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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17화 (317/326)
  • < 렉스턴 에너지 2 >

    래리는 홀린 듯한 눈으로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펴봤다.

    이 반지는 칼슨이 갖고 있던 반지였다.

    꼭 필요하다고 우겨서 잠수함에 갇혀 죽은 칼슨의 손가락에서 뽑아온 것이다.

    물론 그 일을 한 사람은 현석이었다.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바위산에 묻힌 잠수함을 바다 밖으로 끌어내서 그 안에 있는 칼슨의 시체로부터 직접 반지를 뽑았다고 했다.

    ‘혼자서 했을 거야.’

    얼마 전 목격한 현석의 힘을 떠올린 래리는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그때 뇌리에 새겨진 공포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아니, 그건 아마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래리는 힐끗 옆을 쳐다봤다. 그의 옆에는 그를 감시하기 위해 따라온 플레이어 한 명이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사실상 그냥 따라다니는 것뿐이지 적극적으로 감시하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래리는 속으로 이를 박박 갈았다. 그리고 또 한 번 두려움에 떨었다.

    그의 몸에는 현석이 심어 놓은 마력이 혈관을 따라 힘차게 돌고 있었다.

    그것은 래리의 몸에 아주 긍정적인 부가효과를 주고 있었다.

    체력과 마력이 늘어났고, 언제나 활력이 넘쳤으며 힘도 강해졌고 몸놀림도 훨씬 빨라졌다.

    하지만 그 마력은 래리의 목숨줄을 쥐고 있기도 하다.

    언제든 현석이 원하는 시점에 마력을 폭발시킬 수 있는데, 그 순간 래리의 온몸이 천천히 녹아내리게 된다.

    온몸이 녹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죽는 것이다. 그것도 마력 때문에 빨리 죽지도 못하고 몸이 마비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다.

    어서 빨리 숨이 끊어지길 바라며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죽어가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그래서 굳이 감시자 따위 필요 없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건 마력을 폭발시킬 수 있다고 했으니 그걸 해결하지 않고서는 도망갈 곳도 없었으니까.

    감시자는 래리가 스스로 나서서 붙여 달라고 했다. 자신을 감시하는 목적이 아니라,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이 도망간 게 아니라는 걸 미래산업 쪽에 알리기 위한 용도였다.

    오해로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차가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래리는 감시자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빌딩 앞이었다.

    이곳에 최근 렉스턴 에너지가 복속시킨 가문들의 실무진이 와 있었다.

    그들에게 특별한 지시를 내리기 위해 온 것이다.

    래리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씨익 웃었다. 무섭고 짜증나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희열이 더 컸다.

    “어디…… 내 꼭두각시들을 만나러 가 볼까?”

    래리의 힘찬 발걸음이 빌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세계 에너지 산업을 휘어잡고 있는 유수의 가문과 기업들이 어마어마한 로비를 시작했다.

    * * *

    아틀란티스 중심부 넓은 들판에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현석이 서 있었다.

    현석의 뒤로는 아틀란티스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앞쪽에는 전 세계에서 공수해온 특별한 기술자들이 두려운 눈으로 서 있었다.

    미리 얘기는 듣고 왔다. 또한 보수도 과할 정도로 받았다. 하지만 그래도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을 온몸으로 겪으면, 또, 그것이 위험을 동반한다면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들은 여기까지 용을 타고 날아왔다.

    용을 본 것도 난생 처음이었다. 하물며 용에 타보는 거야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용의 등에 탄 게 아니라 용에 매단 철판에 타고 왔지만, 어쨌든 용을 타고 온 건 맞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더 무서웠다. 철판 곳곳에 달린 손잡이를 어찌나 꽉 잡고 왔는지 손에 힘이 안 들어갈 지경이었다.

    “우, 우리가 뭘 하면 됩니까?”

    기술자 중 하나가 두려운 눈으로 물었다. 현석은 말없이 아공간에서 팔찌를 사람 수에 맞게 꺼냈다.

    최근 황궁의 보물창고에서 발견해 가져온 아티팩트였다.

    기술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팔찌를 받았다. 그리고 현석의 손짓에 따라 팔찌를 손목에 채웠다.

    현석이 손가락을 몇 번 휘젓자 마력이 뿜어져 나가 팔찌에 스며들었다.

