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 회장님-5화 (5/225)

《5화》

병원의 모든 전기가 나가버리자 야간 담당 의사들이 당황해하며 우왕좌왕했다.

“정전이야? 그런데 왜 UPS 전원(보조 배터리)도 안 들어오고 비상 발전기도 안 들어와? 야! 박 선생 가서 살펴보고 와!”

“저기, 선배님 제가 전기를 어찌 압니까?”

레지던트 1년 차가 자기 전공도 아닌 전기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다.

“그럼 가서 기계실 담당 아저씨하고 전기 담당 용역 업체 불러…….”

“알겠습니다.”

한전에서 들어오는 전기가 끊어져야 비상 발전기가 자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전기는 한전에서 정상적으로 들어오고 있었기에 비상 발전기는 돌아가지 않는 것이지만 내막을 아는 사람은 성호밖에 없었다. 새벽이라 수술이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기계실 담당 박 씨 아저씨는 집에서 자다가 불려 나왔다. 나오자마자 지하실에 있는 기계실로 내려갔다.

“뭐여, 이거!”

병원의 전기 계량기를 보며 한참 눈을 비볐다. 믿을 수 없게도 계량기는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 계량기가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건 내 평생 처음 보네. 이게 미쳤나?”

병원에는 지금 전자 장비가 하나도 돌아가지 않고 있다. 모조리 꺼진 전등과 불이 들어오지 않는 컴퓨터 화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도 않는데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는 전기 계량기를 보는 순간, 박 씨는 이 병원이 아주 옛날 공공 묘지 위에 세워졌다는 소문이 기억해 냈다. 병원이 공동묘지에 세워졌기에 가끔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기계실 담당 박 씨 아저씨는 덜덜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전기 계량기를 한 번 더 보고 나서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박 씨 아저씨는 병원 관계자들에게 귀신 이야기를 한 뒤에 바로 집으로 가버렸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저기, 선배님. 이거 진짜 귀신의 장난 같은 것 아닙니까?”

“그런 게 이 세상에 어디 있어! 정신 차려, 이 자식아.”

의사들과 병원 관리원이 전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동안 성호는 마나를 빨아들이는 데 최선을 다했다.

‘조금만 더…….’

이제 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3번째 고리가 심장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보통 마법사라면 10년 넘게 수련해야 3 서클 마법사가 된다. 10년이나 걸리는 이유는 중간에 깨달음이나 배움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마나를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의 악몽으로 인해 성호의 깨달음은 이미 충분했다. 마나만 주어진다면 지금 당장 3 서클의 마나 고리를 만드는 것쯤 일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 마나는 지금 충분했다. 한국전력공사에서 청순양 병원으로 마구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퍼엉!

흰 연기를 내던 콘센트가 끝내 터져 나갔다. 그러자 병원 전체에 전기가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고 천장의 등에 불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전기가 나가 버려 우왕좌왕 하다가 멍하니 천장의 형광등을 쳐다봤다.

“병원에 귀신이 씌었나? 참 내.”

“최 선생님 저기 연기가…….”

“뭐야?”

“특실이잖아!”

“달려!”

간호사들이 성호가 있던 방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는 달려갔다. 오늘따라 이 환자가 말썽을 많이 일으킨다며 속으로 투덜거리며 뛰었다. 성호가 있는 병실이 특실인 데다 연기가 나니 귀찮아도 안 가볼 수가 없었다. 문을 열자 병실 안은 연기로 가득했다.

“창문 먼저 열고……. 뭐야? 이거 왜 이렇게 타버린 거야? 아까 전기가 갑자기 들어와서 그런가? 어? 뭐여 저거? 우와악!”

그제야 사람들은 침대 위에 성호가 상체를 일으키고 일어나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머리는 곱슬머리에 여기저기 그을렸지만, 성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스스로 일어나 지금 막 병실 안으로 들어온 간호사와 의사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무, 물 좀…….”

마나를 만드느라 몸 이곳저곳을 전기로 지져지다 보니 피부도 따끔거리고 입술도 바싹바싹 말라왔다. 성호는 다 말라가는 목소리로 물을 찾았다.

“뭐야? 뇌사 상태의 사람이 깨어난 거야? 이런 게 기적이지?”

“야! 지금 당장 강익수 과장님 불러!”

“넵!”

“넌 가서 환자 상태 확인할 준비하고, 뭐해? 지금 당장 움직여!”

“무, 물…… 좀.”

“뭐라고요?”

“물…….”

“물? 물 가져와! 빨리!!!”

담당 레지던트는 고함을 지르듯 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성호는 열흘 만에 제 스스로 목구멍으로 물을 삼켰다. 그리고는 다 타버린 환자복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간호사들과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는 의사들의 분주한 모습을 바라보며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환자분 여기 보세요.”

