 모든 복지도 동일하게 받을 수 있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조처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미래 그룹으로 정직원 전환에다가 가정적인 어려움까지 책임져 준다는 말에 놀라고 있었다.

    “우리가 잘못 들은 걸까?”

    “아닙니다. 회장님은 한번 말씀하신 것은 꼭 지키십니다.”

    성호의 말은 곧 의지다. 두 번 고민하지 않았고 한 번 한 말은 지킨다.

    그날 저녁에는 바쁜 와중에도 한집에 같이 있게 된 사람들과 같이 바비큐 파티를 했다.

    3명의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들은 어떻게 했는지 바비큐가 살살 녹았다.

    그때 문자가 왔다.

    [너 깨톡도 안 하니?]

    [그게 뭔데?]

    [당장 깔아.]

    깨톡이 뭐기에 이럴까?

    “최태욱 실장.”

    “넵, 회장님.”

    “깨톡 좀 깔아 주고 사용법 좀 알아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전문가가 있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깨톡 개발자를 부를까요?”

    또 일을 키운다.

    “머리 박아.”

    “넵.”

    그냥 비전문가인 최태욱 실장에게 어렵게 배워서 설치했다.

    역시 이런 게 끈 이론이나 상대성 이론보다 어렵다.

    설치하니 깨톡으로 단발머리의 파란 고양이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오늘 즐거웠어.]

    업무적인 문자 말고 이런 사적인 문자는 처음이었다.

    [그래, 수능 끝나고 보자.]

    [너도 내일 수능 잘 봐.]

    그런데 뭔가 코끝이 간질간질하고 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라고.”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

    수능 날 아침, 기온이 뚝 떨어졌다. 성호는 수능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성호 님, 도시락입니다.”

    “감사합니다.”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박순자 여사님의 도시락이다. 전주분이시라 반찬이 그냥 환상적으로 맛있었다.

    “이게 다 뭐지?”

    집의 앞마당에 엄청난 숫자의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상자의 수만 해도 수백 개.

    “엿입니다.”

    “…….”

    성호로 인해서 노예가 된 국회의원들과 장관들이 보냈다고 한다.

    “소문이 벌써 난 건가?”

    “다들 회장님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된 거지 소문이 난 건 아닙니다.”

    그래도 엿이 너무 많다.

    “이거 다 고아원 갔다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노인정도 돌리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어르신들 이빨 다 뽑을 일 있냐?”

    “아!”

    “어르신들에게는 양갱으로 따로 사서 보내 드리고.”

    “알겠습니다.”

    성호가 탄 검은색 벤치 차량이 움직이자 그 뒤로 수행비들과 경호원이 탄 밴 두 대가 따랐다.

    “가까운데 꼭 차까지 타고 가야 하나? 시험장 입구는 이미 차량 통제가 되고 있을 텐데 말이야.”

    “전과 같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야 합니다.”

    “무슨?”

    “갑자기 성호 님의 얼굴이 공개된다거나 또는 테러, 천재지변, 자연재해 등이 있을 수 있고, 교통사고 등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

    성호는 어이가 없어서 최태욱 실장을 한참 바라봤다.

    “큼큼, 조금 늦었지만, 이 속도면 지각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회장님.”

    최태욱 실장이 성호의 시선에 당황해 하면서 말을 돌렸다.

    사실 7시 45분이지만 아직 여유는 있다.

    “어쩔 수 없지 천천히 가자.”

    “넵!”

    성호는 이미 공부는 끝냈기에 창문을 보면서 경치를 구경했다.

    “저게 뭐지?”

    사거리에 버스 뒤에서 하얀 연기를 내며 멈춰 있는 것이다.

    문제는 버스에 타려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타고 있던 사람들까지 다 밖에 나와 있다는 것이다.

    “버스가 고장 난 것 같습니다.”

    “이 시간에?”

    7시 50분이다. 8시 10분까지 입실이니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래 이런 상황을 위해 서울시에서 비상용 버스와 자가용을 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버스 주변에 보니 학생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택시들을 타는 학생들이 있기는 하지만 한두 명이 타고 나자 주변에 남아 있는 택시가 없었다.

    깨톡 택시로 호출해도 오는 택시가 없는 것이다. 파업 때문이다.

    “최 실장, 학생들 먼저 태워.”

    “알겠습니다.”

    밴이 학생들 앞에 멈추고 비서실 직원들이 모두 내렸다.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수능 보는 학생들은 모두 타세요.”

    버스 정류장에 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렸다.

    두 대의 밴에 8명씩 타고 성호가 탄 승용차에도 3명이 더 탔다.

    “대박, 너 아빠가 엄청 부잔가 보다.”

    처음부터 말 터는 녀석도 있다.

    ‘이 녀석 사막 한가운데 놔도 살겠어.’

    “제가 부잡니다.”

    “…….”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의를 좀 아는 녀석도 있군.

    “서로 돕고 사는 거죠.”

    역시 수능생들이다. 가는 내내 책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들이 떠나자 버스 정류장에 최태욱 실장을 비롯한 비서실 직원 12명이 남았다.

    밴의 좌석 수가 한정되어 있기에 다 내려야 했다.

    “실장님 춥습니다.”

    “원래 수능은 추운 겁니다.”

    8시에 무사히 시험장에 도착했다. 차가 멈추고 내리자마자 수험생들은 정문을 향해 달렸다.

    「선배님들 힘내세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대박 수능 되세요.」

    「찍어도 만점 가즈아.」

    학교 정문에는 여러 플랜카드들과 응원하는 후배들이 보였다.

    자신도 정상적으로 고등학교에 다녔다면 저런 분위기를 더 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쉬움이 남았다.

    수능 문제는 모두 210문항이다. 첫 번째 시험은 국어로 시작했다.

    아침 8시 40분에 시작된 시험은 오후 5시 40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휴식 시간을 빼고 8시간 14분의 시간이 12년간의 학교 생활의 결과를 판가름한다.

    이 시험의 결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이 잔인하지만 그것이 성인들의 사회다.

    이제 학생에서 자신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성인이 되는 첫 관문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최태욱 실장이 나와 있었다.

    “교육부 장관을 꼭 노예로 만들든지 해야지.”

    “네?”

    “아니야. 일정이 바쁜데 빨리 가지.”

    “알겠습니다.”

    성호의 오늘 일정은 다음 제품 출시를 위해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깨톡!

    집으로 가는 중에 수지에게서 깨톡이 왔다.

    [시험 잘 봤지? 나 우울하당.]

    [시험이 어렵긴 어렵더라. 교육부 장관을 다음에 만나 봐야겠어.]

    [응? 여기서 교육부 장관이 왜 나와?]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여튼 우리 힘들었으니 놀러 가자.]

    [그래.]

    그냥 그런 문자인데 웃음이 난다. 이런 것이 일상의 행복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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