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325화 (325/326)
  • < 대결전 >

    현석은 빠르게 아틀란티스로 향했다.

    사절단을 만나자마자 바로 아틀란티스를 빠져나와 양동욱을 만났다. 그런데 또 양동욱을 만나자마자 다시 아틀란티스로 가는 것이다.

    현석도 설마 이렇게 빨리 아틀란티스로 돌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아틀란티스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한창 사절단이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절단은 배에 여러 가지 물품을 싣고 있었다. 이러다가 배가 가라앉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많은 물품을 선적하는 중이었다.

    배신자를 색출하기 위한 아티팩트는 미래 산업을 통해서 각국에 전달했기에 딜레이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지금 싣는 물건들은 배신자 색출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들이었다.

    사절단이 가져가는 물품은 놀랍게도 마정석이었다.

    이젠 마정석을 구할 방법이 없는데 아틀란티스에는 마정석이 남아돌 정도로 많았다.

    사실 사절단이 가져가는 마정석은 질이 낮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일반적으로 쓰이던 마정석들보다 오히려 더 훌륭했다.

    아틀란티스가 세상과 격리된 지 수천 년이 지났다. 그동안 엄청난 수의 마수들을 사냥해 왔고 말이다.

    마수를 사냥하면서 나오는 마정석은 사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쓸 수가 없었다.

    마정석을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은 단연 마법사와 주술사였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마정석을 무한정 쓰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쓰는 마정석은 막대한 마력이 응축된, 질이 아주 뛰어난 것들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질이 낮은 마정석은 그저 쌓일 수밖에 없었다.

    한데 묘하게도 아틀란티스 사람들은 마정석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굳이 쓸 일이 없더라도 마정석을 꼬박꼬박 모아뒀다.

    그렇게 모인 마정석의 양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실제로 아틀란티스에서 질이 낮은 마정석은 별 값어치가 없었다.

    하지만 막대한 마력이 응축된 고급 마정석은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만일 일반적이 상황이었다면 값어치 없는 마정석을 헐값에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아틀란티스의 황제는 현석이었다.

    현석은 미리 마정석에 대한 메뉴얼을 정해 모든 주민에게 보급했다.

    절대 사사로이 마정석을 사고팔지 못하도록 정한 것이다.

    모든 마정석은 국가가 관리하도록 정해 버렸다. 마정석의 가격도 국가가 정하고, 또 반출하는 물량도 국가가 정하도록 한 것이다.

    앞으로는 그 관리가 더욱 철저해질 것이다.

    마정석을 얻을 방법은 이제 황궁에서 만드는 던전밖에 없을 텐데, 그 던전 자체를 국가가 관리하게 될 테니까.

    어쨌든 그렇게 막대하게 쌓인 마정석 중 극히 일부를 사절단이 구입해서 가져가는 것이다.

    당연히 엄청난 돈을 지불했다. 아니, 금을 지불했다.

    아직 아틀란티스의 화폐는 금이었다. 그리고 현석은 굳이 그걸 바꿀 생각이 없었다.

    당분간은 말이다.

    나중에는 특별한 화폐를 만들어낼 것이다. 마법적 처리가 된 화폐를 구상 중이었다.

    마법의 힘을 이용해 절대 위조가 불가능하고, 파괴하기도 어려우며 휴대도 간편한 화폐를 만들 생각이었다.

    현석은 사절단이 바리바리 마정석을 선적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아틀란티스 중심부로 이동했다.

    원래라면 황궁에 갔어야 하지만, 지금은 황궁에 볼일이 있어서 온 게 아니었다.

    아틀란티스의 중심부에 있는 작은 호수에 볼일이 있었다.

    워낙 작아서 근처에 다가가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호수였다.

    그 호수 중심부에 작은 섬 하나가 떠 있었는데, 현석의 목적지는 바로 그곳이었다.

    섬에 가볍게 내려선 현석은 주위를 슥 둘러봤다.

    반경이 20미터쯤 되는 작은 섬이었다. 호수도 작았지만 섬은 더 작아서 호수 밖에서도 섬이 잘 안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현석은 이 호수나 섬이 작다고 경시하지 않았다. 여긴 정말 엄청난 비밀 하나가 숨겨져 있었으니까.

    현석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주변에 흐르고 있는 마력을 하나하나 헤집기 시작했다.

