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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26화 (완결) (326/326)

< 모든 것이 끝난 후 (13권 끝.) <완결> >

어마어마한 온도의 거대한 불꽃이 모든 걸 집어 삼켰다. 현석도, 공간도, 심지어 마황까지도.

하지만 이 불꽃의 원천은 마황에게 있었다. 당연히 마황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검은 불꽃은 공간 자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 공간도 붕괴할 것이다.

공간이 붕괴되면 이곳에 있던 불꽃과 마황과 현석이 다시 세상으로 튕겨져 나갈 것이다.

물론 그 전에 현석이 죽겠지만 말이다.

현석은 모든 수를 동원해 불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그건 절대 쉽지 않았다.

현석에게 남은 마지막 보루는 마력 컨트롤 능력이었다.

검은 불꽃 역시 어둠과 죽음의 마력으로 이루어졌다. 마황이 가진 힘의 근원이 그러하니 당연했다.

그러니 마력 컨트롤을 이용해 그걸 조절할 수 있음이 분명했다.

현석은 자신을 집어 삼키려 끊임없이 달려드는 불꽃을 움직이려 애썼다.

움직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불꽃에 담긴 힘 자체가 너무 거대했다.

현석이 움직일 수 있는 건 표면뿐이었다. 불꽃 자체는 현석을 집어삼킨 채, 모든 걸 살라버리겠다고 날뛰었다.

현석의 몸이 극심한 화상으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현석은 그 고통을 참아냈다. 아니, 오히려 마력에 더욱 집중했다. 그걸 통해 통증을 잊으려 했다.

물론 그런다고 고통이 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집중력이 흐트러지지도 않았다.

현석의 집중력이 점점 더 높아졌다. 살아남겠다는 의지와 불꽃을 없애버리겠다는 간절함이 뒤섞여 점점 날카롭게 벼려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현석을 집어 삼켰던 불꽃이 확 멀어졌다.

“뭐, 뭐야!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마황의 당황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이이익!”

마황이 더욱 힘을 집중해 불꽃을 쏟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쏟아낸 불꽃이 모조리 한 군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내 어마어마하게 응축된 검은 불의 구슬이 만들어졌다.

마황은 끊임없이 불을 쏟아냈고, 그 불은 모조리 구슬로 빨려 들어갔다.

마황이 당황한 얼굴로 검은 불구슬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온몸은 화상으로 녹아내렸지만,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다.

현석은 마지막 순간, 진짜 각성해 버렸다. 마력의 주인이 벽을 부수고 한 단계 위로 올라간 것이다.

[마력의 신]

새 타이틀을 얻었다. 그리고 그 타이틀의 설명은 없었다.

말 그대로 마력의 신이 된 것이다.

세상 모든 마력을 자신의 마음대로 쓸 수 있었고, 또 세상 모든 것을 마력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또한 그 역도 마찬가지였다.

마력을 통해 창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녹아내렸던 현석의 몸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갔다.

마황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현석이 마황을 슬쩍 쳐다봤다. 그러자 마황의 몸이 모조리 마력으로 분해되었다.

비명조차 없는 허무한 최후였다.

현석은 새 경지에 오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신이라 여겼던 것은 진짜 신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현석은 자신이 서 있는 거대한 공간을 슥 둘러봤다.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현석은 다시 아틀란티스 지하 공동 한가운데 서 있었다.

진짜 모든 싸움이 끝난 것이다.

* * *

현석의 앞에는 어느새 빛나는 사내가 다시 나타났다.

“이겼구나.”

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력의 신이 되고 나서야 사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니, 사실 그동안 신의 파편을 하나하나 깨우고 다니면서 어렴풋이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신의 파편은 하나같이 대단했다. 하지만 왠지 진짜 신이라면 그런 식으로 파편을 만들어 놓았을 것 같지가 않았다.

신의 파편은 마치 대규모의 마법진 같은 느낌이 훨씬 강했다. 아주 복잡하고 규모가 너무 커서 분석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마법진은 마법진이었다.

구성 자체도 신비롭긴 하지만, 마법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만일 진짜 신이라면 그런 식의 조각 보다는 신의 의념이나 의지의 조각을 남겼을 것이다.

“그럼 약속대로 선물을 주지. 네가 졌을 때를 대비해 준비한 걸 넘겨주마.”

현석은 사내의 말을 듣고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단호히 말했다.

