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324화 (324/326)

< 마황의 씨앗 3 >

세계가 뒤집어졌다.

쪼그라들던 마왕군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 마왕이 나타났던 아홉 나라 중에서 미국과 멕시코만 빼고는 모두 마왕군에게 짓밟히고 있었다.

마왕군은 서두르지 않았다. 인간이 이룩해 놓은 문명을 차근차근 파괴하며 사방으로 진군했다.

마왕군이 짓밟은 곳은 어둠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리고 언데드가 창궐했다.

그 여파가 전 세계를 덮쳤다.

공황과 공포의 폭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그 공포의 중심에는 마족들의 황제, 마황이 있었다.

마황은 하늘에 뜬 검은 구름을 이용해 일곱 도시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그리고 가진 바 능력이 가공할 정도였다.

검은 구름을 가진 일곱 나라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인도의 절반이 마계화를 이뤘다. 그나마 전역이 마계로 변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물론 대세에는 별 영향이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전 세계가 마황을 처리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었다.

마황의 목적이 너무 뻔해서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여차하면 핵까지 쓸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마황, 미카엘은 현재 인도 한가운데 있었다.

그런 미카엘의 주위로 아직 살아남은 인도의 마왕이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미카엘의 손가락에는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모든 세뇌 반지들의 왕 역할을 하는 반지였다.

담긴 기능은 훨씬 대단했다. 모든 반지 소유자의 위치와 현 상황을 알아내는 것이 가능했고, 거리와 상관없이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다.

반지 낀 손을 휘휘 젓던 미카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작 천 명 정도 남았나? 뿌린 게 몇 개인데…….”

게다가 남은 천 명 중에서 진짜 제대로 써먹을 만한 놈은 몇 없었다.

제대로 써먹기에는 능력이 너무 떨어졌다.

그래서 그놈들을 이용해 주변 정보를 얻게 했다. 그들이 얻은 정보는 그저 생각만으로 마카엘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제법 도움이 되었다.

물론 진짜 양질의 고급 정보를 얻으려면 다른 루트를 통해야 한다.

몇 안 되는 능력자들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나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이 가능했다.

“그나저나 이놈들은 대체 뭐지?”

분명히 반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놈들이 있었다.

그놈들의 정체를 알 수 있어서 더 짜증이 나고 답답했다.

예전 칼슨의 부탁을 받고 세뇌해준 에너지 기업과 관계된 가문의 수뇌부였다.

일곱 개나 되는 가문의 책임자들을 모조리 세뇌해서 칼슨에게 넘겨주었는데, 마계의 힘을 얻고 나오니 이런 상황이 되어 버렸다.

칼슨은 죽었고, 칼슨이 끼고 있던 반지는 엉뚱한 놈이 갖고 있었다.

미카엘은 칼슨의 반지를 누가 얻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설마 래리가 칼슨을 배신한 건가?”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미카엘이 보기에 래리는 그럴 만한 그릇이 되지 않는다.

배신을 통해 권력을 쥐기보다는 권력자 옆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자리를 지키는 것이 래리의 스타일이었다.

어쨌든 래리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었지만 그를 지켜보는 건 가능했다.

다른 노예들과 달리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지만 단편적인 정보를 얻는 건 가능했다.

래리를 통해 본 건 미래산업이었다.

미카엘의 눈이 번득였다. 일이 이렇게 꼬인 것이 바로 미래산업 때문이었다.

“이놈들을 가만 두면 안 되겠군.”

미래산업 하나 없애는 건 지금 당장에라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힘을 많이 소모해야 한다.

지금 미카엘은 아직 완벽히 마황의 씨앗을 싹틔우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계화가 이루어진 곳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힘의 소모가 컸다.

물론 워낙 막대한 힘을 품고 있기에 아무리 많은 힘이 소모되더라도 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만에 하나 미카엘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만한 공격을 받게 된다면 문제가 커진다.

이 힘은 소모한 만큼 반드시 다시 채워야만 한다. 이건 지구를 마계로 바꾸기 위한 힘이었으니까.

