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미래 그룹 본사 빌딩 15층의 대 회의실.
각 계열사의 사장들과 부사장, 임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회장이 엄청 어리다며?”
“그럼 회의 진행 할 때 반말해도 되나? 하하하하…….”
“예끼, 이 사람아! 그러다 젊은 혈기에 내쫓으면 어쩌려고 그래.”
“하긴……. 이번 회장은 이용찬보다 더하겠지?”
“그래도 나이가 어리니 좀 타이르다 보면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하하. 하긴 조선 시대에도 어린 나이에 왕이 되면 신하들이 뒤에서 조정했다니까 말일세.”
“그럼 이번 기회에 섭정해볼까나? 하하하.”
그때 머리가 하얗게 센 중년인이 벌떡 일어났다.
“지금 뭐 하는 거요! 새로 부임하시는 회장님은 전대 이용국 회장님의 자제분이십니다. 이용국 회장님의 은혜를 벌써 잊은 거요?”
“윤 이사, 어디서 나서고 그래! 아직도 미래 에너지의 사장인 줄로 착각하나 보지? 전대 회장의 은혜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윤 이사, 10년도 더 지난 일이야. 아무리 은혜라지만 난 나이 어린 회장하고 일 못 하겠네.”
이들의 뻔뻔한 태도에 미래 에너지의 윤재현 이사가 버럭 했다.
“말 다 했소!”
“그래, 말 다 했다.”
이런 상황을 회의장 문을 열던 성호가 봤다.
‘뭐지, 이 분위기는?’
성호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참 서 있었다.
그런 성호를 바라보는 최태욱 실장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그는 주인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다들 기상!”
성호의 외침에 미래 그룹의 사장들이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고급 슈트를 차려입었지만 옆머리를 붉은색으로 염색한 청년이 서 있었다.
뭔가 날라리 같은 스타일이라 임원들은 잠시 ‘저 사람이 누군가’ 하고 멍하니 쳐다봤다.
“서, 설마”
“이성호 회장님이십니다.”
최태욱 실장의 말에 사장단들과 각 계열사의 임원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성호가 얼굴을 붉히며 중앙을 지나가자 132명이나 되는 계열사 사장들과 임원들이 일어나는 등 소란이 일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일어선 그들을 가로질러 성호가 회의석상 맨 앞에 섰다.
“두 번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나는 신속한 것과 정확한 것을 좋아한다.”
이미 성호의 철학이다.
악인에게는 악인으로서의 대우를,
의인에게는 의인으로서의 대우를 하기로 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갈 리가 없었다.
“앉아!”
성호의 말에 일어나 있던 미래 그룹의 사장단들이 눈치를 보다가 의자에 하나둘 앉았다.
“누가 의자에 앉으래. 의자 치우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이번 신임 회장이 왜 이러나’ 하며 수군거리던 사장단들이 하나둘 의자를 치우고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
이번에도 우물쭈물하며 느리게 일어났다. 불만이 있는 사람은 투덜거리기도 했다.
‘무슨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나이가 어린 성호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편견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앉는 것도 불만이었다.
“양손 들어. 안 드는 놈은 오늘부로 사표 쓰고 나가!”
살기가 담긴 목소리가 회의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임원들은 성호의 굳은 얼굴과 붉게 빛나는 눈을 보며 사표를 쓰라는 말이 결코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아들었다.
사표라는 강수를 내놓자 할 수 없이 손을 들었다.
“똑바로 들어! 나는 말 안 듣는 손과 발은 필요 없다. 다 잘라낼 거야. 내가 이번에 미래 홀딩스의 주식 51%를 가지고 있는 건 다들 잘 알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오늘 내 말 한마디면 실업자 되는 거야. 알았지?”
이 말에 사장단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앉을 때 정신, 일어설 때 차리자. 실시!”
“네, 넵.”
이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비인격적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동안 이용찬이 한 일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사장단과 임원들은 대부분이 50대였다. 살이 쪄서 자신의 배꼽을 못 본 지 몇십 년이 지난 자들도 많았다.
그런 그들이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니 양복은 땀투성이가 되었고, 온몸은 비명을 질렀다.
“앉아!”
“정신!”
“일어서!”
“차리자!”
그러나 이용찬에 의해서 낙하산으로 들어온 자들이 성호의 말에 고분고분 앉아, 일어서를 반복할 리는 없었다.