조그만 손전등을 성호의 눈에 대고는 살펴보는 의사도 있었고 팔이나 다리를 만져보며 감각이 있는지 물어보는 의사, 손가락을 움직여 보라는 의사들로 병실을 가득 채웠다.

“뇌사 상태였던 게 맞기는 한 거야?”

그때 문이 열리며 50대로 보이는 나이 든 의사가 들어 왔다.

“어서 오십시오. 강익수 과장님.”

강익수 과장은 신경 외과의로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의사였다.

“환자 상태는?”

“CT 촬영 결과 죽어 있던 뇌가 갑자기 살아나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의식도 분명하고 경미한 화상과 약해진 체력을 빼고는 건강한 상태입니다.”

“전기 충격이 있었다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건가?”

“저기, 그게…….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강익수 과장은 성호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면서 타버린 피부와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전기 충격이 어떤 영향을 준 걸까?”

고개를 갸웃하던 강익수 과장은 여기저기 화상을 입은 성호를 보더니 잘 치료하라는 지시를 하고 병실을 나갔다.

간호사와 모든 의사가 나가고 성호는 가만히 누워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심한 화상은 아니었지만, 상처는 온몸에 퍼져 있었다. 물론 머리카락이 곱실하게 변한 것도 있지만 가장 심한 화상은 손가락이었다. 손가락에는 커다란 물집이 잡혀 있었다.

‘살았다.’

죽다가 살아났는데 그렇게 실감 나지는 않았다. 솔직히 지금 심장에서 돌고 있는 마나 서클이 더욱더 실감 나지 않았고 마법이 실행되어 자신이 이렇게 뇌사 상태를 벗어 난 것도 실감 나지 않았다.

‘이용찬!’

‘최태욱!’

-으드득…….

그 둘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 회사를 되찾고 알거지로 만들어 주지.’

성호는 자신의 심장에서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는 마나 서클을 느끼고 있었다. 주변에서 빨아들일 수 있는 마나는 없다. 남아 있는 마나도 정말 적었다. 아까 뇌사한 뇌에다 힐링을 최대치로 사용하고 나서는 마나를 다시 충전할 시간이 없었다.

3 서클로 막 올라선 후, 힐링을 사용하자마자 모아놨던 그 막대한 마나들이 물에 녹는 설탕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뭔가 허전하네.”

이 상황에서 성호의 마나 서클은 마나 없이 공회전만 하고 있었다.

테일러가 살던 판타리아와는 다르게 지구에는 공기 중에 마나가 없다. 심장의 마나 서클은 주변에 있지도 않은 마나를 빨아들이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성호가 입맛을 다시며 전기 코드를 보고 있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지금까지 성호를 보살펴 준 김예원이라는 간호사였다. 성호는 얼른 눈을 감고 모른 체하고 자는 척을 했다. 그리고 간호사가 나가자마자 전기 코드를 뽑아 마나를 충전했다.

-찌리릿.

아까처럼 마구잡이로 전기를 빨아들이면 정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성호는 천천히 전기를 뽑아내며 마나를 충전했다.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이었지만, 3 서클에 올라선 순간 전기를 마나로 변환하는 효율이 높아졌다. 그 때문에 모이는 마나의 양은 상당한 편이었다.

그렇게 밤새 충전을 하니 서클에 마나가 가득 들어찼다.

아침 햇살이 병실 안을 내리쬐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성호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충전 완료.”

성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온몸에 마나가 가득 들어차는 느낌은 생소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했다. 다만 또다시 손가락에 화상을 입었다.

“힐링.”

온몸에 힐링을 한 번 더 해주자 곱슬머리가 되어버린 머리카락과 얼룩졌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화상을 입은 손가락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몸을 재정비한 성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성호가 깨어났다는 소식은 최태욱 실장에게도 들어갔을 것이다.

“시간이 없군.”

최태욱 실장이 성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을 하고 있을 지금, 빨리 병원을 탈출해야 했다.

“일단 병원을 나가서 박동진 변호사님을 만나야 한다.”

성호는 지나가며 주워들었던 이름을 되뇌었다. 박동진 변호사가 아버지의 주식을 자신에게 돌려주기 위해 움직였다고 했다.

“박동진 변호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일까?”

박동진 변호사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주식에 욕심이 없을까?

어렸을 때 박동진 변호사를 만난 적이 있다. 네모난 각진 얼굴에 뿔테 안경을 쓰고 항상 웃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때의 기억이라면 절대로 아버지를 배신할 사람은 아니다. 지난 12년간 작은아버지 이용찬으로부터 주식을 지켜낸 것만 봐도 믿을 수 있다.

문제는 성호가 박동진 변호사가 어디 사는지, 연락할 방법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최태욱을 지금 잡는다.”

