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성호는 요즘 전기를 마나로 만드는 회로도를 연구하느라 바빴다.
마나 회로도 칩은 작고 복잡했다.
-똑똑.
“들어와요.”
문을 열고 최태욱 실장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이 약간 굳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자신을 찾아온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회장님을 만나 보겠다고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기자나 뭐 그런 부류라면 그냥 가라고 해요.”
“그게……. 한국당의 박만중 의원입니다.”
“국회의원이 왜 기업의 회장을 만나러 와요?”
“정치 자금을 받으러 온 것 같습니다.”
성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무슨 건달도 아니고 국회의원이 직접 정치 자금을 받으러 찾아온단 말인가?
“그런 정치인이 한둘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이용찬 전 회장 때는 몰래 여당에 의원 중에 40%, 야당 의원 중에 50% 정도는 정치 자금을 줬습니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똑같네요?”
“다 정치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거 그런 사람들까지 정신 개조를 해줘야 밝은 세상이 되려나……. 참나.”
다시 와이셔츠와 양복을 차려입은 성호가 회장실 문을 나섰다.
이를 악다문 그의 표정이 또다시 무섭게 변했다.
회장실을 지나 복도를 지나가다 보면 인테리어를 잘해 놓은 정원 같은 분위기의 바가 하나 나온다.
한쪽에 당구대도 있고 골프를 칠 수 있게 잔디로 만든 홀도 있어서 보통 정성을 들인 곳이 아니라는 표시가 났다.
그뿐 아니었다. 창문 밖으로는 인공 폭포가 있는 정원이 보여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 사이로는 금송이 몇 그루가 있었고 꽃나무들도 아름답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뒤에는 서울의 도시 풍경과 한강이 보였다.
“정말 좋은 곳이네요. 회사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대부분 이곳과 반대편에 있어서 올 기회가 없었다.
“이용찬이 거의 살다시피 했던 곳입니다.”
“별걸 다 만들었군.”
한쪽에 한옥 같이 꾸며 놓은 곳에 방이 하나 있었다. 주변에 대나무를 심어 놓아 운치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왜 방이 있는 거지.”
“일명 밀실입니다.”
“아하! 별걸 다 했네”
옛날 이용찬은 국회의원이나 비밀리에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곳에서 만났다.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도 따로 있고 복도도 따로 있어서 비밀이 보장되는 곳이다.
밀실 앞에는 쥐색 양복을 입은 박만중 의원의 보좌관이 서 있었다.
이런 일에는 보좌관이 같이 합석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이성호 회장님이십니까? 박만중 의원님께서는 안에서 기다리십니다.”
“그렇습니까? 죄송하지만 의원님과 조용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니 1층에 있는 로비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하긴 그러시겠죠. 알겠습니다. 제가 1층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박만중 의원의 보좌관도 여기에 왜 왔는지 대충은 감을 잡고 있다.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다.
성호는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밀실로 들어갔다.
“최 실장도 같이 들어가지.”
“넵”
성호는 밀실의 앞에 놓인 신발을 자세히 살폈다.
신발 사이즈나 볼이 넓은 것을 보면 뚱뚱한 체형이었고 새 신발이지만 뒤꿈치 안쪽이 닳아 없어진 것을 보면 팔자걸음을 걷는 자일 것이다. 거만하다는 이미지가 바로 연상되었다.
-드르륵.
옆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성호와 최태욱 실장은 대머리에 통통한 얼굴을 한 중년의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볼살이 늘어져서 푸덕해 보이지만 눈매가 매서워서 가까이하기에는 꺼려지는 사람이었다.
내부 장식은 앉아서 식사하도록 좌식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이 만나는 자리가 아닌 만큼 작은 공간이었다.
“회장님 이분이 박만중 국회의원입니다.”
박만중은 일어서지도 않았다.
팔짱을 끼고는 뭔가 불만이 있는 것 같은 그의 태도가 성호의 성질을 긁었다.
최태욱은 성호의 눈빛이 변한 것을 보고 오늘 박만중 의원의 고난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아! 이분이 박만중 의원이시구나……. 난 또 돼지 새끼인 줄 알았네.”
박만중 의원의 고개가 획하고 올라갔다.
지금 들은 게 잘못 들었나 싶어 확인하려는 눈치였다.
