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 회장님-28화 (28/225)
  • 《28화》

    산은 붉고 노랗게 물들어 가고, 하늘은 청명하여 어디든지 놀러 가기 좋은 날씨다.

    가을, 이런 날씨에는 상투적인 SNS의 이모티콘보다는 마음을 담은 손 편지를 쓰고 싶었다.

    성호는 편지 두 장을 정성스레 썼다.

    하나는 아버지에게, 나머지 하나는 어머니에게 말이다.

    “아버지, 지금에서야 갑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는 길이다.

    그리고 이번에 가면 부모님의 무덤을 이장할 생각이다.

    그런 곳에 갈 때는 스스로 운전해서 가고 싶었다.

    최태욱 실장과 박동진 변호사를 낡은 아판테에 태우고 고속도로로 올라왔다.

    “회장님, 안전 운전하십시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박동진 변호사는 성호가 초보 운전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방금 200킬로로 달리기 시작하……. 아! 앞에, 앞에!”

    -부앙!

    느낌상 약간 달려가는 속도인데 벌써 시속 200㎞ 이상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너무 느려서, 지금부터는 안전운전하겠습니다.”

    “네…… 네, 제발 그렇게 해주세요.”

    고흥으로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려서 식사했는데 밖으로 나오다 보니 맛있는 게 많았다.

    “최태욱 실장.”

    “넵.”

    “저 꼬치를 좀 사 와.”

    “알겠습니다.”

    최태욱 실장이 꼬치 파는 가게를 향해 비장한 표정을 하고 떠났다.

    그런데 10분, 20분이 지나도 오지를 않는 것이다. 성호가 기다리다 지쳐 찾으러 갔다.

    꼬치가게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최태욱이 보였다.

    “파시죠?”

    “안 팝니다.”

    “왜 안 팝니까? 원래 가격에서 30%까지 더 드린다니까요?”

    “그래도 안 팝니다.”

    ‘꼬치 하나 사는데 왜 이런 실랑이까지 하는 거야?’

    성호가 안 되겠다 싶어 나서려고 하려는데 이야기가 이상하다.

    “어떻게 이 꼬치 가게를 팝니까? 이걸로 애들 대학 보내고 그러는데 말입니다.”

    “꼬치 가게 하나가 얼마나 한다고! 주인님의 지시니까 당장…….”

    -팍!

    최태욱 실장이 뒤통수를 감싸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쓰러진 최태욱의 뒤에서 성호가 주먹을 들고 서 있다가 꼬치 가게 주인에게 급하게 사과 했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이분이 좀 오버하는 경향이 있어서……. 꼬치 하나만 주십시오.”

    “아, 네…….”

    하여튼 맛있는 꼬치를 휴게소에서 사 먹었다.

    차는 거금 대교로 접어들었다.

    고흥 녹동에서 거금도까지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다보니 꽤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졌다. 양쪽으로 시원하게 바다가 보였고 소록도도 보였다.

    거금도에 가서도 한참을 달려 산으로 올라가서야 아버지의 산소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 중턱에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 태양열 발전소가 지어져 있었는데 그곳을 넘어가야 아버지의 산소가 있다.

    “이용찬 이 자식, 엄청 오지에다 모셨네.”

    양해를 구해 태양열 발전소의 울타리를 지나 산속으로 오르자 두 개의 무덤이 보였다.

    아무렇게나 삐죽삐죽 자란 잡초와 누렇게 변한 풀들로 인해 더 쓸쓸해 보였다.

    아버지의 무덤이 이곳으로 정해지자 어머니의 무덤도 유언대로 그 옆에 이장되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아버지를 위해 사셨다.

    죽어서도 소원이 아버지 옆에 묻히는 것이었단다.

    ‘소원.’

    갑자기 어머니의 소원이 생각이 났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학교에 가서 친구들 많이 사귀기, 착한 여자와 결혼하기.

    “아버지, 어머니 이제야 오게 되었습니다.”

    성호와 일행들은 모두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번에 부모님을 이장하기로 했다.

    이장을 위해 전문 장의사들이 와서 토지신제와 계묘고사를 지내고 주과포혜(酒果脯醯)를 묘 앞에 차렸다.

    간단하게 제사를 지내고 묘를 팠다. 대리석으로 만든 두 개의 석관이 나왔다.

    “컨저베이션!”

