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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14화 (314/326)
  • < 작은 전쟁 2 >

    꽈앙! 촤아아악!

    폭음과 동시에 물기둥이 솟았다.

    함포 사격을 지휘하는 사령관의 얼굴에 짜증이 일었다. 이런 일은 사실 처음이었다.

    “이거 왜 이렇게 안 맞아?”

    거리가 제법 멀긴 하지만 그래도 훈련할 때는 90%가 넘는 명중률을 자랑했다.

    이 정도 거리라 하더라도 명중률이 60% 이하로 떨어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데 지금은 10%도 채 나오지 않으니 사격을 할 때마다 짜증이 났다.

    현재 함포 사격을 하는 함선의 수는 무려 일곱 척이었다.

    마음 같아선 항공모함이라도 끌고 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쓰는 함선도 사실 렉스턴 에너지에서 만든 것이다.

    렉스턴 에너지는 초기부터 무기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왔다.

    그래서 무기를 연구하는 연구소의 규모도 굉장했다.

    주로 마력 기반 아티팩트를 연구하는 걸로 외부적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군사 무기를 개발하는 곳이기도 했다.

    지금 타고 있는 함선은 물론이고 어뢰를 준비하고 있는 잠수함, 그리고 배에 탄 플레이어와 병사들이 장비한 총과 개인용 미사일까지 모두 렉스턴 에너지에서 새로 개발한 것들이었다.

    당연히 성능은 굉장했다. 그리고 물량도 많았다.

    아직 항공모함이나 전투기 쪽은 개발이 안 되어서 못 끌고 왔지만, 만일 그것이 개발되었다면 이 전쟁을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사령관은 그 점이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사격이 빗나가는 것이 더 짜증났고 말이다.

    “슬슬 적의 반격에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옆에 있던 부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령관은 순간 짜증이 확 치솟았지만 이내 그것을 꾹 눌러 참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저놈들 공격 방식이 마력을 이용한 빔이라고 했던가?”

    “예. 일단 보고된 내용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만 생각하고 있다가 다른 방식을 만나면 곤란하다. 전투에는 언제나 의외의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준비해 둬야 한다.

    “플레이어들 대기시켜. 방어 스킬 위주로.”

    “예. 이미 준비 중입니다. 갑판으로 올릴까요?”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그리고 잠수함 쪽에서는 아직 연락 없나? 슬슬 진격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아마 우리 쪽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럼 플레이어 갑판에 올리고 바로 진격할까요?”

    사령관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개인용 미사일도 준비시키고. 한꺼번에 몰아쳐서 단숨에 돌파해 버리는 게 낫겠어.”

    적의 범선들은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거길 돌파하면서 양 옆에 있는 범선들을 아주 박살을 내 버릴 생각이었다.

    이건 반드시 통하는 방법이다. 가까이 가면 함포 사격이 빗나갈 일도 없을 테니까.

    “자, 시작해.”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함선들이 일제히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잠수함으로 연락이 갔다.

    * * *

    “진짜…… 무시무시한 놈들이로군.”

    마르티우스는 범선 옆을 쭉 관통해 바다에 떨어지는 적의 포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높은 물기둥이 치솟았다. 마치 비라도 내리는 것처럼 바닷물이 쏴아아 쏟아졌다.

    현재 이 범선은 특별한 아티팩트로 보호되고 있었다.

    두 가지 기능이 있는 아티팩트가 장치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강한 충격을 분산시키고 흘려버리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환상이었다.

    적의 사격을 교란하기 위한 장치였는데, 아마 코앞에서 직접 범선을 보지 않으면 범선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각 범선에 설치된 이 방어 아티팩트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물건이었다.

    다들 신의 선물이라 부르는 물건이기도 했다.

    “저놈들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전사가 다급히 말했다. 마르티우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범선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마 이 공격으로 저들을 물리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효과는 있다. 그건 지난번에 확인했다.

    번쩍!

    꽈아아앙!

    사방에 늘어선 범선들이 일제히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빛은 정확히 다가오는 함선들을 직격했다.

    마르티우스의 눈매가 살짝 일그러졌다.

    “마력을 다루는 놈들이 잔뜩 타고 있는 모양이군.”

    방금 함선을 감싸는 거대한 방어막을 분명히 확인했다. 그리고 거기에 담긴 마력도 분명히 느꼈다.

