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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15화 (315/326)
  • < 작은 전쟁 3 >

    밤이 되었다.

    래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구름이 잔뜩 끼어서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코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방이 캄캄했다.

    물론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정도 어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특수부대들은 적외선 장비를 하고 있기에 움직임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또한 플레이어들은 마력을 이용해 시야를 밝혔다.

    그들은 마치 대낮에 평지를 이동하는 것처럼 빠르게 황궁을 향해 날아갔다.

    당연히 다들 호버패드를 타고 이동했다. 호버패드는 황궁에 도착하면 담장 아래에 대충 버려둘 생각이었다.

    일단 안에 들어가면 호버패드는 거치적거리기만 할 테니까.

    황궁에 도착한 래리 일행은 호버패드를 탄 채로 담장을 타고 넘었다.

    호버패드를 잘 조작하면 제법 높은 담장을 넘거나 어느 정도 높이까지 벽을 타고 오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담을 넘은 그들은 호버패드를 담장 아래에 감춘 다음, 안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렇게 건물 안으로 순식간에 스며들어간 래리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묘한 위화감이 온몸에 엄습해왔다. 그게 뭘까 생각하던 래리의 눈이 커다래졌다.

    ‘아무도…… 없어?’

    인적이 전혀 없었다.

    아무리 밤이라지만 인기척이 전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하인이나 시녀도 있을 것이고, 또, 이 시간까지 밀린 일을 처리하는 관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경계병은 있어야 한다. 야간에 순찰을 도는 병사는 있어야 정상 아닐까?

    한데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일부러 황궁을 비우기라도 한 것처럼.

    그 생각이 들자 래리의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래리는 급히 멈추며 손을 들었다. 그를 따르던 자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철수한다.”

    “예?”

    다들 황당한 눈으로 래리를 바라봤다. 여기까지 잘 들어와서 난데없이 철수라니.

    하지만 몇몇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챈 사람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고작 대여섯 명 정도였지만, 그들이 움직이니 나머지도 따라 움직였다.

    다들 돌아서서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갑자기 쏟아진 강렬한 빛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들은 궁 입구를 들어오자마자 나오는 거대한 홀에 있었는데, 홀 천장에서 강한 빛이 쏟아져 내려왔다.

    마치 작은 태양이 뜬 것처럼 밝아졌다. 아니, 실제로 그 비슷한 게 떠 있었다.

    홀 천장에는 강한 빛을 뿌리는 작은 구체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구체라는 건 굳이 보지 않아도, 또 자세히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래리는 자세를 낮추며 사방을 경계했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이곳에는 그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래리뿐 아니라 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주위를 끊임없이 둘러봤다. 그들의 눈은 날카롭게 번득였다.

    “저기!”

    누군가가 홀 끝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그곳에는 옥좌 하나가 놓여 있었다. 다들 거기 옥좌가 있다는 걸 알기에 그곳으로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옥좌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아깐 분명히 없었는데!’

    래리의 몸에 깃든 긴장감이 두 배로 늘어났다. 보통 사람이 홀로 저기에 앉아 있을 리 없다.

    옥좌에 앉았던 사람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정말 신기하게도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이 마치 그림자로 뭉개 놓은 것처럼 검고 탁하고 흐릿했다.

    몸은 그래도 잘 보였다. 아주 평범한 현대 지구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다만 손가락에 낀 반지나 손목에 찬 팔찌 같은 것들이 심상치 않아 보이긴 했다. 아티팩트가 분명했다.

    그리고 복장 곳곳에 마력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입은 옷이나 신발도 아티팩트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정말 강하고 위험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래리가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몇몇 고레벨 플레이어가 래리 주변을 감싸며 호위하듯 함께 나섰다.

    “집주인인가?”

    래리가 긴장을 풀려 애쓰며 가볍게 물었다. 반쯤 농담을 섞은 건데, 생각보다 별로 효과가 없었다.

    옥좌 앞에 선 사람,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처럼 보이진 않고, 도둑?”

    래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셈이지. 이 대륙을 빼앗으러 왔으니까. 그럼 도둑보다는 강도에 가까운가?”

    현석이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말했다.

    “그럼 집주인인 나는 강도를 때려잡아야겠군.”

    래리는 긴장하며 주위를 살폈다. 혼자 있다면 저렇게 당당할 수 없을 거라 여긴 것이다.

    ‘정말 없나? 진짜?’

    하지만 아무리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도 아무런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 마력의 흐름도 못 느꼈다. 감춰둔 패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었다.

    래리는 다급히 눈알을 굴려 동료들을 살폈다. 자신보다 레벨도 높고 감각도 뛰어난 플레이어들을 확인한 것이다.

    그들 역시 아무런 기척도 못 느낀 모양이었다. 모두의 눈에서 불안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일반 용병들이 총과 휴대용 미사일을 겨눴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 겨누고는 천천히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그렇게 옥좌 앞으로 나온 현석을 중심으로 커다란 포위망을 만들었다.

    홀이 워낙 넓었기에 그 많은 인원이 포위망을 구축하는 데에도 전혀 무리가 없고 간격이 넉넉했다.

    “자, 이제 슬슬 깊이 있는 대화가 필요할 것 같군.”

    래리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며 또 한 걸음 현석에게 다가갔다.

    “대화?”

    현석은 자신을 포위한 자들을 슥 둘러봤다.

    “네가 황제 아닌가? 이 대륙을 지배하는?”

    래리는 확신을 가지고 물었다. 황제가 아니라면 왜 황궁처럼 생긴 건물의 옥좌에 앉아 있겠는가.

    황제가 아니라도 최소한 그에 근접한 주요인사일 확률이 높았다.

