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 회장님-1화 (1/225)
  • 《1화》

    세상에는 수많은 차원이 존재하고 차원과 시간의 틈새에서 일어난 수많은 일을 글로 쓰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의 꿈속에서, 또는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 실제로 다른 차원에서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각각의 차원은 시작과 끝이 있었고 지금 우리들이 사는 지구도 시작과 끝이 있다.

    미국의 핵실험 장소였던 태평양에 있는 비키니 산호초,

    언젠가부터 이곳의 바다 깊은 곳에서 심장의 두근거림처럼 맥동이 발생했다.

    핵실험의 영향으로 차원의 틈이 조금 열린 것이다. 그곳을 통해서 악마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다 죽여 버렷!

    -문을 열어 줘.

    -종말을 나에게 다오.

    차원의 틈에서는 악마가 울부짖었다. 하지만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때문인지 아무도 이곳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곳에 창백한 피부, 곱슬거리는 한 금발의 사내가 찾아와서 환하게 웃었다.

    그가 차원의 틈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다려, 멸망의 문을 내가 열어 줄 테니까.”

    지구에서 유일하게 악마의 능력을 갖춘 자가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바다는 그를 반기기라도 하는 듯이 격렬하게 쿵쿵거렸다.

    이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 종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강원도의 깊은 산속, 그곳에는 하얀색의 다 무너져 가는 폐건물이 있었다.

    ‘소망 정신 병원’이라고 적힌 이곳은 한때는 총 30명 이상의 환자를 수용했던 곳이었지만 자금난에 허덕이다가 결국은 폐업을 했다.

    폐업한 정신병원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이유는 오직 한 사람을 은밀하게 감금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미래 그룹이 이 병원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쭉 이어진 복도에 구둣발 소리가 울렸다.

    -또각, 또각

    복도를 걸어온 중년의 남자는 녹슨 철문의 이름표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이성호]

    이곳은 저 녀석을 감금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미친놈, 잠은 자냐?”

    병실 안으로 들어간 사내는 은색 안경을 위로 쓱, 올려 보이며 조롱하듯 말했다.

    “최태욱!”

    그것은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처럼 쩍쩍 갈라진 목소리였다.

    5평 크기에 회색 벽이 쳐진 이 차가운 방에는 한쪽에 있는 냄새나는 화장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열악한 곳에 성호가 있었다. 빼빼 마른 몸과 앙상한 팔과 다리,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카락은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말해 주었다.

    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성호의 크고 맑은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성호는 7살에 처음 이곳에 들어왔다.

    의사와 두 명의 간호사가 있었지만, 그들은 성호를 치료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성호라는 단 한 사람을 감금하고, 죽지 않도록 관리하기 위해서 고용되었을 뿐이다.

    이 휑한 방에서 성호는 무려 12년을 갇혀 살았다. 음식은 쓰레기 수준이고 세상 모든 것과는 차단되었다. 겨울에도 보일러를 틀어 주지 않았고 오직 얇은 환자복만 입혔다.

    “아버지의 심복이었던 놈이 부끄럽지도 않으냐! 이용찬의 개가 되다니!”

    성호가 으르렁거리며 외쳤다. 이용찬은 성호를 이곳에 감금한 장본인이었다. 혈연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잔인했다.

    “이런,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작은아버지의 이름을 그렇게 불러서야 쓰겠니?.”

    최태욱은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12년이나 지났으면 이제 현실을 자각해야지.”

    “죽여 버릴 거야!”

    최태욱은 12년 전까지만 해도 성호의 아버지인 이용국의 심복이었다. 성호도 최태욱을 삼촌처럼 믿고 따랐고,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가 모든 것을 배신한 뒤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지금은 자신을 다 무너져가는 정신병원에 가두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러 오는 놈이었다.

    “왜? 화나? 분해? 조심해, 그러다 또 맞으면 죽는다.”

    “크크크. 죽는다고? 좋아, 때려. 자, 때려서 죽여 봐, 최태욱!”

    짐승 같은 성호의 살벌한 눈빛에 최태욱 실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죽으면 안 되지.”

    “왜? 내가 죽으면 아버지 재산이 사회에 환원될까 봐?”

    “잘 아네? 네놈 아버지의 유언장 때문에 성인이 되기 전까지 넌 살아있어야 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아.”

