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319화 (319/326)
  • < 마왕 1 >

    현석은 마탑을 방문했다. 사절단이 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사실 별로 관심은 없었다.

    이제 그쪽 일은 양동욱과 제논 백작, 그리고 베르딘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마탑에는 마탑주인 현석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엄청나게 많다.

    현석이 온 곳은 마탑에서 손꼽힐 정도로 중요한 장소 중 하나였다.

    아무것도 없는 밋밋하고 하얀 벽 앞에 선 현석은 벽에다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리고 미리 약속된 마력패턴을 손바닥에 만들었다.

    벽면 전체에 검은 선이 죽죽 그어지며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리고 언제 그곳에 벽이 있었냐는 듯이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벽 너머로 거대한 방이 보였다. 현석이 그 안에 들어서자 다시 벽이 생겨났다.

    사방이 닫힌 방 안에 들어간 것이다.

    이 방은 레인보우 엘릭서 제조시설이었다. 재료만 갖다 넣으면 자동으로 레인보우 엘릭서가 만들어진다.

    애초에 양동욱에게 만들어준 레인보우 엘릭서 공장도 여길 모티브로 제작한 것이다.

    예전에 재료를 몽땅 투입하고서 제법 시간이 지났으니 얼마나 완성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것이다.

    여전히 레인보우 엘릭서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재료를 갖다 넣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모두 만들어지고 나면 수천 병이 넘으리라.

    수천 병이나 되는 레인보우 엘릭서를 모두 복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느냐다.

    현석은 생산시설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보관시설이 있었다.

    깊이 들어가니 거대한 유리장이 나타났다.

    그 안에 완성된 레인보우 엘릭서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물론 빈 부분도 있었는데,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그 빈 곳에 레인보우 엘릭서가 하나씩 채워졌다.

    현석이 여기까지 온 것은 불현듯 든 예감 때문이었다.

    왠지 지금이 아니면 레인보우 엘릭서를 써먹기 어려워질 것 같았다.

    이런 불길한 종류의 강한 예감은 틀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예감에 따라 행동하는 게 맞을 것이다.

    현석은 보관시설 옆으로 갔다. 그곳에도 새하얀 벽이 있었다. 이 방으로 들어올 때 지나온 것과 똑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벽이었다.

    당연히 여는 법도 똑같았다. 물론 열 때 필요한 마력패턴은 좀 달랐지만.

    현석은 새하얀 벽에 손을 갖다 대고 마력패턴을 만들었다.

    마탑에서 쓰이는 모든 마력패턴은 현석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었다.

    애초에 마탑의 주인이 된 순간 그 모든 지식이 자동으로 습득되었다.

    문이 사라졌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넓은 공간이었다. 다만 사방 벽과 바닥, 천장에 빼곡하게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것이 달랐다.

    현석은 그곳으로 들어가 방 한가운데 섰다.

    사라졌던 문이 다시 생겨났다. 사방이 벽으로 막혔다. 그리고 새로 막힌 벽에도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검은 선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에 은은한 금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마법진이 가동된 것이다.

    이 방은 애초에 그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누군가 들어오고 벽이 다시 생겨나면 마법진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작동되도록 말이다.

    천장에서 작은 병 하나가 뚝 떨어졌다.

    그 병은 현석이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마치 어서 잡아 달라는 듯했다.

    그건 레인보우 엘릭서였다. 현석이 새로 재료를 넣은 다음 가장 처음 만들어진 것이기도 했다.

    현석은 그것을 쥐었다. 짜릿한 느낌이 손으로 스며들어 팔을 타고 올라와 심장을 자극한다.

    진짜 자극이 아니라 그저 느낌일 뿐이었다.

    현석은 엘릭서가 담긴 병의 뚜껑을 땄다. 레인보우 엘릭서가 담긴 병은 뚜껑과 몸체가 달라붙어 있다. 일단 따면 다시 뚜껑을 닫을 수가 없는 구조였다.

    물론 다시 닫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현석은 눈을 감으며 레인보우 엘릭서를 단숨에 마셨다.

    후우우웅!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현석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사방으로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

    쩌엉!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충격이 사방 벽을 강타했다.

    그 순간 마법진이 가동하며 그 충격을 모두 흡수했다.

    현석은 감았던 눈을 떴다.

    레벨이 하나 올랐다. 생명수를 베이스로 해서 만든 레인보우 엘릭서의 효능은 놀라웠다.

    레벨업을 하면서 올라가는 스탯의 양이 상당했다. 몸을 혹사시키면서 레벨업을 하는 것과 별다를 것 없을 정도로 많은 스탯이 올랐다.

    현석은 주위를 슥 둘러봤다. 마법진과 벽은 아직 멀쩡했다.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해 다른 곳으로 날려 버리는 방식이었기에 아마 내구성이 상당할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안심하고 레인보우 엘릭서를 섭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욱.”

    현석은 심호흡을 했다. 어느새 눈앞에 두 번째 레인보우 엘릭서가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현석은 그것을 손에 쥐었다.

    아마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것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소화하는 시간도, 또 뿜어져 나오는 충격파도 점점 길어지고 강해질 테니까.

    현석의 입으로 두 번째 레인보우 엘릭서가 모조리 들어갔다.

    * * *

    로버트는 사절단을 이끄는 입장에 있었기에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세워야 했다.

    하지만 아틀란티스에 도착해서 이런 걸 보고 나니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틀란티스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뒤떨어진 문명의 세상이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훨씬 앞선 세상이었다.

    과학을 이용한 물건은 물론이고, 마력을 이용한 물건까지 공존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그 두 가지가 절묘하게 뒤섞인 물건들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의 힘이 결코 약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만일 사절단이 힘으로 그들을 핍박하려는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야말로 다들 절단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보고는 드려야겠지?”

