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왕 2 >
전 세계에 난리가 났다. 마왕이 나타난 나라는 미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인도, 멕시코, 이집트, 브라질이었다.
각각 인구가 제법 많은 도시에 나타났기에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마왕이 가장 먼저 나타난 일본의 교토는 처참한 지경이었다.
전혀 대비 없이 당했기에 인명 피해가 심각했다.
그나마 마왕이 나중에 등장한 도시는 미리 사람들을 대피시켰기에 인명 피해는 적었다.
물론 재산의 피해는 수치를 헤아리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막대했다.
게다가 아직 마왕을 처리하지 못했다.
난데없이 등장한 아홉 마왕은 여전히 자신을 처리하러 온 인간들과 싸우고 있었다.
이쯤 되면 지칠 법도 한데, 어디서 힘을 공급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힘을 회복하고 마력을 뿜어냈다.
일본은 아예 교토를 복구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마왕과 싸우고 있었다.
위력적인 최신 무기들을 교토에 마구 쏟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왕을 처리할 수 없었다.
일본뿐 아니라 피해가 큰 곳은 도시 자체를 포기하다시피 하고 마왕과 싸우고 있었다.
무려 아홉 개나 되는 도시가 박살 나고 있는데, 세계 정세가 멀쩡할 리 없었다.
전 세계의 주식 시장이 요동쳤다.
각 나라의 정부가 기민하게 대처해서 혼란이 극에 달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혼란을 피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마왕이 더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다들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아직까지 마왕을 잘 막아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시가 파괴된 걸 빼면, 생각보다 피해가 크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군수물자를 소비하고 있긴 하지만, 그 정도야 충분히 견딜 만했다.
마왕이 나타난 국가들은 서로 긴밀한 연락을 하며 도움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아직 마왕이 나타나지 않은 국가들도 그냥 손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만일 마왕을 못 막는 곳이 생기면 그 나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나라가 생기면 근처 다른 나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자신의 나라에 마왕이 나타날 경우를 가정해 착실히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나라에 여러 방법을 동원해 지원을 해 주었다.
군수물자라거나, 플레이어들이 쓰는 소모품, 혹은 지원자에 한해 플레이어들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렇게 세계가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 반사이익을 얻는 곳도 있었다.
바로 미래산업과 아틀란티스였다.
미래산업은 안전에 관한한 더없이 훌륭한 물건을 판매한다.
아이기스와 재생연고는 말 그대로 미친 듯이 팔려나갔다. 생산량이 판매량을 못 따라갈 정도였다.
그리고 아틀란티스로 향하던 관심이 뚝 끊어져 버렸다.
양동욱은 즉시 태세 전환을 해서 렉스턴 에너지를 이용해 진행하던 로비를 중지시키고, 렉스턴 에너지를 조금씩 흡수하는 일을 진행시켰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마왕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보유한 플레이어들을 이용해 과연 마왕을 막아낼 수 있을지도 고민했다.
그리고 그걸 위해 지금 라이언 일행이 양동욱의 사무실에 모여 있었다.
“자, 이게 가장 최근에 구한 마왕과의 전투 영상입니다.”
양동욱은 테이블 위에 커다란 태블릿을 올려놓고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화질도 굉장히 좋았고, 프레임도 많았기에 제법 세밀히 전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왕 주변에 검은 안개가 자욱했다. 흩어진 부분이 많았기에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다.
그 구멍을 통해 마왕과 싸우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왕은 시종일관 플레이어들을 압도했다.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서 전투를 벌였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마왕의 힘과 속도, 그리고 체력과 마력이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여럿이서 상대하기엔 크기가 너무 작았다. 성인 남성과 같은 크기였으니, 정작 마왕과 붙어서 근접으로 싸우는 플레이어는 여섯 명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좀 떨어진 곳에서 원거리 공격을 하거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보조 플레이어의 수가 워낙 많으니 굉장한 힘이 되긴 했다.
