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한 달 뒤 가을 초입이 시작되는 9월 말에 마나 반도체 공장이 만들어졌다.
기존에 있던 반도체 공장을 개조 공사하는 것이라 몇 주 만에 끝날 수도 있었지만, 성호가 요구하는 조건이 많아서 조금 더 오래 걸렸다.
그동안 출입이 가능하던 곳을 거의 콘크리트와 철판으로 막았다.
한 번만 한 것이 아니라 철근과 콘크리트를 10센티 간격으로 또다시 부었다.
문은 금고를 제작하듯 막고는 그 안에 무인 자동화 시스템으로 생산 시설을 만들었다.
오직 이곳으로 들어가는 원료와 나오는 제품 이외에는 통과가 안 되는 구조였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미래 전자의 김상욱 사장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성호는 최태욱 실장, 강동민과 함께 왔다.
“김상욱 사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의 명령이신데 당연히 서둘러야죠. 저희도 보여 주신 신제품에 큰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보셨습니까?”
일주일 전에 성호는 워싱이라는 장치를 보냈다.
강동민에게 보여 준 것처럼 모양은 볼품없었다.
원통형의 플라스틱 상자에 간단한 기판이 전부인 장치였다.
“처음에는 쓰레기통인 줄 알았습니다.”
“큼큼……. 디자인은 앞으로 개선될 겁니다. 성능은 어떻습니까?”
성호가 당황스러웠는지 헛기침을 했다.
“네, 놀라울 정도죠. 옷들이 어떻게 그렇게 깨끗해지는 겁니까? 지금 개발 부서에서는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해서 감도 못 잡고 있습니다.”
“그 제품은 여기 있는 기획팀 강동민 소장의 작품입니다.”
“반갑습니다. 강동민입니다.”
강동민이 손을 내밀어 김상욱과 악수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미래 전자 사장 김상욱입니다.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깨끗하게 되는 겁니까?”
“마나라는 에너지의 활용입니다. 아마 들으셔도 모르실 겁니다.”
“앞으로 이 제품이 생산되면 전 세계의 세탁기 회사와 세탁소가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물과 세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단 1분 만에 새 옷같이 해주니까 말입니다.”
“그것만 보셨습니까? 식기 세척기와 집 안 청소도 같은 원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식기 세척기와 집 안 청소에도 사용된다면 혁명이 일어날 겁니다. 다만 디자인은 꼭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디자인은 회장님아 작품입니다.”
강동민이 그렇게 말하며 불만인 듯 성호를 바라봤다.
“큼큼, 바꿔야죠. 하여튼 그 마나 에너지를 만드는 핵심 부품이 이곳에서 만들어질 텐데 전 세계가 노릴 겁니다.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써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김상욱은 원리 원칙주의자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을 꼭 지킨다.
“좋아요. 자 이제 공장 내부를 볼까요?”
앞으로 생산되는 제품이 보안과 마나의 생성, 마법진의 완성을 위해서는 마나 반도체는 필수적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미래 전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마법 문화의 꽃이 필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작은 문이지만 두꺼운 철문이 열리고 좁은 복도가 보였다.
“회장님, 설계도처럼 무인 자동화 설비를 갖추었습니다.”
좁은 복도를 지나자 작은 공터가 나왔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자동화 로봇 팔들이 꽉 차 있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실용적으로 잘 만드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밖에서 보면 5층의 건물인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 5층이 더 있는 큰 공간이 나타난다.
이런 곳이 완전 밀봉 상태의 건물이 되었다. 아마 가동이 시작되면 안쪽에는 공기 대신에 질소만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산소마스크를 쓰거나 1시간 이상 공기를 순환해야 한다.
마법진을 이용하면 먼지 하나까지도 컨트롤되고 기계들의 수리나 정비도 필요 없을 것이다.
성호가 형상기억 마법이나 보존 마법을 걸어두기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태욱 실장, 내가 준비하라는 건?”
“넵, 어렵사리 영화 소품 제작사들을 알아보다가 외국의 모 영화사에서 모형 로봇들을 구매 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께서 이상한 명령을 했다.
영화 소품으로 사용하는 로봇의 뼈대를 구해오라는 것이었다.
영화 소품이기에 실제 작동하지 않는 로봇이지만, 더한 것을 구해오라 해도 최태욱은 그대로 했을 것이다.
그는 성호의 노예니까 말이다.
“지금부터는 보안 때문에 보여 드릴 수는 없습니다. 강동민 소장만 빼고 다 나가 주십시오.”
“넵, 회장님.”
강동민을 빼고 성호를 따라서 왔던 김상욱 사장과 공사 관계자들이 밖으로 나갔다.