    마력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흘렀는데, 현석 정도 되는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조차 그걸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흐름 자체가 너무나 미약했다.

    하지만 현석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그것을 잡아냈다. 그리고 흐름을 완벽하게 분석해냈다.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분석하기 어렵고 복잡한 패턴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만일 그동안 현석이 꾸준히 성장해오지 않았다면 아예 시도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어려운 패턴이었다.

    현석은 일단 패턴 분석이 끝나자 그걸 조금씩 건드려 변형시켰다.

    애초에 이 패턴의 목적은 무언가를 감추고 보호하는 것이었다. 또한 패턴을 분석한 자에게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현석은 자신이 열쇠가 된 심정으로 패턴을 변형했다.

    가만히 손을 올렸다. 현석의 손 주위로 마력이 휘몰아쳤다. 일정한 패턴을 가진 흐름이 손 주위에 만들어져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현석은 손을 쭉 내밀었다.

    손이 만들어낸 패턴과 허공에 흐르는 마력이 만들어낸 패턴이 겹쳐졌다.

    딸깍.

    현석은 그런 소리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손을 빙글 돌렸다.

    철컥.

    이번엔 분명히 소리가 났다. 잠겼던 무언가가 풀리면서 열리는 소리가 말이다.

    화아악!

    주변 풍경이 일제히 변했다. 아니, 현석에게만 그렇게 보였다. 호수에서 막대한 마력이 쏟아져 나오면서 위로 거대한 패턴을 착착착 만들어갔다.

    그리고 섬이 아래로 푹 꺼지면서 거기에도 마력패턴이 착착착 만들어졌다.

    현석은 그 아래로 서서히 하강했다.

    그리고 도착했다. 아틀란티스의 진짜 중심부에.

    * * *

    양동욱과 래리는 진짜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여기저기 연락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또 사람을 보내고 손님을 맞이했다.

    단 1초도 쉬지 않고 일에 매진했다.

    처음에는 둘이서 시작했지만, 차츰 함께 일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일단 피라밋 암시장이 발 벗고 나섰다.

    또한 종로 암시장을 비롯해 그들과 관계된 길드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리고 이제는 유명무실해진 던전 관리센터가 가장 열심히 뛰어다녔다.

    던전 관리센터는 던전이 사라지며 위기를 맞았지만, 어쨌든 세계적인 조직이었다.

    그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살아나고자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뛰어다녔다.

    그렇게 다들 애쓴 덕에 세계에 드리워진 위기를 대부분의 국가 수뇌부가 인지하게 되었다.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를 일을 그들이 받아들여 대비하게 만드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그걸 수많은 플레이어들에게 알려 그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부추기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양동욱은 수많은 인맥과 능력을 동원해 결국 그걸 해내고야 말았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그래도 이제는 충분히 대응할 준비는 되었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 이뤄낸 성과였다.

    그렇게 양동욱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현석은 아틀란티스의 지하 깊은 곳에서 자신을 부른 존재를 마주하고 있었다.

    * * *

    아틀란티스 지하에는 거대한 공동이 있었다. 반경이 거의 100킬로미터는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동이었다.

    그 공동은 사방이 돌로 꽉 막혀 있었는데,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순수한 마력이었다.

    또한 그 마력이 아주 복잡한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단언컨대, 현석이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마력패턴보다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변하는 패턴이었다.

    그래서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현석은 정확히 그 중심에 서 있었다. 현석이 스스로의 힘으로 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자리가 현석의 자리인 것처럼 저절로 그곳에 위치했다.

    현석은 이 공동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여기가 본체였군.”

    현석은 본능적으로 마력을 뿜어내 분석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아냈다.

    공동은 하나가 아니었다. 이곳과 연결된 다른 공동이 또 있었다.

    현석은 즉시 눈을 감고 마력패턴의 규모부터 파악했다.

    믿을 수 없게도 엄청나게 많은 수의 공동이 아틀란티스 전역에 걸쳐 있었다.

    물론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해 있고, 다른 공동의 크기는 반경 10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것도 결코 작은 크기는 아니었다.

    어쨌든 이곳을 중심으로 마치 거대한 네트워크라도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거대한 마력패턴의 공동이 수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이 지금 깨어나고 있었다.

    현석은 그것, 신의 본체를 깨우는 열쇠였다. 존재 자체가 원래부터 그랬다.