“필요없다.”

“뭐? 대체 왜?”

사내가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빛을 마구 뿜어냈다.

“내 선물이 무엇인지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날 신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거 아닌가? 네 힘을 모두 전해주겠다는 거 아니었나?”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 주위를 슥 둘러봤다.

“이곳에 있는 모든 걸 내게 주겠다는 거잖아.”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아는구나. 모든 걸 네게 주마. 넌 진짜 신이 되는 거야.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알 수 있는 진짜 신 말이지.”

현석이 피식 웃었다.

“진짜 신이라고?”

“그래. 진짜 신.”

현석이 주위를 슥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아틀란티스의 신 말인가?”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 왜 굳이 아틀란티스만 조각나서 차원의 틈에 흩어졌을까?”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현석은 그런 사내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너, 신이긴 한 건가?”

사내가 으르렁거리는 듯 대답했다.

“물론. 난 신이다. 다만 내게 중요한 건 이곳 아틀란티스일 뿐이지. 네가 신이 되면 넌 다른 곳까지 다 아우르면 되는 거 아닌가? 그건 네 선택이야.”

현석의 눈이 투명해졌다. 마력의 신이 되면서 심안도 몇 단계나 레벨업을 했다.

이제 예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눈앞에 있는 빛의 사내와 그를 유지하는 이곳 거대한 동공의 정체 같은 것들 말이다.

“정말 규모가 대단하군.”

현석의 말에 사내가 반색했다.

“그렇지? 이 정도로 대단한 건 신이 아니고서야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하지.”

하지만 현석의 대답은 차가웠다.

“굳이 만들 필요가 없지. 처음에 씨앗만 심으면 되니까.”

사내의 표정이 또 굳어졌다.

“너…… 그걸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은 딱 하나다.

“그냥.”

사내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그리고 코웃음을 쳤다.

“흥. 그걸 안다고 뭐가 달라지지? 그리고 그게 뭐 어때서? 내 태생이 그렇다고 내가 신이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야!”

사내의 외침에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네가 인간이 만든 신이라고 해서 신이 아니라는 건 아니야. 그저 난 굳이 신이 될 생각이 없는 것뿐이지.”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사내를 가만히 쳐다봤다.

아틀란티스의 신은 처음부터 이런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시작은 고도로 발전한 문명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었다. 아틀란티스의 인간을 보호하고 모든 시스템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말이다.

중간에 첫 문명이 무너지면서 공백기가 생기는데, 그 공백기를 거치면서 스스로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인간들이 다음 세대 문명을 이룩해 내자, 그들을 보호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스스로 신이 되었다.

현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계의 침입도 사실 너 때문에 생긴 거 아닌가?”

“그렇지 않다!”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가 이렇게 격렬한 감정을 토해내는 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계 문제는 그 정도로 민감한 사항이라는 뜻이었다.

“네가 던전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잖아.”

사내가 현석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러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내가 왜 너와 이런 대화를 나눠야 하지? 난 신이다.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고, 내가 바라는 건 무엇이든 이뤄진다.”

사내가 현석을 노려보며 한 자 한 자 씹어 뱉듯 말했다.

“넌 이제 곧 내가 될 거야. 내가 네게 이 모든 걸 전해줄 테니까. 어때? 고맙지?”

현석의 대답 따윈 기다리지도 않았다. 동공 전체가 새하얀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현석의 몸으로 그 모든 빛이 빠르게 스며들었다.

사내는 그걸 보며 희열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때? 힘이 느껴지지?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을 받은 기분이 어때? 기분이 제법 괜찮나?”

현석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하고 담담했다.

“그래서 네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뭐지? 내게 이 힘을 다 넘기면 그 다음엔 어쩔 셈이야?”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 대답을 현석이 대신해주었다.

“사는 게 지겹나?”

사내가 입을 꾹 다물었다.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그래서 네가 싼 똥을 치우자마자 끝내려고?”

그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다 끝났다. 그러니…… 그만 쉬어도 된다.”

사내가 고개를 번쩍 들고 현석을 바라봤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현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내의 몸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마치 빛에 휩싸인 거대한 공동이 눈물을 흘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현석은 주위를 둘러봤다. 여전히 공동에 가득 찬 빛이 자신의 몸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럼 슬슬…… 진짜 끝을 내 볼까?”

현석이 한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손바닥 위로 강한 빛이 맺혔다.