    “최태욱, 내가 꼭 복수할 거니까 몸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너나 몸조심하라고.”

    최태욱은 성호의 도발에 피식 웃고는 나가버렸다.

    “미친놈, 발악은.”

    병실을 나온 최태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실 성호는 악몽 때문에 약간 미쳐 있었다.

    정신병원에 갇힌 7살부터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려 왔다.

    7살이면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릴 나이다. 그런데 성호는 그때부터 전쟁 한복판에서 싸우는 꿈을 꾸었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서 칼을 휘둘렀고 피가 강이 되어 흘렀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그 원통함이 하늘로 빨려 올라갔다. 그리고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만들어졌다.

    꾸웨엑!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거대한 구멍은 기이한 소리를 내는 괴물들을 쏟아내었다. 괴물들의 움직임에 사람이 터져 나가고 팔과 다리가 잘려서 사방에 날아다녔다.

    그 꿈에서 성호는 마법사였다. 자신의 손에 뜨거운 불길이 만들어지는 것에 놀라는 순간, 그 불덩어리가 날아가 괴물들을 죽였다.

    ‘이건 악몽이야, 꿈일 뿐이라고!’

    다음날은 다른 꿈을 꾸었다. 검을 들고 있는 자신이 나오는 꿈이었다. 검에서는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주변은 주검들로 산을 이루고 있었다. 시체들에서 붉은 안개가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로 올라간 붉은 안개는 검은 구멍을 만들어냈다.

    ‘안 돼!’

    그 후를 예감하고 성호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악몽은 계속되었다.

    검은 구멍은 괴물들을 땅으로 쏟아냈다.

    쿠쿠쿠쿠-

    땅이 울렸다. 언덕에는 셀 수도 없어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괴물들이 제물을 향해 달려들고 있다.

    쿠우웅-

    그 꿈에서 성호는 검에 검강을 만들었다. 붉은빛으로 둘러쳐진 검을 들고 괴물들과 싸웠다. 하지만 죽이고 또 죽여도 괴물들은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이건 꿈이야. 현실이 아니라고!’

    문제는 그 모든 것이 너무 현실 같다는 것이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되는 사람들의 비명들이 귀에 맴돌았다. 그런 꿈은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이어졌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겪은 일이라 성호의 정신은 거의 붕괴 수준이었다. 9살 이후부터는 꿈을 꾸지 않기 위해 처절할 정도로 노력했다. 이빨로 맨살을 물어뜯거나 이마를 벽에 피가 나도록 들이받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고함을 지르고 온갖 야단법석을 떨었다.

    “또 발작한다.”

    “날 자지 않게 해 줘!”

    성호는 발악했다.

    “머리를 잡아!”

    “주사를 놓으라고!”

    “침대에 묶어!”

    성호는 침대에 묶여서 진정제를 맞아야 했다.

    “놔! 아악! 그 주사를 놓지 마! 그러면 잠을 잔단 말이야.”

    “잠자라고 놔주는 거다.”

    “잠자기 싫어!”

    “무슨 애가 이렇게 힘이 세.”

    발악하며 악몽을 줄여가고 있지만 원하지 않아도 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잠이 들면 원하지 않아도 꿈을 꾸게 되어 있었다. 악몽으로 인해서 성호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둘 늘어 갔고 점점 말라만 갔다.

    “내가 미친 걸까?”

    그런데 일주일 전부터 악몽이 약간 달라지기 시작했다. 성호는 악몽 속에서 또다시 괴물들과의 전쟁에 참전했다. 북이 울리고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손목에 마법진을 만들었다.

    그리고 기억이라도 하는 듯이 마법진에 대한 지식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나는 인첸트 학파의 대마법사다.」

    그것은 전생의 기억이었다. 잡다한 마법 지식이 뭔가 끊어진 필름처럼 머릿속을 채웠다.

    마력을 측정하는 단위는 헤르다. 1헤르는 보통 사람이 10kg의 공을 시속 50km/h로 던질 때 사용하는 마나량을 말한다. 심장에 마나를 모으지 못해 마법진과 마나석으로 마법을 실행하는 마법 학파를 인첸트 학파라고 불렀다. 인첸트 학파는 마나를 마나석에서 가져다 쓴다.

    ‘그래, 나는 인첸트 학파의 마법사다.’

