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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21화 (321/326)
  • < 마계화 >

    시카고의 마왕은 제대로 힘도 못 써보고 죽었다.

    일단 허리띠가 사라진 마왕은 정말로 딱 마족 군단장이었다. 그리고 마족 군단장 정도의 힘으로는 라이언 한 명도 이길 수 없다.

    문제는 하늘에 뜬 검은 구름이었다.

    라이언 일행은 고개를 들고 위에 뜬 검은 구름을 올려다봤다.

    그런 그들에게 지금까지 시카고 마왕을 막던 플레이어들과 군사들이 다가갔다.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전투사령관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령관의 인사를 대충 받아준 라이언은 다시 고개를 들고 검은 구름을 바라봤다.

    “저거…….”

    라이언이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말을 걸자 전투사령관이 무슨 일인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저 위에 있는 저거 말입니다. 꼭 블랙홀을 닮은 거 같지 않습니까?”

    “예?”

    전투사령관은 물론이고 라이언의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하늘에 뜬 검은 구름을 바라봤다.

    가만히 검은 구름을 올려다보던 사람들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얘기를 듣고서 보니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블랙홀이라기엔 묘하게 좀 아닌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블랙혹보다는 구름에 더 가까웠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랬다.

    전투사령관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라이언을 바라봤다.

    “도와주십시오!”

    사령관의 말에 라이언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마왕은 이미 해치웠는데 또 뭘 도와달라는 말인가.

    “부디 다른 마왕들도 처리해 주십시오. 지금 당장 중국의 마왕이 훨씬 강력해졌다고 합니다.”

    “훨씬 강력해졌다고요?”

    중국의 마왕뿐이 아니었다. 나머지 다른 마왕들도 중국의 마왕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전보다 더 강력해졌다고 한다.

    마치 이곳에서 죽은 마왕의 힘을 나눠 받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설명을 모두 들은 라이언 일행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만일 정말 그런 식이라면 모든 마왕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없다.

    라이언은 손가락으로 허공을 휘휘 저었다. 움직이는 손가락 사이에 검은 안개가 슥슥 걸렸다.

    “이 안개…… 뭔가 심상치 않아.”

    처음에는 어둠의 마력인 줄 알았다. 어둠이나 죽음 계열의 마력이 짙게 뭉쳐져 유형화를 이룬 거라 여겼다.

    한데 막상 이렇게 직접 접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런 단순한 마력이 아니었다. 아니, 지금 보니 이게 마력인지 아닌지도 확실치가 않다.

    라이언의 손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화르륵!

    근처에 있던 검은 안개가 깨끗이 타서 소멸했다.

    라이언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거 전부 제거하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일행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주변에 흩어진 안개를 제거해 나갔다.

    가장 큰 효율을 보이는 사람은 단연 류혜연이었다.

    류혜연이 가진 치료의 마력은 마족이 뿜어낸 검은 안개와 상극이었다.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새하얀 빛이 닿을 때마다 검은 안개가 힘없이 스러져갔다.

    라이언 일행이 그렇게 움직이니, 그걸 지켜보던 다른 플레이어들도 다들 나섰다.

    이곳에는 힐러들도 많다. 그들은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허공에 흩뿌려지는 힐링 스킬들이 높은 곳까지 장악한 검은 안개를 말끔히 지워 나갔다.

    그렇게 움직임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야 라이언 일행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제 한 군데 해결했을 뿐이었다. 아직 여덟 군데나 남았다.

    그 중 하나라도 놓친다면 아마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끔찍한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서두르자.”

    라이언 일행이 빠르게 시카고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음 마왕을 향해 날아갔다.

    원래는 중국을 찾아가야 하는데, 라이언 일행이 선택한 것은 중국이 아닌 멕시코였다.

    일단 시카고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처리하고자 했고, 또, 상대적으로 마왕과 싸울 여력이 부족한 나라부터 구하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그들이 시카고의 마왕과 싸우면서 알아낸 사실을 알려주었다.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키는 아티팩트를 몸에 소지하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걸 부수면 상대하기 훨씬 쉽다는 걸 알려줬으니 아마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같은 경우는 플레이어의 수도 많고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도 수두룩하니 더더욱 상대하기 수월할 거라 판단했다.

    그렇게 라이언 일행은 멕시코로 향했다.

    * * *

    라이언 일행이 시카고의 마왕을 처리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쫙 퍼져 나갔다.

    그리고 각 마왕을 상대하고 있던 플레이어와 군대에게 마왕을 상대하는 법이 전달되었다.

    중국 청도에 나타난 마왕을 상대하던 플레이어들이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반색을 했다.

    중국에서 마왕과 가장 적극적으로 싸우는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흑시 소속이었다.

    그리고 그 흑시에 포함되어 있는 대련방의 플레이어들이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련방주는 마왕과의 싸움은 대련방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겼다.

    이번 싸움에 흑시가 개입한 이유는 바로 중국 정부와의 밀약 때문이었다.

    마왕과의 싸움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흑시의 활동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 주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양지로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암시장이 음지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규제와 세금 때문이었으니까.

    굳이 그런 올가미를 스스로 채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흑시는 이번에 상당히 큰 이권을 약속받고 이 싸움에 참여했다.

    그리고 대련방은 그런 흑시로부터 상당한 이권을 약속받고 싸움에 참여했다.