자신이 누군가? 이번 대선 여당이 된 한국당의 국회의원 중에서 넘버 10위 안에 드는 인물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 자신에게 돼지 새끼라니!
“자네 지금 나한테 한 소리인가? 아직 미래 그룹에 대한 내 압박이 부족했나 보지?”
눈을 부라리자, 박만중의 얼굴에 늘어진 살들이 푸들거렸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성호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돼지 새끼 맞네. 저 푸들거리며 떨리는 살 좀 봐.”
성호는 뒤를 돌아보며 최태욱에게 말을 꺼냈다.
최태욱은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주인님의 성격이 장난이 아니다. 이런 일에 빙글 돌아가며 해결하는 성격이 아니다. 오직 직진만 하시는 주인님이다.’
“이 어린 노므시끼가! 내가 누군 줄 알아! 내 말 한마디면 미래 그룹은 산산조각 나!”
벌떡 일어난 박만중 의원이 성호에게 손가락질하며 노발대발했다.
“알아. 네 이름이 박만중이라며? 깡패 새끼들보다 못한 새끼인 줄 내가 잘 알지. 오늘도 삥 뜯으러 온 거 아냐?”
“이게 어디서!”
박만중 의원이 화가 나서 성호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그때 성호가 그의 머리를 잡아서 테이블에다가 눌러 버렸다.
-쿵!
“크억.”
테이블에 코를 처박은 박만중은 뒤통수를 성호가 누르고 있어서 버둥거렸다.
성호는 가볍게 누르고 있었을 뿐이지만 박만중 의원은 워낙 체력이 약해서인지 손만 허우적거릴 뿐, 일어나지는 못했다.
“너, 내가…… 누근주으을 아러어! 하구……국다앙…….”
-퍼억!
“크억!”
성호가 박만중 의원의 뒤통수를 갈겼다.
어떻게 때렸는지 너무 아파서 박만중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한마디만 더하면 대갈통을 부숴 버린다.”
성호의 말에서 살기가 철철 흘러넘쳤다.
“…….”
그 살 떨리는 살기에 박만중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덜덜 떨기만 했다.
성호가 반대편 손을 꺼내 들며 마법진을 만들었다.
“너 같은 녀석에게 꼭 필요한 마법이 있지.”
인슬레이브!
타인을 자신의 노예로 만드는 마법이다.
그 마법으로 지금 최태욱도 성호의 노예다.
그리고 강남을 재배하는 폭력 조직의 두목 백광현도 성호의 노예다.
“무슨 마법이냐고 묻지 마 경험하다 보면 다 알게 되니까.”
-번쩍!
박만중 의원의 뒷목에 노예 마법진을 찍었다.
“으악!”
노예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어떤 사람이 이성을 가진 존재를 노예로 부리고 인성을 망가트리는 것을 좋게 보겠는가?
심지어 집에서 키우는 개도 이렇게 마법을 이용해 종으로 삼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처럼 다른 사람의 고혈을 빨아먹는 사회악을 처리하기에는 그만한 방법도 드물었다.
“박만중.”
“넵, 주인님.”
“회장님으로 불러.”
“넵, 회, 회장님.”
박만중 의원은 미래 그룹의 빌딩에 오기 전만 해도 그동안 받아 왔던 정치 자금을 받아서 어디에 쓸까를 생각했다.
그 돈으로 자신을 따르는 지지 세력들을 더 키워 볼까, 아니면 이번 기회에 개발 계획에 있는 땅을 사들여 돈을 불려 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혹시 이번 새로운 미래 그룹의 회장이 나이가 어리다고 했으니 어느 정도 훈계도 하고 타이르다 보면 더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성호 회장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번에 미래 그룹을 공중분해 하려고 움직였지?”
“넵, 그렇습니다. 미국의 멘츄스 그룹에서 부탁했습니다.”
역시 멘츄스 이 녀석들이 끼어 있다.
“얼마나 받고?”
“백만 달러입니다.”
백만 달러라면 우리나라 돈으로 11억이 조금 넘어가는 돈이다.
달랑 그런 돈에 몇십조가 되는 미래 그룹이 휘청거렸다.
“너 말고 멘츄스 그룹에서 돈 받은 다른 녀석들도 있지?”
