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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23화 (323/326)

< 마황의 씨앗 2 >

현석은 황금으로 만들어지고, 커다란 보석으로 장식된 옥좌에 앉아 무심한 눈으로 사절단을 내려다봤다.

사절단은 현석의 눈과 마주친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몇몇은 털썩털썩 무릎을 꿇었다. 압박감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한 거였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위압감과 존경심이 온몸에 스며들어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모든 사절단이 현석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아무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현석과 눈이 마주치면 마치 머릿속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와서 보니 생각했던 거랑은 많이 다르지?”

현석이 툭 말을 던졌다. 어조는 가벼웠는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아무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현석도 답을 들으려 물은 게 아니었다.

“앞선 문명과 힘을 가지고 압박 좀 해보려고 했는데, 위성으로 보던 것과는 너무 달라서 좀 놀랐나?”

다들 그 말에 흠칫 놀랐다. 그리고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 정도로 꿰고 있으면, 또 이 정도로 이쪽 문물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자신들이 하려던 모든 것이 까발려졌다고 봐야 한다.

이대로라면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로버트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더욱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자 나머지 사절단도 마찬가지로 죄송하다고 외치고는 고개를 바닥에 대다시피 했다.

현석은 그런 사절단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아마 사절단이 돌아가면 아틀란티스에 대한 얘기가 쫙 퍼질 것이다.

현석이 굳이 사절단을 헬기로 실어 나르고 현대식 설비가 갖춰진 곳에 머물게 한 것도 모두 이를 위함이었다.

사실 아틀란티스에 제대로 현대 문물을 정착시키려면 아직 멀었다.

사절단이 머물던 곳만 겨우 설비가 끝난 것이다.

마침 마왕이 나타나는 바람에 사절단도 더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아마 그게 아니었다면 감추는 데 애 좀 먹었을지도 모른다.

“배신자를 확인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현석의 말에 로버트를 비롯한 사절단이 전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현석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가, 감사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감사를 외치는 것뿐이었다.

“고개를 들고 이걸 받아라.”

현석의 말에 로버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무언가가 휙 날아왔다.

그는 반사적으로 날아오는 작은 무언가를 잡았다.

그것은 반지였다. 물론 심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반지였다.

“아티팩트?”

“배신자들은 그것과 비슷한 모양의 반지를 끼고 있을 거다.”

로버트의 눈이 번득였다.

“이 반지를 찬 플레이어만 찾아내면 되겠군요!”

하지만 현석은 그런 로버트의 기대감을 무너뜨렸다.

“플레이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 반지를 낀 놈이 배신자다.”

로버트를 비롯한 사절단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배신자의 세뇌를 풀 수 있는 아티팩트는 적당한 수량을 판매하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쨌든 원하던 목표를 모두 이뤘다.

이 반지를 낀 사람을 찾아 세뇌를 푸는 머리띠를 씌우면 끝이다.

“더 할 말이 있나?”

사절단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하는 걸 얻었으니 이제 서둘러 돌아가고 싶었다.

사실 이곳에서 그들이 뭔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애초에 준비 자체가 잘못되었다. 아니, 아틀란티스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잘못되었다.

다음에 여기 올 때는 훨씬 더 제대로 준비를 해서 와야 한다.

그래야 진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사절단은 그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현석은 황궁에서 나가는 사절단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배신자만 처단한다고 끝나는 게 아닐 텐데…….”

* * *

사절단이 알아낸 정보는 정말로 유용했다. 일단 반지를 낀 사람만 골라내서 격리해서 수용하면 되니 말이다.

먼저 마왕군과 대치 중인 군대부터 시작했다. 사절단이 알아낸 반지와 비슷한 것만 끼고 있어도 모조리 연행해서 가뒀다.

그들은 이미 배신자이거나, 아니면 배신자일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격리하는 게 당연했다.

워낙 빠르게 움직였는지라 군대에서는 배신자들이 미처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처리되었다.

하지만 다른 곳의 배신자들은 얘기가 좀 달랐다.

중요한 조직부터 조사를 시작했기에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간이 걸렸고, 말이 새 나갈 확률도 높아졌다.

결국 배신자를 몇 색출해 내기도 전에 그에 대한 소식이 쫙 퍼졌다.

배신자들은 앉아서 당하지 않았다. 다들 일단 몸을 피하거나 뭉쳐서 저항했다.

상당한 혼란이 찾아왔다.

그나마 주요 인물들을 많이 확보해서 다행이었다. 아니면 혼란이 훨씬 더 커질 뻔했다.

어쨌든 그렇게 대충이나마 배신자에 대한 일이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제대로 힘을 얻은 군대가 마왕군에게 점령당한 도시를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제 도시가 파괴되는 걸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마계화가 진행되면서 도시가 대부분 예전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형되었으니까.

그렇게 인간들은 마왕군이 점령한 도시들을 차근차근 공략해갔다.

그리고 각국에 숨은 배신자들을 색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배신자들이 낀 반지는 빠지지도 않았다. 반지를 제거하려면 손을 잘라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손을 잘라낸다고 해서 세뇌가 풀리는 건 아니었다.

손이 잘리는 순간 세뇌가 꼬이면서 뇌에 과부하가 걸려 미쳐 날뛰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단숨에 폭발시켜 날뛰기 때문에 어설프게 손을 잘라내다가 피해가 엄청나게 커지곤 했다.

그러니 그들의 세뇌를 풀기 위해선 아틀란티스에서 제공해준 머리띠를 착용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세뇌가 풀리면 자연스럽게 반지가 빠져나오기 때문에 얼마나 오랫동안 머리띠를 착용하고 있어야 할지 고민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세계의 분위기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인도의 상황은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어갔다.