    아마 이번 마왕 토벌이 잘 마무리 되면, 대련방주도 흑시의 주인에 도전할 충분한 자격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1차 목표는 끝이지.’

    퀸급 화이트홀이 막혀 버리는 바람에 처음 세웠던 계획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제 그건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한 다음 계획이 나왔다.

    저 마왕만 처리하면 끝이다.

    “정말…… 짜증나는군.”

    대련방주는 저 멀리서 설쳐대는 마왕을 노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왕을 상대할 방법을 알면 뭐 하는가. 그걸 써먹을 수가 없는데.

    마왕의 허리띠는 벌써 잘려나간 지 오래였다. 한데도 마왕은 여전히 무한한 생명력과 마력을 자랑했다.

    마왕의 힘을 회복시켜주는 아티팩트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지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허리띠를 없앤 건 시카고의 마왕과 혹시 같지 않을까 해서였고, 역시나 그건 아니었다.

    마왕이 좀 약하기라도 하면 아예 잡아두고 잘게 다져 버릴 텐데, 그것도 어려우니 제대로 공략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검은 안개는 점점 짙어져 가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힐러들이 잔뜩 와서 검은 안개를 소멸시키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대체 라이언은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거야?”

    마력에 대한 감각이 남달라야 그걸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으니 공략이 진척될 리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다들 고레벨 플레이어였고, 특히 중국의 플레이어들은 레벨에 비해 전투력이 제법 높은 편이었기에 차츰 공략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예상되는 지점을 노리고 어떻게든 거기에 한 방 먹이는 방식으로 싸웠다.

    틀림없이 가능성이 있었다.

    아무리 마왕이 강하다고 해도 한 대도 안 맞고 버틸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공략이 좀 될 것 같은 순간, 대련방주는 갑자기 누군가 머리에 칼을 콱 쑤셔 박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크윽!”

    대련방주가 휘청거렸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수하들이 황급히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대련방주는 한 손을 들어 내저었다. 오지 말고 각자 할 일이나 하라는 뜻이었다.

    사실 정말로 필요 없었다. 통증은 순식간에 사라졌으니까.

    대련방주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한창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저들 중 하나가 대련방주였다. 마왕과 싸우다가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잠깐 물러난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검도 손에 쥐고 있었다.

    대련방주는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무슨 신호를 받았는지 대련방의 플레이어들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힐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파고들었다.

    누가 보면 혹시 모를 일에 힐러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는 거라 여겼을 것이다.

    그 정도로 빠르고 자연스럽게 힐러들에게 접근했다.

    대련방주는 막 마왕에게 검을 꽂아 넣으려던 플레이어의 뒤로 순식간에 접근해 검을 휘둘렀다.

    슈각!

    검을 찌르던 플레이어의 목이 툭 떨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기에 허무하게 당하고 만 것이다.

    “뭐야!”

    누군가 경악해서 외쳤다. 그리고 그 외침이 특별한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대련방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검을 휘둘렀다.

    슈가가가가각!

    수십 명의 힐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대련방 플레이어들은 그걸로도 모자라다는 듯 사방으로 흩어지며 힐러와 속성 마법사만 골라서 척살했다.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다들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흑시의 주인이 분노로 온몸을 떨며 외쳤다.

    대련방주는 대수롭지 않게 근처에서 마왕과 힘겹게 싸우는 플레이어에게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주인님의 명령에 따르는 것뿐이다.”

    “뭐? 주인님?”

    슈각!

    또 한 명의 플레이어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대련방의 플레이어들이 마구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안위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이곳에 있는 아군을 하나라도 더 죽이겠다는 듯이 날뛰었다.

    그러니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대련방주는 마왕과 싸우는 플레이어들을 하나하나 죽여 나갔다.

    마왕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달라붙는 플레이어의 수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호흡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검은 안개도 더욱 짙어졌다.

    “크하하하! 이제 다 끝이다!”

    대련방주가 광소를 터트리며 마구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마왕이 사방으로 마력을 뿜어내며 학살을 시작했다.

    꽈과과과광!

    마왕이 뿜어낸 마력 덩어리들은 엄청난 파괴력을 품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밀집한 곳에 마력 덩어리들이 마구 쏟아졌다.

    저 멀리 대기하던 군대가 진군을 시작했다. 일단 대련방부터 어떻게 하지 않으면 마왕을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운신에 제약이 너무 심했다. 대련방 외의 다른 플레이어들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제약이 붙어 있어서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마왕이 근처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대련방주는 흑시의 주인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마왕은 고개를 한껏 위로 젖히고는 괴성을 내질렀다.

    “쿠워어어어어어!”

    괴성과 함께 마왕의 입에서 지금까지 뿜어내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만 안개가 쏟아져 나왔다.

    그 안개는 마왕을 순식간에 휘휘 감았다. 그렇게 소용돌이치면서 위로 자라나더니 그대로 하늘에 떠 있는 검은 구름을 꿰뚫었다.

    콰아아아아아!

    검은 구름이 폭발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왕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지형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솟아올랐다. 마치 뱀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올라왔던 땅이 다시 푹 꺼져 절벽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폭발했던 검은 구름 속에서 마족들이 비처럼 우수수 쏟아졌다.

    그곳에 남아 있던 플레이어들과 군인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수백의 마족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상황이 다른 곳에서도 거의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 마계화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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