그들 중 일부가 꾀를 부리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이 앉을 때 앉는 척만 하고 바로 일어나는 것이다. 손은 이미 머리 위가 아닌 눈높이에 와 있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미래 전자 김효석 사장 열외.”
성호의 말에 꾀를 잔뜩 부리던 미래 전자 사장 김효석이 싱글벙글하며 벽 쪽으로 가서 섰다. 벽에 기대어 잠시 쉴 생각을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가!”
“네?”
“밖으로 나가라고,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마.”
“그게 무슨…….”
“너 사장에서 잘렸다고. 나가!”
“허걱! 아니 회장님 하루아침에 회사를 그만두라니요. 이럴 수는 없습니다.”
김효석이 앞으로 나서며 성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성호가 누구인가?
-휙.
김효석은 순간 저만치 멀어진 성호의 모습에 놀랐다.
방금 여기 있었는데 순간 저기로 이동해 있었던 것이다.
“뭐 하나? 이 사람 끌어내!”
보안 팀들이 회의장 밖에서 미래 그룹의 사장들이 얼차려를 받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가? 한국 서열 10대 그룹에 들어가는 미래 그룹의 계열사 사장들이다.
그런 그들이 지금 성호의 한마디에 얼차려를 받는 것이다.
“회장님 금방 내보내겠습니다.”
“이성호 회장님,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나 그런 거 없어. 안 될 싹은 미리 잘라야 나머지 열매가 잘 자라는 법이야!”
“이렇게 사람을 자르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부당하게 자른 것으로 소송할 겁니다.”
“횡령이나 배임으로 소송까지 가 볼까? 6개월 전 투자 자금 중 일부를 착복한 걸 내가 모르는 줄 알아? 그것만 있는 게 아닌 건 당신이 더 잘 알지? 끝까지 가 볼까?”
“그건…….”
“나가!”
성호의 고함에 김효석이 질질 끌려나갔다.
앉아 일어서기는 더더욱 최선을 다해야 했다.
“농땡이 부리다 쫓겨난 놈 중에 항의할 생각이면 해 봐! 미래 그룹 법무팀을 총동원해서라도 아주 박살 내 줄게!”
성호의 경고에도 농땡이를 부리는 녀석들이 있었다. 몸이 힘들어 못 하는 건 성호도 봐주지만 대 놓고 농땡이 부리는 녀석들은 가차 없다.
“미래 자동차의 정수만 사장 열외.”
“미래 건설 박창진 이사 열외”
“미래 에너지의 이총길 사장 열외”
“미래 자동차의 한필수 전무이사 열외”
“미래 조선의 김정수 사장 열외”
계속해서 썩은 살들을 잘라냈다.
모두 36명이나 열외가 되어 직장을 잃었다.
성호는 지난 12년간의 미래 그룹 동향을 외우고 파악했다.
이용국은 자신이 회장이 되자마자 계열사들의 사장들을 물갈이하며 자신의 사람들로 앉혔다.
능력도 없는 자들이 아부만 잘해도 요직에 앉았다.
미래 에너지는 사장이 바뀌자마자 각 영업점과 주유소들을 이용찬을 따르는 추종자들과 친척들에게 나눠주어 엉망진창이 되었다.
미래 자동차는 능력도 없는 엉뚱한 녀석이 개발부로 들어와서는 엄청난 예산을 타내곤 낭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좋은 신차는 나올 수 없었다.
미래 조선도 비슷한 위기였다. 돈을 투자해서 새로운 설비를 들여와야 하는데 그런 투자는커녕 멀쩡한 장비를 다른 나라에 팔아먹기까지 했다.
미래 건설은 부실 공사로 신용이 떨어져 수주가 잘 들어오지 않을 뿐 아니라 아파트 분양도 잘 이뤄지지 않았다.
“미래 에너지의 윤재현 이사!”
“넵.”
“지금부터 미래 에너지의 사장으로 재임명합니다.”
“네?”
땀이 비 오듯 흘러 앞이 잘 안 보였나 보다. 손수건으로 눈에 흐른 땀을 닦던 미래 에너지의 윤재연 사장이 성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윤재현은 12년 전에 미래 에너지의 사장이었고 당시 정유 사업뿐이던 미래 정유를 원자력 사업까지 확장하면서 미래 에너지로 바꾼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이용찬의 눈에 찍혀 찬밥신세였다.
그런 그가 미래 에너지 사장으로 복직되었다.
“지금부터는 미래 에너지의 윤재현 사장이 구호를 외치도록 합니다.”
“네……. 넵.”