다른 도시의 상황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인도의 상황이 나빠졌다.

인도는 말 그대로 지옥이 되어 있었다. 아니, 아예 마계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인도의 마계화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했다.

일단 마수들이 인도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직 해양 마수는 없었지만 조만간 그것도 생길 듯했다.

만일 해양으로 마수들이 풀려나기 시작한다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아마 해결 자체가 안 될지도 모른다. 바다는 어마어마하게 넓고 깊으니까.

어쨌든 배신자 문제도 해결책을 찾았고, 또 마왕군이 점령한 도시와의 싸움도 상당히 유리해져서 해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보니, 슬슬 인도 쪽으로 세계의 시선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즈음 인도에 굉장한 변화 하나가 생겨났다.

* * *

인도 하늘에 떠 있는 검은 구름은 더 이상 확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많은 양의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검은 구름이 뿜어내는 마력은 당연히 어둠의 마력이었다. 그것은 마족이 가지는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 어둠의 마력이 한 군데로 모이고 있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검은 구름 때문에 위성에서 인도를 살피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누구도 검은 구름의 중심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인도의 상황이 뭔가 좀 묘하다고 느끼긴 했을 것이다.

모든 마수와 마족들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들의 시선은 온통 검은 구름 한가운데 모이고 있는 어둠의 마력에 집중되어 있었다.

검은 구름이 쏟아내는 어둠의 마력은 엄청난 양이었는데, 그 모든 마력이 한데 모이고 있으니 얼마나 굉장한 힘이 작은 점에 압축되었겠는가.

그렇게 고도로 압축된 마력이 공간의 균열을 이끌어냈다.

쩌저저적!

허공이 쩍쩍 갈라졌다. 갈라진 틈에서 핏빛 기운이 일렁이며 쏟아져 나왔다.

그 기운은 공간의 균열을 더욱 크게 키웠다.

이내 허공에 시뻘건 틈이 쩍 벌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툭 튀어나왔다.

피부는 칠흑 같았고, 머리에는 여섯 개의 뿔이 나 있었다. 그리고 각 뿔마다 뇌전과 화염, 냉기와 바람, 그리고 빛과 어둠이 맺혀 있었다.

피처럼 붉은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빠져나오자, 공간의 균열이 순식간에 메워졌다.

서서히 하강하는 그의 몸 주위로 시커먼 기운이 회오리쳤다.

“드디어…… 끝났다.”

미카엘이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콰우우우!

그의 몸 주위로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일어나 사방을 휩쓸었다.

근처에 있던 마족을 비롯해 마수들이 모조리 튕겨 나갔다. 힘이 약한 것들은 가루가 되어 소멸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한 차례 힘을 방출한 미카엘 앞으로 마왕이 천천히 다가와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자 나머지 마족들이 우르르 다가와 그 뒤에 같은 자세로 앉아 고개를 조아렸다.

미카엘은 그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그동안 잘 견뎠다.”

마족들이 격동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미카엘의 입에서 그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한 마디가 나왔다.

“이제 반격의 시간이다.”

* * *

중국은 배신자 색출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나라였다. 플레이어의 수도 많고 인구도 많으니 당연히 배신자도 많을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아티팩트를 최대한 많이 확보했다.

배신자를 잔뜩 색출하고 그들의 세뇌를 풀어나가다 보니 점차 마왕군에게 점령당한 도시를 상대하기가 편해졌다.

그리고 나라의 상황 자체도 점점 나아졌다.

그쯤 되니 슬슬 인도 쪽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중국의 선택은 마왕군 점령 도시에 집중된 병력을 반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시를 정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그리고 배신자만 아니라면 충분히 그럴 역량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중국은 이후의 일은 생각지도 않았다. 핵을 쓰는 것만 제외하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에 다른 나라에 비해 제법 잘 싸우고 있었다.

여차하면 핵까지 쓸 각오가 되어 있는 곳이 바로 중국이었다.

그렇게 병력이 절반으로 줄었고, 그 절반의 병력에 중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병력을 조금씩 차출해서 인도와의 국경으로 보냈다.

절반이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마왕군을 상대하는 병력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병력을 지휘하는 사령관의 능력도 제법 뛰어났다. 그래서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마왕군을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중국의 수뇌부뿐 아니라 세계의 수뇌부나 정보 조직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한데 그런 결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황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겨났다.

* * *

“크윽! 막아! 어떻게든 막아! 그쪽이 뚫리면 뒤가 없어!”

사령관의 외침에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은 달려간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튕겨나갔다.

꽈과과광!

플레이어들이 튕겨나자 수십 발의 포격이 그곳으로 쏟아져 나갔다.

플레이어들이 번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조준을 마친 것이다.

불꽃과 연기가 폭발적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핏빛 갑옷을 입은 존재가 유유히 걸어서 중국군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가소로운 것들.”

미카엘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바닥 앞에 새까만 기운이 뭉쳐 맹렬히 회전했다.

“쏴! 쏘라고! 모든 걸 다 쏟아 부어!”

사령관의 외침이 전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부질없는 외침이었다.

미카엘의 손에서 튀어나온 검은 소용돌이가 중국군 한복판에 떨어진 것이다.

콰우우우우우우!

검은 기운이 모든 걸 집어 삼켜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가 급격히 마계로 변해갔다.

미카엘은 무심히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이제 이곳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저들은 마족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마계화는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모든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 천천히 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근거지만 있으면 충분했다.

미카엘은 하늘 높이 떠 있는 검은 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이제 아주 작아져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이건 장거리 이동을 위해 띄워놓은 것이었으니까.

그 안으로 쑥 들어간 미카엘이 다시 나타난 곳은 프랑스 상공이었다.

< 마황의 씨앗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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