몸에 스며들었던 빛이 손바닥 위로 모여든 것이다. 그리고 공동을 가득 메우고 있던 새하얀 빛이 그곳에 모조리 빨려들었다.

이내 공동에는 한 점의 빛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동을 구성하는 마력패턴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현석의 손에 모인 빛은 이 공동을 가득 채운 마력패턴, 즉, 아틀란티스의 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그걸 온몸으로 받아들이면 아틀란티스의 신이 될 수밖에 없겠지만, 현석은 그걸 따로 분리해서 받았다.

권한만 받고 의무는 받지 않은 것이다.

현석은 그렇게 만든 빛의 구슬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강한 힘이 느껴졌지만 굳이 그걸 쓸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었고.

현석의 몸에 채워진 마력이 기묘한 패턴을 만들었다. 그러자 그의 몸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 * *

대격변이라 칭해지는 사건 이후, 세계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일단 세계 곳곳에 흩어진 마족과 마수들이 날뛰는 바람에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대격변이 일어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피해가 제대로 복구되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 그뿐 아니라 아직 마수와 마족조차 완벽하게 소탕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날뛰던 마수와 마족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몸을 숨기기 급급했다.

그렇게 오지로 숨어든 마수와 마족들은 그곳에서 몰래 살아가며 번식을 하고 세력을 불려 나갔다.

그 이후 인간과 마수와의 싸움이 그치지 않고 벌어졌다.

그나마 인간들이 많이 모여 살고, 문화나 경제의 중심지가 되는 도시에는 더 이상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어쨌든 덕분에 플레이어들의 위치가 제법 확고해졌다.

또,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마수와 마족을 사냥하러 다니는 마족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그렇게 세상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상도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다시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다.

격렬하게 싸우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그런 평범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교였다.

세상을 선도하는 기업, 미래 산업이 세운 미래 대학교는 누구나 가고 싶어서 선망하는 곳이었다.

미래 대학 언어학부의 신입생들은 오늘 첫 강의를 준비 중이었다.

강의실에는 제법 많은 남녀 학생들이 절반의 비율로 적절히 섞여 있었다.

그들은 곧 들어올 교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 사이에서 첫 수업의 교수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아틀란티스어 교수님 얘기 들었어?”

“플레이어 출신이라는 거?”

“아니, 메인퀘스트 출신이라는 거.”

“정말? 대박! 그 중에서 누군데? 아니, 그보다 그분들이 교수가 됐다는 얘긴 못들은 거 같은데?”

“소문이 그래. 언어학과 1학년 아틀란티스어만 가르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누군데?”

“류혜연.”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남학생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류혜연은 능력도 능력이지만 미모로 더 유명한 사람이었다.

“야야, 오신다.”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류혜연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눈부신 미모와 자태에 다들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남자고 여자고 없었다.

“반가워요.”

류혜연은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쭉 둘러봤다. 이번에 강의를 맡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과 결심이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그 첫 걸음이 바로 오늘 이 자리였다.

모두의 시선이 화살처럼 꽂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항상 겪는 일이라서 이젠 거의 신경도 안 쓰인다.

학생들을 쭉 둘러보던 류혜연은 순간 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굳었다.

분명히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한데 왠지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 온몸을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한동안 한 사람만 바라보자,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학생들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제법 잘생긴 남학생 한 명이 보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냥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

그제야 류혜연이 정신을 차렸다.

“자, 일단 수업부터 시작하죠.”

그녀의 말에 다들 다시 집중했다. 일단 한 번 보면 시선을 완벽하게 빼앗는 마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류혜연이었다.

학생들의 시선이 다시 류혜연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류혜연은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수시로 시선이 그 남학생에게 갔다.

그러고 보니 아직 출석을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수업을 시작했으니 그러기에는 좀 늦었다.

그녀는 칠판에 잔뜩 필기 거리를 채워 넣은 다음 시간을 내서 출석부를 쭉 살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채현석.

너무나 익숙하고 그리운 이름 하나가 보였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들어 아까 그 남학생을 바라봤다.

3년 동안 사라졌던 사람이 거기 앉아 있었다. 얼굴은 달라졌지만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다시 나타났다. 20살 학생으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 평범한 삶을 원하고 있던 건 바로 채현석 아니었을까?

류혜연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그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검지를 입술에 댔다.

쉿.

< 모든 것이 끝난 후 (13권 끝.) <완결>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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