    공동이 빛으로 가득 찼다. 깨어나는 건 찰나였다.

    자신이 열쇠라는 걸 현석이 인지한 순간 신의 본체가 깨어났다.

    빛이 사라지자, 현석 앞에 빛으로 이루어진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이런 모습이 받아들이기 좀 편하겠지?”

    현석은 자신에게 말하는 빛의 사내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네가 신인가?”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부르기도 하더군.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그저 내 존재 자체가 중요한 거지.”

    “날 부른 게 너 맞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얘기해준 것도 너 맞고?”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표정이 있을 리 없는데도 사내의 기분이나 표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다.”

    “날 기다렸다고?”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수천 년 동안 기다리던 건 네가 아니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기다린 건 네가 맞아.”

    현석의 눈이 그 순간 번득였다.

    “너로구나. 시간을 되돌린 거.”

    이번에도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가 끄덕였다.

    “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사실 애초에 회귀를 시도한 건 마황이었으니까.”

    “마황이라고?”

    현석은 잠시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마황이 뭐가 아쉬워서 회귀를 시도한단 말인가.

    “그놈도 실패했거든.”

    “실패? 뭘? 마계?”

    “맞아. 지구를 마계로 만드는 걸 실패했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씨앗을 싹틔우는 것 자체를 실패했어.”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다면 이해할 수 있다. 싹을 틔워 마황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을 마계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자신이 있는 곳을 마계화하는 건 마황의 고유 권능이니까.

    “수천 년 동안 기다린 게 내가 아니었다는 건 또 무슨 얘기지?”

    “말 그대로야. 수천 년 동안 내가 기다리던 사람은 네가 아니라 미카엘이었거든.”

    이번엔 현석도 좀 놀랐다. 미카엘은 마황의 씨앗을 받아들여 현재 마황으로 다시 태어난 놈 아닌가.

    대체 그놈을 왜 기다렸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하니 뭔가가 퍼즐 맞추듯 떠올랐다.

    “그놈이 원래 열쇠였군. 거기에 마황이 씨앗을 심은 거고.”

    “맞아. 씨앗을 심을 숙주에도, 날 깨울 열쇠에도 가장 적합한 사람이 미카엘이었지. 그럴 수밖에. 내가 직접 배양해서 키워낸 사람이니까.”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꼼짝없이 당할 뻔했어. 마황에게 숙주를 제공한 셈이 되어버렸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방해하는 것뿐이었어.”

    미카엘을 키워낼 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지 않았다면 아마 마황으로 완벽하게 각성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틀란티스의 신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일어날지 모를 상황에 대비한 것이다.

    물론 그 만에 하나 일어날지 모를 상황이 마황의 씨앗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었다. 미카엘이 엇나갈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만들어내긴 했지만, 어쨌든 미카엘은 인간이었으니까.

    “내 방해로 결국 씨앗을 싹틔우는 걸 실패했지. 너도 알지? 던전이 열리고 20년이 넘게 흘렀지만 변하는 게 하나도 없었잖아? 지금이랑은 달리 말이야.”

    “확실히.”

    현석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확실히 이번엔 흐름이 엄청나게 빨랐다. 지금까지는 현석 자신이 역사를 바꿨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빠르게 흘러갈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방향은 지금과 좀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마황의 씨앗이 가진 마계의 힘이 던전을 통해 소모된 거지. 너도 예상했지? 던전이 마계의 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거 말이야.”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족의 존재를 확인한 다음부터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게 아니라면 블랙홀에 사는 마수의 존재를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블랙홀을 통해 꾸준히 마계의 힘을 소모시켰지. 그것도 사실 씨앗이 미카엘의 몸에 자리 잡았기에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었고 말이야.”

    “블랙홀은 황궁의 기술 아니었나? 실전 훈련을 위해 만든 건 줄 알았는데.”

    “황궁을 누가 만들었을 것 같지? 그것 역시 나와 관계된 거야. 아주 오래전부터 말이지.”

    현석은 이 말을 들으며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마황은 실패했고, 다른 시도를 했지.”

    “시간을 되돌린 거 말인가?”

    현석의 질문에 사내가 잠시 뜸을 들였다.

    “사실 마황이 하려던 건, 힘의 회복이었어. 그러니까…… 처음 씨앗이 되었을 때의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한 거였지.”