아차하는 순간 지구를 마계로 바꿀 힘을 상실한다면 지금까지 오랜 시간 공들여 온 일이 무산되고 말 것이다.

미카엘은 래리의 눈과 귀를 통해 계속 정보를 모았다.

처음에는 미래산업까지 밖에 접점이 없었는데, 차츰 그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왠지 익숙한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 래리와의 연결이 뚝 끊어져버렸다.

미카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놈이다! 드디어 찾았어!”

설마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찾아다니던 열쇠가 말이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미카엘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말이 되지. 그놈이 미래 산업과 연결되어 있었던 거야.”

자신이 렉스턴 에너지를 이용했던 것처럼 저놈도 미래 산업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크윽!”

미카엘은 갑자기 엄습하는 두통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어마어마한 통증이 머리를 박살 낼 것처럼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고통에 굴복하지 않았다.

“감히 누가 누굴 지배하겠다는 거냐!”

콰우우우우!

미카엘의 주위로 막대한 마력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마력이 잦아들 무렵, 표정이 다시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후우우. 이거…… 짜증나는군.”

마황의 씨앗을 받아들인 것까지는 좋은데, 그걸 먼저 길들였어야 했다. 그보다 먼저 마계의 마력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

마황의 씨앗은 호시탐탐 미카엘의 영혼을 노리고 있었다. 그걸 집어 삼켜 진정한 마황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 몸은 자신의 것이다. 그리고 이 영혼도 자신의 것이다. 또한 그가 받아들인 마황의 씨앗과 마계의 힘도 모두 자신의 것이다.

단 하나도 내줄 마음이 없었다.

“어쨌든…… 이제 답이 나왔군. 그놈부터 없애야 돼. 일단 열쇠를 얻고 나면…… 마황의 씨앗을 길들이는 것도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

미카엘의 눈이 섬뜩한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세상을 마계로 만들어 진정한 마황의 자리에 오르게 될 날이 말이다.

* * *

래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반지의 잔해와 현석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게 없으면 앞으로 일곱 가문의 수뇌부를 어떻게 조종한단 말인가.

물론 그들을 이용하고 그들의 힘과 재물을 흡수하는 과정이 제법 진행되었기에 심각한 문제가 터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지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명백하다. 훨씬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힘들고 길게 가야 한다. 아주 멀리 돌아서 가야 하는 것이다.

대체 왜 일을 이따위로 만든단 말인가.

물론 그런 불만이 있어도 그걸 함부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현석의 존재감이 너무 거대했다. 아니, 두려웠다.

“제, 제가 뭔가 실수라도…….”

그게 래리가 선택한 답이었다. 그는 불안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이 입을 열지 않자, 이번엔 함께 있던 양동욱이 나섰다.

“혹시 반지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그놈이 반지를 통해 여길 지켜보고 있었다.”

“예? 그놈이라니요?”

“그 반지를 만든 놈.”

“예?”

래리와 양동욱이 동시에 화들짝 놀랐다.

이 반지를 만든 사람은 미카엘이다. 그리고 미카엘이 만든 반지가 배신자를 양산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얘긴 미카엘과 마황과의 관계가 보통이 아니라는 결론이 난다.

사실 양동욱도 래리도 미카엘이 마황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니 현석의 말은 지금 마황이 반지를 통해 여길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갑자기 불안감과 위기감이 엄습해왔다.

“지금…… 마황이 여길 살펴보고 있었단 말입니까?”

“이젠 못하겠지.”

래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미카엘 그놈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데!”

현석은 래리의 외침을 무시했다. 어차피 걱정할 일이 아니다.

방금 이쪽을 살펴보던 놈의 존재감이 느껴진 순간, 현석은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운명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느낌이었다.

마황을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싸워 이겨야 한다. 아마 마황도 똑같은 걸 느꼈을 것이다.

‘그럼 찾아오겠지.’

