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 회장님-2화 (2/225)
  • 《2화》

    -철커덕.

    -삐거덕.

    ‘이왕이면 저 문이나 좀 수리하면 안 되나?’

    언제나 들어도 저 문이 열릴 때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는 듣기 싫었다. 자물쇠가 풀리고 낡은 방문이 열리면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들어 왔다.

    “최태욱 실장님의 지시입니다. 오늘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할 겁니다.”

    환자를 생각해야 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최 실장의 말만 듣는다.

    “이 간호사 혈압 체크하고 박 간호사는 환자를 좀 씻겨.”

    최태욱 비서실장이 자신이 성인이 되는 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날 죽이러 가는군.’

    성호는 쓰게 웃었다.

    ‘이 의사는 면허가 있기는 한 걸까? 사람을 죽이러 내보내는데 저런 웃음이라니, 마지막 날이라고 보너스라도 받았나?’

    주사를 놓거나 의학 용어를 불러대는 것을 보면 의사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의사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겉은 의사지만 속은 가짜 의사. 구역질 나는 존재들이다.

    19살의 청년이지만 성호는 간호사들이 옷을 벗기고 몸을 씻겨지는 것에 익숙했다.

    성호가 환자복을 벗자 앙상한 몸이 드러났다.

    안에는 속옷도 입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여름이지만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차디찬 방에서 말이다.

    뼈만 남은 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보는 듯했다.그리고 햇빛을 보지 못해 창백하다 못해 퍼렇게 질려 있었다.

    그 앙상한 몸에는 많은 상처들이 여기저기 퍼져 있었는데 모두 악몽에 몸부림치다 생긴 것들이다.

    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앙상한 얼굴과 크고 맑은 눈은 무덤덤했다.

    간호사는 젖은 수건으로 성호의 몸을 대충 닦았다.

    ‘옷이라도 좋게 입고 가는군.’

    비싸 보이는 양복에 넥타이, 속옷, 구두와 시계까지 있는 것은 의외였다.

    “준비 다 되었나?”

    한참 성호가 옷을 입고 있는데 최태욱 실장이 들어 왔다. 언제 봐도 재수 없는 저 차가운 최태욱 실장의 표정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는 혼자 오는 법이 없었다. 최태욱의 뒤로 덩치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언제나 한 명이 들어오고 두 명이 문 앞에서 대기했는데 오늘은 한 명이 더 있었다. 약간은 어수룩하게 생긴 덩치는 짧은 머리에 새로 산 양복을 입고 있었다. 눈이 크고 동글동글한 것이 성격이 좋아 보였다.

    최 실장이 데리고 온 덩치들이 전신에 문신한 진짜 깡패들 같다면 이 녀석은 뭔가 순진했다.

    ‘날 죽이는 일에 왜 이런 어리숙한 녀석이 낀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모르는 듯, 남자는 씩씩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도련님을 모시게 될 박 대리입니다.”

    ‘나를? 모셔? 도련님? 대리라는 직급까지?’

    12년간 자신을 이렇게 부르는 인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대리라는 직급까지 있다.

    ‘희생양이군.’

    자신을 사고사로 죽이는 자리에 착하고 순한 놈을 동원한다는 것은 어쩌면 치밀해 보이기도 했다.

    ‘자살보다는 사고사일 가능성이 크군.’

    같이 죽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건 사고사로 위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혼자 있을 때 보다 업무상 동행자가 있을 때, 사고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기 쉬워진다.

    ‘탈출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거 같네.’

    성호는 어차피 죽게 될 것, 비굴하게 살려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질 체력인 자신을 봐도 탈출은 쉽지 않았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말이다.

    “어디서 처리 할 거지?”

    최태욱 비서실장은 성호의 말에 표정이 굳었다. 성호는 머리가 좋은 편이다. 그런 그가 지금의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모두 다 문 밖에서 기다려.”

    “넵!”

    같이 들어 왔던 의사, 간호사, 덩치들이 방 밖으로 나가면서 문까지 닫았다.

    “눈치가 빠르네?”

    성호의 눈은 차분했다.

    “모르면 바보지. 내가 죽을 곳은?”

    “네 아버지 무덤이 있는 곳에 가다가.”

    “고흥의 거금도?”