    사내의 입장에선 당연히 그걸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황이 시도한 방법 자체가 사내의 힘으로 돌이킬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다신 쓸 수 없는 방법이기도 했다. 세상의 근원을 이루는 법칙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황과 같은 시도뿐이었지. 나도 근원의 법칙을 건드렸어.”

    “그 결과가 회귀인가?”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실 회귀를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결과가 그렇게 되어 버렸지.”

    “그럼 난 왜 거기 끼어든 거지?”

    사내가 씨익 웃었다.

    “거기서부터 내 노림수가 시작되지.”

    마황과 신이 회귀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것이 결정된 순간, 둘 다 상황을 바로 인지했다.

    그래서 회귀 직전에 마황과 신이 동시에 자신들의 노림수를 던졌다.

    물론 서로 어떤 노림수를 던졌는지는 모른다.

    “지금은 결과를 보고 판단할 수 있지. 마황이 노린 건 씨앗이 확실히 싹을 틔울 수 있게 만든 거야. 바로 힘이지. 세상을 바꿀 힘. 딱 내가 예상한 대로였어.”

    마황은 미카엘이 현재 얻은 힘을 고스란히 갖고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그 얘기는 즉, 씨앗도 품은 채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사실 그건 마황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근원의 법칙을 건드린 대가는 굉장했다. 회귀 후, 세상에 개입할 방법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회귀의 정확한 시점은 미카엘이 태어난 순간이었다.

    즉, 씨앗을 미카엘에게 심을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씨앗을 심은 채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신의 선택은 열쇠를 바꾸는 거였다.

    “난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어. 열쇠가 스스로 선택하게 만들었지. 미카엘을 제외한 가장 적합한 사람을 말이야.”

    “그게 나였나?”

    사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내가 아는 건 네가 열쇠라는 것과, 회귀가 끝난 순간 미카엘이 그걸 알아차렸다는 것뿐이야.”

    현석은 왜 미카엘의 레벨이 그렇게 높았는지 알 수 있었다. 레벨을 다 갖고 회귀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만일 회귀 전의 기억까지 갖고 있었다면 아마 세상은 또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열쇠를 얻으면서 회귀 전의 지식은 물론이고 열쇠와 관계된 지식까지 함께 얻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예감도 열쇠의 지식에서 비롯된 거였군.’

    현석은 사내를 빤히 쳐다봤다.

    “그래서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주는 이유가 뭐지?”

    “경각심을 가지라는 뜻이지. 미카엘은 정말 강할 거야. 그리고 만일 그가 널 이긴다면 세상은 마계로 변할 거고. 모든 게 끝장나는 거지.”

    “그런 얘기 안 해도 질 생각은 없다.”

    “당연히 그러시겠지.”

    사내는 빙긋 웃었다.

    “네가 내 파편들을 싹 깨우고 나까지 깨워준 덕분에 마지막으로 괜찮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 그건 정말 고맙게 생각해. 어쨌든…… 이제 슬슬 마무리할 시간이로군.”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마음 같아선 내 모든 힘을 네게 전해주고 싶지만…… 난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존재거든.”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대비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신은 절대 지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마황을 이기면 내가 아주 좋은 선물을 주지. 기대해도 좋을 거야.”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양 팔을 벌렸다.

    화아악!

    사방으로 강렬한 빛의 입자들이 쏟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현석을 휘감았다.

    현석은 자신을 중심으로 거대한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을 온몸으로 분명히 느꼈다.

    이내 빛이 사라졌다. 현석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공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분노로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마황이 서 있었다.

    “크아아! 이노옴!”

    분노와 살기가 뒤범벅 된 마황의 외침이 공간을 쩌렁쩌렁 뒤흔들었다.

    현석은 담담한 표정으로 마황을 향해 걸어갔다.

    드디어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세계 곳곳에 위치한 마계가 산산조각 났다. 말 그대로 세상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그대로 부서져 버린 것이다.

    그건 도시를 장악한 마계는 물론이고 인도에 크게 번져가던 마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부서진 마계는 예상대로 전 세계 곳곳에 파고들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마계가 아니라 마족과 마수였지만, 어쨌든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였다.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는 바람에 혼란에 빠진 마족과 마수들은 마구 날뛰었다.

    그리고 미리 대비하고 있던 전 세계의 군대와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대처해 나가기 시작했다.

