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절단 >
비밀리에 사절단이 구성되었다.
사절단에 발을 걸친 각 나라에서는 경호를 핑계로 약간의 군대까지 포함시켰다.
군대의 숫자는 많지 않지만, 각 나라의 최정예 부대였다. 또한 최신 장비로 무장했다.
가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사실 그들은 아틀란티스와의 싸움 자체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아직도 위성을 통해 아틀란티스를 살펴보고 있는데, 문명 수준이 아직 이쪽을 따라오려면 멀었다.
저게 전부라면, 진짜 전쟁이 벌어졌을 시, 한 달 안에 끝장 낼 수 있었다.
다들 그렇게 믿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함께 데려가는 부대의 의미는 아틀란티스와 싸우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가는 타국의 군부대와 싸울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사절단을 구성했는데, 문제는 아틀란티스에 연락할 방법이었다.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어차피 말도 통하지 않을 테니 일단 뭘 하든 만나야 한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다보면 해결책이 보일 테니까.
그렇게 사절단이 출발했다.
사절단에는 플레이어들도 잔뜩 동행했는데, 다들 방어와 관계된 스킬을 극한까지 익힌 자들이었다.
아틀란티스에서 다짜고짜 공격할 때를 대비한 전력이었다.
거대한 함선 하나만 움직였다. 아틀란티스에서 오해가 깊어질 만한 상황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여러 척의 배가 동시에 가면 싸우자고 달려드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게 사절단을 태운 배가 출발했다.
사절단 중 미국 대표로 나선 사람은 로버트였다.
로버트는 타국의 대표들과 선실에 모여서 차후의 일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고 있었다.
“혹시 아틀란티스에 대한 최신 정보가 있으면 공유하도록 합시다.”
로버트의 말에 다들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말 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정보가 없었다.
“다들 마찬가지인가 보군요.”
로버트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근 아틀란티스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사실 등장 초기에는 위성사진으로 구석구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그곳에 사는 사람을 하나 찍어 추적 감시하는 것도 가능했다.
한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게 점점 더 어려워졌다.
위성사진이 점점 흐려지더니 이젠 구름과 안개가 꽉 낀 것처럼 제대로 구분할 수조차 없어졌다.
군데군데 보이는 곳이 있긴 하지만, 거긴 말 그대로 숲이나 사막 한가운데, 혹은 바다의 일부분 정도였다.
그 위를 지나는 사람도 없었고, 심지어 짐승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그러니 점점 아틀란티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지는 게 당연했다.
이제 정보를 얻으려면 직접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일단은 기존의 정보만 가지고 움직여야겠군요.”
사실 기존의 정보만 해도 제법 괜찮았다. 아틀란티스의 세부지도까지 만들었으니까.
또한 사람들을 추적 감시해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유추해냈다.
“일단 지도를 보면서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로버트는 테이블 위에 아틀란티스 전도를 쫙 깔아놓고 얘기를 시작했다.
“아틀란티스는 모두 네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고 봅니다. 일단 이쪽 숲에 사는 자들, 그리고 이쪽에 있는 사막부족들.”
로버트가 손가락으로 거대한 숲과 사막을 짚으며 말한 다음 다른 사람들을 슥 둘러봤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몇몇은 눈을 빛내며 듣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를 둘러싼 섬에 사는 세력이 있습니다. 나머지는 이쪽 평원에 자리 잡은 수많은 성과 도시들로 이루어진 세력입니다.”
로버트는 마지막으로 평원에 있는 도시 옆에 있는 황궁을 손가락으로 톡 짚었다.
“여기가 이 대륙의 지배자가 사는 곳입니다. 뭐…… 아직은 추측일 뿐이지만요.”
물론 로버트는 그 추측을 100% 확신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정황을 보면 여기가 황궁이 분명했다.
로버트가 주위를 슥 둘러보며 섬뜩한 눈으로 말했다.
“만일 일이 여의치 않으면…… 여길 폭격할 겁니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얘기는 아직 한 번도 나눈 적이 없었다.