    “그래, 너는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가다가 죽는 거다. 마음 단단히 먹고 나와. 탈출하다 개죽음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최태욱 실장은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고흥이면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작은아버지 이용찬이 보기 싫다는 이유로 저 남쪽 끝자락에 무덤을 만들었다. 거금도 앞에는 소록도가 있고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하는 곳이다. 옛날에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그런 곳에 자신의 아버지 무덤을 이장했다. 거금도에 지금은 다리가 놓여서 차가 다니지만, 그 당시에는 다리도 없었다.

    ‘먼 곳이니만큼 가다 보면 탈출할 기회가 분명히 있을 거다.’

    성호는 작은 희망을 품어 봤다. 그러나 힘이 없어 떨리는 손을 보자 자신이 없어졌다. 머리로 하는 거라면 뭐라도 할 것 같지만 이렇게 몸으로 해나가야 하는 거라면 자신이 없었다.

    12년 만에 방 밖으로 나갔다. 진녹색의 낡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시멘트 냄새와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직 성호를 위해 사들인 정신 병원을 리모델링하거나 수리할 리는 없었다.

    조명도 어둡고 복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좁은 복도에 덩치 네 명과 날카로워 보이는 최태욱 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와라.”

    최태욱 실장이 먼저 앞서가고 성호가 그 뒤를 따랐다. 아니, 끌려갔다. 덩치 두 명이 양손을 붙잡고 가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덩치들이 그 뒤에 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지하에서 밖으로 나가자 밝은 빛에 잠시 앞을 볼 수 없었다. 눈을 찡그리며 손으로 햇빛을 가린 성호의 뒤를 덩치 중 한 명이 툭툭 밀며 재촉했다.

    성호가 밝은 빛에 적응하자 먼저 보인 것은 넓은 잔디밭과 그 뒤로 보이는 숲이었다. 주변에 건물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니 산속이다. 커다란 대문을 통과하자 독일 수입 세단이 대기하고 있었고 출발 준비를 마쳤는지 시동이 걸려 있었다.

    “타라.”

    덩치가 고급 승용차의 뒷좌석 문을 열고 성호를 밀어 넣으려고 하는 찰라 기회가 찾아왔다.

    ‘덩치를 밀고 문을 잠근 상태에서 차를 출발하면 탈출 기회가 생긴다.’

    성호가 먼저 움직였다. 넉 냥으로 천근의 힘을 발휘한다는 사량발천근(四兩發千斤)의 원리는 성호도 알고 있다. 천마가람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성호가 덩치의 힘을 역이용해 다리를 걸며 몸의 중심을 이동했다.

    “어쭈?”

    뼈와 가죽만 있는 성호의 비해 덩치의 몸무게는 100kg이 넘었다. 그리고 상대가 나빴다. 깡패지만 전에는 유도를 배워온 그에게 성호의 반항은 재롱 수준이다.

    빙글.

    성호의 몸이 도리어 한 바퀴 돌며 떨어졌다.

    -쿠웅!

    “크윽.”

    “아, 이 자식 하는 것 보소.”

    덩치가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을 보고 성호가 온 힘을 다해 외쳤다.

    “홀드!”

    성호의 외침에 덩치가 놀라서 움찔했다.

    -조용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성호는 전력을 다해 마법진을 만들었지만 말이다.

    “미친.”

    덩치는 자신이 놀랐다는 사실이 불쾌했는지 욕설을 중얼거리며 주먹을 날렸다.

    -푸억!

    “케겍…….”

    덩치가 내지른 주먹을 명치를 얻어맞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만해라. 그러다 미친놈이 뼈까지 다쳐서 병신까지 될라. 크크크…….”

    최태욱 실장의 비웃음을 들은 성호는 이를 갈았다. 덩치들은 성호를 아예 차의 뒷자리에 묶어 버렸다. 오늘 처음 온 박 대리가 그 광경을 보고는 당황스러워했지만 최태욱 실장의 윽박지름에 조용히 운전석에 탔다.

    “도련님이 미쳐서 그런 거니까, 어서 차나 출발 시켜!”

    성호가 탄 고급 세단이 먼저 출발한 뒤에 최태욱 실장이 탄 검은색 밴이 따라붙었다. 출발한 차들이 고속도로를 이용해 전라남도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도련님은 밖이 처음이시겠네요. 몸이 많이 안 좋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병이시죠?”