    성호가 각각의 관에 보존 마법을 걸었다.

    “따뜻하고 경치 좋은 곳으로 옮겨 드릴게요.”

    성호는 또다시 이장을 위해 장례식 버스를 쫓아 경기도로 향했다.

    부모님의 무덤은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라는 절 아래에 이장되었다.

    수종사 앞에는 북한강이 흐르고 있어 풍수지리적으로도 으뜸인 곳이다.

    “마음에 드시죠?”

    여기까지 오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12년간 정신병원에 갇혀 있게 된 일과 마법과 무공을 배우고 미래 그룹을 되찾기까지의 많은 일을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이용찬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교통사고를 일으킨 일과 주주총회에서 미래 그룹을 되찾기까지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멘츄스 그룹이라는 곳이 있는데 아시죠?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놈들.”

    -부드득…….

    성호의 이가 갈렸다.

    “복수를 준비하고 있어요.”

    성호는 앞으로 멘츄스 놈들의 뒤통수를 어떻게 때려 줄지 소상하게 설명했다.

    “할 말들은 많은데 이제 가 볼게요.”

    성호는 오기 전에 쓴 편지를 태워 하늘로 올려보냈다.

    12년간이다.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지만 이렇게밖에 전할 길이 없다.

    성호가 부모님들과 인사한 뒤에 최태욱과 박동진도 산소에 와 절을 했다.

    “저 최태욱입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회장님, 배신해서 죄송합니다. 꺼이 꺼이..”

    사죄하는 최태욱의 울부짖음에 왜 웃음이 나는 걸까?

    따뜻한 가을 햇볕을 가리는 구름 사이의 누군가가 웃고 있는 듯했다.

    [고맙다.]

    떠나는 내내 성호는 말이 없었다.

    “최 실장.”

    “넵, 회장님.”

    “내 얼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

    “그렇습니다.”

    “그럼, 고등학교에 가야겠다.”

    “회장님은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 하셨습니다.”

    “응?”

    “이용찬이 이미 손을 써 둬서 고등학교를 이미 졸업하셨습니다.”

    “내가?”

    “그렇습니다.”

    어이가 없다. 이런 일에는 불법적인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이용찬이 한 거긴 하지만 꺼림직하다.

    “불법적인 부분은?”

    “서류상으로는 없습니다. 모두 병가 및 특별 사항으로 만들어서 졸업장만 받았습니다.”

    어이가 없다.

    “그럼, 수능 원서 넣어.”

    “네?”

    “대학교에 가야겠다.”

    어머니의 소원을 하나 들어드리기로 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많이 만드는 소원을 이뤄드리려고 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도 많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대학교에 가기로 했다.

    수능이지만 공부라고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자신은 대마법사이지 않은가?

    성호는 그날 이후로 수능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46권의 수능 문제집을 주문해서 풀기 시작했다.

    “이게 수능 수준이라고?”

    이건 대학교 교수들도 어려워할 정도의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풀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이 대단해 보였다.

    “이걸 풀라고 만든 문제야?”

    교과서에 없는 문제들이다. 모두 학원이나 문제집에서 나온 것들이고, 심지어 작년인 2020학년도 수능에 나온 문제들은 어느 곳에서도 출제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았다.

    이건 창조 수준을 넘어 미스터리 수준이다.

    “교육부 장관을 노예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 많은 국회의원과 장관들이 뇌물 받으러 왔다가 국민들의 노예가 되었는데 교육부 장관만 안 왔다.

    1년 전에 새로 임명되었다는데 아직 때가 덜 탔었나 보다.

    그 뒤로 성호는 한 달간 최선을 다해서 수능 공부를 했다.

    미래 그룹은 성호가 수능 공부를 하는 동안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서 새로운 제품의 출시를 준비했다.

    제품의 수는 총 3가지로 세탁 및 세척 장치와 입체영상 장치였다.

    그냥 제품을 만든다고 바로 판매할 수는 없다.

    제품의 디자인, 광고, 판매 제품의 확보 등의 일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10월에는 이용찬의 1심 재판도 열렸다. 모든 증거 자료들이 확실했기에 선고가 무기징역으로 나왔다.

    당연히 이용찬은 2심을 신청했고 진행 중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공부가 끝났군.”

    한 달 동안 수능 문제집 46권을 풀고 고등학교 교과서를 전부 외워 버렸다.

