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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22화 (322/326)

< 마황의 씨앗 1 >

라이언 일행은 멕시코의 마왕을 아주 힘겹게 막아냈다. 그리고 그곳을 뒤덮은 검은 안개를 말끔히 걷어냈다.

그게 끝이었다.

다른 곳에는 굳이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미 싸움이 끝났으니까.

이제부터는 그곳들을 중심으로 전선을 구축해서 진짜 전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도시를 완벽히 잃어버렸기에 오히려 싸우기는 더 편해졌다.

각국에서는 마왕에게 잃어버린 도시를 중심으로 거대한 포위망을 형성했다.

일단 처음 마왕이 나타났던 아홉 나라 중에서 미국과 멕시코는 해결되었으니 일곱 나라가 남은 셈이었다.

그 중에서 여섯 나라는 전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막대한 화력을 동원하고 심지어 전투기까지 동원해서 마족을 상대했다.

그리고 마계화 된 도시를 벗어난 마족들은 막대한 수의 플레이어를 동원해서 막아냈다.

한데 그 중에서 인도는 상황이 다른 나라와 많이 달랐다.

마족이 쏟아져 나온 시점에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포위망을 구축하지 못했고, 사방으로 마족이 흩어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마족들은 말 그대로 학살자들이었다.

총화기는 아예 통하지도 않았고, 회복력도 어마어마했다.

인도 하늘에 떠 있던 검은 구름이 점점 커지면서 마족들의 회복력이나 힘과 속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그리고 그러면서 다른 나라에 있던 검은 구름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없어지지는 않았다. 마치 호시탐탐 뛰쳐나갈 기회만 노리고 있는 듯했다.

당연히 그쪽은 전시 상태였다. 전쟁을 벌이는 거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일단 상황은 초반보다 확실히 나아졌다.

이쪽의 우위가 확연히 드러났으니까. 마왕군 측은 방어로 돌아섰고, 공격의 주도권은 이쪽에서 쥐고 있었다.

군사력이 뛰어난 나라는 끊임없이 화력을 쏟아 부었다. 그래야 마왕군이 밖으로 뛰쳐나올 확률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또 공격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강력한 플레이어들을 이용해 도시 외곽을 끊임없이 침입해 게릴라전을 펼쳤다.

외부는 아주 단단히 틀어막은 채 말이다.

그 와중에 인도는 점점 마계로 변해가고 있었다.

처음 마계로 변한 도시를 중심으로 서서히 지형을 비롯한 여러 환경이 마계화 되어가고 있었다.

속도는 느렸지만 아주 확실히 마계로 변해갔다. 하늘에 뜬 검은 구름의 크기도 그에 맞춰 점점 커졌고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 세계정세가 정상적으로 흘러갈 리 없었다.

거의 세계대전에 준할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마왕이 나타난 국가는 국가의 모든 흐름을 전쟁에 맞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인도처럼 변할 거라는 두려움이 그들에게 정당성과 행동력을 부여했다.

마왕이 나타나지 않은 나머지 국가는 모든 정보력을 이용해 인도를 주시했다.

특히 인도 주변의 국가들은 더더욱 신경을 썼다.

인도는 이미 지옥이 되었다. 마계화가 이루어진 지역은 생명체들도 변이했다.

완벽하게 변이가 이루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일단 변이가 끝난 생명체는 더 이상 같은 종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 버렸다.

그들은 마수가 되었다.

인간이고 짐승이고 식물이고 상관없이 모조리 마수화가 진행 되었다.

그건 인도뿐 아니라 마계화가 이뤄진 다른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막대한 화력으로 그걸 모조리 박살 냈다. 하지만 인도는 그게 불가능했다.

그렇게 마수로 변한 모든 생명체들은 마계화가 이뤄지지 않은 지역으로 뛰쳐나갔다.

또 한 번 대 학살이 벌어졌다.

마수들은 마수가 아닌 다른 모든 생명체를 적대했다. 인도 곳곳에 시체가 쌓여갔다.