“이건 너무 일방적인 통보입니다!”
누군가 일어나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외쳤다. 몇몇이 그와 같은 표정으로 동조했다.
하지만 로버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눈빛으로 말했다.
“이미 논의가 끝난 사안입니다. 설마 사절단에게 이런 중요한 작전을 미리 알려줄 거라 여겼습니까?”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자신들의 위치가 명확히 인식되었다.
“설마…… 우릴 미끼로 쓰려는 겁니까?”
로버트가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제가 여기까지 따라왔겠습니까? 어디까지나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뿐입니다. 만에 하나 일어날지 모를 일들 말입니다.”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리 저렇게 말해도 불안한 건 불안한 거다.
만일 자신들이 아틀란티스 근처에 있을 때, 황궁을 폭격해 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아마 살아 돌아가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가져온 것들을 생각해 보시면 아마 마음이 좀 편해지실 겁니다. 저들의 문명 수준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걸 꿈이나 꿔봤겠습니까?”
그 말을 들으니 살짝 안심이 되긴 했다.
이들은 함선에 헬기를 몇 대 싣고 왔다. 수송용 헬기 두 대와 전투용 헬기 세 대였다.
다들 아틀란티스 사람들이 헬기가 뜨는 광경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지을지 떠올리는 것만으로 표정이 제법 환해졌다.
“아마 정말 재미있을 겁니다.”
로버트는 기분 좋게 웃었다.
* * *
사절단을 태운 함선이 아틀란티스 해역에 들어섰다. 저 멀리 범선들이 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어쩔까요?”
함장이 로버트에게 물었다. 은연중에 로버트가 사절단은 물론이고 함선까지 이끄는 입장이 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열심히 활동한 덕분이었다.
“일단 천천히 다가갑시다. 플레이어들한테 방어 준비하라고 지시하시고요.”
“예.”
함장은 서둘러 부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함선의 승무원과 플레이어들, 그리고 각국에서 온 병력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면서 함선은 천천히 아틀란티스를 향해 나아갔다.
상당히 가까워졌는데도 저쪽 범선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무조건 적대할 마음은 없는 것 같군요.”
로버트의 말에 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전 렉스턴 에너지에서 여길 왔을 때는 훨씬 먼 거리에서부터 마구 공격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로버트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비웃었다.
렉스턴 에너지는 자기들이 먼저 공격했다. 저들이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먼저 미사일을 쏴대는 놈들을 가만 둘 리 있겠는가.
로버트의 표정에 떠오른 자신감이 조금 더 짙어졌다.
“속도를 좀 높입시다.”
함장은 로버트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함선이 더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아틀란티스의 범선들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아마 가까이 다가가면서 범선에 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면 빈 범선인 줄 알았을 것이다.
“자아, 이제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느냐가 문제인데…….”
로버트는 아틀란티스의 범선들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어떻게 대화를 나눌지 걱정했다.
한데 그의 그런 걱정은 범선에서 들려온 소리에 단박에 무너졌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말고 소속과 용건부터 밝히십시오.”
로버트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너무나도 명확한 영어가 그의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있었다.
“영어를…… 알아?”
그러자 범선에서 방금 소리친 사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게 왜 이상합니까? 저기 뒤에 계신 분은 프랑스에서 오신 겁니까?”
사내는 뒷말은 불어로 했다. 그러자 다들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영어와 불어가 동시에 가능하다니. 그들의 상식이 단숨에 박살 났다.
“설마 그쪽…… 그러니까…….”
“아틀란티스입니다.”
로버트는 정말로 저곳이 아틀란티스라는 말에 또 놀랐다.
“그게 당신들 국가의 이름입니까?”
사내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쫙 펴며 말했다.
“아틀란티스 제국입니다.”
로버트를 비롯한 사절단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상황이 잘 풀리는 건지 아닌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보다는 낫지.’
로버트는 그렇게 납득하고는 다시 물었다.