    11월 14일 드디어 예비 소집일이 찾아왔다.

    성호가 시험을 볼 학교는 평창동에 있는 예고였다.

    가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성호는 자신이 다니지 못한 고등학교의 모습을 느껴 보고 싶었다.

    “나 혼자 갔다 온다.”

    “회장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최태욱 실장이 움직이면 그 수행원들까지 십여 명이 한꺼번에 움직인다.

    법무팀, 재무팀, 기획팀, 비서실 등이 같이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움직이면 학교에 가는 의미가 없어진다.

    “아니, 나 혼자 간다.”

    “넵.”

    주인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성호는 운동복 차림으로 천천히 달렸다.

    “이런 데서 저런 전력 질주를?”

    “운동선순가?”

    “엄청 빠른데.”

    100m를 9초에 주파하는 속도다. 하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온종일 달려도 지치지 않는다.

    “속도가 너무 느리니 상쾌한 맛이 없군.”

    성호가 투덜거리며 수능의 예비 소집 장소인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왔다.

    이미 오후에는 하교가 이루어져서 일반 학생들은 없었지만, 예비 소집일이라 수능 보는 학생들이 와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을 처음 가 봤는데 뭔가 설렜다.

    학생들이 서로 노는 왁자지껄한 모습까지 봤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도 고등학교라는 곳을 다녀 봤으면 좋았겠는데……. 아쉽네.”

    칠판과 책상, 학교라는 분위기에 휩쓸려 여기저기 돌아다녀 봤다.

    자그만 글씨로 만들어진 낙서들, 복도에 걸려 있는 유치하지만, 창의적인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띠리리링…….

    그때 들린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성호가 고개를 돌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듣지 못하겠지만 성호의 청각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 간 지 오래다.

    이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이끌리듯이 성호는 걸어갔다.

    “우리는 사랑의 길 위를 걷고 있어…….”

    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작은 콘서트홀에 와 있었다.

    이삼백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콘서트홀에는 피아노가 놓인 무대가 있었다.

    그리고 피아노가 있는 무대의 조명 아래 열정에 휩싸여 노래를 부르는 그녀가 있었다.

    전주가 폭풍처럼 돌변하더니 다른 노래로 변했다.

    “너의 감미로운 손길 없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무도 없는 학교의 콘서트홀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달콤하고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있으려니, 성호의 속에 응어리져 있던 어떤 것이 풀려나가는 것 같이 시원했다.

    12년간 정신병원에 갇혀 살며 쌓아왔던 울분과 슬픔이 풀어져 나가는 것이었다.

    성호는 저도 모르게 멍하니 서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30분이라는 시간이 찰나처럼 느껴졌다.

    길게 이어지던 연주가 끝이 났다. 좀 더 듣고 싶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연주는 계속되지 않았다.

    연주가 끝났음을 알아차린 성호는 한 박자 늦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짝짝짝

    성호가 해줄 수 있는 호의는 박수가 다였다.

    노래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싸던 그녀는 뜬금없는 박수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붉게 머리를 물든 성호가 눈에 보인다.

    ‘어…….’

    까칠해 보이는 그 붉은 머리 때문이었을까? 그는 무척이나 자유로워 보였다.

    먼 거리지만 성호의 두 눈을 본 순간, 어디에선가 신선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생소한 감정에 그녀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싫은 감정은 아니다. 왠지 호감이 갔다.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에 박수를 보내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그녀는 무대에서 내려 성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멀찍이서도 느껴지던 사심 없이 맑은 눈과 자유로운 저 느낌은 진짜였다.

    두 사람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나는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가…….”

    성호가 먼저 당황해 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밥 사.”

    “응?”

    “내 노래 공짜 아니니까 밥 사라고.”

    뭔가 톡 쏘는데 그게 또 뭔가 매력이 있었다.

    무대에서 내려와 가방을 들고나오는 그녀의 키는 165 정도 되어 보였고 단발머리에 화장기는 없는 수수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 그리고 검은색 패딩을 입은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와, 내가 맛있는데 소개해 줄게. 돈은 네가 내는 거다.”

    “갑자기?”

    “싫어?”

    “싫은 건 아니지만.”

    “그럼 좋은 거네. 내 이름은 수지, 김수지야. 넌?”

    “성호, 이성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