    현석은 확신에 찬 래리의 눈빛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아니라고 해도 안 믿을 표정인데? 뭐, 맞아. 내가 황제다.”

    물론 진짜 황제가 된 건 불과 얼마전이었지만 말이다.

    “그래? 그거 참 잘됐군. 일단 우리의 요구를 좀 들어줘야겠어.”

    “내가 왜?”

    래리가 씨익 웃었다.

    “아니면 죽거나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당할 테니까.”

    현석이 담담하게 래리를 보며 물었다.

    “너희가?”

    래리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꾸하려는 찰나, 현석이 움직였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다들 현석이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현석은 어느새 래리 앞에서 그의 목을 콱 움켜쥔 채였다.

    “커억!”

    래리는 너무 고통스럽고 답답해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목을 옥죄는 현석의 악력이 어마어마했다.

    두 손으로 현석의 손목을 꽉 쥐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현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주위를 슥 둘러봤다.

    “원한 게 이런 건가?”

    래리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이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없었다. 맹세코 평생 겪은 모든 고통 중에서 지금이 최고였다.

    “그 손 놓는 게 좋을 거다. 아니면 진짜 다 쓸어버릴 테니까.”

    플레이어 하나가 나서서 현석을 협박했다. 당연히 현석은 코웃음을 쳤다.

    “쓸어버려? 뭘?”

    “이미 우리 군대가 상륙했다. 너희가 과연 그들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우리가 어떤 무기를 쓰는지 아직 잘 모르지?”

    “내가 왜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뭐?”

    “총이나 미사일에 대해 내가 모를 거라고 여겼나?”

    다들 깜짝 놀랐다. 설마 그런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래리는 고통 속에서도 놀라 눈을 부릅떴다.

    “누가 누굴 쓸어버리는지 한 번 볼까?”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몇몇의 시선이 현석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헉! 저게 뭐야? 설마 홀로그램?”

    천장에 입체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해변에서 조금 내륙으로 들어온 곳이었는데, 거기에 렉스턴 에너지의 병력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다들 척 보니까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다.

    “대체 저길 어떻게 찍었지?”

    누군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심지어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이곳 대륙은 자신들이 추측했던 것과 달리 엄청난 발전을 이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봐라. 너희가 우릴 쓸어버리기 위해 데려온 저 하잘 것 없는 병력이 어떻게 끝장나는지.”

    현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지 한가운데에 검은 소용돌이가 우수수 생겨났다.

    “더, 던전?”

    다들 깜짝 놀랐다. 설마 던전이 저기에 생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서, 설마 던전을 만들 수 있는 건가? 마음대로?”

    현석은 피식 웃으며 손에 힘을 더욱 꽉 주었다.

    “꺼어어!”

    래리의 숨이 막 넘어가기 직전 현석은 손에서 힘을 빼고 래리를 휙 던져 버렸다.

    쿠당탕!

    플레이어 몇 명과 얽혀 바닥을 나뒹구는 래리를 힐끗 쳐다본 현석은 다시 시선을 위로 올렸다.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위로 올라갔다.

    진지에 나타난 블랙홀의 수는 30개가 넘었다.

    싸한 긴장감이 좌중을 휘감았다.

    * * *

    렉스턴 에너지의 진지는 제법 경계가 철저했다. 하지만 그건 외곽이나 그렇지 중심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중심부에 갑자기 나타난 30여 개의 블랙홀을 금방 발견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대부분 잠든 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경계 병력이 제법 많은 상황에서 언제까지고 그것이 발견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던전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막사가 소란스러워졌다. 이내 사람들이 우르르 나왔다. 그 안에는 당연히 사령관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령관은 블랙홀들 앞에 서서 황홀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던전…… 역시 이 대륙이 던전과 관계있었군.”

    던전이 사라진 시기와 신대륙이 나타난 시기가 맞물렸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한데 지금 보니 그 가설이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단 플레이어들을 시켜서 던전을 조사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부관도 살짝 흥분해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사령관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안 돼. 우린 아직 전쟁 중이다. 전력을 최대한 보존해야 해. 던전을 살피다가 인력 손실이라도 나면 곤란하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불만이 쌓일 만한 결정이기도 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새로운 던전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다들 레벨이 제법 높았기에 던전을 확인하는 정도는 자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던전의 등급도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았다.

    불만을 가진 플레이어 몇 명이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기 위해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막상 가서는 말할 기회가 없었다.

    “뭔가 좀 이상합니다.”

    던전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 하나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뭐가 이상하지?”

    사령관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던전의 크기가……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마치 심장 박동이라도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고 블랙홀을 보니 과연 그런 것 같았다.

    던전이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물론 그 크기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서 얼핏 보면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블랙홀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으니 막사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이 더 깨어나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사람들이 제법 모였을 때, 일이 벌어졌다.

    “응? 이거 점점 작아지는 것 같지 않아?”

    사령관의 말에 다들 블랙홀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홀은 더 이상 박동하지 않고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마치 서서히 안으로 응축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거의 점처럼 변할 때까지 작아진 블랙홀이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푸화하학!

    폭음이 울리진 않았다. 하지만 새까만 안개가 폭발적으로 사방을 장악해 버렸다.

    물론 그 새까만 안개는 금세 공기 중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그건 짙은 마력이었다. 그것도 아주 순수한.

    문제는 그 이후의 일이었다.

    “마, 마수?”

    블랙홀이 사라진 자리에는 엄청난 수의 마수들이 바글거렸다.

    “쿠워어어어어!”

    대지와 공기를 진동시키는 마수의 포효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마수들이 일제히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 작은 전쟁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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