    로버트는 휴대폰을 꺼냈다. 객실에도 전화기가 비치되어 있었지만, 도청 염려가 있었기에 그걸 쓸 수는 없었다.

    로버트의 휴대폰은 아틀란티스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아주 특별히 제작된 휴대폰이었다.

    “젠장. 필요 없는 걸 가져왔어.”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여기서 휴대폰이 터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휴대폰이라니.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게다가 그냥 되는 수준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 왔건 그 나라로 전화를 거는 것이 가능했다.

    심지어 국제전화도 아니었다.

    로버트는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좀 짜증나는 표정으로 자신의 휴대폰을 가만히 쳐다봤다.

    만일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가벼운 최신폰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 특수 휴대폰은 정말 벽돌만 했다. 무겁고 단단하고 불편했다.

    그저 이런 오지에서도 전화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여기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장점이었다.

    어쨌든 휴대폰을 보며 잠시 짜증을 내던 로버트는 이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자마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예. 일이 좀 꼬였습니다.”

    로버트는 지금까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자세히 보고했다. 기억력과 관찰력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기에 남들은 놓치고 넘어간 것들도 모조리 기억해서 보고했다.

    상대도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로버트는 그 반응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어떻게 할까요?”

    다음 명령을 기다리던 로버트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로버트는 놀란 눈으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다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방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한동안 뭔가를 생각하던 로버트는 이내 굳은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어쨌든 혼자만 알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건 모두 알아야만 하는 사실이다.

    어쩌면 지금쯤 다들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 * *

    마왕이 나타났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아홉이 동시에 나타났다.

    각각 세계 주요 도시에 하나씩 나타났는데, 엄청난 힘과 파괴력으로 그 근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마왕이라고 해서 우락부락하고 거대한 건 아니었다. 평범한 남자였다. 다만 머리에 뿔이 달렸을 뿐이었다.

    그래서 더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웬만한 총에는 맞아봐야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총알이 몸에 맞지도 않았다.

    마왕의 몸을 투명한 배리어가 보호하고 있는 듯했다. 마왕 근처에 다가간 총알은 튕겨나가거나 빗겨나 주변만 벌집으로 만들었다.

    미국에 나타난 마왕은 시카고 한가운데 뚝 떨어져 내렸다.

    뉴욕에 나타났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쉽게 도시를 파괴하며 다니진 못했을 것이다.

    뉴욕에는 미래산업과 렉스턴 에너지가 있으니까. 그리고 볼텍스 암시장도.

    세 곳 모두 강력한 플레이어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였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진짜 강한 자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뉴욕에는 팀 메인퀘스트가 있다.

    그리고 양동욱이 레인보우 엘릭서를 이용해 키워낸 500여 명의 플레이어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아르포르 기사단이 있다.

    그들 중 하나만 나서도 마왕을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뉴욕에는 플레이어를 보유한 조직이나 장소가 많다.

    미래산업과 렉스턴 에너지가 있었고, 무수히 많은 길드가 존재했다.

    그리고 볼텍스 암시장도 있다.

    어쨌든 마왕이 미리 그 사실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뉴욕과 멀리 떨어진 시카고 한복판에 나타났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 아스팔트와 건물에 굵직한 금을 쫙쫙 남기면서 말이다.

    거미줄 같은 금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마왕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시카고에 나타난 마왕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등장했다. 가장 늦게 나온 셈이었다.

    마왕은 한 시간 간격으로 나타났는데, 나타날 때, 하늘에 새까만 구름이 모여들었기에 어디에 나타날지 대충 확인이 가능했다.

    그래서 시카고에는 마왕이 나오기 전부터 수많은 플레이어와 군대가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원래는 하늘에서 떨어질 때 요격하거나 도시 밖으로 날려 버리려고 했는데, 워낙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 아무 대응도 할 수 없었다.

    도시에 살던 시민들은 이미 대피시킨 지 오래였다.

    그래서 인명 피해는 걱정이 없었는데, 대신 여기서 싸우면 재산 피해가 정말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마왕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고개를 든 마왕이 눈을 번쩍 떴다.

    꽈앙!

    마왕을 중심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마치 응축되어 있던 무언가가 터져 나가는 듯했다.

    가까이 대기하던 플레이어들이 다급히 방어스킬을 쓰며 물러났다.

    그럼에도 마왕과 가장 가까이 있던 플레이어 다섯이 핏물로 변해 죽어 버렸다.

    “후으으읍!”

    마왕이 고개를 더 들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후우우우.”

    그리고 고개를 내리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마왕이 숨을 내뱉을 때, 코에서 검은 연기가 화악 뿜어져 나왔다.

    그 연기가 사방으로 퍼지며 검은 안개가 되었다. 마왕 주변이 검은 안개로 뒤덮였다.

    아직 그 범위가 넓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왕이 숨을 쉴 때마다 그 범위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마왕의 모습이 안개에 완벽히 가려졌다.

    척 보기에도 지극히 불길해 보이는 안개였다.

    “공격!”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다들 저마다의 스킬을 동원해 마왕을 공격했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상당히 많이 왔는데, 그들이 일제히 스킬을 쏟아 부으니 그 화력이 엄청났다.

    꽈과과과과광!

    스킬이 쏟아질 때마다 마왕 주변을 메운 검은 안개가 스러졌다.

    그리고 안개가 흩어지며 마왕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폭발력이 강한 무기들이 마왕을 향해 마구 날아갔다.

    꽈과과과과광!

    마왕 주변이 불바다로 변했다. 마왕의 몸에도 제법 많은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그 상처는 생겨난 것보다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리고 마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마왕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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