총 5개의 박스가 공장 한가운데 있었다.
“회장님아, 이걸로 살아 있는 로봇을 만들려고?”
“그렇습니다.”
“알면 알수록 마나라는 에너지는 대단한 것 같단 말이야.”
성호와 강동민은 네모난 박스로 포장된 로봇 뼈대들을 오픈했다.
로봇이라면 원래 달려 있어야 할 작동 프로그램이나 메인보드, 배터리, 모터 등이 없는 순수한 뼈대만 있는 로봇들이다.
채핑이라는 로봇 영화 제작사에서 모형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재질과 관절 모양은 준수한 편이다.
“오, 그럴싸한데? 너희들은 앞으로 멋짐 1호, 2호, 3호로 부르마.”
“…….”
강동민이 멋대로 이름을 붙였다.
이 녀석들이 앞으로 마나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골렘이 될 것이다.
성호는 전에 만들어 놓은 반도체들을 꺼내서 녀석들의 머리 안에서 넣고 마법진을 그려 넣었다.
에고를 만드는 것이다.
에고는 마법으로 만든 인공지능인데 볶잡한 구성 때문에 성호는 아직 4살 정도의 정신연령을 가진 에고만 만들 수 있다.
낮은 정신연령을 보완하기 위해 컴퓨터와 연결해서 프로그램화했다.
정신연령은 4살이지만 연산이나 일에 대한 부분은 사람을 능가한다.
성호는 온 정성을 다해서 각 관절에 마법진을 그려 넣었다.
“오, 복잡한데? 회장님아 뭔지는 설명 좀 하고 하지?”
“마나 회로는 어디까지 이해하셨죠?”
“2단계…….”
“지금 하는 것은 6단계입니다.”
“…….”
6단계라는 말에 강동민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2단계만으로도 천재인 자신이 버벅거리고 있는데 6단계라면 상상도 안 된다.
“라이프 인 골렘!”
로봇 뼈대들이 눈이 밝게 빛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어리바리하더니 곧 자세를 잡고 성호 앞에 모였다.
“나는 너희들의 주인이다. 지금부터 너희들의 머리에 그려진 대로 마법진을 공장 안에 만들도록 한다.”
[알았다. 주인 시킨다. 우리 일한다.]
뭔가 오래된 라디오 음질 같이 갈라지는 음성이었다. 그리고 에고 성능이 아직 4살 아이 수준이라 뭔가 말이 짧았다.
그런 5대의 멋짐1,2,3 골렘들이 사방에 흩어져 공장 곳곳에 구리 선을 이용한 마법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좋아.”
성호는 골렘들이 잘 움직이는지 확인한 뒤에 중앙에 있는 메인 통제실로 들어갔다.
그곳에 손바닥 크기의 마나 반도체 원판을 꼽았다.
“강화 마법까지 새겨 넣었으니 오래 쓰더라도 부서지진 않겠지.”
이제 반도체 공장은 이 원판대로 제품을 만들어 낼 것이다.
성호는 중앙 통제실에 반도체를 병렬로 연결했다. 많은 일을 해야 하니 생산하는 마나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다.
[주인, 다 되었다.]
골램들이 일을 끝내고 모여 있었다.
그런데 하나가 없다.
-댕! 댕그르르.
어딘가에서 굴러온 볼트!
골렘 하나가 완전히 분해되어 있었다.
“강동민 소장님?”
“회장님아 미안, 너무 궁금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그만.”
“앞으로 2단계를 완벽하게 마스터 할 때까지 특별 훈련입니다.”
“회장님아 미안하다니까?”
“머리에 마나 회로도를 확실히 박아 드리죠.”
“아악!”
성호는 어쩔 수 없이 직접 공장을 한 바퀴 돌며 잘못된 부분이 있나 한 번 더 점검했다.
성호가 전기를 연결하자 마나 칩들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메인 컴퓨터와 연결되어 작업이 준비되었다.
여기저기에 만들어진 마법진들이 밝은 빛을 내더니 사라졌다.
마나 반도체를 만드는 기계 장치들이 작동을 시작했다.
기존에 설치된 자동화 로봇마다 강화 마법, 형상 기억 마법, 보존 마법이 걸려 있었고 생산 공장 전체에 클린 마법과 락 마법이 적용되었다.
[작업이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내부에 있던 메인 컴퓨터에서 작업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신호가 잡혔다.
“이제 나도 나가야겠네. 언락, 그레이트 실드.”
성호가 밖으로 나오면서 문과 벽에 그려진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인첸트된 마법진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마나가 문과 벽을 지나며 밝은 빛을 내뿜었다.
벽과 문에는 락 마법이 걸려 있었고 그레이트 실드가 적용되었다.