왜 자신을 지목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성호의 서릿발 같은 표정을 보아하니 그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오늘 백수가 될 것을 깨달았다.
10분이 지났다.
20분이 지났다.
30분이 지났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악바리처럼 버티는 사장들이 많았다.
밥줄이 걸렸다.
대학을 다니는 자식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여기서 못하면 직장을 잃는다.
미래 그룹의 사장단 회의실은 열기로 금방 가득해졌다.
“앉아!”
“정신을!”
“일어서!”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는 구호와 함께 정신도 몸도 하나가 되어가는 미래 그룹의 사장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더 성호를 어리다고 깔보는 그런 생각은 가질 수도 없었다.
열외 대상자는 앉아 일어서를 하나 못하나가 기준이 아니다.
느리지만 아픈 몸을 때려가며 앉아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자들은 아직 정신도 올바르고 일을 하겠다는 의지도 있다고 봐야 한다.
의지, 그것을 봐야 한다.
처음에 농땡이를 부리던 사장들은 아무 능력도 없는 존재지만 이용찬이 사장에 앉힌 자들이다. 그것도 횡령과 배임까지 했기에 잘라도 뒷말을 못 할 것이다.
성호는 많은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회장일 때 충직한 부하였던 사장들은 달랐다. 그들은 이용찬이 찬밥신세로 대해도 미래 그룹을 지켜낸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 바로 미래 에너지의 윤재현 사장이다.
그래서 윤재현 사장에게 구령을 외치도록 했다.
성호는 보고 싶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따르던 사장들이 아직도 건재한지, 이용찬에 의해서 날개가 꺾인 독수리가 되지는 않았는지 보고 싶었다.
날개가 꺾인 독수리는 닭에게도 쪼임을 받는다.
“앉자!”
“정신을!”
“일어나!”
“차리자!”
1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들 일어서기 힘들어 주저앉아 있을 때 이를 악물고 간신이 일어나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미래 자동차의 송민섭
미래 전자의 김상욱
미래 에너지의 윤재현
미래 조선의 진유곤
이용찬에 의해서 좌천되었지만 미래 그룹을 끝까지 지켜낸 분들이다.
그들이 바로 아버지 이용국 회장 때의 임원들이었다.
남아 있는 미래 그룹의 기둥들인 것이다.
‘아버지 이분들은 아직도 건재합니다.’
저들은 몸이 건재한 게 아니었다. 그들의 정신과 마음이 죽지 않고 건재했다.
아버지가 이끌던 회사의 씨앗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본 것이다.
그것도 독기와 악만 남아 있는 채로 말이다. 그동안 그들이 회사를 지키려 얼마나 뛰어다녔을지 눈에 선했다.
“그만, 그만하셔도 좋습니다.”
성호의 말에 모든 미래 그룹의 사장들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참아가며 악착같이 쫓아온 임원들을 쳐다보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이들이 아버지가 성호에게 남겨준 진정한 재산이었다.
성호가 정중하게 고개 숙여 예를 다했다.
“오늘의 사장단 회의를 마칩니다. 공석인 사장과 임원에 대해서는 오늘 안으로 새로 임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돌아가셔서 미래 그룹을 정상화하는 데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얼차려로 시작해 얼차려로 끝난 사장단 회의가 이후 미래 그룹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그동안 ‘20살의 어린 나이에 미래 그룹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모두 달아났다.
미래 그룹의 계열사들의 질서를 한 번에 정리해 버리고 안정화시킨 것이다.
이용찬이 낙하산으로 심어 두었던 사장들과 임원들 27명을 퇴사시켰고 새로운 임원들을 임명하면서 미래 그룹의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다.
미래 자동차 송민섭 사장
미래 전자 김상욱 사장
미래 에너지 윤재현 사장
미래 제약 김필재 사장
미래 조선 진유곤 사장
미래 통신 김철의 사장
미래 금융 한지민 사장
미래 쇼핑 이혜영 사장
미래 건축 강지룡 사장
이렇게 큰 계열사의 사장들이 정해지면서 미래 그룹을 정상화시키기 시작했다.
밑 빠진 독처럼 빠져나가던 자금을 막기 시작했고 능력 위주의 인사이동이 이루어졌다.
성호가 퇴사시킨 일부 임원들이 퇴직금과 남은 임기에 대한 손해 배상 소송을 걸어왔지만 횡령과 업무적 손실에 대한 증거 자료를 가지고 고발하자 모두 두 손 두 발을 들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