“넵, 국회의원들 중에 여당 야당 대부분하고 장관이나 법관들도 있습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여야 국회의원과 장관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장관과 법관까지?”
“그렇습니다. 회장님.”
성호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국회의원과 장관, 그리고 법관들까지 관여했다면 대한민국을 이끄는 정치 세력의 전체라고 봐야 했다.
그런 녀석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공중분해 되면 서로 나누어 가질 생각이었지?”
“죄송합니다.”
지난 역사를 보면 몇몇 기업은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말 그대로 공중 분해되어 버렸다.
기업의 회장이 구속되고 세무 조사가 한 해에도 네다섯 번 진행되었다.
강도 높은 수사뿐만이 아니었다. 언론을 움직여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었고 아주 조금이라도 부당해 보이는 것들은 더 부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기업을 죽이는 것은 정당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넌 왜 찾아왔어? 미래 그룹이 공중 분해되면 그냥 나눠 가지지.”
“저는 공중분해 되기 전에 돈을 더 타내려고……. 아이고, 죄송합니다. 주인님!”
또다시 박만중이 바닥에 이마를 박으며 사죄했다.
“너 말고 또 올 녀석들이 많지?”
“넵, 저 말고 못된 놈들이 많습니다.”
“허, 어이가 없네. 어쩔 수 없이 오는 녀석마다 노예 마법진을 새겨야 할 판이네.”
성호가 어이없어 화를 내자 박만중의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도대체 국회의원은 뭐 하시는 분들이지?”
“국민을 위해서 정치하는 사람들입니다. 회장님.”
“그걸 물어보는 게 아냐. 실제로 뭐 하시는 녀석들이냐고? 실제로 하는 일.”
박만중 의원은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성호의 얼굴을 보며 눈만 껌뻑거렸다. 그런 박만중 의원에게 인슬레이브 마법이 효력을 발휘했다. 박만중 의원은 등 뒤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얼굴을 와락 구겼다.
“끄응.”
이 정도의 짧은 망설임조차 엄청난 고통을 주는 것이 노예 마법진이 진정으로 무서운 이유이다. 충성심이 차오르게 만드는 정신 개조는 덤이었다.
“저희는 실제 국민을 위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합니다.”
“좋아요. 이제야 좀 진실해지네. 계속해 봐.”
성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만중 의원에게 말을 계속하도록 지시했다.
그에 박만중 의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성호가 자신의 말에 마음 들어 하자 자신도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일단 자신이 가입된 정당이 커지고 힘이 있어야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치판에서 상대방의 비방하거나, 약점을 찾아내는 것, 억지를 써가며 떼를 쓰는 것이 주 업무입니다.”
“국민들을 위한 일은?”
“국민들의 일이야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하니까 별로 신경을 안 씁니다. 가끔 시민들의 눈치를 보며 하는 척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말 그대로 하는 척이지요. 일부만 참여할 뿐이지, 모든 정치인이 발 벗고 나서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일단 말문이 트이자 박만중 의원은 정치인답게 말을 술술 이어나갔다.
“일단 정권을 잡으면 대통령이 각 부서의 장들을 선출할 수 있기에 엄청난 힘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개발이 진행되기도 전에 일가친척들을 이용해서 땅을 매입한다거나 주식을 거래하는 정도는 기본입니다. 정권을 잡는 것은 기업들의 정치 자금을 받는 것에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박만중 의원이 성호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솔직히 오늘도 그런 정치 자금을 받으려고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박만중 국회의원은 새사람이 되었으니 과거는 신경 쓰지 말고 이야기나 계속하지?”
“아, 예. 정치 세력은 두 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좌파 우파?”
그 정도는 성호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렇지요. 한쪽은 기업들과 미국, 일본의 권력을 등에 업고 정치하는 매국노들이고 반대쪽은 운동권과 중국, 러시아의 권력을 등에 업고 서민들을 선동하는 거짓말쟁이들입니다.”
노예 마법이 찍혔으니 거짓말은 할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이 진짜 대한민국의 정치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이다.
“다 나쁜 놈들이네. 국민들의 생각은 요만큼도 없고.”
“그, 그렇지요.”
“국민들은 그들의 속임수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거고?”
“그렇습니다.”
“국회의원들 아주 썩었네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