그러니 어쨌든 밀리긴 하더라도 마왕과 싸워 볼 여지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싸움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라이언이 눈살을 찌푸렸다.
“마왕이라고 하기엔…… 뭔가 좀 어설프지 않아?”
그 말에 양동욱이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 라이언을 바라봤다. 그리고 근처에 함께 앉아 있는 나머지 일행의 표정도 휙휙 둘러보며 확인했다.
다들 라이언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다. 마족과 싸워봤으니까. 심지어 마족군단과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다.
지금 화면에서 보이는 마왕의 능력은 그때 싸웠던 마족 군단의 군단장쯤 되는 듯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마왕이라면 저보다 열 배는 더 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체력이나 마력은 정말 대단하네요.”
“저 위에 있는 검은 구름에서 공급해 주는 것 같지 않아요?”
류지혜의 말에 다들 마왕 위쪽 하늘에 떠 있는 검은 구름을 확인했다.
워낙 화면 자체가 전투에 집중되어 있어서 검은 구름 쪽은 거의 찍힌 게 없었다.
하지만 얼핏 드러나는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군단장 정도네요. 마왕은 아니에요. 그리고 저 검은 구름이 체력과 마력을 공급해주고 있는 게 분명하고요.”
“척 보기에도 수상해 보이는데 왜 저걸 건드릴 생각들을 안 한 거지?”
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양동욱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공략이 불가능하답니다.”
다들 놀란 눈으로 양동욱을 바라봤다.
“공략이 불가능하다고요? 왜요?”
류지혜의 질문에 양동욱이 일행을 슥 둘러보며 물었다.
“아틀란티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기억나십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이자 양동욱이 말을 이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랍니다. 저 구름은 이 세상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 투영된 존재일 뿐이라는 거죠.”
그 말에 라이언이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다시 전투화면을 들여다봤다.
“그럼 마력만 전해주는 차원의 통로쯤 되겠군. 체력은 넘치는 마력을 이용해 전환해주는 아티팩트를 이용한 것 같고.”
일행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며 마왕의 전신을 훑었다.
“허리띠네요.”
일행 중 가장 날카로운 눈을 가진 박승희가 말했다.
라이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나머지 일행도 따라 일어났다.
양동욱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라이언과 일행을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 가시려고요?”
“공략법을 찾았으니 정리해야지. 보아하니, 저거 내버려두면 분명히 난리가 날 거야.”
“난리가 난다고요?”
“저놈 점점 강해지고 있어. 그리고 저놈이 숨 쉴 때마다 뿜어내는 안개도 점점 짙어지고 있고.”
“확실히 그런 것 같긴 합니다만…….”
“정확한 건 가봐야 알겠지만, 저놈이 하려는 짓, 아무래도 마계화 같아.”
“마계화요?”
“저곳의 환경을 마계처럼 바꾸는 거지.”
양동욱의 눈이 경악으로 찢어질 듯 커졌다.
“그럼……!”
“내버려두면 지구가 마계로 변하지 않을까? 뭐…… 우리 대장님이 그렇게 두진 않겠지만.”
“그나저나 정말 어디 가신 거죠?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같이 있었으면 이렇게 고민하고 시간 쓸 필요도 없었을 텐데.”
“더 중요한 일이 있겠지. 우리 대장이 언제 놀고 있는 거 봤어?”
다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생각해보니 현석이 쉬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다. 현석은 언제나 뭔가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쉴 새 없이 달리기만 하는 것도 정말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안 보일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나중에 진짜가 나타났을 때, 짠하고 등장할지도 모르겠네요.”
다들 빙긋 웃었다.
그리고 양동욱을 바라봤다.
“일단 가까운 시카고부터 정리하자고. 헬기 준비되지?”
“물론입니다.”
다들 서둘러 움직였다.
가장 가까이 있는 마왕이 활개 치는 곳, 시카고를 향해.
* * *
“힐러들 뭐 하고 있나! 힐 뿌려!”
전투를 총괄하는 전투사령관이 힐러들을 향해 외쳤다.