    세계 곳곳에서 마수와 마족 사냥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라이언 일행이 이끄는 미래산업의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 * *

    “네놈이냐? 간신히 만든 마계를 조각낸 게?”

    현석은 마황의 물음에 검으로 대답했다.

    쉬아악!

    쩌저저정!

    마황의 몸에서 시커먼 기운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 기운을 현석의 검이 마구 후려치고 있었는데, 그 때마다 기운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고작 그 정도 힘으로 날 상대하겠다고?”

    마황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막대한 기운이 주먹에 모여들었다.

    그러면서도 몸을 보호하는 검은 기운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현석은 무심한 얼굴로 끊임없이 검을 휘둘렀다. 마황이 검은 기운을 두르고 있건, 주먹에 힘이 모이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마황이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콰우우우!

    주변 공기고 기운이고 모조리 찢어발기며 마황의 주먹이 현석을 꿰뚫어 버렸다.

    현석의 몸이 물결치듯 흩어졌다. 꿰뚫은 것은 잔상이었다.

    꽈득!

    현석이 올려친 검이 마황의 겨드랑이를 직격했다. 검은 기운이 살짝 끊긴 틈을 정확히 파고든 일격이었다.

    “감히!”

    마황이 마구 주먹을 내질렀다. 첫 일격처럼 막대한 힘이 담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엄청난 힘이 담긴 주먹이 무수히 쏟아져 나갔다.

    현석은 빠르게 검을 휘둘러 그 모든 공격을 살짝살짝 흘려냈다.

    쩌저저저정!

    현석의 움직임은 정교했다. 반면 마황의 움직임은 크고 거칠었다. 대신 강력했다.

    마황은 강력한 힘을 세밀하게 통제하지 못했다. 그리고 현석은 그렇게 드러난 빈틈을 정확히 노렸다.

    계속 공격에 적중당하는 건 마황이었다. 하지만 전투 자체는 절대 밀리지 않았다.

    워낙 가진 힘이 많고 튼튼해서 고작 그 정도로는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현석은 끊임없이 같은 방식으로 마황의 몸을 두드렸다.

    아무리 단단해도 이런 식으로 타격이 누적되면 결국 파탄이 드러날 거라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기미가 보였다. 마황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 것이다.

    결국 마황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꽈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마황과 현석 사이에서 어둠의 마력이 대폭발을 일으켰다.

    마황은 그 반탄력을 이용해 뒤로 훌쩍 물러났다. 현석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 마력을 폭발시킨 것이다.

    그 폭발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웬만한 사람은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마황은 은근히 현석도 어느 정도 타격을 받지 않았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감은 채 자리 잡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현석은 그 폭발의 와중에도 전혀 밀리지 않고 뒤로 물러나는 마황을 바짝 쫓아왔다.

    마황의 품에 파고들어 회심의 검격을 내지르려는 순간, 현석은 마황의 차가울 정도로 냉정한 눈빛을 봤다.

    그리고 마황의 온몸이 검은 불꽃에 휩싸였다.

    꽈르르르르릉!

    검은 불꽃은 거대한 화염이 되어 마황과 현석이 있는 공간을 모조리 집어 삼켰다.

    “크하하하하! 이 마계의 불꽃을 네놈이 과연 견딜 수 있겠느냐! 크하하하!”

    검은 불꽃은 그 뒤로도 한동안 공간을 태우다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불꽃이 사라진 순간, 날카로운 기운 한 줄기가 마황의 턱밑에서 치고 올라왔다.

    꽈아아아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마황의 턱이 위로 덜컥 들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폭풍 같은 검격이 마황의 몸 곳곳에 쏟아져 들어갔다.

    꽈과과과과과광!

    검격이 꽂힐 때마다 폭음과 함께 시커먼 화염이 펑펑 치솟았다.

    마황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의 몸 주변을 휘감던 검은 불꽃이 모조리 몸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그 모든 힘이 심장에서 콩알만 하게 응축되었다.

    고오오오오!

    주변 공기가 미친 듯이 진동했다.

    하지만 현석은 그런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도 하던 일을 계속했다.

    강렬한 검격이 여전히 마황의 몸을 두드렸다.

    쩌저저저저정!

    그리고 응축된 마황의 검은 불꽃이 두 번째 폭발을 일으켰다.

    꽈아아아아앙!

    < 대결전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