    기억을 정리하기도 전에 악몽 속에서 내가 움직였다. 갑옷에 연결된 마나석의 마나가 팔을 거쳐 손에 새겨진 마법진을 빛나게 했다. 마법진을 통해 엄청난 열기를 가진 불덩어리가 만들어지더니 날아갔다. 괴물들의 비명이 이어지며 파괴의 전장이 만들어졌다.

    악몽에서 깨어난 성호는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던 거였나?”

    성호는 꿈에서처럼 현실에서도 마법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삼각형의 도형이 두 개가 겹치며 가장 기본적인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룬 문자가 어지러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우웅-

    그리고 그것이 저 하얀 천장 위에 그림처럼 펼쳐졌다. 천장에는 오직 성호의 의지로만 만들어진 마법진이 그려졌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겠지만 자신의 눈에는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

    마법진은 의지의 발현이다. 성호는 자기 생각을 확신하면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파이어 볼!”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 마법이 실행되지 않지?”

    성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성호를 관리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들어 왔다. 그들은 천장을 보면서 뭔가를 중얼거리는 성호를 보며 진짜 미친 거 아니냐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게 안 보이나요?”

    성호는 덜컥 겁이 났다. 제 눈에 저렇게 선명하게 보이는 마법진이 다른 사람에게는 안 보인단 말인가?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의사와 간호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은 간단히 성호의 상태를 체크하더니, 쓰레기 같은 아침밥을 먹으라며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사라졌다.

    “미치겠네.”

    성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쳤는지 아닌지, 다시 한번 꿈을 꾼다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성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그날부터 악몽의 내용이 달라졌다.

    무림의 고수가 되는 악몽에서도 단편적인 기억들이 몰아쳤다. 내공심법과 여러 무공들의 이름, 무림방파들의 이름과 그곳에 속한 고수들의 별칭과 이름들이 두서없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모든 기억들은 단편들로 이루어져 연결되지 않았고 무공에 대한 기억도 여기저기 잘려 나가 완전한 것이 없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불길한 이름의 무공이었다. 성호는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공심법을 운공 했다. 단편적인 기억들만으로 보면 산을 부수고 바다를 가른다는 무공이지만 반대로 잘못 익히면 죽을 수 있는 무공이다. 이런 무공이 실재한다면 이용찬에게 복수할 수 있다.

    “기가 없네?”

    그러나 주변에서는 기(氣)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공이 쌓이지 않으니 느낌만 그런 건지 실제로 있지만 적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그런 느낌만 드는 정도였다.

    성호는 하얀 천장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올해 19살이 되어가는 성호는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난 절대로 미칠 수 없는데, 그럴 수가 없는데, 그런데도 내가 미친 걸까?”

    이게 무슨 미친 논리일까?

    억울했다. 아버지의 죽음과 12년간의 감금 생활과 12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꿔야 했던 악몽.

    성호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성호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그랬기에 아버지는 자신을 그렇게도 애지중지했었다.

    -아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아빠가 뭘 사 왔는지 볼래?

    -아들 다 컸네. 아빠 어깨를 다 주물러 주고.

    그때의 기억이 가끔 나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덜덜덜.

    성호는 떨리는 손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앙상한 팔과 다리는 뼈만 남은 듯했다. 몸의 여기저기에는 악몽으로 인한 상처들이 즐비했다.

    꾸욱.

    성호는 뼈만 앙상한 주먹을 움켜쥐었다.

    “꼭, 복수할 거야.”

    성호는 자신이 정신병원에 갇힌 이유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봤다. 감금되어 있어 알아낸 내용은 아주 적었지만, 그것을 토대로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미래 그룹」

    어렸을 때의 기억이기에 얼마나 큰 회사인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계시는 빌딩에 찾아간 기억을 생각하면 엄청 거대한 회사였던 것 같다. 아버지의 재산은 전부 성호가 물려받았다. 문제는 성호가 아직 성인이 아니기에 작은아버지인 이용찬이라는 사람이 관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여기 가둔 거고.”

    작은아버지 이용찬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성인이 된 성호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정확한 건 몰라도 성인이 되기 전에 내가 죽으면 재산이 사회에 환원되니까 죽일 수도 없었겠지.”

    아버지의 유언장이 성호의 목숨을 살렸다.

    “문제는 내일이 내가 성인이 되는 날이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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