그렇게 시체가 쌓인 곳이 마계화되면 시체가 일어났다.

언데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다른 나라에서 인도를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문제였다.

만일 인도 전역이 마계로 변해 버린다면, 그 뒤로는 이걸 해결할 방법은 핵밖에 안 남을 것이다.

만일 여력이 남는 국가가 있다면 인도 탈출을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력이 남는 국가가 단 하나도 없었다.

* * *

전 세계의 대표자들이 모인 회의가 개최되었다.

어디에 모여서 개최한 게 아니라 화상통화를 이용해 회의를 열었다.

그만큼 사안이 급했다. 이동하고 모이고 예의를 차리고 할 시간조차 아까울 지경이었다.

“일단 기본적인 정보부터 공유합시다.”

미국 대표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 처한 상황을 간략하게 말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한 차례 난리가 났다. 마왕과 마족 문제가 아니었다.

그거야 나타난 나라에서 해결하면 될 문제였다.

진짜 문제는 마족의 편에 붙은 플레이어들이 다수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사실 마왕과 싸울 때도 그들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인도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는 마왕을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배신자들 때문에 내부 분열이 일어났고, 결과적으로 도시의 마계화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그 이후에 철저히 대응해서 마계화가 더 진행되지 못하게 막아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 와중에 배신자들은 도시에 갇혀서 대부분 죽었다. 물론 죽은 뒤에 다시 언데드로 태어나긴 했지만 말이다.

딱 거기까지였다면 별로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진짜 문제는 배신자가 거기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전 세계 곳곳에 배신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마계의 황제를 주인으로 모시고서는 목숨을 바쳐 마황에게 충성했다.

“나름의 조사를 거쳐 알아낸 바로는…… 그들이 아주 강력한 세뇌에 당한 걸로 보입니다.”

“강력한 세뇌라고요?”

몇몇은 놀란 눈을 했고, 또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들…… 너무 영악해서 상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반 마수랑은 아예 다릅니다.”

대놓고 자신이 인간의 배신자라고 떠들고 다닌다면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다.

한데 그들은 그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활동했다.

배신자가 존재한다는 걸 알기에 그나마 대처가 가능했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이거…… 마왕군도 상대해야 하는데, 배신자들까지 나타나서 정말 큰일이군요. 어찌해야할지…….”

다들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 한국 대표로 참석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배신자들의 세뇌를 풀 방법이 있습니다.”

그 말 한 마디에 좌중에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다들 눈을 크게 뜨고 한국 대표를 주목했다.

한국에서 온 대표는 참으로 특이했다. 다른 나라와 달리 길드의 마스터가 참석한 것이다.

레드드래곤 길드의 마스터인 한중현이었다.

일개 길드마스터가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곳에 참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한중현은 뭔가를 들어 올려 카메라에 비췄다. 둥그런 머리띠였는데, 마치 서유기의 손오공이 머리에 쓰는 금고아와 비슷했다.

“그겁니까?”

“예. 이걸 머리에 씌우면 세뇌가 풀립니다. 다만 배신자를 제압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 말에 다들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배신자를 구분할 수 있다면 그냥 다 죽여 버리면 되는데 말이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미국대표가 물었다.

“그걸 어디에서 구하셨습니까? 설마 만드신 건 아니실 테고…….”

한중현은 심호흡을 통해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말을 꺼냈다.

“미래산업에 아는 지인이 있는데, 그를 통해 얻었습니다.”

“미래산업?”

모두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렇다면 미래산업은 지금 이 상황을 미리 예견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다들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꼬인 머리를 단숨에 풀어줄 한 마디가 한중현에게서 나왔다.

“미래산업은 이걸 아틀란티스에서 받았다고 했습니다.”

“아틀란티스!”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아틀란티스를 모를 사람은 이 자리에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이 회의에 참여한 대부분의 국가는 아틀란티스에 사절단까지 보냈다.