    ‘아까 못 들었나? 그냥 미쳤냐고 직접 물어보지?’

    “…….”

    성호가 아무런 대꾸를 안 하니 신입 덩치 박두철은 머쓱해 하며 입을 다물었다. 순진한 덩치는 월급을 많이 주는 일이니 이런 일도 하는구나 하며 생각했다.

    ‘뒤에 따라오는 최태욱 실장의 차는 20m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신입 덩치를 설득해 다른 곳으로 간다면 바로 막을 수 있으니 쉽지 않겠군.’

    회덕 분기점에서 나올 때였다.

    “최태욱 실장님의 밴이 안 보이네. 기름 넣으러 가셨나?”

    박두철이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말에 성호는 위험신호를 감지했다.

    ‘젠장, 최태욱 실장은 나를 거금도까지 데려갈 생각이 없었던 거야.’

    “차 세워!”

    “여기서 어떻게 차를 세워요.”

    성호가 외쳤지만 박두철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구시렁거렸다.

    코너를 돌아 차로에 진입하자마자 뒤에서 돌진해 오는 커다란 덤프트럭이 보였다.

    -부아아앙!

    덤프트럭은 경적도 울리지 않고 돌진해 오고 있었다. 전속력이다.

    “젠장!”

    성호는 묶여 있는 몸을 바닥에 던지듯이 엎드렸다. 박 대리는 자기도 모르게 핸들을 급하게 돌려 차를 비틀자 덤프트럭은 모서리를 들이받았다.

    -쿠카카가강!

    성호가 탄 자동차는 안전 펜스를 들이받더니 불꽃을 튀기며 고속도로 밖으로 튕겨 올랐다가 나뒹굴었다.

    -쿠가강!

    사고를 낸 덤프트럭 기사는 차에서 바로 내리더니 다치지도 않았는지 펜스를 뛰어넘고는 시골길로 달아나 버렸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기다렸다는 듯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견인차들이 달려들었고, 조금 더 지나자 앰뷸런스가 나타났다.

    구급 대원의 다급한 모습들과 지나가며 핸드폰을 들고 찍어대는 사람들로 사건 현장은 5분도 되지 않아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압착기가 설치되고 차가 거의 분해되다시피 하고 나서야 사람이 꺼내졌다.

    옷이 너덜너덜하게 찢겨 나가고 온몸이 피투성인 두 명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옆으로 최태욱이 탄 검은색 밴이 사건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창문을 조금 내리며 최태욱 실장은 전화를 걸었다.

    “확실히 죽었겠지?”

    [전속력으로 달려드는 덤프트럭에 받히고도 살아남으면 그게 기적이죠.]

    “돈은 녀석이 죽은 게 확실해지는 내일 입금될 거다. 이 사건 밖으로 나가면 다 죽으니까 입단속 잘해.”

    [당연하지요. 이번 사건 담당 경찰도 제 사람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통화를 끝낸 최태욱 실장은 이번 일을 시킨 망치파 백광현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일에는 그만한 사람도 없었다. 돈만 된다면 뭐든지 하는 녀석들이라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일은 깔끔하게 하는군, 불쌍한 성호, 아버지 얼굴은 못 보고 가겠네…….”

    최태욱 실장은 안주머니에서 다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정식으로 등록된 것이 아닌 대포폰이었다.

    “회장님, 최태욱입니다.”

    [어떻게 됐어?]

    “계획대로 보고서에는 출장 중 일어난 사고로 올리겠습니다. 그래서 동승자를 도련님의 수행 비서로 등록했습니다.”

    회사일 중에 사고가 난 것으로 하기 위해 동승자가 필요했고 박두철은 희생양일 뿐이었다.

    “그리고 검찰과 경찰에도 사고사로 마무리되도록 손을 써 두었었습니다. 사망 확인은 1시간 안에 보고 드리겠습니다.”

    [실수 없이 잘해, 증인이 될 만한 녀석은 죽여 버려. 망치파 백광현에게 잘 이야기 하고 특히 트럭 운전사는 꼭 죽이라고 하라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들은 돈과 권력 때문에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이런 자들의 갑질과 폭력에 죽어가는 이들에게 하늘이 언젠가는 잔혹한 벌을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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