힐러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이를 악물고 스킬을 썼다. 온몸의 피가 싹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화아아악!
전투 중인 플레이어들의 몸으로 힐 스킬이 쏟아졌다. 그들의 몸에 났던 상처들이 빠르게 아물었다.
그리고 체력이 조금 회복되었다.
“모자라!”
전투 플레이어가 외쳤다. 힐이 모자랐다. 상처가 전부 아물지 않았고, 회복된 체력도 너무 미미했다.
마왕이 갑자기 너무 강해지는 바람에 모든 플레이어들이 지나치게 무리했다.
이대로라면 죽을 것이다.
반면 마왕의 상태는 아까보다 더욱 기세등등했다. 훨씬 빨라졌고, 훨씬 강해졌다. 그리고 숨 쉴 때마다 뿜어내는 검은 안개도 더욱 짙어졌다.
마치 싸우면서 점점 성장하는 것 같았다.
모두의 얼굴에 암울함이 드리워졌다. 어쩌면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여기만…….’
다른 나라의 상황도 계속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잘 막아내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마왕들은 시카고의 마왕처럼 이렇게 급격히 성장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만 유지시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꼭 여기 있는 마왕만 진짜 마왕 같아.’
마왕이 온몸으로 마력을 쫙 뿜어냈다. 플레이어들이 뒤로 훅 튕겨나갔다. 그리고 균형을 잃었다.
마왕의 손에 든 검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모두의 눈에 다급함이 어렸을 때, 하늘에서 누군가가 뚝 떨어져 내렸다.
꽈앙!
마왕이 검을 들어 위에서 떨어지는 공격을 막아냈다.
라이언이었다.
그리고 추광열이 은밀하게 마왕의 옆을 파고들며 검을 슈슈슉 내질렀다.
쩌저정!
마왕은 그것도 여유롭게 막아냈다.
“이놈, 아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우리가 이길 건데.”
류혜연의 버프가 쏟아졌다.
그래서 라이언이 휘두른 검이 갑자기 빨라졌다. 마왕도 미처 그걸 막아낼 수는 없었다.
쩌적!
라이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 마왕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떠올랐다. 놀람과 당황이었다.
라이언이 노린 건 마왕의 빈틈이 아니었다. 마왕의 허리띠였다.
“역시 여기 맞네. 그렇지?”
마왕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마족의 말은 인간의 말과는 방식 자체가 다르니까.
라이언 일행이 더욱 확신을 가지고 전투에 임했다. 역시 허리띠가 정답이었다.
라이언 일행이 끼어들자, 자연스럽게 원래 싸우던 플레이어들이 뒤로 빠졌다.
다들 뒤로 물러나 쉬기 시작했다. 언제 다시 싸워야 할지 모르니 쉴 수 있을 때 최대한 잘 쉬어야 한다.
그들 주변에는 먼저 쉬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이 마왕과 싸우기 전에 싸우던 전투 플레이어들이었다. 다들 지칠 대로 지치고 마력도 바닥 나서 더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나마 지금 쉬기 시작한 자들이 좀 나은 상태였다.
어쨌든 탈진하기 전에 쉴 수 있었으니까.
그들은 고개를 돌려 라이언 일행이 싸우는 광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직이 탄성을 흘렸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했다. 라이언과 추광열이야 세계 제일의 플레이어로 워낙 유명하니 그렇다 쳐도, 나머지 일행들의 실력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아니, 저들은 라이언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대체 뭐야, 저 사람들…….”
처음에는 그저 멍하니 보고 있었지만, 이내 그 멍한 얼굴에 경악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마왕이…… 지쳐가는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
다들 온갖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전투를 바라봤다.
마왕이 점점 지치고 있었다. 그리고 상처가 늘어갔다. 회복도 되지 않았다.
반면 라이언 일행은 여전히 쌩쌩했다.
힐러인 류혜연과 버퍼인 류지혜의 힘이었다.
“대단하다…….”
모두가 동시에 합창하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들은 정말 대단했다.
< 마왕 2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