    그 순간, 거대한 충격이 찾아왔다.

    꽈아아앙!

    마르티우스는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상황을 파악했다. 방금 엄청난 충격과 함께 배가 크게 흔들렸다.

    “아까 그놈인가보군.”

    “예. 분명히 아래에서 오는 충격이었습니다.”

    일단 아티팩트가 작동해 침몰은 막아냈지만, 수리를 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마르티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륙에 연락은 했나?”

    “예. 뚫릴 것 같다고 미리 연락 했습니다. 기습을 준비한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바다 아래를 통해 상륙한 놈들이 있을지도 몰라.”

    “그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 했습니다. 걱정 말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마르티우스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적의 무기가 너무 강력했다.

    물론 이쪽에도 강한 전사들이 수두룩하다. 또한 뛰어난 아티팩트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의 무기는 아티팩트가 아니었다. 그 얘기는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저들이 가져온 무기의 수량, 그리고 함께 온 병력의 수에 따라 전투의 향방이 갈리겠어.’

    마르티우는 이를 악물었다.

    “뚫릴 땐 뚫리더라도 맥없이 당할 수야 없지. 다들 전투 준비 해.”

    옆을 치고 나갈 때, 적함에 뛰어들어 한 바탕 날뛰어 줄 생각이었다.

    물론 죽을 각오로 싸우겠지만 죽을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싸우다가 바다로 뛰어들면 되니까.

    “뚫리는 건 신경 쓰지 말고 범선 관리 잘하라고 전해. 그리고 아래에 있는 놈들, 우리가 잡는다.”

    마르티우스의 눈에 섬뜩한 살기가 번득였다.

    * * *

    바다 위의 전장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사방에서 빛이 번쩍이고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곳곳에 물기둥이 치솟았다.

    일곱 척이나 되는 거대한 함선이 빠르게 돌진하고 있었다. 크기에 맞지 않게 엄청난 속도였다.

    범선들은 그 속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근처에 다가간 함선들이 일제히 포를 쏘았다.

    꽈과과과광!

    범선들이 터져 나갔다. 이렇게 가까이서 쏘니 안 맞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정밀하게 겨냥하지도 않고 그냥 쏜 포였다.

    범선의 방어막이 작동했지만, 충격이 그 한계를 훌쩍 넘어 버렸다.

    그리고 범선에서도 일제히 빛이 뿜어져 나왔다.

    꽈과과과광!

    함선에 대기 중이던 플레이어들이 이를 악물고 방어막을 둘러 그것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함선 위로 바다의 전사들이 훌쩍훌쩍 뛰어들었다.

    그들은 막 방어막을 치느라 마력을 바닥까지 쥐어짠 플레이어들에게 달려들었다.

    슈가가각!

    “으아아악!”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이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갑판에 피가 흥건히 고였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옆 범선이 빛을 뿜어냈다.

    꽈아아앙!

    함선이 거칠게 흔들렸다. 포 몇 개와 갑판 일부가 박살 났다.

    마르티우스는 함선이 크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눈을 빛내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를 비롯한 바다의 전사들은 이렇게 크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싸워본 경험이 지독하게 많았다.

    기본적으로 마족과 싸우려면 배에 충격이 오는 걸 견디며 움직이고 칼을 휘두를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 경험 덕분에 또 엄청난 수의 플레이어와 병사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이쯤 되면 학살에 가까웠다.

    “저놈들 숫자는 얼마 안 돼! 다들 무기를 들어!”

    누군가 발악하듯 외쳤다. 그제야 몇몇이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아군이 섞여 있어서 미사일이나 총을 쏠 수는 없었다.

    결국 플레이어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바다의 전사들은 플레이어들이 나서자 포위되지 않게 주의하며 날뛰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미련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바다에서의 싸움이 끝났다.

    * * *

    사령관은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진지부터 구축해!”

    해변에서 안쪽으로 쭉 들어온 곳에 상당히 신경 써서 진지를 구축했다.

    여기까지 들어오는 동안 함선 한 척이 반파되었다. 그리고 안에 타고 있던 병사와 플레이어가 절반이나 죽었다.

    다른 함선의 상황은 좀 나았지만 그래도 다들 피해가 제법 컸다.

    그 와중에 상륙하자마자 기습까지 당했다.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 일반 병사들이 툭툭 죽어 나갔다.