    “어?”

    순간 기술자들은 자신의 몸에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가 느껴졌다.

    뭐가 변했는지 알아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현석 뒤에 있던 아틀란티스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저것들의 조립법과 사용법을 알려주면 됩니다. 더불어 원리도 알려주면 더 좋고요.”

    기술자들이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분명히 모르는 말인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건 정말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자동으로 번역이 되어 들리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저 말을 모르는 것도 확실하고 단어 하나하나 곱씹으면 아무것도 모르는데, 저들이 하는 말의 의미는 그냥 알 수 있었다.

    “가능합니까?”

    되묻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기술자 하나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러려고 여기 왔으니까요. 일단 장비부터 꺼내겠습니다.”

    기술자들이 우르르 움직여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열었다. 그들이 쓰는 장비를 보관해 놓은 곳이었다.

    나머지 컨테이너 박스들도 하나씩 열렸다. 기술자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는 아틀란티스 사람들이 우르르 달라붙어 모든 컨테이너 박스를 열어버린 것이다.

    현석은 그 모습을 보며 한 발 뒤로 빠졌다.

    대화만 통하면 조립도 배우는 것도 금방일 거라 믿었다.

    아틀란티스에서 현석이 뽑아온 사람들은 다들 뛰어난 머리와 손재주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일단 저들이 먼저 배우고 그걸 전파하는 순서로 갈 것이다. 현대 문물이 무조건 좋지는 않지만 일단 받아들인 다음 그걸 이쪽 사정에 맞게 잘 조절해서 응용하면 제법 괜찮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현석의 목표는 아틀란티스가 군사력으로 다른 어떤 나라에도 밀리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일 누군가가 아틀란티스를 건드리고자 한다면 자신도 전쟁 후에 멸망에 가까운 피해를 각오하게 만들 계획이었다.

    아틀란티스도 제법 강력하긴 하다. 어쨌든 마력을 쓸 수 있는 여러가지 기술이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까지는 전 세계를 상대로 배짱을 부릴 수 있을 정도는 안 된다.

    ‘하지만 곧 되겠지.’

    현석은 열심히 최신 무기와 장비에 대한 지식을 익혀가는 아틀란티스의 사람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만 좀 더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금 렉스턴 에너지가 벌어주고 있었다.

    * * *

    전 세계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히 아틀란티스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영향력이 높은 국가의 대표자들이 모여 비밀리에 회담까지 열 정도였다.

    회담은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다들 각국의 이익을 최대한 뽑아내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길게 이어지던 회담이 결국 끝났다.

    회담에 미국 대표로 나온 로버트는 넥타이를 풀며 차에 올라탔다.

    “후우. 가지.”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조수석에 앉은 로버트의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표정이 안 좋습니다. 회담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까?”

    “뭐, 그런 셈이지. 결국 전쟁까지 이끌어 내지는 못했어.”

    미국의 최종 목적은 파병이었다. 전쟁을 통해 신대륙, 코드명 아틀란티스를 복속시켜 막대한 자원과 노동력을 끊임없이 뽑아낼 계획이었는데, 그게 틀어져 버린 것이다.

    “대체 렉스턴 에너지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칼슨은 만날 수조차 없고.”

    로버트의 말에 비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요즘 렉스턴 에너지를 비롯해서 에너지 기업들을 조사 중인데…… 아무래도 래리가 무슨 일을 낸 것 같습니다.”

    “래리? 그 친구 칼슨의 비서 아닌가? 플레이어 출신이었지, 아마?”

    “예. 맞습니다. 한데 요즘 모든 일을 래리가 다 처리한다고 합니다.”

    “그거야 원래부터 그랬잖아. 칼슨이 직접 움직인 일은 그리 많지 않았어.”

    “하지만 최근에는 사안들이 좀 중요하지 않습니까. 칼슨이 직접 움직일 법한 일에도 항상 래리만 움직이니까요.”

    로버트는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하군.”

    “좀 더 인력을 투입해서 조사할까요?”

    그 질문에 로버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됐어. 이미 끝난 일이야. 지금은 렉스턴을 칼슨이 움직이든 래리가 움직이든 전혀 상관없어. 우린 아틀란티스에 집중해야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로버트는 그걸로 대화를 끝냈다. 렉스턴 에너지의 행보가 괘씸하긴 했지만, 그놈들도 뭔가 이득이 있으니 그짓을 했을 것이다.