그는 박동진 변호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시간을 벌고, 힘을 기르면서 함정을 판 뒤에 최태욱 실장을 잡는다. 지금은 힘이 없지만, 전기가 있으니 마법이라는 무기를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 충전이라는 제약이 따르는 마법 이외에도 몸을 지킬만한 무공도 배워야 했다.

벌써 아침이라 해가 뜨기 시작했다. 성호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며 탈출 계획이 그려졌다.

“이제 슬슬 나가 볼까?”

성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성호가 병실 문을 열어 보니 복도 끝에 덩치 두 명이 대기하고 있다. 그냥 봐도 깡패들이다. 그런데 손에 들고 있는 무전기를 보니 병원 밖에도 다른 녀석들이 있는 듯했다. 민간용 무전기의 전파는 멀리 가지 못하니까 말이다.

성호는 문 밖으로 나가서 화장실로 이동했다. 그러자 덩치들 두 명이 급하게 무전을 하고 따라붙었다.

“놈이 병실에서 나왔다.”

[곧 올라가니까 멀리 못 가게 잡아.]

“알았다.”

성호는 일부러 중앙 로비와 떨어진 화장실로 이동했다.

“이성호 도련님, 밖에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성호를 불렀지만 못 들은 척 하면서 코너를 돌아 화장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화장실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비어있는 곳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들어간 거 다 알아요. 허튼수작 하지 말고 얌전히 병실로 갑시다. 이 망할 도련님아.”

덩치들은 이미 최태욱 실장의 심복들이기에 성호를 실제 도련님으로 여기지 않았다. 성호는 환자복 상의를 벗어서 변기 속에 쑤셔 박았다. 그리고 물을 내리자 물이 역류하면서 화장실 바닥에 흘러넘쳤다. 성호는 변기 수조 위에 올라섰다.

“뭐야!”

두 덩치는 화장실에 들어 왔다가 물이 넘쳐서 흐르자 당황스러워했다.

“어이, 도련님! 좋은 말 할 때 나와라!”

-쾅!

덩치가 화장실 문을 발로 찼다. 다행히도 문이 한 번에 박살이 나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야?”

그때 밖에 대기 중이던 다른 덩치 두 명이 더 화장실로 뛰어왔다.

-첨벙 첨벙!

“녀석이 여기로 들어갔어.”

“젠장, 최 실장이 또 뭐라 하겠네.”

검은색 양복, 그리고 커다란 덩치를 가진 네 명이 화장실에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눈치만 보고 화장실로 더는 들어오지 않았다. 네 명이 다 들어온 것을 확인한 성호가 외쳤다.

“라이트닝 볼트!”

라이트닝 볼트는 3 서클 마법으로 상대방을 감전시키는 마법이다.

화장실 바닥에 넘쳐흐르는 물에다가 라이트닝 볼트를 쏘자 덩치 4명이 부르르 떨더니 쓰러져 버렸다.

문을 열고 나온 성호는 쓰러져 있는 녀석들을 보고 화장실을 나왔다. 문 밖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성호를 잡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의사와 간호사들이 들이닥치며 일대 소동이 일었다. 이 소동을 틈타 성호는 다른 병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환자가 누워 있었다. 교통사고 환자였는데 아직 의식이 없었다. 아직 회진 시간도 아니고 간병인도 이 시간에는 쉬러 가는 것을 알고 있던 성호는 거침없이 들어가서 옷장을 열었다.

낡고 때가 탄 검은색 줄줄이 운동복이 나왔다. 그리고 흰색 와이셔츠와 국방색 속옷, 두꺼운 산악용 양말, 갈색 기지 바지에 갈색 구두가 있었다. 그리고 등산 가방이 놓여 있었다.

등산 가방 안에 있는 것을 빼고 냉장고에 있던 음료수와 과일 몇 개를 챙겼다. 성호가 옷을 다 갈아입고 호주머니를 만지자 지갑이 나왔다. 안에는 오만 원 3장과 만 원짜리 몇 장이 들어 있다. 현금만 챙기고 지갑은 그냥 뒀다.

성호는 나가기 전에 온몸에 붕대를 감은 교통사고 환자의 몸에 마법진을 만들었다.

“힐링!”

환한 빛이 퍼지며 방금 물건을 챙긴 환자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기이익,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교통사고로 부서진 뼈와 망가진 장기가 고쳐졌다.

“이걸로 갚은 거로 칩시다.”

성호는 주변을 살피며 살며시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필요한 것을 챙겨서 밖으로 나오는 동안 그를 제지하거나 막는 사람은 없었다. 병원 밖을 나오니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성호는 제일 앞에 있는 택시에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시외버스 터미널이요.”

“네.”

혹여나 누군가가 따라오지 않을까 초조한 마음이었지만, 청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성호를 따라오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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