또한, 함부로 벽을 부수거나 억지로 내부로 침입할 경우 엄청난 고열을 내며 내부가 파괴되도록 설계되었다.
지금부터는 이 반도체 공장에서 마나 생성 집적 회로 반도체가 생산되어 나올 것이다. 그럼 전기만 있다면 어떤 마법이든 만들어 사용하면 된다.
강동민이 궁금해서 물었다.
“벽 전체에다가 무슨 장치를 한 거야?”
“방어막 같은 걸 설치했습니다.”
“오, 방금 그 마나 회로가 방어막이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성호가 작은 쪽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상욱 사장이 밖으로 나오는 성호를 보고 반겼다.
“오래 기다리셨죠? 이제 공장 가동을 시작하세요.”
“알겠습니다.”
내부를 질소로 충전하는 일과 전기의 공급, 원료의 투입 등이 이루어지며 반도체 생산 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2020년 가을, 대한민국은 마법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최초의 시설을 만들게 된 것이다.
***
네츄럴은 1869년 출간된 플래그쉽 형태의 출판물로 종합 과학 분야를 다루는 주간지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 학술지이며 가장 저명하다고 평가받는 과학 학술지이다.
[마나 에너지와 마나 역학]
그곳에 강동민이라는 이름으로 논문이 도착했다.
그 논문에는 마나라는 에너지에 대한 설명과 회로에 의해 변하는 성질, 그리고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 적었다.
처음 논문을 받아 본 네츄럴 편집장 랄프는 코웃음 지었다. 논문에 실린 마나 에너지의 마법 같은 내용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신비한 에너지? 딱 봐도 사기꾼이네.”
그런데 함께 첨부된 플라스틱 원통의 전자 제품 하나에 그 생각을 접어야 했다.
테니스를 치고 땀투성이의 옷을 시험 삼아 넣어 봤다. 그런데 단 1분 만에 새 옷같이 뽀송뽀송하게 변했다.
자신이 직접 넣고 뺐으니 트릭이나 어떤 속임수도 있을 수 없었다.
랄프는 계속 다른 것도 실험해 봤다. 바지, 속옷, 양말뿐만 아니라 신던 운동화도 넣어 봤다.
모두다 1분 만에 새것 같이 변했다.
“이건, 흥미를 넘어 놀랍군.”
그렇다고 이 정도의 내용만 가지고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인 네츄럴에 실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국의 미래 그룹 연구실에 있다는 강동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동민 박사님 되십니까?”
[그런데요. 요즘 회장님아가 내준 숙제하느라 바쁜데 용건만 말씀하시죠?]
“네츄럴지의 편집장 랄프입니다.”
[그런데요?]
강동민의 귀찮다는 투의 말에 랄프가 도리어 당황했다.
“논문을 보내 주셨는데 전혀 신뢰가 안 생겨서요.”
[신뢰가 안 생겼는데 전화를 다 하셨네요.]
이런 부류는 천재거나 아니면 똘아이다.
“하하하, 다만 보내 주신 이상한 제품 때문에 문의했습니다. 그와 비슷한 마나 에너지를 이용한 제품이나 실험 데이터를 보내 주실 수 없나요?”
[그럼 데이터하고 다른 샘플 보내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럴 줄 알고 이미 택배로 보냈습니다. 그럼 전 바빠서 이만.]
뚝!
“네?”
전화가 끊어졌다. 이런 무뢰한이 있나?
「띵동!」
통화가 끝나자마자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나가 보니 한국에서 온 택배다.
랄프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도착한 택배를 보고 엄청 놀랐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보낸 것도 놀라운데 그 시간까지 꼭 맞춘 듯이 도착한 것은 더 놀라웠다.
택배로 온 박스를 열자 작은 책이 가장 먼저 보였다.
마나라는 에너지가 가지는 성질과 그에 따른 전기 에너지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다음으로 나온 것은 직경 5㎝ 정도의 얇고 작은 플라스틱판 두 개였다. 하나는 붉은색이고 다른 하나는 푸른색이다.
문제는 붉은색은 50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했고 푸른색은 영하 5도를 유지했다.
“이게 뭐지?”
처음에는 이상한 플라스틱판이네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 일째 되었을 때 보통 물건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플라스틱판들의 온도가 아직도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나 화학 에너지는 분명히 아니야. 그럼 뭐지? 인류에게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제3의 에너지인가?”
랄프는 이 놀라운 마나라는 에너지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email protected]@년 10월 첫 주 네츄럴 주간지의 표지 제목을 ‘마나 에너지’라고 정했다.
그리고 그 마나 에너지를 이용한 이론들을 실제 마법과 같다고 해서 마법 역학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