    만일 적이 돌격이라도 해 오면 총으로 충분한 답례를 해줄 생각이었는데 화살이 끝이었다.

    화살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정교하고 빠른 화살이 섞여 있었는데, 그것들은 지휘관급 주요 인사들을 노렸다.

    사령관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근처에 항상 데리고 다니던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심장이 꿰뚫려 죽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짜증이 또 안 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령관의 신경은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이제부터는 시간을 들여서 착실히 진군할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걸리는 모든 것을 죽이고 파괴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소란을 피우는 동안 잠수함에서 상륙한 자들이 황궁을 장악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었다.

    물론 황궁을 장악한다고 해서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경계 철저히 하고! 정찰은 신중하게!”

    사령관은 연신 소리쳤다. 그러면서 저 멀리 바다에 여전히 떠 있는 범선들을 노려봤다.

    이가 갈렸다.

    그래도 오면서 범선을 네 척이나 침몰시켰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화병이라도 났을 것이다.

    “저놈들이 뒤를 칠 수도 있으니까, 대비해.”

    하지만 말 그대로 대비지 진짜 달려들지는 않을 거라 여겼다.

    현재 진지를 구축한 곳을 중심으로 넓은 부채꼴 형태로 함선들이 위치해 있었는데, 언제든 포를 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문제는 저 범선들의 공격력도 만만치 않다는 점인데, 그 부분은 별로 염려하지 않았다.

    후속 병력이 또 바다를 건너 이쪽으로 오고 있을 테니까.

    저들은 아마 새로운 함선을 상대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이다.

    “슬슬 난리가 난 곳들이 생기겠군.”

    아마 세계 곳곳에서 아틀란티스라 명명된 이 신대륙을 노리는 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뭐, 우리야 황궁을 선점할 테니까.”

    이제 가장 유리한 고지에 설 준비가 되었다. 아마 뒤따라 움직이는 자들은 들인 공에 비해 얻는 것이 무척 적을 것이다.

    “그나저나…… 황궁 쪽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군.”

    섣불리 그쪽으로 무전을 할 수도 없었다. 은밀한 작전에 소리가 새 나가면 안 될 테니까.

    어쩌면 무전 자체를 다 끄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쪽에도 플레이어가 잔뜩 있었다. 그리고 그쪽에서 움직이는 일반병은 다들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사령관은 조만간 모든 결판이 날 거라 확신했다.

    ‘우린 그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천천히 진군하는 척 하면서.’

    사령관은 그런 생각을 하며 내륙 쪽을 바라봤다. 과연 그들이 어디쯤 가고 있을지 궁금해 하면서.

    * * *

    황궁 기습군을 이끄는 사람은 래리였다.

    칼슨도 가고 싶어했지만, 그는 플레이어도 아니고 특수부대도 아니다. 가 봐야 방해만 될 게 뻔했다.

    그래서 래리가 그 일을 맡았다.

    그들은 최대한 빠르게 황궁을 향해 움직였다. 미리 준비한 GPS를 통해 정확한 방향을 잡아 이동했기에 잘못 도착할 일은 없었다.

    다만 이동 속도가 문제였는데, 그건 렉스턴 에너지에서 최근 개발한 호버패드가 해결해 주었다.

    아직 테스트가 완벽하게 끝나지 않아서 상용화를 미루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냥 싹 긁어왔다.

    호버패드는 바닥에서 30센티미터 정도 뜬 채로 이동하는 평평한 판이었다.

    속도가 웬만한 스포츠카 뺨을 후려 버릴 정도로 빠른데다가 소음이 전혀 없어서 이럴 때 아주 유용했다.

    래리는 긴장한 표정으로 호버패드에 올라탄 채 빠르게 들판을 이동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은밀히 이동하는 건,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심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동하던 그들의 눈에 저 멀리 목표가 보였다.

    “멈춰.”

    래리는 황궁이 보이자마자 멈춰서 몸을 적당히 숨겼다.

    “밤까지 기다린다.”

    그래도 명색이 기습인데 훤한 대낮에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빨리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성공하는 것이었다.

    변수는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다들 밤을 기다리면서 차분히 휴식을 취했다. 물론 들키지 않기 위해 주변을 경계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되어갔다.

    < 작은 전쟁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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