“아틀란티스의 언어가 영어와 불어입니까?”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전 외부에서 오는 손님이 있을지도 몰라 약간 익혀둔 것뿐입니다. 우리는 따로 제국어를 씁니다.”
로버트의 표정이 굳었다.
“우리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사내가 씨익 웃었다.
“모를 거라 생각하셨군요.”
그게 당연하지 않은가. 아틀란티스와 교류한 사람이나 단체가 단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일단 소속과 방문 목적을 말씀해 주십시오.”
사내가 다시 같은 요구를 했다. 로버트는 급히 대답했다.
“미국 국방성 소속 로버트입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분들은 세계 각국에서 오신 사절단 대표들입니다. 방문 목적은…….”
사내가 빙긋 웃으며 로버트의 말을 끊었다.
“사절단이라면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 오신 거로군요.”
“예. 맞습니다.”
로버트는 얼른 그렇게 말했다. 일단 상륙 허가를 받은 다음, 이쪽의 우수한 힘을 보여주리라 작정했다.
함선이 더 육지 가까이 가기는 힘드니 여기서부터는 헬기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아마 기절할 정도로 놀랄 것이다.’
로버트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들이 언제 헬기 같은 걸 봤겠는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좀 있었다. 영어와 불어를 저렇게 능숙하게 했다는 건 이쪽에 대한 조사가 제법 많이 이뤄졌다는 뜻일지도 모르니까.
“사실 저도 위에서 내려온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뿐이라 절차에 따라야 합니다.”
사내의 말에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상륙 허가는 떨어졌습니다. 아틀란티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상륙하겠습니다.”
로버트는 그렇게 말하고 헬기를 준비시키려 했다. 하지만 아틀란티스의 사내가 그걸 막았다.
“그쪽의 물건을 이쪽으로 가져오는 건 아직 안 됩니다. 저희가 알아서 육지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로버트는 육지까지의 거리를 대충 가늠하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살짝 비웃음이 섞인 표정이어서 아슬아슬한 선을 넘으면 상대가 불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로버트는 그동안 쌓인 경험으로 그 선을 아주 잘 지켰다. 그래서 정말 묘한 느낌만 주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배로 가면 육지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은데요? 보시다시피…… 거리가 좀 있지 않습니까.”
사내가 씨익 웃었다. 왠지 방금 로버트가 지은 표정과 비슷해 보이는 묘한 미소였다.
“제가 언제 배로 간다고 했습니까?”
사내의 말이 떨어진 순간, 근처에 있는 모든 범선에서 수송용 헬기가 날아올랐다.
투두두두두두.
사방에 미친 듯이 바람이 불었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특유의 소음이 로버트를 비롯한 모두의 귀를 두드렸다.
다들 멍하니 헬기를 올려다봤다.
상대방에게 기대하던 표정을 지금 그들이 짓고 있었다.
* * *
육지에 상륙한 로버트는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이게 뭐야? 알던 것과 너무 다르잖아!’
위성사진으로 보던 광경과 판이하게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바닷가만 봤고, 아직 내륙으로 들어가지 않아 더 확인해 봐야 하지만, 이것만 놓고 판단하면, 위성사진이 틀렸다. 그건 가짜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신식 건물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보아하니 군사 시설 같았다.
사람들의 복장만 좀 다를 뿐이었다.
‘그래도 복장은 사진 그대로네. 무기는 좀 다르지만.’
이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칼과 활 위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총 같은 병기가 없는 건 아니었다.
총을 든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칼과 활을 든 사람들이 총을 든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아 보였다.
“당분간 이쪽 건물에서 지내시면 됩니다. 혹시 본국에 연락하고 싶으시면 안에 있는 통신 장비를 쓰시면 됩니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통신장비라니.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황급히 안에 들어가 보니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웬만한 호텔 저리 가라할 정도로 잘 꾸며진 객실이 쫙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각 객실마다 컴퓨터와 전화기가 있었다.
과연 이게 될까 하고 작동해본 사절단은 다들 경악했다.
“인터넷이 된다고?”
이제 더 놀랄 힘도 없었다.
< 사절단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