    듣기로는 직접 함대를 이끌고 아틀란티스에 갔다고 하는데, 나온 결과가 없어서 그저 소문뿐이라고 여겼다.

    위성사진을 모두 확인했는데도 렉스턴 에너지가 움직인 흔적 자체가 없었다.

    신빙성 없는 소문임이 분명했다.

    렉스턴 에너지를 비롯해 미래산업과 세계 유수의 플레이어 길드들, 그리고 에너지를 장악한 가문들까지 모두 나서서 아틀란티스와의 전쟁을 막기 위한 로비 중이었다.

    당연히 전쟁을 일으키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전쟁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그런 돈을 쓰기 위한 승인을 받아내야 하니 얼마나 어렵겠는가.

    결국 전쟁은 물 건너갔다. 하지만 아직 기회가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일단 사절단을 보내 접촉을 시도하기로 했다.

    사절단은 오늘 회담에 모인 나라들이 함께 구성하기로 결정을 했다.

    조만간 실무진이 만나 사절단에 들어갈 구성원과 자세한 일정, 그리고 아틀란티스에 연락할 방법 등을 결정할 것이다.

    로버트는 차 시트에 등을 기대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내가 가야지. 그래야 비벼볼 구석이라도 있을 테니까.’

    로버트는 자신이 직접 아틀란티스에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아틀란티스의 황궁이 어디 있는지 위성사진을 통해 위치를 확인했다.

    아마 그곳에 황제가 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틀란티스는 단일 국가일지도 모른다.

    ‘그럼 훨씬 요리하기 쉬워지지.’

    꼭 전쟁을 할 필요는 없다. 이쪽에 아주 강력하고 위험한 힘이 있다는 것만 알려줘도 된다.

    섣부르게 굴다간 정말 끝장날 수도 있다는 걸 명확히 인식시켜 준다면, 전쟁을 벌여 박살을 낸 것과 약간이나마 비슷한 효과를 줄 수도 있다.

    일단은 거기까지 해보고, 그 뒤에 아틀란티스의 반응을 확인한 다음 전쟁을 노릴 생각이었다.

    로버트는 전쟁의 기대감 때문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재미있어지겠어.”

    로버트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맴돌았다.

    * * *

    미카엘이 화이트홀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의 모습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눈부신 금발에 조각 같은 미남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모습이 남아있지 않았다.

    심지어 체형도 여리여리한 편이었는데, 이젠 근육이 온몸을 꽉 채우고 있었다.

    미카엘을 잘 아는 사람을 데려와도 이 사람이 미카엘이라고는 생각도 못할 것이다.

    미카엘은 목을 우둑우둑 꺾었다.

    “드디어 다 먹었다.”

    그렇게 중얼거린 미카엘은 몸을 돌려 동공에 쫙 퍼져 있는 화이트홀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서 섬광이 한 차례 번쩍이자, 모든 화이트홀이 일제히 폭발해 버렸다.

    소리없는 폭발이었다. 예전 아틀란티스에서 현석이 보여줬던 블랙홀의 폭발과 아주 닮아 있었다.

    모든 화이트홀이 사라지고 난 자리엔 미카엘과 아주 흡사하게 생긴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미카엘을 발견하자마자 공손히 그 자리에 엎드렸다.

    “계속 그러고 있어라.”

    미카엘은 그 명령 한 마디만을 남기고 씨익 웃으며 옆 동공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도 아직 먹어치워야 할 화이트홀이 넘쳐난다.

    미카엘의 등 뒤로 새까만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직 형체가 제대로 갖춰지진 않았지만, 왠지 날개처럼 보였다.

    검게 일렁이는 날개를 휘날리며 옆 동공으로 간 미카엘은 가장 가까이 있는 화이트홀로 들어갔다.

    미카엘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동공 안에는 어둠의 마력이 자욱하게 깔렸다.

    음산한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 다녔다.

    구구구구구.

    은은한 진동음이 울렸다. 그러면서 동공의 모양이 아주 조금씩 뒤틀리며 변해가기 시작했다.

    < 렉스턴 에너지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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