하지만 어디로 찾아오든 문제가 심각해진다. 안 그래도 마왕군과의 싸움 때문에 전 세계가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현석과 마황이 싸우면 그 여파가 아마 엄청날 것이다.

바다에서 싸우면 해일이 일어날 것이고, 땅에서 싸우면 지진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에서 싸우면 불의 비가 쏟아지고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어디에서 싸우건 지구를 온전히 보존하기가 어려워진다.

어쩌면 그 싸움 한 방에 지구가 멸망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현석은 이럴 때 가장 싸우기 좋은 장소를 알고 있다. 던전이다.

하지만 그 장소 역시 완벽하게 안전한 건 아니다. 공간 자체가 붕괴해 버릴 수도 있었다.

던전의 입구를 여는 것이 지구인 이상, 그 공간이 붕괴되면 지구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절대 부서지지 않고 공간의 제약도 없는 던전이 필요해.’

현석의 생각에 그 정도 던전을 만들어낼 능력이 황궁에는 없었다.

적어도 신의 힘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 그런 장소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현석은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쳐다봤다. 그 방향으로 쭉 날아가면, 현재 마황이 있는 곳, 인도에 도착할 것이다.

이번엔 고개를 돌려 또 다른 쪽을 쳐다봤다. 아틀란티스가 있는 방향이었다.

현석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현석은 고개를 돌려 양동욱을 쳐다봤다.

“할 일이 있다.”

“예. 말씀만 하십시오.”

“조만간 마족과 마수들이 날뛰기 시작할 거다.”

“예? 날뛴다 함은…….”

“영역을 벗어나 미친 듯이 싸워댈 거라는 뜻이다.”

양동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어쩌면 세계는 지금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그걸 전 세계에 알려라.”

“하지만…… 아마 다들 나서려 하지 않을 겁니다.”

당연하다. 아마 각자 자신이 가진 것만 지키려 하지 누가 나서서 싸우겠는가.

아마 마왕군이 자리 잡은 일곱 나라만 난리가 나겠지.

아니, 인도와 국경을 맞댄 나라들은 움직일 것이다. 아니면 아예 싹 쓸려나갈 테니까.

마족들의 힘은 그 정도로 무서웠다.

물론 이쪽에는 군대와 강력한 무기가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상대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어쩌면 마왕군을 품은 나라들은 극단적인 방법을 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세계적인 재앙으로 번질 것이다.

“나설 수밖에 없다.”

“예? 하지만…….”

“마계가 쪼개질 거다.”

양동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마계가 쪼개지다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그리고 쪼개지면 뭐가 어떻게 변한단 말인가.

현석이 시선을 돌려 마침 벽에 걸려 있는 세계지도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지도 앞에 선 현석은 손가락으로 마왕군이 자리 잡은 도시들을 툭툭 짚었다.

“지금은 여기가 마계지만, 곧 이 공간이 조각나서 사방으로 흩어질 거다.”

“예에? 그게 정말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마족들과 싸워야 하니 말이다.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마계가 정화되어 사라지는 셈이니까.”

양동욱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건 현석의 입장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갈 곳을 잃은 마족들이 더 심하게 날뛸 테니까.

“그러니 그 사실을 세계에 알려라.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양동욱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과연 자신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무조건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보유한 모든 플레이어들을 비상대기 시켜라. 아마 앞으로의 싸움은 플레이어들이 훨씬 중요해질 테니까.”

이것 역시 맞는 말이다. 양동욱은 알았다고 대답하려다가 흠칫 놀랐다.

어느새 현석이 사라지고 없었다.

양동욱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래리를 바라봤다.

“서둘러. 아마…… 시간이 별로 없을 테니까.”

래리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양동욱의 뒤를 따랐다. 하마터면 자신이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데 앞장설 뻔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물론 자신이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을 마족의 손에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만일 그런 건 줄 알았다면 애초에 칼슨의 아래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일을 잘 해결해야 한다. 래리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바닥까지 끌어 쓰겠다고 다짐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 마황의 씨앗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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