아직도 그 사절단은 아틀란티스에서 머물고 있었다.

“대체 미래산업은 어떻게 그런 걸 얻었다고 합니까?”

한중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틀란티스에 그런 물건이 있다는 걸 알아낸 것만 해도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물량은 어느 정도나 있는 것 같았습니까? 수가 아주…… 아주 많았으면 좋겠는데…….”

“듣기로 만드는 것 자체가 그리 어렵지는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설비만 좀 갖추면 대량생산도 가능해 보이긴 했습니다.”

그 말에 다들 화색이 돌았다.

저런 물건을 잔뜩 얻을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플레이어들을 몽땅 소환하건 찾아가건 인력을 동원해 머리에 씌우기만 하면 되니까.

비밀을 엄수하면 배신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머리에 씌울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걸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배신자일 확률이 높을 테니 제압하면 되고 말이다.

“뭔가 좀 더…… 대규모로 탐색하고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일단 그걸로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좋겠군요.”

회의는 거기서 끝났다.

다음 대책 마련은 일단 이것부터 확보하고 배신자를 처리한 다음의 일이었다.

아마 그때가 마왕군과의 진짜 전쟁의 시작이 될 것이다.

* * *

아틀란티스의 사절단을 대표하는 로버트는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뭡니까?”

그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한 화상통화로 방금 회의를 마친 미국 대표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미국 대표는 메일을 통해 사진 한 장을 보냈는데, 로버트는 그걸 프린트해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머리띠 같은데…… 이걸 왜 여기서 구한다는 겁니까?”

-아틀란티스에서 만든 아티팩트입니다.

“이게 아티팩트라고요?”

-그렇습니다. 그것도 아주 대단한 아티팩트입니다. 자그마치 세뇌를 풀 수 있는 아티팩트니까요.

“세뇌를…… 푼다고요?”

로버트의 뇌리에 무수히 많은 생각이 들락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가장 먼저 의심부터 들었다.

시기가 너무 짜 맞춘 듯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아틀란티스에 관심이 집중되려는 찰나 튀어나온 아홉 마왕, 그리고 마왕을 토벌할 방법을 찾은 즉시 나타난 배신자들.

마지막으로 그 배신자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아트팩트까지.

어느 하나 아틀란티스와 직, 간접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게 없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아틀란티스가 있다고 의심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제가 해야 할 일이 정확히 뭡니까?”

-이 머리띠를 구해 주십시오. 최대한 많이. 그리고 배신자들을 대규모로 탐색하고 검출해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십시오.

로버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과연 아틀란티스가 저 제안을 했을 때 그냥 고개를 끄덕일까?

‘절대 그럴 리 없지.’

만일 입장을 바꿔서 자신이 아틀란티스의 외교관이라면 이번 기회에 뜯어낼 수 있는 모든 걸 얻을 것이다.

이건 앞으로 다시 올지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기회였으니까.

“일단……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이번 일에 세계의 명운이 걸렸습니다. 배신자들 때문에 마왕과의 전쟁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마왕군을 상대하는 군인이나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아무래도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은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마족들을 토벌해야 할 시기였다.

그리고 한창 마계로 변하고 있는 인도에 집중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 세계는 지옥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통신을 끊은 로버트는 심각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마침 방에서 나오는 다른 나라의 대표들이 보였다. 전부 똑같은 표정이었다.

“다들 저랑 같은 임무를 받으신 모양이군요.”

로버트의 말에 그제야 모두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어쨌든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여럿이서 함께 하는 것이 더 힘이 되니까.

밖으로 나온 로버트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마치 그들이 여기로 올 줄 알았다는 듯이 보자마자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마 여러분께 좋은 일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로버트는 하려고 준비했던 말을 순간 잊어버렸다. 뭔가 선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페하의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로버트 일행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드디어 황제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두들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과연 황제를 만나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궁리하고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세계의 사절단이 황궁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마황의 씨앗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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